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카프카

7월 20일 카프카 네번 째 시간 - 한~참 늦은 후기

작성자
영우
작성일
2017-07-30 20:19
조회
112

카프카의 아버지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집 안에서 그리고 자신의 직원들 위에서는 초월자이자 지배자로 군림한다. 통치자로서의 아버지는 법 너머의 지배자이며 산업 사회의 자본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게와 집을 나서면 그 또한 세상속의 소시민의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 다른 지배자 혹은 통치자가 존재한다. 이처럼 카프카의 ‘아버지’는 다양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그만큼의 다양한 해석들이 나온 시간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분신적 존재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일반의 아버지의 감정적 이입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카프카에게는 그러한 감정적 요소가 보이지 않음에 주목한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 확장해서 해석하려 한다.(영우)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느끼게 했던 아버지를 상대로 글을 쓰는 작업. 카프카는 이것이 아버지와의 결별 과정이라고 하지만 또한 ‘아버지로 상징되는 권위주의적 세계’와의 결별 과정이기도 하다.‘(이응샘)


‘어떤 경우에도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부모니까. 어떤 경우에도 자식은 부모를 사랑한다. 역시 자식이니까. 가족이라는 ‘동물적 유기체’안에서는 아무리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도 동물적으로 얽혀있기에 동물적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혼란스럽다. 저렇게 선량한 모습의 아버지를 따를 수 없다는 죄책감. 자신과 다르다고 미워할 수 없는 존재. 완벽히 사랑할 수도 없고 완벽히 미워할 수도 없는 존재. 그것이 한층 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원인. 그것이 가족이자 카프카에게 아버지이다.‘(성연샘)


수경샘은 편지가 아버지에게 젼혀 전달되지 않았음을 전제로 ‘카프카의 세계에서 법이 모든 운동과 그것의 법칙을 결정내리는 것이기 보다는 월경을 유도하는 한계선처럼 작동한다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법은 인물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법 자신을 위반하도록 이끈다- ‘아버지’ 역시 작가가 제 글쓰기를 위해 적극적으로 끌어다 놓은 장치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자기 글쓰기의 주제가 아버지라는 카프카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받아들여져야 할 것 같다. 말하자면 카프카는 구체적인 삶의 역사를 소유한 채 자신과 부자 관계를 맺고 있는 헤르만 카프카에 대해 쓴 게 아니다. 차라리 그는 헤르만 카프카라는 이름으로 실재적으로 작동중인 기계와 그것이 발산하는 힘에 매료되었고 -그것은 그를 매료시킨 관료주의라는 또 다른 기계와 그가 맺는 관계와 비슷하다- 때문에 그 힘과의 싸움이 카프카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고 말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과도한 글쓰기를 오이디푸스를 비틀기 위한 하나의 작품으로 해석한다.(수경샘)


‘카프카가 파혼 후 부모님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가 원했던 삶이 어떤 형태였는지 잘 드러난다. 카프카는 자립한 인간이고 싶었다. 그는 자기 능력을 발휘하며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싶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동등한 인격체로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를 원했다. 그래야만 ‘진정 살아있다는 느낌과 기복 없는 만족감’을 가지고 살테고, 그렇게 살아야함 부모도 만족하고 지식도 만족하는 가족 관계가 이루어지리라 믿었던 것이다.‘(보영샘)


‘카프카에게 아버지는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이었고, 아버지라는 체계는 김나지움이기도 했고, 회사이기도 했다. 카프카는 명령 밖에 있는 것은 아니면서 명령을 성공시키지도 거부하지도 않는 방식, 최대한 ‘무관심의 자유’를 허용 받을 수 있을 만큼을 수행한다.‘(지니샘)


“결혼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아버지의 길을 거부하는 카프카. 하지만 결혼의 거부가 투쟁을 완성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결혼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결혼을 하지 않음은 적극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카프카는 아버지의 집에서 머무르면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아버지의 법으로 설명 안 되는 것을 아버지 밑에서 행하고 있는 것이다.”


‘카프카의 글쓰기는 ‘아버지’와의 투쟁이었으므로, 카프카의 작품은 형식적으로 ‘아버지’를 갖지 않는다. 작품의 요소 하나하나를 조정하고 의미 부여하는 초월적 심급(주제, 주인고의 운명, 시작과 결말, 등등)이 없다.‘(선민샘)


수업중인 도반 중에 유일한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후기가 많이 늦었습니다. OTL.


전체 2

  • 2017-07-31 23:55
    카프카는 자신의 글쓰기가 "아버지"라는 이름과의 투쟁이라고 했지만, 본격적으로 투쟁의 문제를 다룬 장편 소설에는 아버지의 형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결국 카프카는 '아버지'와 싸운 것이 아니라 '아들'이라는 자기 정체성과 씨름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만들어주는 것은 결국 '아들'이니까요. <카프카의 편지>를 놓고 2주 동안 우리끼리 투쟁했던 것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 2017-08-01 10:23
    아오! 쌤~! 이것이야말로 카프카적 편지인가요! 이케 늦게야 도착하다니!! 어딜 헤매다 지금 온 거지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