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M

8.22 절탁M 후기

작성자
정옥
작성일
2017-08-25 21:21
조회
237
8.22 절탁M 후기

‘경제’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 공부란 어떤 것일까요? 수강료를 내고 함께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 경제적 관계가 되지 않는 공부란, 그것은 수강료를 낸 만큼 책임을 지는 것이죠. 돈을 내는 행위는 배우는 것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팀의 주체로써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불을 하지 않지요. 오히려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정리하게 될 땐 팀에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죠. ‘환불’이나 ‘댓가’란 말엔 시장 경제 논리가 관통하고 있습니다. 하나 주면 하나 받아야 평등하다는 대응논리가 들어 있어서이죠. 공부를 시작하기 전 함께 나눴던 이야기였는데요, 이 공간에서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폴라니가 비판하는 시장경제를 공부하면서 되짚어 볼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성실함과 공부로 책임을 다하는 관계를 만들어야겠지요. 저부터요ㅜ

<드라큘라1>

쓰기에 대하여: 벌써 3학기 마지막 텍스트 드라큘라 상권을 읽었습니다. 모두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학기 모든 텍스트들은 공통적으로 다양한 쓰기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존을 잃지 않는 삶에 대해 편지쓰기로 시작해 자신의 문체를 이룬 제부쉬낀, 보바리가 쓰여 진 책을 읽고 소비하는 존재였다면 주변의 일들을 기록하여 신문에 투고한 오메도 있지요. 물론 그 쓰기가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였지만 사실과 문서를 기록했던 레옹과는 다른, 자기 언어를 쓴 사람입니다. 이제 드라큐라에 오면 모든 사람이 쓰는 존재입니다. 그 방식도 다종다기 합니다. 편지, 일기, 속기, 잡지기사, 신문 스크랩, 인터뷰 기록, 심지어 녹음까지 등장합니다. 열심히 쓰고 열심히 기록해서 어떻게든 사실로 남기려고 합니다. 모든 사실을 현재로 확정하려고 하는 것이죠. 이에 대해 샘은 ‘근대’라는 속성으로 설명해주셨는데요, 근대는 미지의 것을 선취해 가는 과정의 연속으로, 누가 빨리 미래를 선취할 것인가 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동시에 과거를 보는 관점도 중요한 시대였습니다. 과거를 통해 시대의 서사를 먼저 엮어 내는 일도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두 도시 이야기>에서도 과거를 조망합니다. 디킨스는 과거를 완전히 단절해야 할, 폐기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시드니 카턴은 죽음으로써 과거와 단절하고 무시간 속으로 진입합니다. 그럼으로써 다른 존재로 되살아날 수 있었던 거지요. 카턴에게 과거는 누군가 결심하면 끊어낼 수 있을 만큼 경쾌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이와 대비해 <드라큘라>의 과거는 ‘축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드라큘라 백작은 고통도 시간도 가지지 않은 존재입니다. 그는 이미 과거의 시간을 먹고 몇 백 년을 살고 있는 자입니다. 과거, 현재를 축적해 가면서 영원히 살고 있는 것이죠. 브램스토커는 과거를 아주 무겁고 중첩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쓰기에 측면에서 보면 기록도 축적의 과정입니다. <드라큘라>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열심히 쓰고 이를 통해 서사를 만들고자 합니다. 인간은 이야기 속에 위치되어야 고독하지 않습니다. 자아를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기제로써 쓰기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고 이것을 인식하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제에게 특히 남는 이야기는 ‘자기 스스로 자기를 이해해야 하는 서판’으로 쓰기가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 보라는 말씀이었지요. 과거의 어둠보단 닥쳐오는 정보와 테크놀로지가 더 중요한 시대, 문자보단 이미지가 더 판치는 시대에 쓰기는 자신의 운명을 위치지우는 행위가 될 수 있어서입니다.

미디어: 근대의 기록과 관련해 미디어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텍스트 속 인물 중 미나는 거의 모든 쓰기를 주파하는 인물입니다. 2편에서 더욱 활약을 한답니다. 샘은 미나가 근대의 미디어를 의미한다고 하셨어요. 미나의 가장 큰 역할은 ‘타이핑’ 하는데 있습니다. 그녀는 녹음과 속기를 타이핑해 풀어 놓습니다. 이걸 쓰기의 측면에서 보면 과거를 기록물로, 사실을 증거물로 만들어내는 행위인 것이죠. 드라큐라와의 싸움은 과거라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그 인지 불가능한 시간을 기록물을 통해 증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죠. 실제 미나의 기록물들은 반 헬싱 박사에게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미디어의 속성을 짚어보죠. 우선, 동시성의 체현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에는 더 실감하는 부분이지요. 베네수엘라의 파탄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으니 말이죠. 미디어는 다양성을 소거하고 하나의 관점을 제시합니다. 하나의 주제가 있어야 동시적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것들을 엮어 그것이 사실임을 설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디어 자체는 선악도 도덕도 없지만 많은 정보 중 필요에 의해 버리고 취하는 과정을 통해 다채로움을 버리고 하나의 주제로 접근시킵니다. 미디어는 투명합니다. 쏟아지는 정보들이 여과 없이 통과할 수 있으려면 미디어 자체는 투명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실은 사실과 발생이라는 면만 보면 맞지만, 그 구성의 차원에서 본다면 맥락을 주무르는 것이죠. 브램 스토커가 그 지점을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샘은 저자가, 미디어를 흡혈의 이미지로 차용한 것이라고 하셨죠.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둘러싸고 있는 조건과 맥락을 흡혈해버리는 것이 미디어니까요. 현대는 더 나아가 앞뒤 맥락을 소거해버린 악마의 편집이나 글자 몇 개를 교묘히 비튼 가짜뉴스들도 있지요. 미디어 과잉 시대에 다시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가족; <드라큘라>에도 루시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부르조아 가족 모델이 있습니다. 부르조아 가족 모델이라 함은 순결하고 순수한 여자(엄마)가 중심이 되어 남자의 보호를 받으며 구성하는 가족형태입니다. 그녀는 주변 모든 남자들에게 성적 환타지를 줍니다. 이후에 자식을 기르며 모성애라는 것이 덧입혀집니다. <드라큘라>에서는 수혈을 통해 가족으로 관계 맺어집니다. 루시는 원래 순결한 여자인데, 백작에게 피를 빨리고 남자들은 그녀를 위해 자신들의 피를 수혈해 줍니다. 이와 유사한 가족 형태는 <두 도시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마네뜨양의 이름도 루시네요. 소설에서 마네뜨양은 집안을 잘 돌보고 순결하고 성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녀 주위의 남자들은 모두 그녀를 보호하고자 애씁니다. 동시에 묘한 이성애를 가지고 있는데 남편인 다네이, 은행가 로리, 카턴 심지어 아버지까지도 딸을 대하는 일반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두 소설에서 그리는 가족의 모습이 비슷합니다. 가족이 아주 특화되는 시기이기도 했고 동시에 가족의 견고한 틀을 깨는 방해물에 대한 혐오를 키우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해서 일부다처, 불륜, 동성애등은 설자리가 없어집니다. 그것을 잘 드러내주는 것이 흡혈 대상입니다. 동성간에는 절대 흡혈을 하지 않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급격히 커지며 가족주의는 견고해집니다. 이 과정에 여성는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체적인 존재가 되기 어렵습니다. 순수하고 밝은 루시는 흡혈을 당하고 보호를 위해 다른 남자들의 피로 자신의 몸을 채웠습니다, 흡혈하면서 수혈해주는 이 역설 속에 자기 운명에서 소외된 루시는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에세이 준비: 2주 남은 에세이를 위해 샘의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제목에 핵심 키워드가 꼭 들어가야 한다. 서론에 각 목차에 나오는 핵심어가 다 드러나야 한다. 하나의 키워드로 흩트러지지 않게 쓰려면 한 주제를 깊게 파야한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시켜 주셨지요. 윤순; 노동에 대하여, 혜원:사회와 공동체, 보영:가난에 대하여, 정옥;시장경제와 소외, 지은:돈과 무관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등 대략의 주제를 잡았습니다. 다음 시간엔 중심내용에 살을 붙여 오기로 했습니다.

<거대한 전환>

공부를 한다는 것은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고 그 핵심에서 각론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 발제를 다 읽은 후 샘이 하신 일성이었습니다. 제 경우만 해도 폴라니가 하고자 하는 중심내용을 알면서도 챕터의 지엽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해 핵심으로부터 이해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시간은 자본주의 시대에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한 부분을 거대한 전환을 근거로 삶의 차원에서 말씀해 주셨고, 14장을 공부했습니다.

자유시장이란 없다; 폴라니가 말하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투명하고 자유로운 자기조정시장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경제 문제만 고립되어 시장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제 문제에는 언제나 정치적요구와 경제적 요구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시장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공정한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노력한 만큼 댓가를 얻을 수 있다는, 또 얻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가득 차 있지요. 친구의 연봉은 부럽고, 만나면 더치페이 해야 하고, 선물은 내가 받은 선에서 하고, 내가 저번에 샀으니 이번엔 너가 사야 하고, 투여한 만큼 나오는 게 없으면 투정하고 등등. 그러나 세계는 변수로 요동치기 때문에 input과 output이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이 예측가능성에 갇히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죠. 우연만이 존재하고 순간순간의 구성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예측 가능성에 가두지 않고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샘은 인생에 ‘스토리’를 만들어 보라고 하셨어요. 어떤 스토리로 삶을 사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로리가 부르조아 은행가라는 삶 앞에, 마음을 내고, 마네뜨 박사를 돕고, 카턴을 도움으로써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엮었듯, 제부쉬낀이 가난대신 꽃과 편지와 당당함으로 다른 삶을 엮어냈듯 말이지요.

능동성과 관계맺기: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자기 자신을 바꿔내는 능동성입니다. 자기의 행위 하나하나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이 말은 들을 때마다 무섭게 다가옵니다. 어떻게 행위의 변화를 가져오는 능동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새로운 관계 맺기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시장의 논리가 아닌, 기쁨이 생겨나는 관계 맺기 말입니다. 기쁨을 만들 수 있는 관계는 책도 멘토도, 친구도 될 수 있겠지요. 아주 능동적으로 밀도 있게 만나는 한에서.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가 바뀔 때 비로소 자기 변형을 이룰 수 있습니다. 변형은 자신이 얽매인 것들을 깨나가는 행위입니다. 돈, 가족, 친구관계, 사회적 관계, 점검대상들입니다.

삶은 시장질서와 같지 않다: 14장은 시장 질서를 전면화 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 삶을 파괴하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명예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할 만큼 중요한 시대였던 봉건시대에 이익은 덕목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가치는 뒷전이고, 화폐화 되지 않는 관계부터 붕괴시켰습니다. 그 중 하나가 대가족제도인데, 핵가족제도는 자본주의의 산물이지요. 가족공동체가 구성되어 있던 시대엔 궁핍을 몰랐습니다. 부모만이 아닌 다양한 가족관계가 있고, 다양한 보살핌이 있으며, 그로인해 굶주림이나 노후에 대한 두려움은 없던 관계였습니다. 가족 공동체의 붕괴로 핵가족이 되면서, 가족은 너무 끈끈해졌고 서로가 서로를 매개로만 살아가는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가족위해 돈 버는 아버지, 희생하는 엄마, 효도해야 하는 자식이 있습니다. 내가 벌지 않으면 가족이 굶을 것이란 궁핍감과 노후에 대한 두려움은 막연한 불안을 낳습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해소되지 않는 불안은 우리를 끊임없이 노동시장으로 내몹니다.

이런 가운데 두 가지 상반된 운동이 일어납니다. 오언주의와 차티스트 운동입니다. 오언주의는 시장주의를 거부하고 총체로서의 인간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노동자의 삶이란, 사회적 환경 안에서 구성되며, 임금은 그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자기 활동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기계가 인간을 노동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노동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원리를 따르면 사회적 연대나 개인의 자유와 같은 가치를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기계노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차티스트 운동은 다분히 자유주의적 관점의 운동으로, 중간계급의 실질적 참정권을 요구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제적 요구가 언제나 정치적 문제와 함께 온다는 사실이지요. 그것이 떨어진 적이 없었다는 것을 폴라니는 또 말하고 있습니다. 강의를 갈무리하며 이번 에세이의 주제이기도 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인간이 소외되지 않는 방식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활동이 자신과 분리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일 텐데요. 폴라니는 자신이 얼마나 시장주의에 젖어 있는지 자꾸 맨얼굴을 보게 합니다. 자신을 향한 막연한 물음들을 구체화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삶은 시장질서와 같지 않으니까요.

-29일 수업엔 드라큐라 2권을 읽고 심화글쓰기를 해옵니다.

-거대한 전환은 끝까지 읽고 각자 맡은 발제 해 옵니다.

-에세이 중심 내용 살 붙인 것과 개요 가져 옵니다.
전체 3

  • 2017-08-25 22:40
    훌륭한 후기입니다. 선생님 애쓰셨어요♡^^

  • 2017-08-25 23:25
    경제적인 면 이외에 인간의 다른 특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이 시장경제의 원리의 기본이 된다는 것을 알고나서도 시장경제를 맹신한다면 인간으로서 자신을 위한 삶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제 시장경제의 환상을 알았다면 환상에 균열이라도 내고 마무리해야 공부하는 자이겠지요. 에세이를 통해 한 가지만이라도 스스로 깨보는 시도를 해봐요 우리~

  • 2017-08-27 18:18
    기록에 대한 과한 집착이 곧 축적과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재밌었어요. <드라큘라>를 읽으면서 들었던 '왜 이렇게까지 써대는거지?' 하는 의문이 풀렸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