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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탁마Q 3학기 2주차 수업후기

작성자
이정수
작성일
2017-08-06 16:48
조회
55
절차탁마Q 3학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주차 후기

(힘들의 집합체로서 신체)

니체와 스피노자에게 의지란 신체와 분리되어 사유될 수 없다. 스피노자는 신체와 독립된 정신의 독자적, 독립적, 지고한 능력으로서의 의지를 비판했다. 스피노자에게 의지란 우리의 신체성을 동반한 연관질서 속에서 종합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니체에게 의지는 곧 힘의지이다. ‘자기(self)’란 무수한 힘들(=타자) 즉 충동, 욕망, 힘들의 집합체이며, 이성도 그러한 힘들 중 하나다. 우리가 ‘나(I)’라고 인식하는 것은 여러 힘들의 투쟁결과 승리한 것으로 가장 늦게 출현한다. 이러한 힘들의 집합체(스피노자의 복합체)를 신체라 할 수 있는데, 니체에게 신체는 ‘커다란 이성이며 하나의 의미를 지닌 다양성’이다. 신체가 먼저 ‘해석’(스피노자의 변용)하고 판단이나 의식은 나중에 따라 나온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서 매번 승리하는 것은 도덕적 주체, 상식적 주체라는 ‘특정한 힘’일까? 이는 우리의 대부분의 충동들이 이미 만들어진 가치체계에 순종적으로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성적 인간이란 많은 힘들 중에서 이성이 승리하게끔 세팅된 인간이다. 그런 점에서 힘의지가 강하다는 말은 덜 길들여져 있다는 뜻이거나 또는 길들여짐에 저항하는 힘이 강하다는 뜻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힘은 남들이 사는 대로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악’이라 불린다.

(강자의 선과 정직함)

강자의 ‘선’이란 ‘내가 선하다’에서 출발한다. ‘나 이것을 사랑한다. 나 이러한 선만을 원한다.’ 그러면 충분히 선한 것이다. 강자가 힘의 상승과 증대, 자기를 강하게 하는데서 기쁨을 얻는 반면 약자는 상대의 파괴를 통해서 기쁨을 얻는다. 하지만 파괴를 통한 기쁨은 지배욕에 불과한 것으로 가장 약한 마음이다. 덕은 힘의지의 결과로서 생겨나는 것이지 율법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을 선이라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직함이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경멸)

니체가 말하는 자기 경멸이란 인간이 자신을 포함한 이 세계에다 들씌운 환(幻)을 거두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좋아하는 것만 사랑한다. 우리가 타인에게서 보는 것도 자신이 구축해놓은 환상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이 구축, 구성해 놓은 세계가 바로 자기인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지어낸 환을 경멸하고, 멸하고 거둬내는 과정이 니체와 만나는 과정일 것이다.

니체의 긍정은 먼저 부정하는 힘을 통과해야 한다. 긍정을 부르지 않는 부정이란 허무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에게 몰락과 상승, 경멸과 사랑은 동시적이다. 위버멘쉬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인간,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는 ‘물음표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이행해야 할 존재이다.

(사유를 통한 힘의 재배치)

순결은 보통 금욕적으로 해석되지만, 니체에게 순결은 충동이 자발적으로 구성하는 힘이다. 즉 욕망을 억누름으로써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힘의 배치를 바꿈으로써 자발적으로 절제의 힘이 승리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힘의지 작동의 센터 같은 것은 없으며, 힘들의 투쟁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라기보다는 벗들, 적들이다. 사유하는 힘도 힘의지 중 하나다. 사유의 힘을 통해 자신의 힘을 깎아내리는 것을 제어하고, 벗이나 스승과의 좋은 만남을 통해 힘의지들이 능동적, 긍정적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보자. 사유하는 순간, 사유의 힘이 작동함으로써 힘의 배치가 달라질 것이다. 본능도 충동도 사유도 다 힘이다. 사유의 힘을 키워 진정 자신에게 좋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힘의 배치를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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