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본색

7.9 서사본색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07-07 14:39
조회
151
170709 서사본색 공지


<서유기>를 읽는 것이 어느새 반 고비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서천으로 가기가 힘들던지. 삼장법사가 중간중간 푸념하는 걸 듣다보면 그들이 떠난지 4,5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니 그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대체 이들은 뭘 한 걸까요? 제가 책을 읽다보면 삼장법사가 늘 납치당해서 구하러 가는 것이 전부인 것 같던데요.  

우리 손오공이 철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한번 내쳐졌다가 돌아왔더니 눈이 트인 것일까요. 속으로 눈물을 마구 흘리면서도 삼장법사를 구하기 위해 몸소 무릎을 꿇기도 하데요. 하지만 여전히 분주합니다. 남들보다 일은 열배로 하는데 결과는 남들만한 대리님을 보는 것 같아서 어쩐지 기분이 짠해지면서도 한숨이 나와요. 다재다능의 비효율성을 보고 싶다면 머리를 들어 손오공을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능력이 있더라도 그렇게 분주해서야, 한가지 일을 해결하려다가 열 가지 일을 더 만들곤 하는 손오공을 보다보면 저도 모르게 어서 긴고아주를 외우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의 갈 데 없는 분주한 마음. 이것을 불교의 세 가지 독 중 하나 瞋으로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늘 눈을 부릅뜨고 걸렸단 봐! 하고 툭 치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는 마음. 그 진노하는 힘으로 손오공은 늘 날뛰는 것이죠.

그리고 저팔계로 말할 것 같으면 그렇게 미련이 많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등 뒤에 본진을 두고 떠난 사람은 항상 고개를 그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나봅니다.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은 늘 사건이 닥쳤을 때 100%의 힘을 다하지 못해요. 왜냐하면 수틀리면 도망간다는 플랜 B가 늘 있으니까요. 그의 외모가 괜히 탐욕의 상징인 돼지가 아닙니다. 닿을 수 없는 것의 냄새라도 맡기 위해 돼지의 코가 길어졌다고 해요. 늘 이 이상을 바라며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면 아무리 느긋하고 여유롭다 하더라도 그건 貪인 것이죠.

그런가 하면 사오정은 정말 얌전하고 어떤 의미로는 정말 상식적인데요,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어떤 사고를 칠지는 지켜봐야 알겠습니다. 어쩌면 저팔계와 손오공이 사고 칠 때마다 숟가락 하나 얹는 식으로 번뇌도 미적지근하게 겪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고요. 그를 불교의 삼독 중 가장 문제되는 恥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에는 보물이 여러개가 나오죠. 그중에서도 이름을 부르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호리병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걸 타계하기 위해 손오공은 자기 이름을 요리조리 바꾸는 꾀를 쓰는데 전혀 통하지 않아요. 이 보물의 핵심은 정확한 이름을 부르는 것 보다는 보다는 '이름을 부르면 대답한다'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無我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호적상의 이름(?)을 부르고 그가 대답한다고 해서 호리병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겠죠. 하지만 모든 것이 자기로 환원되는 사람이라면 무슨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자기를 떠올리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완수쌤은 보물이 단계를 뛰어넘는 통쾌함을 가져오기에 인간들이 거기에 매혹되고 또 미친다고 말씀하셨어요. 단계를 단번에 뛰어넘는다는 것은 결국 가치와 서열에 굴복하고 있는 자신을 상징하기도 하니까요. 가치와 서열이 없어지지 않는 한 보물의 매력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늘 어느 단계에 있는지가 지상문제인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천대성 겸 삼장법사의 첫째 제자인 제자! 제천대성인 나! 이런 아상에 사로잡혀 있다면 제아무리 이름을 바꾼다 하더라도 바로 보물의 포로가 되어 버리고 말겠죠.


이번 시간은 <서유기> 5권 읽어옵니다.

간식은 은남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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