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GV 2.0

거놔 영화제 <자객 섭은낭> 관람 후기

작성자
하동
작성일
2017-07-02 21:19
조회
554

초딩 고학년이나 중딩 때 무협지나 무협 영화에 빠져 지낸 친구들이 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빠져 어린 시절을 탕진하는 모습들이 경이로워 보이기도 해서, 잠깐 들여다보기도 했지만 내가 끼어들어 좋아할 만한 세계는 아니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 처음 제대로 본 무협 영화가 그 유명한 ‘동사서독’이나 ‘와호장룡’ 같은 거였다. 어디나 그렇듯이 역시 저 장르도 근사하고 아름다운 뭔가가 있는 세계였구나 싶은 생각을 잠시 했던 거 같다. 무협의 상상력으로 결국 마음을 그려내는 거였구나 싶은.


그러고는 이런 류의 영화를 본적이 없다가, 몇 해전에 ‘협녀’라고 국산 무협 영화가 나왔다고 해서 봤는데 완전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작품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다고 해서 더 기대를 했더랬는데, 이런 뭐 어설픈 게 다 있어 하며 다신 이런 영화 보나 봐라 했었다.


그러고 작년 초엔가 봤던 게 ‘자객 섭은낭’이다. 감독도 유명한데다, 여자 배우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고, 더해 앞서 말한 중국 무협 영화들에서 맛본 쾌감 같은 걸 안겨주리라 기대하며 극장의 어둠 속으로 기어들지 않았었나 싶다.


그러니 나로선 이번이 두 번째 관람인 셈이고, 두 번씩이나 보다니, 되게 재미있었나 보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대와 달리 우아하고도 힘찬 비상이나 활강 같은 건 없었다. 게다 서사 진행이나 카메라의 움직임은 더딘데다, 인물들 이름을 자막 처리해 주는데도 여자들 얼굴은 왜 이리 헷갈리는지, 그 날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두어번 졸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몇몇 장면들, 바람에 흔들리는 백목련이나 망사 커튼 사이로 남자를 바라보는 은낭의 눈길 같은 것이 기억에 남았고, 음악이 울려퍼지면서 은낭이 스승을 떠나 신라로 향하는 에필로그에선 알 수 없는 감동 같은 게 막 치밀어오르기까지 했다. 역시 스승을 뛰어넘어 자신의 길을 가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다워 하면서 말이다.


다 보고 나선, 재미는 없는데 뭔가 있는 듯한 걸 보니, 역시 거장의 작품이군. 기회 되면 한번 더 봐야겠어 하고 영혼 없는 다짐까지 하고 마무리를~~.


뜻밖의 기회로 2회차 관람을 했는데, 이번에도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게다, 하루 일 마친 시점에서, 그것도 심각한 영화를 불편한 자세로 보려니 더 안 들어왔다.  건진 것이 아주 없지 않았다!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마스크 쓴 여인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여러 정황들을 고려해보면 그 여자는 전계안(장첸)의 본처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 게다, 그녀의 칼의 생김새하며 칼 쓰는 걸 보면, 그녀는 섭은낭과 같은 스승에게서 배운 게 아닐까 하는 추측까지. 그밖에도 한 번 봤을 때는 잘 보이지 않았던 사건의 인과 같은 것들도 훨씬 잘 들어와서 생각보다 드라마틱한 영화였구나 싶은 생각을 갖게 됐다.


무엇보다 큰 수확은 이 영화가 무협의 외피를 쓰긴 했지만 ‘마음의 드라마’였다는 사실이 보였다는 거다. 은낭의 스승(여도사)은, 은낭이 검술은 뛰어나지만,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고, 인간적인 정에 얽매여 있다고 꾸짖는다. “검은 무정하여 성인의 근심과는 다른데, 너는 인륜의 정을 끊지 못하였구나!”


근데, 은낭은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억지로 제어하려고 하지 않는다. 뿐더러 타인의 마음까지 알기 위해 끊임없이 주위를 맴돌면서 관찰하기까지 한다. 외로움, 사랑, 연민, 인간애 등 베일에 가린 듯 그 알 수 없는 온갖 마음의 일렁임들.  그 살아 움직이는 마음으로 마음을 넘어가는 모습, 마음의 힘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고 스승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소리하나 내지 않고 스승을 뛰어넘는다. 자신을 떠나려는 제자의 등 뒤에서 칼을 꽂으려는 스승이라니!


그러고 보면, 흔들리는 백목련, 흘러넘치는 샘물, 되새김질하고 있는 염소의 모습들은 모두 마음의 자연성을 말하고 있는 아닌가 싶을 정도.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마음의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워낙 거장이라 평가받는 사람이니, 영화의 규칙이나 기술적인 면 등과 관련해 어마어마하게 많은 얘깃거리들이 있겠다. 시간 내서 몇 번 더 봐도 좋을 것 같다.


영화보고 다들 바로 떠나버려 좀 아쉬웠다. 글고, 담번엔 보면서 함께 공감하고 웃고 한 마디씩 거들 수 있는 걸 보면 더 좋겠다 싶다. 좀 시끄러워도 상관없는 걸로~~^^.

전체 5

  • 2017-07-03 11:06
    저는 영화를 거의 졸면서 본 것 같아요 ㅋㅋㅋ 졸다가 칼 부딪히는 소리에 잠깐 정신이 돌아오고, 다시 졸다가, 또 깨고.... 근데 그 와중에 몇 개의 장면들은 기억이 남네요. 운무에 쌓인 산에서 스승이 뒤돌아서있는 모습과 안개가 잔잔하게 깔린 호수(?) 등등 그림 같은 장면들은 멋지긴 했어요. 물론 졸았지만 ㅋㅋ;; 아직은 정적인 느낌을 즐길 내공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 2017-07-03 18:57
    기대했던 짜장면과 만두를 너무 맛있게 먹은걸까요? 뱃속에서 난리가 났어요. 화장실 다녀와서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는데, 얼마 안 있어 영화가 끝나버렸네요.이런이런. 다행히 졸진 않았지만, 영화 내용도 파악 못 하고 자리를 파하고 말았네요. 이번 영화는 제게 섭섭한 영화로 남을듯.

  • 2017-07-04 13:28
    정말 자막 처리 해 주는데도 여자들 얼굴은 끝까지 구별불가능... 가면의 자객이 전계안의 부인이라는 설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네요~

  • 2017-07-04 14:59
    괜한 영화추천으로 물의를 빚어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복면자객이 전계안의 처라는 건 영화에 다 나오는데, 그걸 추측이랍시고 .... 모두 제 불찰임다. ㅜ.ㅜ 앞으론 관객으로만 참여하겠습니다! .....팽.

  • 2017-07-04 19:58
    영화 보고 집에 가는 길에 듣기로는 영화가 괜찮았다는 이야기들이 꽤 있었는데. 나이 먹어 이해력이 떨어졌나? 영화의 고요함이 좋았다던데요. 그래서 그런가? 후기도 고요하게 각자의 마음 속에만 두는걸로? 그것도 좋지만 나누는 기쁨도 의외로 쏠쏠할걸요. 적합한 인식을 위해. 요!! 컴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