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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과 노자 하상공주 60장 ~ 70장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9-21 15:40
조회
122
벌써 하상공주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으어어, 뭐가 남았는지 잘 모르겠네요. 하하;;
우쌤은 하상공주의 매력은 제목이라고 하셨는데, 이 제목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한 사람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확실히 꼼꼼하게 살펴보고 제목을 단 것 같지는 않습니다. ㅋㅋㅋㅋ 그냥 죽간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띠 정도 역할인 것 같습니다. 만약 엄청 세밀하게 제목을 지었다고 해도 착간이든 뭐든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우쌤 말씀대로 남아있는 형태를 요리조리 따지면서 봐야겠죠. 근데 저한테 느껴지는 하상공주의 매력은 제목보다는 정욕(情欲)을 다루는 그의 해석입니다. 통속적인 게 참 재밌어요.^^

 

60. 居位(거위)

治大國, 若烹小鮮. 以道莅天下, 其鬼不神. 非其鬼不神, 其神不傷人. 非其神不傷人, 聖人亦不傷人. 夫兩不相傷, 故德交歸焉.

 

대국을 다스리는 건 생선을 굽듯이 해라. ()로써 천하에 군림하면 귀신이 작용하지 못한다. 단지 귀신이 작용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귀신의 정신이 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한다. 귀신의 정신이 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성인도 또한 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한다. 귀신과 성인이 둘 다 서로 간섭하지 못하니, 덕이 교대로 도()로 돌아간다.

 

약팽소선(若烹小鮮) 이 부분에 대해 주석에서는 정말 내장과 비늘을 제거하는 등의 얘기가 나옵니다. 우쌤 표현을 빌리면, ‘통속적’이라서 더 저한테 잘 와 닿네요.

리(莅)는 ‘군림하다’, ‘임하다’의 뜻입니다. 림(臨)과 의미가 통한다고 하셨습니다.

귀(鬼)와 신(神)에 대해서 왕필본에서는 귀(鬼)는 음적인 기운, 신(神)은 양적인 기운으로 풀었었습니다. 그런데 하상공은 귀(鬼)는 귀신으로, 신(神)은 ‘작용하다’, ‘미치다’의 뜻으로 봐서 정신(精神)이나 귀신의 작용으로 풀었습니다.

문제가 되는 구절은 성인역불상인(聖人亦不傷人)입니다. 생선 굽듯이 대국을 다스리는 사람은 아마도 성인일 텐데, 본문에는 성인도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예전에 왕필본을 해석할 때는 성인을 도올이 해석한 무당으로서의 성인으로 봤었습니다. 어쨌든 도(道)에 맞춰 사는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는 건 확실합니다.

덕교귀언(德交歸焉)에 대해 주석에서는, “사람이 양에서 다스리고, 귀신은 음에서 다스린다. 사람은 그 성명(性命)을 온전히 하고, 귀신은 그 정신(精神)을 보존하니, 따라서 덕(德)이 교대로 도(道)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언(焉)이 가리키는 건 도(道)입니다.

 

61. 謙德(겸덕)

大國者下流, 天下之交, 天下之牝. 牝常以靜勝牡, 以靜爲下. 故大國以下小國, 則取小國 ; 小國以下大國, 則取大國. 故或下以取, 或下而取. 大國不過欲兼畜人, 小國不過欲入事人, 夫兩者各得其所欲, 大者宜爲下.

 

대국은 강물이 아래로 흐르듯 겸손해서 천하의 선비와 백성들이 귀의하니, 천하를 포용하는 어머니와 같은 나라가 된다. 암컷은 항상 차분함으로써 수컷을 이기고, 차분함으로써 자신을 겸손하게 낮춘다. 그러므로 대국이 소국에게 자신을 낮추면 소국의 신임을 얻게 되고, 소국은 대국에게 사대함으로써 대국의 보호를 받는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자신을 낮춤으로써 소국을 따르게 하고, 어떤 경우에는 자신을 낮춤으로써 대국의 보호를 받는다. 대국이 바라는 것은 소국의 백성을 겸하여 기르고자 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소국이 바라는 것은 대국에 편입되어 섬기는 데 지나지 않으니, 대국과 소국이 각각 그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의당 대국이 겸손해야 한다.

 

61장의 제목은 “겸손한 덕(德)”입니다. 우쌤은 대국과 소국의 관계는 《맹자》에도 나와서 같이 비교해서 보면 좋은 장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류(下流)는 ‘아래로 흐르다’란 뜻으로 겸손한 사람이 자신을 아래로 낮추는 것을 말합니다.

빈(牝)에 대해 주석에서는 유겸(柔謙), 부드럽고 겸손함으로 풀었습니다. 우쌤은 ‘천하를 포용하는 어머니’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정(靜)은 ‘고요하다’, ‘안정되다’, ‘차분하다’라는 뜻입니다.

대국이하소국 즉취소국 소국이하대국 즉취대국(大國以下小國, 則取小國 ; 小國以下大國, 則取大國) 부분에서 취소국(取小國)과 취대국(取大國)의 뜻이 다릅니다. 소국을 취(取)하는 건 소국의 신임을 얻는다는 것이고, 대국을 취(取)하는 건 대국의 보호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뒤에 휵인(畜人)과 사인(事人)를 보면 더 명확하게 대비됩니다. 대국은 소국의 사람들을 겸하여 기르고자 하고, 소국은 대국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61장에서 얘기하는 건 겸손함입니다. 우쌤은 예로부터 겸손함은 동양에서 중요하게 다뤄졌고, 《주역(周易)》만 봐도 겸손한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62. 爲道(위도)

道者, 萬物之奧. 善人之寶, 不善人之所保. 美言可以市, 尊行可以加人. 人之不善, 何棄之有! 故立天子, 置三公. 雖有拱壁以先駟馬, 不如坐進此道. 古之所以貴此道者何? 不日以求得, 有罪以免邪! 故爲天下貴.

 

도는 만물을 감싸 안는 창고다. 선인에게는 보배가 되고, 불선한 사람도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말은 시장에서 쓸 수 있고, 존귀한 행동은 다른 사람과 구별될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이 선하지 않다고 해서 어찌 그 사람을 버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천자를 세우고 삼공이란 사람을 두는 것이다. 비록 옥을 받들고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앞세운다 해다 앉아서 이 도()를 바치는 것만 못하다.

(옛날에 이른 바 이 도를 귀하게 여긴 것은 어째서인가? 날마다 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 옛날에 이른 바 이 도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니, 어찌 날마다 구하여 얻지 않으리오?) 형벌이 남용되는 어려운 세상에 살게 되더라도 도를 닦은 사람은 죽음을 면할 수 있다. 그래서 천하의 귀한 것이 된다.

 

오(奧)는 ‘그윽하다’, “욱”으로 읽으면 ‘덮어주다’라는 뜻입니다. 왕필은 이를 만물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봤는데, 하상공은 오(奧)를 만물을 받아들이는 ‘창고’로 풀었습니다.

보(寶)는 67장과 연결됩니다.

불선인지소보(不善人之所保)에 대해서 다른 판본들은 대개 “불선인도 보호한다.”로 해석했지만, 하상공은 “불선인도 가지고 있다.”로 해석했습니다.

미언(美言)은 시장에서나 쓰이는 말입니다. 시(市)는 ‘매매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미언(美言)은 시장에서 쓸 수 있다.”가 됩니다.

존행(尊行)은 ‘존귀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행동을 말합니다.

공(控)은 ‘받들다’라는 뜻입니다. 벽(璧)은 ‘큰 옥’입니다.

선사마(先駟馬)를 왕필본에서는 선사마(先駟馬)와 선어사마(先於駟馬)로 구별해서 봤었습니다. 우선 선사마(先駟馬)로 보면, ‘네 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를 앞세우다’라는 뜻이고, 선어사마(先於駟馬)로 보면 ‘네 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보다 앞장서다’라는 뜻입니다. 하상공은 네 마리 말을 앞세우는 것으로 봐서 귀한 것을 많이 주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하상공본과 왕필본의 가장 다른 지점 중 하나는 하상공본에 있는 많은 일(日)이 왕필본에서는 왈(曰)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하상공은 불일이구득(不日以求得)으로 봐서 “날마다 구하지 않는다.”로 해석했습니다. 주석에서는 여기에 덧붙여, 날마다 돌아다니면서 구하지 않고, 가지고 태어난 걸 활용한다고 했습니다.

고지소이귀차도자하? 불일이구득 유죄이면사!(古之所以貴此道者何? 不日以求得, 有罪以免邪!) 이 구절은 어디서 끊어 읽느냐에 따라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먼저 본문에 나온대로 읽으면 “옛날에 이른바 이 도를 귀하게 여긴 것은 어째서인가? 죄가 있어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고지소이귀차도자 하불일이구득? 유죄이면사!(古之所以貴此道者, 何不日以求得? 有罪以免邪!)로 읽으면 “옛날에 이른바 이 도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어찌 날마다 구하여 얻지 않으리오? 죄가 있어도 면할 수 있다!”로 해석됩니다.

 

63. 恩始(은시)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 天下難事, 必作於易 ; 天下大事, 必作於細. 是以聖人終不爲大, 故能成其大. 夫輕諾必寡信, 多易必多難, 是以聖人猶難之, 故終無難.

 

무위(無爲)를 행하고, 무사(無事)를 일삼고, 무미(無味)를 맛보아라. 크고자 하면 작은 것으로 돌아가야 하고, 많고자 하면 적은 것으로 돌아가야 하니, 원한은 덕으로 갚아야 한다. 어려움을 도모하는 것은 쉬운 데서 이며, 큰 일을 하고자 하면 미세한 데서부터 해야 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무심코 넘기는 데서 시작되고,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미세한 일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까닭에 성인은 끝까지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 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능히 그 위대해질 수 있다. 무릇 경거망동하는 것은 반드시 믿음이 적게 되고, 쉽게 여기는 것이 많으면 반드시 어려운 일이 많아지게 되니, 이런 까닭에 성인은 그 어려운 일을 망설이므로 끝내 어려운 일이 없게 된다.

 

63장의 제목은 “시작을 감사하라”입니다.

위무위(爲無爲)를 주석에서는 “따름에 인하여 이루어지니, 그러므로 조작하는 바가 없다.”고 합니다. 왕필본에서는 위무위(爲無爲)를 ‘무위(無爲)를 하다’로 보거나 위이무위(爲而無爲)로 봐서 ‘하지만 하지 않은 것처럼 하다’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위무위(爲無爲)로 해석했습니다.

사무사(事無事)도 위무위(爲無爲)와 같은 문법으로 해석했습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미리 준비해서 번거로운 것을 제거하고 불필요한 일을 생략한다.”라고 했습니다.

미무미(味無味)는 무미(無味)를 맛보는 것인데, 곧 도(道)를 음미하는 것입니다.

대소다소(大小多少)는 각각의 글자를 하나씩 해석할 수도 있지만, 왕필이나 하상공은 두 글자씩 묶어서 해석했습니다. 대(大)는 소(小)에서 나오고, 다(多)는 소(少)에서 나오는 것으로 봤습니다.

보원이덕(報怨以德)은 『논어』 「헌문」편 36장과 비교해서 읽으면 좋습니다. 공자는 “덕은 덕으로 갚고, 원한은 올바름으로 갚아야 한다.(以直報怨, 以德報德)”고 얘기했지만, 노자는 모든 걸 덕으로 갚는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하상공은 원한이 생기면 감당하기 어려우니 그 전에 덕을 잘 닦아서 미연에 방지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도(圖)는 ‘그림’, ‘생각하다’의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도모하다’의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사극에서도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때는 살(殺)과 의미가 통한다고 합니다.

경락(輕諾)은 가볍게 말하는 것으로 우쌤은 ‘경거망동’이라고 하셨습니다.

시이성인유난지(是以聖人猶難之)에서 유(猶)를 왕필은 ‘오히려’라고 해석했지만, 하상공은 ‘망설이다’로 해석했습니다.

 

64. 守微(수미)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破, 其微易散. 爲之於未有, 治之於未亂, 合抱之木, 生於毫末 ; 九層之臺, 起於累土 ; 千里之行, 始於足下. 爲者敗之, 執者失之. 聖人無爲, 故無敗 ; 無執, 故無失.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 則無敗事. 是以聖人欲不欲, 不貴難得之貨 ;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 而不敢爲.

 

안정될 때 유지하기 쉽고, 조짐이 생기지 않았을 때는 도모하기 쉽고, 무른 것은 깨지기가 쉽고, 미미한 것은 흩어지기가 쉽다. 싹 트지 않았을 때 조치를 취해야 하고, 아직 혼란이 오지 않은 상태에서 다스려야 한다. 한 아름드리의 나무도 아주 작은 씨앗에서부터 생겨나고, 구층의 높은 누대도 흙을 쌓는 것에서 일어나고, 천리를 가는 것도 내 발에서부터 시작된다. 인위적으로 하고자 하는 사람은 패하게 되고, 고집해서 갖고자 하는 사람은 잃게 된다. 그래서 성인은 무위하기 때문에 패함이 없고, 잡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잃는 게 없다. 백성들의 일은 항상 거의 이루어졌을 때 실패하게 된다. 마무리할 때까지 처음처럼 신중히 한다면 곧 실패할 일이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하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성인은 보통 사람들이 배울 수 없는 걸 배우고, 중인들이 소홀히 하는 것을 회복한다. 만물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지만 조작하지는 않는다.

 

64장의 제목은 “미세함을 지켜라.”입니다. 전반적인 구도는 63장과 비슷합니다. 왕필은 안정될 때조차 긴장을 놓지 않아야 나라를 지킬 수 있기 때문에,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항상 근심을 해야 하는 것으로 봤습니다. 반면에 하상공은 정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았을 때 다루기가 쉬운 것으로 봤습니다.

기취이파(其脆易破)가 왕필본에는 기취이반(其脆易泮)으로 돼있습니다. 파(破)는 ‘깨지다’이고, 반(泮)은 ‘녹다’의 의미입니다.

위지어미유(爲之於未有)는 아직 있지 않은 것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주석에 맹아(萌芽)란 표현이 나오는데 ‘싹’, ‘토대가 되는 기초’를 뜻합니다.

위자패지 집자실지(爲者敗之, 執者失之) 이 부분은 29장에도 나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걸 생략하기도 한다는데, 우쌤은 위자패지 집자실지 성인무위 고무패 무집 고무실(爲者敗之, 執者失之. 聖人無爲, 故無敗 ; 無執, 故無失) 이 부분을 통째로 63장의 위무위 사무사 미무미(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다음에 놓는 게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학불학(學不學)은 “사람들이 배우지 않는 걸 배운다.”는 뜻입니다. 우쌤은 이 장에서 일반 사람들과 성인의 차이를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신이 빛나는 것이지만, 성인은 빛을 감추길 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치세술을 배우지만, 성인은 치신과 치국의 도를 배운다고 합니다. 주석에서는 도(道)와 진(眞)을 지킨다고 했는데, 우쌤은 진인(眞人)은 도가에 자주 나오는 인물로 아마도 내단수련과 관계된 사람 같다고 하셨습니다.

 

65. 淳德(순덕)

古之善爲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 民之難治, 以其智多. 故以智治國, 國之賊 ; 不以智治國, 國之福. 知此兩者, 亦楷式. 常知楷式, 是謂玄德. 玄德深矣, 遠矣, 與物反矣. 乃至於大順.

 

옛날 훌륭히 도()를 행한 사람은 백성들이 잔꾀를 부리고 속임수를 쓰지 않게 하고 장차 그들을 질박(質朴)하게 만든다.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의 교묘한 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지혜가 없는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면 나라가 안정된다. 이 두 가지를 아는 것이 몸과 나라를 다스리는 법식이다. 항상 이 법식을 아니, 이를 가리켜 현덕(玄德)이라 한다. 현덕(玄德)은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으니 만물의 과 반대되므로 천리(天理)에 따르게 된다.

 

65장의 제목은 “순박한 덕(德)”으로 백성들의 욕망을 자극하지 않고 순박하게 하는 정치를 보여줍니다.

명민(明民)을 달리 표현하면 지사(智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사(智詐)는 똑똑하지만 사기를 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노자 혹은 하상공의 백성을 명(明)하게 만들지 말라는 건 인식능력의 추구가 아니라 욕망을 밝히지 말라는 뜻입니다.

적(賊)은 ‘어지럽다’라는 뜻으로 반(返)과 통합니다.

복(福)은 적(賊)과 반대된 뜻으로 ‘안정되다’의 뜻입니다.

계식(稽式)이 하상공본에는 해식(楷式)으로 돼있습니다. 근데 계(稽)와 해(楷)의 뜻이 통해서 그렇게 큰 차이는 없습니다.

현덕(玄德)에서 현(玄)은 하늘입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하늘과 같이 하는 덕(德)”입니다.

 

66. 後己(후기)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故能爲百谷王. 是以聖人欲上民, 必以言下之 ; 欲先民, 必以身後之. 是以聖人處上而民不重, 處前而民不害, 是以天下樂推而不厭. 以其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강과 바다는 능히 모든 계곡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잘 낮추기 때문이므로, 모든 계곡의 왕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이 백성보다 위에 있고자 하면, 반드시 말로써 자신을 낮추고, 백성보다 앞서고자 하면, 반드시 자신을 뒤로 한다. 따라서 성인은 위에 처해도 백성들이 무거워하지 않고, 앞에 있어도 백성이 해치지 않으니, 그러므로 천하가 그를 즐겁게 추대하지 싫어하지 않는다. [성인은 사람들과] 다투지 않기 때문에, 그러므로 천하의 누구도 그와 다툴 수 없다.

 

66장의 제목은 “자신을 뒤로 하라.”입니다. 겸손함을 얘기하는 장입니다. 왕필은 여기에 주를 달지 않았습니다.

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에서 왕(王)을 우쌤은 ‘물 댈’ 주(注)로 보는 게 더 의미가 자연스럽다고 하셨습니다.

부중(不重)은 ‘무거워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백성들이 성인을 추대해도 무겁게 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불해(不害)를 다른 판본들은 ‘성인이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로 봤지만, 하상공은 ‘백성들이 성인을 해치지 않는다.’로 해석했습니다.

추(推)는 ‘추대하다’, ‘받들다’의 뜻입니다.

염(厭)은 ‘싫어하다’의 의미이지만, 왕필본에서는 이걸 ‘누르다’ 압(壓)으로 볼 것인지 논란이 있었습니다.

 

67. 三寶(삼보)

天下皆謂我大, 似不肖. 夫唯大, 故似不肖. 若肖, 久矣其細. 夫我有三寶, 持而寶之 : 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 故能勇 : , 故能廣 ; 不敢爲天下先, 故能成器長. 今捨慈且勇, 舍儉且廣, 舍後且先, 死矣! 夫慈, 以戰則勝, 以守則固. 天將救之, 以慈衛之.

 

천하 사람들은 모두 나를 위대하다고 하지만, 나는 어리석은 사람과 닮았다. 오직 위대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 같은 것이다.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밀하게 하는 정치를 행한 지] 오래됐을 것이기 때문에 소인배일 뿐이다.

무릇 나에게 세 가지 보배가 있으니 그것을 잡고 보물로 삼았다. 하나는 자애()이고, 둘은 검소()이며, 셋은 감히 천하에 앞장서지 않는 것이다. 자애()롭기 때문에 충효(忠孝)할 수 있고, 검소()하기 때문에 백성들의 삶이 풍족해질 수 있고, 천하에 함부로 나서지 않기 때문에 도()를 얻은 사람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자애()를 버리고 용기()에만 힘쓰고, 검소함()을 버리고 사치함()에만 힘쓰고, 자신을 뒤로 하는 걸 버리고 남의 앞에 서는 일에만 힘쓰니, 죽을 뿐이다! 무릇 자애()로써 전쟁에 임하면 승리하고, 나라를 지키면 굳건해진다. 하늘이 장차 선한 사람을 돕고자 할 때는 자애()로써 그를 돕는다.

 

67장의 제목은 “세 가지 보물”입니다. 본문에도 나오지만 자애(慈)와 검소(儉), 겸손입니다.

초(肖)는 ‘뛰어나다’ 선(善)과 같은 의미입니다. 사불초(似不肖)는 “뛰어나지 않은 것과 닮다.”라는 뜻입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사실은 대단하지만 어리석은 것처럼 자신을 숨긴 것이라고 합니다. 우쌤은 거짓으로 미친 체하는 양광(佯狂)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자애(慈)는 백성을 갓난아이로 여기는 것입니다.

검소(儉)는 마치 나에게서 걷어가는 것처럼 여겨서 세금을 적게 걷는 것입니다.

주석에 따르면, 자인(慈仁)하면 충효(忠孝)하게 된다고 합니다. 양생을 얘기하는 하상공에도 나름 군주에 대한 충성을 얘기하는 주석이 있습니다. 우쌤은 이런 주석을 볼 때마다 한 문제, 두태후 시절 바쳐진 정치 텍스트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성기(成器)는 도(道)를 닦은 사람들 중 우두머리를 뜻합니다.

 

68. 配天(배천)

善爲士者不武, 善戰者不怒, 善勝敵者不爭, 善用人者爲下. 是謂不爭之德, 是謂用人之力, 是謂配天, 古之極.

 

뛰어난 군사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전쟁을 잘 하는 사람은 화내지 않으며, 적을 잘 이기는 사람은 다투지 않고, 사람을 잘 쓰는 사람은 자기를 낮춘다. 이를 일러 다투지 않음의 덕이라 하고, 이를 일러 사람의 힘을 쓰는 것이라 하고, 이것이 그 사람의 덕이 하늘과 짝한다고 하니, 옛날의 지극한 도()이다.

 

68장의 제목은 “하늘과 짝하다.”입니다. 65장의 현덕(玄德)과 같은 의미입니다.

선위사자(善爲士者)는 “뛰어난 병사, 군사”를 말합니다.

위하(爲下)는 66장에도 나왔던 키워드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뜻합니다.

용인지력(用人之力)은 “다른 사람의 힘을 쓰다.”라는 뜻으로 용√인지력으로 읽습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배천(配天)은 “옛날의 지극히 중요한 도(道)”입니다.

 

69. 玄用(현용)

用兵有言 : 吾不敢爲主而爲客, 不敢進寸而退尺.是謂行無行, 攘無臂, 仍無敵, 執無兵.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故抗兵相加, 哀者勝矣.

 

용병에 대한 말이 있다. “나는 감히 공격하지 않고 방어할 뿐이니, 감히 한 치를 나아가지 않고 한 자를 물러난다.” 이것이 잡아 죽이는 것 없이 죽이는 것이고, 물리치려 해도 적이 없는 것처럼 하며, 끌어도 끌어낼 만한 적이 없는 것처럼 하고, 잡는 것 없이 병기를 잡는다는 것이다. 적을 가벼이 여기는 것보다 큰 화는 없고, 적을 가볍게 여기면 틀림없이 내 몸을 상하게 된다. 그러므로 양쪽의 병사가 서로 싸우면, 자애롭고() 어진() 사람이 몸을 보존할 수 있다.

 

69장은 용병과 관련된 장입니다.

오불감위주이위객(吾不敢爲主而爲客)에서 주(主)는 ‘공격하는 군대’, 객(客)은 ‘방어하는 군대’를 뜻합니다. 이런 표현은 주로 병법서에 많이 나온다는데, 그런 점에서 《도덕경(道德經)》은 정말 이것저것 짬뽕이 많이 된 것 같습니다.

행무행(行無行)부터 집무병(執無兵)까지 모두 ‘행(行)하지만 무행(無行)한 것처럼 하다’로 읽었습니다.

양(攘)은 ‘물리치다’라는 뜻입니다.

잉(仍)은 ‘끌어내다’라는 뜻입니다.

경적기상오보(輕敵幾喪吾寶)에서 보(寶)는 67장의 삼보(三寶)가 아니라 ‘자신의 몸’입니다.

애자승의(哀者勝矣) 이 부분을 왕필은 “자(慈)를 가진 사람이 이긴다.”로 해석한 반면에, 하상공은 “죽음에서 벗어난 사람이 이긴다.”로 해석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보존하는 치신(治身)의 철학을 계속 통속적으로 풀고 있네요.

 

70. 知難(지난)

吾言甚易知, 甚易行 ;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知我者希, 則我者貴, 是以聖人被褐懷玉.

 

내가 하는 말은 매우 알기 쉽고, 행하는 것도 쉽지만, 천하 사람들은 알지도 않고, 행하려 하지도 않는다. 말에는 근본이 있고, 일에는 중심이 있다. 무릇 사람들이 알지 않는 것은 나의 덕이 흐릿하기 때문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적은즉, 나는 귀하고 /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적지만, 나를 본받는 사람들은 귀할 것이므로,)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칡베 옷을 입고 옥을 품는다.

 

70장의 제목은 “알기 어려움”입니다. 예전 왕필본할 때를 떠올려보면, 이 장에는 노자 특유의 냉소, 허무, 오만이 있습니다. 노자 자신이 말하는 것은 알기도 쉽고 행하기도 쉽지만 사람들의 욕망은 자신의 것과 정반대인지라 알아도 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사람들은 유약(柔弱)을 싫어하고, 견강(堅强)을 좋아한다.”고 돼있습니다.

知我者希, 則我者貴 이 부분에서 則 이 글자를 ‘곧’이란 의미에서 “즉”으로 읽을지, ‘본받다’란 의미에서 “칙”으로 읽을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즉”으로 읽으면,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적은즉, 나는 귀하다.”로 해석됩니다. “칙”으로 읽으면,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적지만, 나를 본받는 사람들은 귀해진다.”로 해석됩니다.

피갈회옥(被褐懷玉)은 외면은 보잘 것 없이 꾸미지만, 내면은 충실히 한다는 것입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보물(寶)과 덕(德)을 감춰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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