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카프카

8.3 공지와 후기

작성자
이응
작성일
2017-07-29 16:31
조회
110
2017.7.27


# 카프카식 투쟁 전략 : 이중 구도


이번 시간은 카프카가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대목을 조목조목 분석하며 열띤 토론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미미한 존재가 어떻게 권력자의 게임판에 균열을 내고 자기만의 투쟁을 해나가는지를 ‘발명’해보려는 토론이라 흥미진진했습니다 ㅋ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 오직 나의 내부에서 나에게 대항해 꾸며진 음모라오. ··· 이 음모라는 것은, 거대한 장기판에서 농부의 농부가 될 꿈조차 꾸어보지 못할 만큼 미미한 존재인 내가 지금 모든 게임 규칙을 무시하고, 여왕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해서 그 게임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격이오―농부의 농부, 그러니까 존재하지도 않고 장기판에 참여하지도 못하는 인물인 내가 말이오.” 


위의 인용문은 1920년 6월 23일, 카프카게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밀레나는 카프카를 만나고 싶어하고, 카프카는 그것을 거절하는 줄다리기 편지를 주고받을 때였지요. 카프카는 밀레나에게 거절의 뜻을 표하며 자신을 게임판에 ‘존재하지도 않고 게임에 참여하지도 못하는 인물’인 ‘농부의 농부’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미약한 존재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왕이 벌이는 전쟁과는 무관한 존재, 혹은 다른 식으로 전쟁을 구사하는 존재라고도 확대 해석해 볼 수 있을거 같은데요.

카프카는 이런 미미한 인물인 ‘농부의 농부’가 왕의 자리까지 넘보거나 아니면 장기판 전체를 내것으로 만들려 하는 것은 ‘자기 내부에서 자신에게 대항해 꾸며진 음모’라고 말합니다. 말인즉슨,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왕’이나 ‘전쟁’이 아니라 ‘음모를 꾸미는 자기 안의 자기’라는 것이지요. 저는 이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카프카의 투쟁 상대는 권위를 지닌 ‘왕’이나 ‘아버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요.

실로 카프카의 작품에는 외부의 무엇과 투쟁하기보다 자기 자신과 투쟁하는 인물들이 자주 그려집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아들이 아닌 갑충으로 사는 그레고르, 우리에 갇혀 있지만 인간의 말을 하는 원숭이, 관객 앞에서 굶음을 연기하는 대신 굶음을 연구하는 단식광대, 무인도를 탈출하기보다 무인도 곳곳을 탐험하는 조난자 등등. 이들이 투쟁하는 대상은 외부에 있지 않고 늘 자기 자신에 있습니다. 또한 아무런 제지도 없는 자유로운 시공간을 갈망하기보다 자기 앞에 닥친 벽을, 쇠창살을 자기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무언가를 시도하지요.

그래서 궁금해집니다. 게임판에 참여하지 못하는 ‘농부의 농부’가 벌이는 투쟁은 어떤 것일지. 왕과는 다른 게임을 설계하려 했다면 거기에는 어떤 책략이 있는지 말이예요.

위의 편지에서 카프카는 <아버지께 쓴 편지>를 언급하기도 하지요. <아버지께 쓴 편지> 속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끼칠 수 없는 작고 미미한 존재였습니다. 재미있는건 아들이 아버지를 반박하는 편지의 마지막에 아들은 다시 아버지가 되어, 똑같은 순서로 아들을 반박한다는 점이였어요. 아들은 아버지의 위치에서 다시 아들의 말(씀)을 해석하고, 그럼으로써 문제는 원점으로 전환됩니다.

‘농부 안의 농부’가 왕의 자리를 넘보는 것, 아버지의 노예였던 아들이 아버지의 자리에서 아들을 소송하는 것, 이런 이중의 구도는 카프카가 보낸 편지들에서 자주 발견되지요. 이런 구도를 통해 카프카는 어떻게 왕(혹은 아버지)의 세계에 균열을 내는 것일지 앞으로 차차 분석해보면 좋겠습니다.


다음주 간식과 후기는 수경샘~
읽어올 범위는 <밀레나에게 쓴 편지> 끝까지입니다.
벌써 8월이네요~ 얼마 남지 않은 무더위 뜨겁게 겪고 잘 보내드리자고요ㅋ
더위에 지지 마시고! 기운내서 다음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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