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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과 노자 하상공주 27장 ~ 37장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9-02 10:01
조회
194
음...... 죄송합니다. 계속 같은 잘못을 하고 있네요. 이제 뭐라 변명할 여지도 없습니다. ㅠㅜ 공허하지만 그래도 다음에는 늦지 않겠다는 것밖에는 말씀드릴 게 없네요. (_ _)

27. 巧用(교용)

 

善行者, 無轍迹. 善言者, 無瑕謫. 善數者, 不用籌策. 善閉者, 無關楗而不可開. 善結者, 無繩約而不可解. 是以聖人常善救人, 故無棄人 ; 常善救物, 故無棄物 ;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 不善人者, 善人之資.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를 잘 행하는 사람은 흔적이 없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은 결함이 없다. 계산을 잘 하는 사람은 주책(籌策)을 쓰지 않는다. 잘 닫는 사람은 자물쇠가 없어도 열 수가 없다. 잘 묶는 사람은 끈 없이 묶어도 풀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항상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므로 버리는 사람이 없고, 항상 만물을 사시에 따르게 하기 때문에 버리는 사물이 없으니, 이를 습명(襲明)이라 한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 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은 선한 사람이 이끄는 대상이 된다.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이끄는 사람을 아끼지 않으면, 비록 지혜로워도 크게 미혹되니, 이를 일컬어 요묘(要妙)라고 한다.

 

27장은 왕필과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왕필과 비슷하면서도 여전히 재밌었던 건 자물쇠와 밧줄로 묶지 않아도 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쌤은 자물쇠로 잠그고 밧줄로 묶는다는 건 결국 풀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정말 열 수 없는 건 아예 뭘 잠그거나 묶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상공만의 독특한 지점은 정욕(情慾)을 잘 관리하라는 거죠. ‘잘 닫는 사람’을 하상공은 도(道)로 정욕(情欲)을 잘 닫아서 정신(精神)을 지킨다고 합니다.

교화에 대한 얘기도 나왔는데, 유가와는 다른 방식의 교화입니다. 유가에서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회복하는 게 본성에 따르는 삶이었다면, 하상공은 사시(四時)에 따르는 삶이 본성에 맞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답게 살거나, 사물을 잘 구한다는 것은 모두 우주의 운행에 맞게, 자연의 흐름에 맞게 살아가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습명(襲明)을 왕필은 습(襲)을 인(因)으로 봐서 “명(明)을 따른다”라고 풀었습니다. 장자의 이명(以明)과 통하죠. 근데 주석을 참고하면 하상공에게 ‘습명’은 “대도(大道)를 따라 밝히는 것”입니다. 우쌤은 ‘습’을 순(順)으로 풀어주셨습니다.

우쌤은 27장에서 노자의 주제 중 하나를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엇 하나 버리지 않고 다 자연의 흐름에 맞게 살도록 안고 가는 삶. 이렇게 보니 확실히 노자는 최소 작은 공동체부터 최대 제국에까지 읽히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28. 反朴(반박)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嬰兒.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朴. 朴散則爲器. 聖人用之則爲官長. 故大制不割.

 

존귀한 것을 알고 천한 것을 지켜서 천하의 계곡이 되라. 천하의 계곡이 되면 항상 덕이 떠나지 않으니 어린아이의 상태로 돌아간다. 드러난 것을 알아도 침묵을 지켜서 천하의 법식이 되라. 천하의 법식이 되면, 항상 덕이 어긋나지 않으니, 무극(無極)으로 돌아간다. 화려한 것을 알더라도 더러운 것을 지켜서 천하의 계곡이 되라. 천하의 계곡이 되면 항상 덕이 머무르니 질박함으로 돌아간다. 질박함이 흩어지면 물건의 쓰임이 되니, 성인은 이것을 써서 우두머리가 된다. 그러므로 [대도(大道)] 천하를 다스리면 해치는 게 없다.

 

28장은 3개의 비슷한 문장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웅(雄)과 자(雌), 백(白)과 흑(黑), 영(榮)과 욕(辱) 모두 반대되는 것을 짝지어 놓은 것입니다. 영아(嬰兒), 무극(無極), 박(朴=樸) 모두 도(道)의 상태를 설명한 글자입니다.

우쌤은 강한 것, 높은 것, 존귀한 것 등등은 우리가 저절로 알게 되지만, 의식적으로 그 반대되는 것들을 지켜야 한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족(足)은 보통 ‘만족하다’의 뜻으로 읽었는데, 여기서는 머무를 지(至)로 읽었습니다.

도(道)가 흩어지는 것에 대한 사유는 왕필과 다릅니다. 왕필은 정치적 시스템을 만드는 것으로 읽었지만, 하상공은 도(道)가 흩어진 결과로 일월(日月)이 운행하고, 오행(五行)으로 나뉘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대제불할(大制不割)은 왕필과 비슷합니다. 대도(大道)로 천하를 다스리면 해치는 게 없다. 할(割)을 ‘자르다’로 봐서 쪼개지지 않는 도(道)를 설명한 것이라고 보는 주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왕필과 하상공은 ‘할’을 ‘해치다’의 의미로 본 것이죠. 근데 또 하상공과 왕필의 미묘한 차이는 하상공은 몸을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계속 같이 간다는 거죠. 그래서 주석을 참고하면, “대도(大道)로써 정욕(情欲)을 제어하면, 정신(精神)을 해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크....... 초지일관 정욕을 다스리는 게 관건인데, 속에서 끓어오르는 정욕을 어찌 눌러야 할지 ㅠㅜ

 

29. 武威(무위)

 

將欲取天下, 而爲之, 吾見其不得已. 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 故物或行或隨, 或呴或吹, 或强或羸, 或載或隳, 是以聖人去甚, 去奢, 去泰.

 

장차 천하의 주인이 되려하여 유위(有爲)를 하려 한다면, 나는 그게 안 된다고 본다. 천하는 신물(神物)이니, 억지로 할 수 없다. 유위(有爲)로 다스리는 사람은 질박함을 망치고, 억지로 하는 사람은 정()과 실()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사물 가운데서 어떤 경우에는 앞서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뒤따르며, 어떤 경우에는 따뜻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차갑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강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파리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안정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위태롭기도 하다. 그러므로 성인은 여색에 빠지지 않고, 사치스럽지 않으며, 누대와 궁실을 크게 짓지 않는다.

 

29장은 전반적으로 왕필과 비슷합니다. 천하는 기본적으로 안정(安靜)됨을 좋아하니, 유위(有爲)로 천하를 어지럽히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말이 그렇습니다.

다른 게 있다면 왕필은 혹좌혹휴(或挫或隳)라고 한 것을 하상공은 혹재혹휴(或載或隳)라고 한 것입니다. 왕필은 좌(挫)를 써서 ‘꺾이다’의 의미를 가져왔는데, 하상공은 오히려 재(載)를 가져와서 이걸 안정될 안(安)으로 풀었습니다. 안정되기 위해서는 ‘유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네요.

심(甚)과 사(奢), 태(泰)에 대한 해석도 다릅니다. 왕필은 ‘심’을 상식을 벗어난 것으로, ‘사’를 정도를 벗어난 것으로, ‘태’를 지나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반면에 하상공은 역시 ‘정욕’으로 접근하죠. ㅋ 하상공은 ‘심’을 여색을 탐하는 것으로, ‘사’를 의복과 음식의 사치로, ‘태’를 궁실과 누대가 큰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비우면 중화(中和)에 처한다고 하는데, 우쌤은 ‘중화’를 허(虛)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비워서 ‘허’에 머무는 것이 바로 무위(無爲)를 행하는 것으로, 그러면 천하 백성이 스스로 교화된다고 합니다. 우쌤은 주희가 《대학(大學)》에서 말하는 신민(新民) 또한 백성이 스스로 새로워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30. 儉武(검무)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於天下, 其事好還. 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 善有果而已, 不以取强. 果而勿矜, 果而勿伐, 果而勿驕, 果而不得已, 是果而勿强. 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

 

()로써 나라 일을 하는 군주는 병사로써 천하에 군림하지 않으니, 일을 행할 때는 자신을 성찰한다. 군대가 머문 자리에는 가시나무가 자라난다. 대군이 지나가면 반드시 흉년이 있다. 군대를 잘 부리는 사람은 과감하지만 아름답다 하지 않고, 과감함으로써 큰 이름을 추구하지 않는다. 과감하지만 자랑하지 않고, 과감하지만 과시하지 않고, 과감하지만 남을 기만하지 않고, 과감하지만 부득이하게 행하며, 과감하지만 지나치게 무기를 쓰지 않는다. 사물이 지나치면 노쇠하고, 이는 도()가 아니니, ()가 아니면 일찍 끝난다.

 

30장은 무(武)를 검소하게, 아껴쓴다는 것으로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힘만을 가지라는 것을 말합니다. 우쌤은 만약 장자라면 자신을 지키기 위한 힘조차 내려놨을 것이라며 장자와의 차이점을 얘기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장자에게 ‘나를 지키는 것’, 보신(保身)을 푸는 것도 중요한 주제라고 하셨습니다.

왕필은 이도좌인주자(以道佐人主者)를 도(道)를 체득한 신하가 군주를 보필하는 걸로 풀었지만, 하상공은 도(道)로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로 풀었습니다.

호환(好還)을 보통 도(道)의 운행, 저지른 일에 대한 후환으로 봅니다. 그런데 하상공은 이걸 자신에 대한 성찰로 풀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이 일어나면 자책(自責)을 하지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果)를 왕필은 ‘부득이’로 풀었지만, 하상공은 ‘과감히’로 풀었습니다.

우쌤은 수중전에서 해주셨던 춘추시대의 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약간 해주시면서, 패자들의 특징은 항상 본인 다음까지 그 힘이 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31. 偃武(언무)

 

夫佳兵, 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是以君子居則貴左, 用兵則貴右. 兵者, 不祥之器, 非君子之器. 不得已而用之, 恬惔爲上, 勝而不美. 而美之者, 是樂殺人. 夫樂殺人者, 則不可得志於天下矣. 吉事尙左, 凶事尙右. 偏將軍居左, 上將軍居右, 言以喪禮處之, 殺人之衆, 以悲哀泣之. 戰勝. 以喪禮處之.

무릇 훌륭한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도구다. 만물이 모두 그것을 싫어하니, 그러므로 도()가 있는 사람은 [무기가 있는]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평소에 왼쪽을 귀하게 여기고, 병사를 사용하면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병기는 상서롭지 않은 도구이니, 군자의 도구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쓰더라도 토지를 탐하고 재물을 이롭게 여기지 않음을 최고로 치고, 이겨도 아름답다 여기지 않는다. 이것을 아름답게 여기는 사람은 살인을 즐기는 사람이다. 살인을 즐기는 사람은 곧 천하에 뜻을 펴지 못한다. 길한 일에는 왼쪽을 받들고, 흉한 일에는 오른쪽을 받든다. 편장군은 왼쪽에 거하고, 상장군은 오른쪽에 거하니, 상례로써 그것을 대한다는 말이다. 죽인 사람이 많으면 슬픔과 애처로움으로 곡한다. 전쟁에 이기면 상례로써 대한다.

 

31장의 제목은 ‘무기를 땅에 눕혀놓는다’라는 뜻에서 언무(偃武)입니다. 우쌤은 ‘평화선언’에 대한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하셨는데, 정작 제목과 내용이 안 맞는다고 하셨습니다.

가(佳)는 ‘훌륭한’ 이란 뜻이지만 보통 괄호를 쳐서 안 읽는다고 합니다.

염담(恬惔)을 왕필은 ‘마음을 비우고 담담하게 만드는 것’으로 풀었지만, 하상공은 ‘토지를 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재물을 이롭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풀었습니다.

 

32. 聖德(성덕)

 

道常無名, 朴雖小, 天下不臣敢信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天地相合, 以降甘露, 民莫之令而自均. 始制有名, 名亦旣有, 天亦將知之. 知之所以不殆.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는 항상 이름이 없으니, 질박하여 비록 미미하지만 천하가 감히 신하로 삼을 수 없다. 제후와 왕이 만약 이를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이 장차 스스로 복종한다. 천지가 서로 합하면, 감로를 내리고, 백성은 명을 내리지 않아도 스스로 천지의 기운과 맞춰 산다. 태초에 도()가 작용하여 만물이 있게 되니, 만물은 또한 다함이 있고, 하늘 또한 장차 그것을 안다. 그것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비유하자면 도()가 천하에 있는 것은 냇물과 계곡이 강과 바다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32장의 제목은 ‘대단한 덕’이란 의미에서 성덕(聖德)입니다.

하상공은 자빈(自賓)을 스스로 손님이 되는 것, 복종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우쌤은 빈(賓)에 복(服)자가 자주 붙는데, 그러면 의미가 ‘복종하다’로 읽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빈’은 자화(自化), 자균(自均)과 의미가 통한다고 하셨습니다.

명(名)이 있다는 것은 만물을 가리킵니다. 우쌤은 모든 만물은 그 끝이 있는 것처럼, ‘명’이 있다는 것은 결국 한계가 있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기(旣)에 대해서 ‘이미’로 보는 판본도 있고, ‘다하다’로 보는 판본도 있습니다. 왕필은 ‘이미’로 봤는데, 하상공이나 진고응은 ‘다하다’로 봤습니다.

 

33. 辯德(변덕)

 

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知足者富, 强行者有志.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스스로를 아는 사람이 밝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는 것이고, 스스로의 [정욕을] 이기는 게 강한 것이다. 족함을 아는 사람은 부유하고, [()] 힘써 행하는 사람은 도()에 뜻이 있다. 그 마땅한 바를 잃지 않는 사람은 오래되고, 죽을 때까지 망령되지 않는 사람은 장수한다.

33장의 제목은 ‘판단하는 덕’, 변덕(辯德)입니다.

하상공은 남을 이기는 건 힘이 있을 뿐이지만, 자신의 정욕(情欲)을 이겨야만 강(强)자라고 합니다.

기소(其所)는 ‘마땅한 자리’,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로 읽습니다. 하지만 하상공은 ‘기소’를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정기(精氣)를 잃지 않는다는 것으로 풀었습니다.

 

34. 任成(임성)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愛養萬物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 ; 萬物歸焉而不爲主, 可名爲大. 是以聖人終不爲大, 故能成其大.

 

대도(大道)는 뜬 것 같기도 하고 가라앉은 것 같기도 해서, 왼쪽으로 될수도 오른쪽으로 될 수도 있다. 만물은 도()를 기다린 뒤에 생겨나지만 [()] 자랑하지 않고, 공이 이루어져도 명예를 가지지 않고, 만물을 사랑하고 길러도 주인이 되려하지 않는다. 항상 의도를 가지지 않으니 작다고 이름할 수 있고, 만물이 그곳에 돌아가도 주인이 되려하지 않으니,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성인은 끝까지 이 되려 하지 않으니, 을 이룰 수 있다.

 

34장의 제목은 ‘이루어짐에 맡기다’, 임성(任成)입니다.

왕필은 범(汎)을 도(道)가 천하에 꽉 채운 것처럼 퍼져있는 모양이라고 풀었지만, 하상공은 뜬 것 같기도 하고 가라앉은 것 같기도 한, 그래도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도(道)를 나타낸 것으로 풀었습니다.

우쌤은 욕(慾)을 유위(有爲), 의도를 가지는 것으로 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끝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백성들이 스스로 교화되는 자화(自化), 아자연(我自然)이라고 말하는 것과 연결해서 풀어주셨습니다.

우쌤은 유가에서 변(變)의 과정을 통해 화(化)하는 순간에 이른다고 얘기하면서 이 둘을 같이 가져가는데, 하상공은 ‘변’은 없고 ‘화’만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구도는 비슷할 것이라는 얘기를 덧붙여주셨습니다.

 

35. 仁德(인덕)

 

執大象, 天下往 ; 往而不害, 安平太. 樂與餌, 過客止.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可旣.

 

대도(大道)를 지키면 천하 사람들이 찾아오고, 찾아와도 해치지 않으니, 국가가 안정되고 평탄해진다. [()] 즐기고 아름답게 여기면 도()[나에게 와서] 머문다. ()를 입으로 표현하면 담백해서 맛이 없는 것 같고, [()] 보려 해도 보기에 부족하고, 들으려 해도 듣기에 부족하고, [()] 쓰면 고갈되지 않는다.

35장에서는 왕필에서 떨떠름하게 넘어갈 수 없었던 구절을 깨끗하게 해결했습니다. 하상공은 음악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이(餌)를 아름다울 미(美)로 풀어서, 도(道)를 즐기고 아름답게 여기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과객(過客)을 일(一), 도(道)로 풀어주어서 ‘도’가 나에게 머무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우쌤은 동양에서 ‘과객’은 ‘지나가는 나그네’가 아니라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하셨습니다.

 

36. 微明(미명)

 

將欲噏之, 必固張之 ; 將欲弱之, 必固强之 ; 將欲廢之, 必固興之 ; 將欲奪之, 必固與之 : 是謂微明. 柔弱勝剛强. 魚不可脫於淵, 國之利器不可以示人.

 

장차 상대를 사치와 음란하게 만들려면 반드시 먼저 상대를 풀어줘야 하고, 장차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야 하고, 장차 폐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흥하게 해야 하고, 장차 빼앗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줘야 한다. 이를 일러 미명(微明)이라 한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 / 물고기는 연못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고, 나라의 권력을 백성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36장의 제목인 미명(微明)은 도(道)의 작용을 나타낸 것이라는 점에서 27장의 습명(襲明), 요묘(要妙)와 통합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도’는 미미하지만 드러난 현상은 우리 눈에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분명 만물이 태어나고 죽는 걸 보면 ‘도’가 있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도’가 어디에 있고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는 거죠.

우쌤은 슬레쉬(/) 다음부터는 다른 얘기 같다고 하셨습니다. 물고기가 연못을 벗어나면 안되듯, 백성들도 다스리는 사람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면 다스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용상 한비자의 해석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확인하고 알려주신다고 하네요.

우쌤은 36장에서 지배층의 욕망에 대한 비판은 하고 있으면서도 서민층의 욕망은 얘기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백성에 대한 낙관적인 시선이 너무 있는 게 아니냐고 하셨죠.

 

37. 爲政(위정)

 

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朴.無名之朴, 亦將不欲. 不欲以靜, 天下將自正.

 

()는 항상 무위(無爲)하지만 하지 못함이 없고, 제후와 왕이 만약 [()]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이 장차 스스로 교화될 것이다. 교화되지만 욕망이 일어나면, 나는 장차 이름 없는 통나무로 그것을 누를 것이다. 이름 없는 통나무는 [백성] 또한 장차 욕망을 일으키지 않는다. 욕망을 일으키지 않음으로써 안정되면, 천하가 장차 스스로 바르고 안정된다.

 

도상무위이무불위(道常無爲而無不爲)가 37장의 표제어입니다. 우쌤은 자화(自化)가 나온다는 점에서 32장과 연결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죽간을 정리하다가 여기저기 막 흩어지고 다르게 정리됐고, 37장도 그런 장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화이욕작(化而欲作)을 왕필은 화(化)하려는 과정에서 유위(有爲)의 욕망을 가진 사람이 개입하는 것으로 풀었습니다. 반면에 하상공은 자신의 욕망이 일어나는 것으로 봐서 자신을 검속하는 것으로 풀었습니다.

무명지박(無名之朴)은 도(道)를 말합니다. 여기서 박(朴)은 딱히 해석을 안 하는 게 좋지만, 그럼에도 굳이 해석을 한다면 ‘덩어리’로 하는 게 좋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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