불경읽는 일요일

10.25 '대반열반경' 후기!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5-10-31 12:18
조회
742

중생도 역시 그러하다. 우치하여 생사의 큰 바다에 있으면 제행(諸行)이라는 배를 타고 있다. 만일 대열반의 용맹하고 날카로운 바람을 만나게 되면 위없는 도(道)의 언덕에 빨리 도달할 수 있는데, 만일 만나지 못하면 마땅히 무량한 생사에서 오랫동안 유전(流轉)하다가 어떤 때인가 파괴되면 지옥,축생,아귀에 떨어진다.
또한 다시 선남자야,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들이 바람을 만나지 못한 채 오랫동안 큰 바다에 머물다 보니 '우리가 이번에는 여기에서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문득 날카로운 바람을 만나서 그것에 따라 순조롭게 바다를 건넜다. 그리하여 '상쾌한 일이다. 이 바람은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 무리들로 하여금 안온하게 어려운 큰 바다를 건너게 하였다'고 말한다. 
중생도 역시 그러하다. 어리석음과 생사의 큰 바다에서 오래도록 있으면서 곤궁하고 지친 채 그러한 대열반의 바람을 아직 만나지 못하면 곧 '우리들은 반드시 지옥,축생,아귀의 세상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 모든 중생들이 그렇게 사유할 때 문득 대승인 대열반의 바람을 만나게 되면, 그 바람이 부는 방향에 수순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비로소 진실임을 알아 기특한 생각을 일으켜 찬탄하여 말하길, '상쾌하다. 나는 예전에는 일찍이 그러한 여래의 비밀장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다'고 하면서 곧바로 <대열반경>에 대하여 청정한 믿음을 일으킨다. (220)

또 선남자야, 비유하면 연꽃이 햇볕에 비추이게 되면 피지 않는 것이 없듯이 모든 중생도 역시 그러하다. 대열반의 해를 보고 듣게 되면 마음을 일으키지 못한 사람들도 모두 빠짐없이 마음을 일으켜서 보리의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대열반의 빛이 털구멍에 들어가면 반드시 미묘한 원인이 된다'고 설하는 것이다. (214)

지난 시간까지 <대반열반경>의 '여래성품'부분까지를 읽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일체중생실유불성'을 비롯하여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었지요. 지난 시간에도 모든 중생이 성불할 수 있음, 어떤 악도에 빠져있더라도 대열반경의 힘으로 또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보리의 원인을 짓게 된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심지어는 악몽을 꾸게 되어서라도 보리심을 일으키게 된다고 하네요. 이런 식입니다.

가섭아, 누군가가 이 <대열반경>을 듣고 '나는 보리심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정법을 비방하면 이 사람은 꿈 속에서 나찰의 형상을 보고 마음으로 공포를 일으킨다. 그러면 나찰이 '애닯다. 선남자야, 네가 지금 만일 보리심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너의 목숨을 마땅히 끊어버리겠다'고 말한다. 그 사람은 황망히 두려워하며 깨고 나서는 곧 보리심을 일으킬 것이다. 그 사람은 죽은 뒤에 삼악취에 있든지 인간 또는 천신으로 있든지 계속하여 다시 보리심을 억념(憶念)할 것이니, 이 사람은 위대한 보살마하살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한다. (209)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는 원인은 한량 없습니다. 하여, 모든 존재는 성불할 수 있다는 것. 음, 그러니까 대승경전에서 성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성취는 모든 중생의 필연인 것 같습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느냐'라든가, '무아같은 것을 왜 알아야 하느냐', 이런 질문이 나오거나 말거나 이 <대반열반경>에서 세계는 중생이 불성의 성취(!)를 발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져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기이한 존재가 등장합니다. '일천제'라는 것.
처음 들어보셨지요? 네, 저 처음 들어봤습니다^^;
일천제(一闡提)란 산스크리트어 'icchantika잇찬띠까'의 음사라고 하네요. 번역하기가 어려워 보통 한역어를 부여하지 않고 사용한다고. 문자 그대로는 '제 멋대로 욕구하는 사람'. 욕구의 대상이 뭔지는 확실치 않다고 해요. (구글검색)
아무튼 이 일천제는 보통 해탈의 인(因)을 갖지 못해 성불할 수 없는 이를 가리킵니다. 불신자라거나 정법비방자와 함께 묶이는 것 같지만 또 쉽게 동일시 할 수는 없는 듯. 앞서 말했듯이, 지난 시간에 읽은 부분에서는 지금 당장 보리심을 일으키지 못한 자라 하더라도 보리의 원인을 짓게 됨을 계속 말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일천제만은 가망이 없음(0.0)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떤 나라는 맑고 서늘한 바람이 많이 불어서 중생들의 모든 털구멍에 닿으면 능히 모든 답답한 번뇌가 소멸되는 것과 같이 이 대승경전인 <대열반경>도 역시 그러하다. 모든 중생들의 털구멍에 들어가서 보리의 미묘한 인연이 되는데 일천제만은 제외한다. 왜냐하면 법의 그릇이 아니기 때문이다. (215)

그는 이미 죽음이 확정된 병자와 같아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도 고칠 수 없으며, 또 볶아버린 씨앗과 같아 아무리 단비를 만나 백천만 겁을 지내도 끝내 싹이 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극악 죄인 - 오무간죄 또는 네 가지 중금법을 범한 중생도 보리심을 일으키는데, 일천제만은 그렇지 못하다 합니다.
이 계속된 이야기에 우리는 괜스레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저는 괜히 두렵기도 했고-.-;;
성불할 수 없는 존재 - 어째서 대승의 경전에서 이 일천제가 등장하고 있는 걸까요.
어차피 중생의 성불이 이번 생에 한정해서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하다면 그냥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로 끝내면 될 것 같은데...
그 편이 중생들을 발심케 하는 데 더 적절할 것 같은데요.
일천제의 존재는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이들에 대한 헛된 책임감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서인걸까..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역시 아직 의문으로 남습니다.
일천제라 언급된 자들, 가령 '파계를 일삼고 대승을 비불설(非佛設)이라고 비방'하는 자들에 대한 경계 때문에, 혹은 그와 관련된 문제 상황에서 나온 기술들인가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일천제의 성불에 대해서는 논의가 분분한 것 같습니다. 우리 책 앞 부분에서는 어쨌든 (잘 이해는 안가지만) 차원이 다른 것이다라고;; 불성의 변재(遍在)가 최상위 교의이므로 일천제라도 어쨌든 불성의 존재에 의해 결국 성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네요.
우리로서는 일천제 걱정(?)말고 선근을 증장시키는 노력들을 해보입시다~0~ ㅋㅋ

간단한 것 같지만 또 쉽게 말할 수 없는 보살의 모습에 대한 언급을 한 줄 쓰고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중생들은 이 대승경전인 <대열반경>을 듣고도 부지런히 수용하지 않는다. 단지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이 경에 대하여 진실한 의미를 파악하고 문자에만 집착하지도 아니하며 중생들을 위해 연설하며 수순하여 거역하지 않는다. (223)

후기가 very늦어 죄송합니다=-=! 담 주에는 다른 동무에게 후기 작성을 선물하야 이 부끄러움을 미루어 보겠습니다 +^+ㅎㅎ
내일 2시에 뵐게요. 바바이~~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