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Q

니체 6주차 후기

작성자
봉선
작성일
2017-09-04 23:57
조회
162
6주차 니체 수업에서 채운 샘이 처음 질문은 무엇에 대한 긍정인가. 그리고 긍정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우리가 긍정이란 단어를 쓸 때는 상황이 좋을 때보다는 나쁠 때 사용합니다. 가령 전교 1등이 스스로에게 긍정적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죠. 아마도 1등이 되려고 열심히 공부한 2등, 3등이 자기 스스로에게나 가족에게서 긍정적이 되라는 말을 하거나 듣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긍정 또는 긍정적이란 말은 위로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된다든지, 그런 일은 누구나 겪는 실수라든지, 지금은 나쁘지만 다음은 좋을 것이라든지 등은 우리가 흔히 하는 위로의 말들입니다. 니체는 이런 위로를 약자들이 자기연민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연민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연민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는커녕 우리 자신을 그 자리에 계속 멈춰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삶을 긍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니체는 영원회귀에 대한 긍정이 삶에 대한 긍정이라고 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3부는 영원회귀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채운 샘께서 지난 수업에서 영원회귀를 말씀하셨고 이번 수업에도 계속 하셨는데 역시나 우리는 미로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조별 토론에서 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을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반도에서 봄은 수억만 년을 반복했지만 한 번도 같은 봄은 없었습니다. 동일한 봄이 생성되지만 매년 같지 않으니 매년 봄은 차이가 있는 봄입니다. 우리가 봄이 오는 것은 어떻게 알까요? 우리는 봄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알 수 없는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겨울 때문입니다. 겨울이 오는 것은 가을 때문에 알게 되고요.

봄과 가을은 기온이 비슷하여도 우리의 몸은 다르게 느낍니다. 겨울을 품고 봄이 왔을 때와 여름을 품고 가을이 왔을 때 만물은 다르게 생성합니다. 제가 온몸으로 느끼는 계절이 가을입니다. 더 정확히 하면 8월말에 오는 처서라는 절기입니다. 여름에 서서히 방전되어 바닥을 치던 몸과 마음이 처서를 일주일 앞에 두고 완전히 달라집니다. 방전에서 충천으로 완벽하게 유턴한다고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봄과 가을은 전혀 다른 계절입니다. 이렇게 계절은 이전 계절들을 품고 있지만 단순히 계절만이 아니라 그 계절을 겪은 모든 만물과 함께 다음 계절로 넘어갑니다. 여름에 더위를 겪은 나무들이 가을에 되면 단풍잎에 물이 들고 낙엽을 만들어 내죠. 이 나무들조차 여름을 품고 가을을 겪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모든 계절은 매 번 이전 계절 전체(이 땅에 있었던 모든 계절과 모든 만물)을 품고 다음 계절로 넘어 갑니다.

니체의 영원회귀을 이런 계절이 반복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영원히 회귀한다도 아니고 영원이 회귀한다도 아니라고 채운 샘이 강조하셨죠. 니체의 영원회귀는 영원+회귀로 봐야 합니고 하셨습니다. 이게 뭐냐고 저에게 물어보지는 마시고요^^:: 채운 샘이 말씀 하실 때는 알 듯 하지만 역시나 쓰고 있는 동안에 도로 깜깜해졌습니다. 제 나름으로는 영원은 처음과 끝이 없다고 하는 것이고 회귀는 어떤 계기와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계절이 변화처럼 되풀이 되지만 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차이, 그리고 매해마다 차이나는 봄이 오는 것이 회귀가 아닌가 합니다.

니체는 동일자로서 회귀한다고 하면서 “원인의 매듭”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이 부분이 특히나 걸려서 넘어가지 않았는데요. 일단 동일자란 말이 계속 걸렸습니다. 내가 나인채로 그대로 회귀한다고 하면 과거에도 내가 있고 미래에도 내가 있다고 하는 말이잖아요. 매해 봄이 오듯이 매번 나라는 똑같은 사람이 태어난다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주체가 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행위의 결과가 주체이다”라는 채운 샘 말씀에 단서를 잡고 생각을 해보니, 동일자가 동일한 무의식을 가진 자라고 한다면 그가 있음으로 사건의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가 없다면 동일한 사건은 반복되지 않을 겁니다. 동일한 무의식은 같은 사건에서 같은 행동을 하게 되고 이런 행동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는 거죠. 같은 사건에서 같은 행동을 하니 동일자가 매번 회귀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있음으로 사건이 생기고 그에 대한 결과로 그라는 주체가 만들어지고, 동일자가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번 같은 사건에서도 존재의 결단을 내릴 수 있어요. 이 결단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차이 때문입니다. 이미 차이를 가진 봄이 온다면 우리가 매번 주사위를 던져서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그 결단은 “약간”을 잡는 겁니다. 채운 샘이 말씀하신 카프카의 “약간”요. 모든 사람에게 이 “약간”은 각기 다 다르겠죠. 나쁜 일도 동일하게 회귀한다고 하니 “약간”을 포함한 우리가 나쁜 일을 다시 만나게 되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과거에는 나쁜 일이라고 했던 것이 나쁘지 않은 일이 되고 미래는 더 크게 달라집니다. 바둑에서 한 수를 두면 그 수로 인해 이전 수와 앞으로 둘 수 있는 수가 완전히 새롭게 되는 것과 같은 경우죠. 개인적으로 바둑은 전혀 모르는데 들뢰즈와 니체를 만나면서 친해졌어요.^^

6주차를 지나면서 채운 샘이 언급하신 시간에 대한 사유는 온전히 숙제로 남았습니다. 이번 수업에서 채운 샘이 『도덕의 계보』의 10장에서 13장까지 해석해 주셨는데 약자와 고귀한 자에 대한 니체의 아주 친절한(?) 텍스트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낡은 서판들과 새로운 서판들에 대하여’장에 함께 보면 좋은 텍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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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05 11:26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봉쌤, 이제 별명을 바꿔야 할 듯. '내 알 바 아니고'가 아닌데요. 봉쌤이 엄청 말을 걸고 있네요. 재밌게 잘 읽었어요. 영원회귀. 알 듯 모를 듯. 동일자와 주체에서 자꾸 걸려 넘어지네요.

  • 2017-09-05 15:57
    후기를 읽다 보니 토론 때 얘기했던 것들이 기억나요. 광주 5.18을 주로 아픔으로만 기억했는데, 누군가는 그때를 아픔이 아닌 천진난만한 어린시절로 기억한다고 하기도 했죠. 각각의 힘의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 광주를 다르게 접근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음.... 영원회귀는 여전히 어렵고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