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소니 0814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7-08-04 12:02
조회
132
공지가 늦어버렸네요;;

다들 알고계시겠지만, 다음 주는 불교세미나의 에세이발표가 있는 관계로 방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인간적인 2>를 시작했는데 흐름이 끊기게 되는 것 같아 아쉽기는 합니다만, 마침 휴가철이기도 하니 원래 쉬어가야 할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겠네요.

니체는 ‘서문장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서문은 책의 내용을 적당히 간추려놓거나, 누군가에게 감사를 전하거나, 책을 쓰는 동안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를 호소하는 정도일 텐데, 우리의 독보적인 니체는 새로운 서문을 덧붙임으로써 본문 전체를 변용시켜버립니다. 니체가 1886년에 붙인 서문을 통해서 본문에 접근하면 처음에는 조금 산만해보이던 〈혼합된 의견과 잠언들〉이 ‘낭만주의적 염세주의와의 전쟁’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선화샘께서도 발제문에서 이 부분을 주목해주셨죠.

낭만적 염세주의. 그런데 사실 ‘낭만’과 ‘염세’만큼 어울리지 않는 단어조합이 있을까요? 니체는 항상 이러한 말들 사이의 간극을 이용해서 어떤 틈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니체는 자기시대의 염세주의로부터, 세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나 감상을 소중히 하는 낭만주의적 태도를 읽어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니체는 서문에서 “개별적인 사적 체험들을 보편적 판단으로, 즉 세계에 대한 판단으로 설정하고 해석하려는” 모든 시도를 ‘낭만적 염세주의의 비과학적인 근본경향’이라고 규정하고 있죠. 세계에 대한 전망이 장밋빛에서 잿빛으로 바뀌었을 뿐, 자신의 협소한 감상에 탐닉한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와 질병적인 염세주의는 똑같다는 것이 니체의 진단입니다.

니체가 살았던 19세기 후반은 ‘세기말’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대중에 회자된 시기였다고 합니다. 아마 온갖 혁명들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오늘의 연속으로서가 아니라, 엄습해올 미지의 것으로서 미래를 감각하게 된 것이겠죠. 아마도 이에 따라 진보에 대한 환상과 종말에 대한 신화가 동시에 창궐(?)했을 것입니다. 다가올 시대의 조산아인 니체는 사적 체험에서 비롯된 협소한 견해와 전망(그것이 낙관적인 것이건 비관적인 것이건)으로부터 벗어나 현재를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체험을 보편화하고 자기 관점을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는 일일 것입니다. 물 속에 가라앉지 않고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오히려 힘을 빼고 흐름에 자신을 내어줘야 하듯, 현재를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견해를 변주해내는 힘이 필요할 것입니다. 커다란 파도(거대한 적)에 맞춰 자신을 변형할 수 있는 힘, 이것이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염세주의적 관점주의’가 아닐까요.

다음 시간(8/14)에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 224절(145p)까지 읽고 오시면 됩니다. 더위 조심하시고, 다다음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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