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강좌

[동화인류학] 0922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7-09-16 10:40
조회
172
첫 시간이었습니다. 뉴페이스가 네 분이나 되는데다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영역, 해본 적 없는 형태의 세미나인지라 기대가 아주 큽니다. 앞으로 한 학기 함께 열심히, 즐겁게 달려보았음 합니다.

첫 시간이었던 만큼 채운 쌤께서 이것저것 흥미 있는 소스를 여럿 던져주셨지요. 크게 나누자면 ‘민담, 인류의 무의식’ ‘우리 시대의 [미친]가족’ 이렇게 둘이었네요.

첫째, 민담이란 무엇인가? 여름에 사전 세미나를 하면서 읽었던 민담 시리즈가 있는데(<세계민담전집>), 아주 낯익은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절반 정도가 어렸을 때 이야기나 동화책으로 접했던 얘기들의 변주더군요. 그러고 보니 ‘옛이야기’하면 어린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여겨지는 게 보통이지요. 그런데 채운 쌤 말씀을 듣고 보니 어떤 층을 겨냥한 이야기, 뭐 이런 규정이 민담에서는 실로 어불성설인데요, 왜냐하면 민담은 특정한 작가가 이러저러한 의도로 기획, 구성, 집필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로 입에서 입으로 떠돌고 떠돌면서 숱하게 변주되고 각색되고 첨가되어 만들어진 민중의, 내지 인류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의 의도 하에 장악된 이야기가 아닌 고로 개연성도 없고, 채운쌤 표현대로 밑도 끝도 없는 것처럼 들리지요. 실제로 주인공이 돌쇠인 줄 알았는데, 몇 단락 뒤부터 돌쇠는 온데간데없고 영 다른 이의 모험이 시작되기도 하고, 아버지 대(代)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손자 대의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하고, 마을 이야기였는데 극락 이야기로 점프하기도 하고... 아주 난감하고 황당한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이렇게 시공간적 연속성이 없다 보니 우리 눈에 개연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처럼 보이고, 그래서 소설과 다르게 아이들이 읽을 만한 이야기로 간주되고 실제로 그렇게 각색, 편찬된 결과물을 우리도 어린시절 숱하게 읽으며 자라왔지요.

그런데 민담은 아이들이 읽는 쉬운 이야기 내지 꿈과 몽상으로 가득한 허구가 아니라, 사실 인류의 무의식이 담긴 이야기이고, 그런 한에서 근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지평에서 우리의 삶과 문제를 통찰하고 문제시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어주리라는 희망 내지 확신으로 이 세미나가 기획되었답니다^^ 오늘 수업 시간에 나온 예가 인상적이었지요.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나는 네 엄마 아니야.’ ‘너는 한겨울에 두루미가 가져다주었어.’ 채운 쌤께서는 이런 이야기는 자신의 기원에 대한 인류의 물음을 스토리화한 것이 아닐까 하셨어요. 인류는 물었을 겁니다. 나는 어디서 왔지? 이 세계는 언제 시작되었지? 이곳 바깥에는 무엇이 있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지? 왜 태어나고 죽지? 이런 의문,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벌인 상상과 추리가 신화를 만들고 전설과 민담을 만들었답니다. 민담과 전설들, 그것은 단지 비현실적인 이야기, 개연성 떨어지는 이야기, 문학보다 하위의 이야기가 아니라, 문학 언어 내지 주류 언어보다 먼저 사람들 사이를 떠돌며 거듭난,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주류 언어의 언저리에서 웅성대면서 인간의 욕망과 [무]의식의 비밀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동화인류학 세미나에서는 이 같은 민담 읽기의 첫 번째 시도로서 ‘가족’을 키워드로 골랐습니다. 지긋지긋하게 사랑하는 내 원수인 가족을, 조금 다르게, 다른 거리감과 다른 시점에서 볼 수 있는 힘을, 근대 이전의 가족 이미지를 보여주는 민담에서 발견해보자는 거지요. 원래부터 가족은 이렇게 서로 사랑(해야) 하는 존재였나? 시공을 초월해 모든 어머니는 자식을 이렇게 끔찍하게… 정말 끔찍이 사랑했나? 아내는 남편만을, 남편은 아내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테제는 인류에게 당연한 도덕률인가?

채운 쌤은 오늘날 가족을 진단하는 데 존속 살해가 아주 좋은 분석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농토에서 인간이 뽑혀나가 공장 노동자가 된 뒤, 공장들이 줄줄이 만들어지고 도시가 만들어진 뒤 생겨난 ‘홈스위트홈’ 담론을 떠올려봅시다. 언제부터 가족이 그렇게 끔찍하게 서로를 위했을까요? 적어도 조선시대는 아닌 것이, 제 기억에 어렸을 때 본 야한 영화 <씨받이>나 <감자>에서도 가족은 제가 아는 그 가족이 아니던걸요^^; 언제나 먹고 사는 게 가장 큰 일이었으니 함께 살 때도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이랄 게 없고, 조금이라도 컸으면 어서 집밖으로 나가 자기 몫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가족끼리 비정했다기보다는 ‘가족이므로 서로를 아껴야 한다’는 관념이 사회적으로 없었던 시절입니다. 가족이 아니라 마을이나 이웃이 서로에게 어른이고 어미들 아비들이었으니 가능한 것이었다고 하지요.

많은 학자들이 하는 말이 자본주의 시대는 가족을 단위로 유지되는 체제라고 하던데, 생각해보면 자본주의적 욕망을 뼈저리게 마주하거나 그에 휘둘리거나 하는 것은 대개 가족과 관련된 것 같습니다. 자녀를 이러저러한 루트 안에 편입시키겠다는 욕망 하에 이뤄지는 면밀한 계획들, 강남의 이 동네 저 동네의 아파트를 따져보는 눈, 휴가 때 가족과 함께 지낼 해외여행지 조사, 확 이혼을 할까말까 애들 데리고 살 길 막막한데 그냥 참고 살까 등등 자잘한 선택과 갈등 하나하나가 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구조 안에서 특유하게 만들어지는 것들이잖아요. 그야말로 자본주의를 유지시키고 재생산하기 위한 최소 집단, 그게 가족이지요. 그 가족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는 것, 그건 조선시대가 아니라 20세기부터 시작된 문화적 현상이었다는 게 채운 쌤의 설명이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사람들이 이제 집 아니면 회사 내지 학교 말고는 갈 데가 없어진 겁니다. 비슷한 면과 다른 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가 점점 사라져갑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감정이나 욕망이 저리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옅어지기도 하고 해소되기도 하는 맛이 있어야 원래 관계도 건강하게 유지되고 다른 관계들도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는 법인데, 이제 남은 네트워크라곤 ‘사랑하는 내 가족’밖에 없게 된 겁니다. 엄마에게는 오직 딸뿐이니 중학생 딸의 휴일을 기다려 함께 쇼핑을 하고 외식을 하고, 해외여행을 갑니다. 딸을 위해 이러저러한 학원을 등록하고, 자동차로 딸을 기다렸다가 픽업합니다. 이렇게 전적으로 한 대상만을 위해 투여되는 욕망은 응당 화를 부르고 말지요. 겁나게 사랑받고 보호받고 이해받는 십대의 딸에게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에너지(생명력 / 욕망)를 새롭게 쓰고 다른 것으로 전환시킬 방법이 별로 없습니다. 한쪽으로부터 받는 케어의 정도가 높으면 높은 만큼 아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지요. 생명이란 게 그렇지 않나요? 케어를 받는 만큼 잘 자라는 게 결코 아닙니다. 나를 극(克)하는 것도 있어줘야, 방해되는 것도 있고 혼내는 것도 있고 경쟁하는 것도 좀 있고 해야 내가 내 힘을 사용해서 쑥쑥 클 텐데 그럴 일이 없으니 힘을 쓰지 못해 사람이든 화초든 강아지든 비실비실해집니다. 그렇게 비실대는 건 그의 에너지가 제대로 몸속을 돌지 못하고, 존재들 사이에서(관계 안에서) 순환되지 못하고 어딘가에 들러붙어 있다는 증거죠. 그러다 어느 순간 빵 하고 터져버린 힘, 그게 존속 살해나 묻지마 살인, 〇〇혐오 등등의 상황으로 드러나는 게 아닐까 하는 게 채운 쌤의 분석이었습니다.

존속살해, ADHD, 우울증… 이런 게 대략 우리 시대 가족의 모습인가봅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믿고 있는 가족 신화, 모성이데올로기 따위에서 기인하고요. 그래서 동화인류학에서는 이것들을 다시 묻는 작업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당연시 하는 것들, 원래 그렇다고 믿었던 것들을 다시 묻기 위해, <앙띠 오이디푸스>의 핵심 키워드인 ‘욕망’과 ‘무의식’이라는 열쇠를 쥐고서요.

이번 한 시즌동안 모쪼록 즐겁게, 찬찬히 읽고 써보면서 우리들 각자의 가족 문제를 고찰하기 위한 다른 접근법 하나를 얻어가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일단 다음 시간, 첫 번째 세미나를 즐거이 해봅시다. 다들 아시겠지만 다시 한 번 공지해둡니다. 각자 맡은 동화 한 편을 성실하게 읽고 해석해옵니다. 단, 우리가 배운 개념들을 소박하게 사용하면서, 나의 문제의식을 진솔하게 풀어놓음으로써, 해당 동화의 범위를 벗어나게 않으면서.

< 도량 넓은 남편> 이응 / <나무꾼과 선녀> 혜원 / <구렁덩덩 신선비> 유현정 쌤 / <신기한 전생인연> 수경 / <개구리 왕자> 최정은 쌤 / <어부와 아내> 김현정 쌤 / <진짜 신부> 박선미 쌤

다음 주 간식과 후기는 혜원 선생님께 부탁드렸습니다. 매주 돌아가며 한 분씩 간식과 후기를 담당하시게 됩니다. 말씀드렸지만 점심식사 시간에 걸쳐 있는 관계로 간단하게라도 요기가 되는 간식을 부탁드립니다.

그럼 모두들 다음 시간에 만나요~~~
전체 2

  • 2017-09-16 14:34
    욕망의 저수지를 떠나며, 마치 길 위에 선 아이처럼 세미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두모두 열심히 걸어보아요!

  • 2017-09-17 14:58
    앙띠 오이디푸스 읽을 곳: 푸코가 쓴 서문 + 1장 4, 5, 6. 공지를 확인 못했다는 변명의 여지가 없도록 문자도 날려드립니다, 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