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본색

7.23서사본색 공지

작성자
5226
작성일
2017-07-17 15:57
조회
134

170723 서사본색 공지


6권은 여러모로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삼장법사 일행들의 마음도 어느정도 단단해 진 것 같고요. 사건도 다양했습니다. 손오공은 또 쫓겨났고 가짜 손오공이 나타났죠! 그리고 삼장법사가 겪어야 했던 여난(女難)!

우선 여인국에 들어가서 그들의 몸에 생긴 이상징후와 삼장법사의 결단(?)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죠. 삼장법사와 저팔계는 무심코 맑은 강물을 보고 떠먹었다가 임신이라는 몸의 변화를 겪습니다. 저는 어쩐지 영화 <에일리언>이 떠올랐어요. 거기서도 무심코 마신 물 한 잔 때문에 몸에 외계인이 잉태되는 사건이 일어나죠. 정말 예기치 못했던 순간에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ㅇ0ㅇ 긴장상태, 뭐가 튀어나와 자길 죽일지 몰라 잔뜩 곤두서던 시절에는 어쨌든 온전하던 내 몸이 잠깐, 어쩌면 평소대로 했을 뿐인데 바로 나 아닌 다른 것이 몸에 들어서고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삼장법사의 임신이라는 사태로 표현하다니 중국과 불교의 대범함과 자유로운 상상에 놀랐어요. 그런데 이걸 남자의 임신으로, 즉 '있을 수 없는 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완수쌤께서는 이 사건이 음양의 질서가 깨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삼장법사와 저팔계는 정말 자연계를 벗어난 상태, 즉 어떻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죠. 단지 물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방심할 수 없는 구법여행입니다.

그리고 나서 두 번의 결혼 유혹이 있었습니다. '여자'로 특징되는 위기는 바로 그들을 결코 강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아름답고 향기롭게 권하고 선택하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이번 이야기에서는 누구보다도 납치된 삼장법사에게 많은 카메라가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다른 때라면 그는 나무에 묶여 있거나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어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동안 제자들이 좌충우돌 하면서 그를 구하려고 하늘로 바다로 동분서주 하는 이야기였죠. 하지만 이번에는 가장 치명적인 유혹의 손길이 미칩니다. 결국 카메라가 잡는 것은 그의 선택 국면인 것. 덕분에 삼장법사는 요괴의 제안에 응하고 고민하고 선택하게 됩니다. 이런 모습들은 이전에 없었죠. 우리 법사님이 달라지셨어요 ㅇ0ㅇ

이번에 재밌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완수쌤께서 쓰신 과제에서 손오공이 사실은 기계적인 캐릭터라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이 '분노의 손오공'은 사실 굉장히 목적이 뚜렷하기에 그런 분주함을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삼장법사를 천축으로 배달하기(?) 그걸 위해 누굴 죽이든 그걸로 삼장법사가 질색을 하여 내쫓든 덜 상관하며 앞으로도 계속 그런 일을 반복할 수 있는 것이죠. 또 일을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려는 나름의 계산회로가 남들 눈에는 '분주함'으로 비치기도 하는 것이고요. 분노라는 것은 사실 너무나 기계적이고 사람을 경직되게 하는 감정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6권의 또다른 주인공은 바로 가짜 손오공, '미후' 입니다. 손오공 입장에서는 그가 분명 자신과 다른데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손오공의 관점. 남들이 보기에 미후와 손오공은 차이가 없습니다. 왜 이런 것일까요? 사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상상일 뿐, 실제 '나'란 마주하고 보면 정말 이상한 존재 아닐까요? 마치 1년 전에 써 갈긴 일기장을 발견했을 때처럼, 아니면 누군가가 찍어놓은 내 영상을 볼 때처럼. 손오공은 가짜와 자신의 차이가 너무도 이상하지만 그것과 자신의 차이를 증명해내지 못합니다. 이때 석가여래가 해결을 하죠. 바로 그의 출신을 묻는 것. 이런 미후 이야기, 즉 가짜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옹고집전을 떠오르게 합니다. 가족친지들은 평소 심술궂은 옹고집이 아니라 쥐가 변한 선하고 착해진 옹고집을 '진짜'라고 인정하죠. 내가 관계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것, 정말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정보와 견해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 이야기는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때도 해결책은 그 존재의 근본을 이루는 '쥐'의 천적 고양이였습니다. 이런 해결 패턴, 즉 이름이나 출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 사람이 태어나고 이름이 붙는 것만큼 강력한 인연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은 결국 사회적이라는 사실을 계속 의식했던 동양인의 심리가 반영된 것일까요.

규창이는 손오공과 삼장법사의 계속된 반목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두 사람은 사실 서역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은 같은데, 왜 이렇게 서로 맞지 않는 것일까? 그건 서로가 가장 옳다는, 善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해서가 아닐까? 하고요. 그런데 관음보살 왈, 삼장법사는 10세를 거쳐 환생하며 완성된 善의 담지자입니다.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인가. 善이라는 것이 따로 있고, 손오공은 그걸 이해 못해서 이런 반목이 생겨나는 것일까요? 이 사제지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은 <서유기> 7권 읽어옵니다.

간식은 은남쌤


다음시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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