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2.1 절차탁마 후기 - 카프카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17-02-05 19:55
조회
455
 

 

채운샘 외유(!) 관계로 이번 절차탁마는 선민쌤께서 카프카에 대해 특강을 해 주셨습니다.

 

카프카는 <변신>에 벌레 그림을 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너무 음울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것도요. 오히려 카프카는 <변신>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웃으면서 이야기해주었다고 합니다. 자본주의나 고된 노동에 지친 인간, 쓸모없으면 버려지는 도구로 전락한 인간 등등 음울한 해석을 벗어나서 <변신>을 보면 확실히 유머러스한 소설입니다. 일단 게오르그가 벌레로 변해놓고도 대경질색하기 보다는 어떻게 침대를 빠져나갈지 궁리하면서 꿈틀대고 출근 걱정을 하는 것부터가 그래요. 저는 암묵적인 규칙을 깨고 기어 나온 게오르그에게 ‘오빠! 이러기야?!’ 하고 주먹을 휘두르는 여동생 장면에서 웃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침대를 나가고 출근을 제때 했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만드는 변신, 그리고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목소리와 행동을 하게 만드는 변신. 카프카의 작품에는 그런 갑작스러운 변신이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카프카는 자기 변신의 고투를 그리는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국경이나 법과 같은 사람이 넘을 수 없는 복잡한 심급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계속 조사하고 연구하며 ‘지금’ 앞에서 분투하는 존재를 그렸다고요. [법 앞에서]는 그런 카프카의 투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문지기에 가로막혀 몇 년간 법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시골 사람을 그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문지기는 몇 년간 꼼짝도 못하고 시골 사람에게 연구되었습니다. 옷깃을 기어 다니는 벼룩까지 관찰 당했으니까요. 그렇게 철저하게 ‘지금’을 고집스럽게 연구하던 시골 사람은 법이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의 영역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니까 [법 앞에서]는 법 너머의 세계, 구원의 세계로 들어가려다가 가지 못하게 된 좌절감을 담은 이야기가 아니라 법 앞에서 도피하지도 않고 법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은 투쟁을 담은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카프카식 투쟁은 <소송>의 K에게도 드러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체포당한 K는 그로 인해 자신이 그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던 존재로 변신합니다. 어딜 가든 K를 따라다니는 시선, 그리고 어떤 문을 열든 법과 관련된 곳이 되는 공간. K는 이로서 법과 관련된 것만 눈에 들어오는 존재가 됩니다. 그런데 K는 자신이 왜 체포되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고 모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K도 이건 중상모략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K는 독특한 선택을 하는데, 바로 체포를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죄가 있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K는 체포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고발하고, 검사도 변호사도 자기가 하면서 결국 자기가 자기를 죽게 합니다. 결국 K는 개처럼 죽었다고 합니다. K는 ‘거짓고발자(Kalumniator)'의 K라는 설도 있고요. 여기서 K는 스스로 죄를 만들고, 스스로를 고발해서 스스로를 죽게 하면서 오히려 법과 무관한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송>은 분명 억울한 K와 부당한 법의 투쟁이 될 법한 이야기인데, K는 그것을 K와 K자신의 투쟁으로 만든 것입니다.

K가 개처럼 죽었다고 해서 그의 패배로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건 인간 이하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형태로 ‘달아나기’일 수도 있으니까요. 카프카는 동물로 변신하는 인간만 아니라 계속해서 원숭이가 인간을 배우거나 인간이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단식하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이 동물들, 혹은 인간들은 일종의 예술가입니다. 그들은 자기 존재를 실현하면서 그 자신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요컨대 단식 광대는 인간이 먹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굶어서 보여줍니다. 노래하는 쥐, 요제피네는 ‘서씨족’에게 자신들의 휘파람이 무엇을 하는지 보여줍니다. 그 새로운 성과는 다시 관중 자신에게 되돌아가고, 그 결과 종족 전체가 술렁이게 됩니다.

카프카는 프라하에 태어난 유대인으로, 아버지는 독일 고등교육 기관에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민족주의를 몰아내려는 프라하의 분위기에 맞게 아버지는 아들에게 독일적인 것을 지우려고 했고요. 한편으로는 유대인으로서 시오니즘을 접하고 있었죠. 카프카가 보기에 독일, 체코, 유대인 모두 서로에 대해서 형성된, 합목적성의 세계였습니다. 그는 세 가지 영역 모두에 속하면서 오히려 그것들 모두에서 거리를 둘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카프카는 독일어로 글을 지으면서 관공서 언어로 규격화 되어 가던 독일어의 지평을 넓혔고, 자신의 작품을 번역가에게 체코어로 번역하게 해서 체코어와 자신 사이의 거리감을 만드는 한편 유대인의 공동체 생활과 민중극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카프카는 민족이나 언어, 국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산물’로서의 인간을 형성했던 것입니다. 마치 K가 법에 ‘대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투쟁을 만들기 위해 투쟁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의 작품에 나왔던 많은 ‘변신’ 동물들이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실현하려고 고투했던 것처럼.

 

 

다음 시간은 <카프카-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4장까지 읽어옵니다.

간식은 병선언니, 이응 언니.

다음 시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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