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읽기

개강날 짧은 후기 및 20일 세미나 공지

작성자
현옥
작성일
2017-04-18 11:20
조회
329
첫 시간, 우리는 새로운 학인인 정연씨를 맞이하여 함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새 친구가 아니었으면 당연히 생략하고 말았을 절차였겠지요. 사실 정연씨만 빼고는 모두들 꽤 오래 알아왔다고 생각하는 사이였으니까요. 근데, 우리가 서로를 안다고 여겨왔던 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들더라구요. 분명 오늘 인사를 나눈 우리는 어제의 우리가 아니잖아요?! 정연씨나 들뢰즈 같은 다른 인연을 만나고 있고, 다른 배치 속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죠. 그런데도 왜 나는 어제와 다른 내가 아닌 것 같고, 곁의 사람들도 늘 알던 그 사람이라고만 여겨질까요?

어제는 장자를 공부하다가 ‘至人(성인과 비슷한 의미의)은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보면서 또 비슷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네요. 과연 어떻게 과거를 잊을 수 있을까요? 과거에 내가 가지고 있던 온갖 가치와 전제들, 정말 잊고 싶은 찌질했던 기억들, 신체와 무의식에 새겨진 온갖 습관들을 깡그리 지우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면 정말이지 좋겠죠. 하지만 우리의 정신을 포함한 신체는 마치 자동기계처럼 작동하기에 나의 의지로 이미 입력된 것들을 지우거나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말이예요...

무척 어려운 문제 같지만 사실 우리는 그 해법을 이미 스피노자로부터 배웠답니다. 스피노자의 사유에 있어서 모든 법칙은 결합법칙일 뿐 해체의 법칙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즉 다른 것과 결합함으로 인해서만, 다른 운동과 정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감으로 인해서만 기존의 관계는 해체된다는 것. 또 모든 감정은 참된 관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더욱 강렬한 감정에 의해서만 무화될 수 있다는 것! 마찬가지로 기존의 우리의 욕망은 다른 욕망을 생산함에 의해서만 망각될 수 있겠지요. 이렇게 보면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성인’은 매순간 더욱 강도 높은 무언가를 생산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새 학기를 시작하며, 하동쌤의 늦은 에세이를 듣고 나누었던 얘기들-자신의 욕망을 발생시킨 원인을 모르는 채로, 자기가 의식하는 욕구 자체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 욕망을 목적으로 놓고 수단만을 찾는 한은 우리는 목적론의 늪, 자기 동일성의 한계를 벗어날 도리가 없다는 것-을 꼼꼼하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신체가 처한 조건이 아무리 달라져도 똑같은 사고, 감정, 욕망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한은 나는 과거의 나일뿐이겠죠. 들뢰즈와 함께 시작하는 새 학기에는 부디 가열차게 ‘다른 나’를 생산하고, 그렇게 생산한 차이를 서로에게 선물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말씀드렸듯이 다음 시간은 서론(표현의 중요성)과 1장(수적 구별과 실재적 구별)을 읽어옵니다. 어려운 텍스트를 읽고 풀어서 공통과제를 쓰기가 너무 어렵다는 분들이 계셨는데요,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하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발제는 현옥, 간식도 현옥입니다. 그럼 재미나게 공부하시고, 즐겁게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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