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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6-13 12:27
조회
197
안녕하세요. 이번 주에는 『현장법사』를 읽었습니다. 현장법사는 『서유기』에서 그려진 모습과 달리 머리도 비상하고 굳건한 불심으로 약 15년 동안 인도를 종횡무진한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왕들은 그의 매력에 빠져서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고창 왕은 그를 감금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현장의 마음을 꺾지 못하고 그를 보내주어야만 했습니다. 사실 아쉬운 것은 왕들뿐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현장 역시 융숭한 대접을 물리치고 다시 그 고생길에 오르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도의 길을 떠난 그 마음은 무엇일까요? 사막을 건너면서 사람들의 유골을 보고, 도적이나 자연재해에 의해 죽을 위기를 숱하게 겪으면서도 그 여정을 지속시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이 여정만으로도 너무 신비해서 굳이 『서유기』로 각색하지 않아도 충분히 판타지 소설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여정 동안 현장법사가 느꼈을 마음에 대해 상상해봤습니다. 현장법사는 15년 동안 중국에서 불교를 공부하면서 현존하는 번역본이 매우 미흡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그는 국법을 어기면서까지 몰래 인도로 갔습니다. 이때만 해도 현장법사에게는 지식욕에 의해 길을 떠난 것인데, 그 마음은 죽을 위기를 겪으면서 꺾이게 됩니다. 그러자 보살이 나타나 그에게 ‘계속 앞으로 가라“고 했고, 현장은 마음을 다잡고 나아가게 됩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현장은 여정을 지식욕을 해소하기 위한 것에서 내적 수련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여정에서 보여주는 그의 불심이 너무나도 굳건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비한 경험을 했다고 한들 끊임없이 흔들리는 게 사람 마음인데, 현장은 한 순간도 동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목에 칼이 들어와도 불경을 외고, 도적들한테 죽을 뻔해도 불경을 욉니다. 그리고 태연하게 구도의 길을 계속 걸어갑니다. 그나마 동요하는 모습을 꼽자면, 고창 왕에 의해 감금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지 못할까 걱정할 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막에서 수많은 유골을 보고 죽을 위기를 겪으면서 그는 단 한 번의 회의한 적이 없었을까요? 오히려 무수히 흔들렸지만 그것을 계속 극복함으로써 불심을 더욱 단단히 하지 않았을까요? 현장이 느꼈을 마음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그걸 혜립이 쓴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에서 알 수 있을까요?)

 

오승은이 그린 요괴들은 인간의 탐욕을 형상화된 것이라고 합니다. 현장일행이 그 요괴들을 극복하는 것은 번뇌를 조금씩 극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오승은만의 해석은 아니었습니다. 현장 역시 자신에게 닥치는 위기들을 요괴와 연결 지어서 생각했습니다.

“산은 높고, 계곡은 깊으며, 봉우리와 절벽이 위험으로 가득하다. 바람과 눈이 연이어 불어오고 한여름에도 여전히 춥다. 쌓인 눈이 계곡을 메워서 산길을 가기 어렵다. 산에는 산 귀신과 요괴들이 제멋대로 나쁜 장난을 부리고, 사람 죽이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산적이 들끓었다.”

이 부분에서 현장은 마음이 흔들렸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흔들리는 마음을 산 귀신과 요괴들로 표현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추측성이지만.) 어쨌든 이런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요괴들이 등장할 여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서유기』에서는 현장법사를 무능한 인물로 그렸을까요? 어려움을 극복하는 인물은 손오공이라고 하는데, 왜 현장이 아니고 손오공이었을까요? 자세한 건 『서유기』를 봐야 알겠지만, 그에 대해서는 오만한 인간을 풍자하기 위함이라거나 등등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현장이 여정을 계속 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좀 더 얘기를 해보면, 아마 그것은 구법의 길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깨달음 덕분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현장은 처음에 지식욕 때문에 인도로 향했지만 그 마음은 이내 꺾였습니다. 하지만 이 여정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구법의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는 그 길을 계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것입니다. 알쏭달쏭하지만 『불교개론』때부터 계속 되뇌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길은 혼자 떠나지만 동시에 무수한 인연 속에서 있기 때문에 걸어간다는 것. 이 말이 뜻하는 게 뭘까요? 『서유기』의 여정은 현장 혼자 떠나는 게 아니라 타자와 같이 떠납니다. 현장은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쪽입니다. 실제 현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역시 왕들과 수행원들로부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 여정을 계속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길을 계속 가는 것은 현장입니다. 손오공의 근두운이면 금방 다녀올 거리를 굳이 위험을 겪고 갈등하면서 다녀옵니다. 이런 여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본편이 점점 궁금해지네요. ㅎㅎ

 

다음 주에는 서유기 2권을 읽어오시면 됩니다. 공통과제는 꼭 잊지마세요~ 간식은 테이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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