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세미나

0331 세미나 후기 및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6-04-04 01:21
조회
3951
드디어 채운쌤이 공인하신 이번 학기의 고비, 보르헤스의 『픽션들』을 마쳤습니다. 보르헤스와의 2주간의 만남이 너무나 강렬해서 벌써 그 전에 읽은 책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는... 부작용마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괜히 캐롤에게 송구스러워 지네요.)

이번 시간에는 『픽션들』 2부를 읽고 세미나를 했는데, 1부에서 보르헤스가 하나의 우주를 열어 보여줬다면 2부에서는 그 우주 안의 행성들을 하나씩 탐사하는 느낌이었습니다. 1부에서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떼르띠우스>, <바벨의 도서관> 등을 읽고 2부를 읽으니 비교적 덜 이질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2부의 단편들도 새롭게 보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통과제에서 다루시기도 했고, 가장 길게 얘기 나누기도 했던 단편은 <기억의 천재 푸네스>였습니다. ‘기억의 천재’라는 것이 그다지 새로운 소재는 아니지만, 보르헤스는 푸네스의 이야기를 통해 ‘기억’이라는 것의 성질을 굉장히 모호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저는 항상 기억력과 지각력을 전혀 다른 것으로 여겨왔었는데, 보르헤스는 그 두 가지를 한데 묶습니다. 푸네스의 기억은 사진 찍기와는 다릅니다. 보통 사진이라고 하면 담고 있는 대상들로 부터 떨어져서 그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 찍기로서의 기억’은 풍부한 지각과는 무관한 것이겠죠.

그에 비해 푸네스의 기억은 극단적으로 풍부한 지각능력에 의해 가능합니다. 우리가 포도 한 송이를 볼 때, 그는 포도 알 하나하나와 거기에 맺힌 물방울들 까지 세밀하게 지각해 냅니다. 푸네스는 이렇게 온 신체를 활성화 시켜서 모든 것을 예민하고 풍부하게 인식하고, 그러한 감각작용이 신체에 남긴 흔적을 다시금 세밀하게 감각하는 방식으로 한 번 겪은 모든 것을 다시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현숙쌤이 글에서 “(보르헤스는) 푸네스를 통해 틀뢴을 재현해 낸 것 같다”고 하셨던 부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은하쌤이 공통과제에 쓰신 것처럼, “이처럼 아주 미세한 차이를 모두 감지할 수 있는 예민한 감각을 가진 존재는 진화 과정에서 이미 도태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세밀한 지각력은 일반화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공통점으로 묶고, 추상화하는 방식의 사고가 성립될 수 없게 만듭니다.

이런 맥락에서 푸네스를 제시된 모델로 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푸네스는 우리와 근원적으로 다른 존재입니다. 수경쌤은 푸네스를 냉장고와 비교하기도 하셨고, 식물적 존재라는 이야기도 나왔었죠. 그러므로 푸네스를 모델로 삼거나, 역으로 “푸네스는 힘들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그다지 유의미한 해석이 아닐 것 같습니다.

보르헤스의 소설이 생각을 굉장히 뒤흔들어 놓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안에서 어떤 답을 찾으려고 하는 욕망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지난주에 삐에르 메나르의 읽기를 답으로 취하는 듯한 글을 썼었는데,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앞으론 더 세밀하게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수경쌤은 문학이 좋은 모델을 주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앎은 답을 곧바로 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질문을 갖게 한다는 뜻이겠죠? 소현쌤은 이번에 ‘나에게 문학은 무엇인가’하는 문제를 가지고 글을 쓰셨는데, 보르헤스가 자신의 글쓰기를 ‘게임’에 비유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보르헤스가 아닌 이상 알 수는 없지만, 보르헤스가 ‘게임’이라고 했을 때, 그 말을 손쉽다는 의미로 쓴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저는 보르헤스가 목적성 같은 것에서 벗어나 계속해서 새로운 사유를 실험한다는 의미에서 ‘게임’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보르헤스의 글에서 각자의 질문을 건져 올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르헤스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게임랜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임을 찾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현쌤은 <남부>를 가지고 죽음의 문제에 관해서 쓰셨는데, <남부>에 관해서도 함께 이야기 했습니다. <남부>는 정말 기이한 소설인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달만이 정신병원에 들어선 이후부터 정신병원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런데 보통의 영화나 소설에서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의 망상을 현실처럼 그려낼 때에는 그 인물의 꿈과 환상이 모두 실현되는 그림을 그리다가 마지막에 돌아가던 팽이가 멈추지 않는다던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뭔가 달랐습니다. 만약 이게 달만의 망상이라면, 달만은 망상 속에서 자신이 병원에서 갖고 있던 야생적인 삶에 대한 판타지의 기만적인 부분을 깨닫게 되는 건데... 이러면 정말 뭐라고 말하기 힘든 기이한 이야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세미나 막바지에 수경쌤이 각자 보르헤스를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셨었죠.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책에 대한 책’이라는 형식이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보르헤스의 소설 자체가 가상의 책이나, 다시 씌어 진 책, 책들의 우주에 대한 이야기라는 부분도 흥미로웠지만, 보르헤스가 자신의 독서목록들을 자신의 작품에 드러내 놓고 있는 것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보르헤스가 자신의 소설에 영향을 끼친 책들을 소설 속에 노골적으로 언급하는 대목은 보르헤스가 택한 ‘가상의 책에 대한 주석’이라는 형식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모든 책들이 다른 책들에 대한 책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각도 다른 생각들에 대한 생각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생각과 제 글이 스스로 답답하게 느껴진다면, 억지로 ‘신선해지자!’하고 결심해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이죠.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현재로선 다른 책들, 다른 사유들을 계속 만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뿐일 것 같습니다.

보르헤스를 이렇게 보내려니 틀뢴만한 크기의 아쉬움이 남지만, 우리에겐 또 새로운 텍스트가 주어졌습니다. 다음 주에는 미셸 트루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읽고 공통과제를 써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경혜쌤이 맡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엔, 그러니까 다가오는 목요일엔 세미나 끝나고 다 같이 식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럼 그때 뵈어요~
전체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