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세미나

깜짝세미나 <사피엔스>,<호모데우스> 후기

작성자
수늬
작성일
2017-08-31 22:11
조회
274
놀면 뭐하나? 이 참에 읽어나볼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깜짝 세미나가 선사한 두 권의 책은 우선 거의 1200페이지에 육박하는 엄청난 분량으로 독서 이외의 다른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부쩍 심해진 안구건조에 시달리긴 했지만 읽는 동안 그 거대한 논의의 싸이즈와 종횡무진하는 전개 덕분에 남은 페이지가 얼마인지 뒷장을 가늠해보진 않은 것 같습니다. 『사피엔스』의 마지막 책장을 덮은 늦은 밤에 혼자서 “와~~”하는 감탄을 했더랬습니다. 두 번의 세미나를 끝내고 다시 책을 뒤적이다보니 처음 읽을 때 유발하라리식 비유라고 넘긴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길가메시의 어깨에 목말을 타고 있다. 길가메시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을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쩌면 우리가 했던 논의는 이 지점 어디부터가 아니었을까요? 하라리의 이 말에 동의하는지, 과연 이런 건지, 아니라면 어째서인지, 다른 출구는 없는지 등등.

아프리카에 살던 별 볼일 없던 영장류 호모 사피엔스는 ‘상상의 질서(법, 돈, 신, 국가등)’를 믿는 독특한 능력 덕분에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인간이 살고 있는 조건은 변화를 거듭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태학적 연쇄살인범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수많은 다른 동물 종을 멸망시켜왔고요. 굶주림, 질병, 폭력을 극복한 인간은 이제 불멸, 행복, 신성을 꿈꾸는 단계에 와 있고 21세기 신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어쩌면 그것을 넘어설 날이 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세상에 대한 지배력이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 만들어내는 미지의 세계. 거대한 알고리즘과 데이터교가 작동하는 세상에서 인본주의적 인간은 힘을 잃습니다. 두 번째 책 『호모데우스』의 3부가 펼치는 세계는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무기력함까지 느끼게 합니다.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초지능적 네트워크에 의해 조종당하는 우리. 무엇을 욕망할지조차도 조종하고 선택하는 세상. 도저히 가늠이 안 되지만 스마트폰에 대한 우리의 심각한 의존을 보면 조금 와 닿기도 합니다. 불멸을 꿈꾸며 길가메시 신화를 이루려고 만든 세계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물과의 조우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라리는 말합니다. 이 책이 예언으로 읽히기를 원치 않는다고요. 많은 것이 이루어졌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의 고통의 총량은 줄지 않은 듯한 이 상황, 이 불만족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것이죠. 인간의 놀라운 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이 상태가 뭐냐는 겁니다. 역사학자로서 생물학과 사회학을 두루 돌아나가며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요구합니다.

건화와 규창, 혜원의 고민이 담긴 여섯 개의 발제문,  흥미진진한 영상 자료들, 간간히 터져 나온 웃음과 채운 샘의 심도 깊은 문제 제기와 더불어 우리의 논의도 종횡무진했습니다. 저는 뭐 어차피 잘 모르는 것들, 모르면 묻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지 들어 본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토론에 임했는데요. 역시 책은 함께 읽고 또 반드시 생각을 나누어야 제 맛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지요. 어떤 분은 책 읽는 내내 짜증이 났고 선택을 강요당하는 듯했다고 하셨고요. 또 리스크 관리 업무를 하신다는 선생님은 데이터교니 뭐니 하지만 데이터도 결국 사람이 만들고 분석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데이터맛사지라는 말을 처음 들었어요~~) 그것을 따르고 안 따르고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문제라고 하셨어요. 공무원이신 선생님은 중간정책자의 자율적 결정권은 거의 인정되지 않고 데이터의 제시만 먹히는 현실을 개탄하시면서 AI가 면접관이 되는 상황에 충격받은 경험을 말씀하셨고요. 규문 세미나에 처음 참가해서 우리로부터 환영받은 청년은 대한민국 평균적 삶이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욕망이 자신에게 있지 않은데 하라리가 제시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쉽게 올런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기도 했지요. 자신이 인터넷을 통해 규문 세미나에 온 것처럼 네트워크의 확장성을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는 쪽으로 나가는 미래도 있지 않을까라는 말이었죠. 또 불교를 공부하시는 선생님은 알고리즘, 의식 없는 지능, 초인간 등등의 이 세계가 가능한 건지? 하라리가 제시하는 불멸과 신성을 우리가 과연 욕망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고 하셨고요. 반대로 IT쪽 일을 하셨던 어떤 분은 하라리가 제시하는 과학의 세계가 이미 너무 근접해있으며 막강한 영향력을 떨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하셨지요. 저도 왠만하면 SNS를 거부하지만 이미 내 일상에 깊이 침범한 네트워크의 세계에 놀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쪽에 무지할뿐더러 관심마저 없는 나의 감도 때문에 다만 느끼지 못할 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저런 우리의 생각들에 대해 채운 샘은 하라리가 제시하는 빅데이터의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우리 삶의 조건으로 와 있는 상황에 대한 말씀부터 시작하셨지요. 안젤레나 졸리는 수치가 보여주는 것(암이 생길 확률)을 믿고 자신의 난소와 유방을 제거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우리가 비록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지라도 그렇게 네트워킹되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은 그런 삶의 조건이 이미 나를 규정한다는 것이며 우리의 신체도 이미 바뀐 것일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때문에 인공지능이 있고 내가 있고, SNS가 있고 내가 있어서 그것을 거부하고 말고 또는 그것이 가능하고 말고의 질문이 아니라 인간이 근본적으로 뭔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할 때라는 것이었죠. 데이터교라고 일컬어지는 이 세계가 어떤 사람에게는 분명히 적용될테고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 우리의 욕망을 구조화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구조화된 욕망에 우리가 다 수렴될 것인가?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 만들어내는 세계가 유토피아적 환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한들 인간이 그렇게 환원될 수 있는 존재인지에 대해 다시 질문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2천 년 간 인간이 만들어낸 실제와 허구의 구축을 모두 허물어버린 이 세계에서 다시 인간이 무엇이냐의 담론을 생산하며 고민하지 않는다면 데이터교의 신봉자로 전락하고 말 수도 있을 거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인간은 매번 달라진 세상의 조건과 다르게 결합하며 살아왔습니다. 다른 상상의 질서, 다른 허구를 만들어내며 그때까지의 인간과 다른 인간을 만들어왔습니다. 우리 앞에 밀려들어온 이 엄청난 과학 기술 앞에서 또다시 인간에 대해 다시 질문하고 거기서부터 다른 인간으로 가는 길을 모색해보는 것이 우리 앞에 남은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토론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일단 세미나를 신청하고 『사피엔스』를 급히 구해서 읽을 때가 분명 후덥지근한 여름이었는데 불과 2주 만에 가을이 되었네요. 두 번의 세미나와 함께 계절을 보내고 맞이합니다. 어떤 공부든 끝에 남는 마지막 질문은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인간은 도대체 무엇인가’ 여지없이 이 세미나도 같은 질문에 봉착했습니다. 이 질문을 안고 저는 다시 뒷장이 얼마나 남았는지 뒤적거려가며 니체와 씨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미나를 위해 애써주신 선생님과 규문 식구들께 감사드려요~~
전체 5

  • 2017-09-01 11:18
    생생한 후기 감사합니다~^^ 두 번의 세미나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벌써 아득하네요. 그러고보면 과거를 이야기한 사피엔스와 지금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한 데우스 모두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메아리치고 있었네요. 남은 질문은 소니에서 물고늘어져 보는 것으로 하죠 ㅎㅎㅎㅎㅎ

  • 2017-09-01 15:33
    세미나 한 지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데 이 후기를 읽고 새록새록 기억이 나는군요^^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으니 도리어 인간이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되네요.

  • 2017-09-01 16:48
    길가메시의 신화가 우리를 프랑켄슈타인으로 이끈다는 게 눈에 확 들어오네요. 책을 읽을 때는 잘 들어오지 않았던 구절이었습니다. 지금 보니 정말 딱 맞는 비유인 것 같아요. 이미 우리 신체는 스마트폰, 컴퓨터와 같은 기기들과 분리될 수 없게 됐죠. 이 속에서 결국 중심을 어떻게, 어디서 잡고 갈지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아이고 어려워라~

  • 2017-09-01 19:17
    책은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어야 제 맛이라는 데 완전 공감! 짧고도 강렬한 세미나 좋았어요. 준비해주신 분과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박수를~~ !!

  • 2017-09-02 13:47
    소설을 좋아하지만 요즈음 나오는 소설들 면면이 도무지 읽을만하지 않다는 불만과 체념을 맛본 지 오래인데, <호모 데우스>에서 그 이유를 본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제가 생각해온 소설은 인본주의 정신에 기원을 둔, 인간이 힘을 발휘하고 분투하는 만큼 세계가 변하거나 밝혀진다는 신념? 믿음?의 표현이었던 것 같아요. 하라리의 구도에 따르면 내가 인본주의자로구나~ 생각하게 된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지만, 소설이 인본주의의 표현이고 인본주의에 최적화된 언어이므로 다음 세기인 인공지능의 세계에서는 확정적으로 그 힘을 잃게 된다는 생각을 이번의 독서를 계기로 하게 되었지요. 소설이 죽었다, 문학이 끝났다, 이런 말을 들은지 정말정말 오래되었지만 하라리의 구도에서는 이런 설명도 가능하군요. ...교향곡도 작곡하고 하이쿠도 짓는 A.I.가 그럼 소설도 쓰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는데요, 잘 모르겠더군요. 더 이상 상품이 안 되기도 하고, 소설이 더 이상 해당 시대를 그리는 언어가 되지 못하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궁금해졌습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최적화된? 서사 장르는, 언어는 그럼 무엇일까나? / 수늬쌤 성실한 후기 읽고 나니 그때 했던 이런저런 생각이 또 떠올라 한 번 적어봤습니다. 세 분 발제자, 멋졌어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