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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장한 말 위에 아픈 다리를 싣고 점프!' - 주역수업(06.18)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7-01 13:04
조회
515
오늘은 명이괘(明夷卦)를 잠깐 살펴보려고 해요. 여기엔 일명 동쪽 오랑캐, 동이족의 이(夷) 자가 들어가서 특이해 보이죠. ‘밝은 동이족? 좋은 얘긴가? 우리를 칭찬하나?’ 이렇게 착각하기 쉽지만요(전 첨에 보고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여기서 () 자는 상하다’, ‘멸하다’, ‘다치게 하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명이(明夷)’라는 말은 ()이 상하다’, 밝은 기운이 훼손된다는 말이 돼요. 그러니까 명이의 시대는 힘들고 어려운 시대, 간난(艱難)의 시대라는 것이죠. 그럼 이 어려운 시기에 주역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할까요? 뒤의 설명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제 아주 간단한 것 하나는 짐작하실 수 있으시겠죠? 바로, 힘든 시기를 가정할 땐 항상 나오는 말, 자기를 바르게 잘 지키면 이롭다는 말을 하겠죠. 정말로 괘사를 살펴보면요. 명이는 어렵게 여겨서 삼가 조심하고 바르게 하면 이롭다(明夷 利艱貞)고 말해요. 정샘은 군자는 명이의 때를 만났을 때(君子 當明夷之時), 그 어렵고 힘든 시기를 알아서 자신의 바름을 잃지 않는 것에 이로움이 있다(利在知艱難而不失其貞正也)고 했어요. 어둡고 어려운 시기를 만났을 때 그 바름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현명한 군자가 되는 방법이에요(在昏暗艱難之時而能不失其正, 所以爲明君子也).

 

모양을 보면, 아래는 리괘가, 위에는 곤괘가 있는데요. 그러니까 땅 속에 밝음이 묻혀 있는 것처럼 보인 거예요. 단전을 보면 밝음이 땅 속에 있는 것이 명이(彖曰 明入地中 明夷)라고 했어요. 이것은 큰 어려움을 뒤집어 쓴 것(以蒙大難)이라고 봤는데요. 여기서 전 몽(蒙) 자를 쓴 게 재미있었어요. 어려움을 그냥 단순히 만나거나 마주친다는 가벼운 표현이 아니라, 푹 덮어 쓰는 것,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려움을 뒤집어 쓴 것, 눈 떠 봤더니 어려운 상황에 놓인 걸 발견한 것, 이렇게 좀 드라마틱한 그림이 그려지는 분위기거든요! 사실 어려움을 푹 뒤집어쓰다니 재미가 있다기보다 가엾고 불쌍하죠. 이런 어려움을 겪은 사람의 예로 단전은 문왕(文王)을 얘기해요. 문왕이 그런 시대를 잘 견뎌냈다(文王 以之)고 평합니다. 주(紂)임금의 어두운 시대를 만났으니 명이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안으로는 밝은 덕을 품었고(內文明:內有文明之德), 밖으로는 유순함으로 주임금을 섬겼다(外柔順:外柔順以事紂)고요. ‘이것은 큰 어려움을 뒤집어 쓴 것이니 안으로는 그 밝고 뛰어남을 잃지 않았고, 밖으로는 그 재앙과 우환을 멀리하였다’고 본 것이에요.

 

잠깐 제가 젤 인상 깊게 봤던 육이 효사를 보면요. 명이에 왼쪽 허벅다리를 다쳤으니, 어려운 상황에서 날 싣고 빠져나가 줄 말이 건장하기만 하면 길하다(六二 明夷 夷于左股 用拯馬 壯 吉)고 나와요. 명이의 시대기 때문에 아무리 중정(中正)하고 현명(明:離)한 사람(六二)이어도 다리에 부상을 당하는 것 같은 나쁜 일은 생길 수밖에 없어요. 나쁜 일이 안 생기진 않아요. 근데 효사가 길(吉)하다고 끝나는 걸 보면 이상하죠. 이게 다리를 다쳤는데 뭐가 좋다는 건가 싶지만요. 사실 다친 왼쪽 다리는 오른쪽 다리에 비해 힘이 덜 실리기 때문에 덜 위중한 상처를 당했다는 거거든요. 다치긴 했어도 심각한 타격은 아닌 거죠. 다시 일어날 수 없다거나 벗어날 수 없을 만큼의 큰 타격을 받은 건 아니기 때문에, 이건 능히 피할 수가 있는 고난인 것이에요. 게다가 이 어려움 속에서 빠져나갈 건장한 말, 이 힘든 상황을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는 훌륭한 말만 있으면 거뜬히 피하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에 길하다고 할 수 있게 된다는 거죠! 여기서 날 구원해줄 건장한 말이 무엇일지는 훨씬 더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긴 하겠습니다만, 어려운 시기를 내가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들을 생각하면 몇 가지 떠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일단 힘들 때 정말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들(전 요즘 같이 공부하는 동지(학인)이 떠오르네요!)이라든가, 공부로만 길러지는 돌파력이라든가 이런 게 먼저 생각나네요. 아무튼, 결론은 힘든 상황을 당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기서 내가 당한 어려움이 다시 복구할 수 없을 만한(재기할 수 없을 만한) 치명적인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할 수 있는 냉철한 지혜와 긍정적인 사고(웬만해서 영원히 망할 정도의 타격을 입는 것도 어렵지 않나요), 그리고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건강한 정신과 주위의 관계들로부터 오는 실질적인 도움들, 이런 것들이 정말 중요한 거라는 말이겠죠!

 

모두 아시겠지만 문왕은 훌륭한 사람의 대표로 역사에 길이 남은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주역에선 그가 모든 것이 잘 풀리는 시대, 찬란하게 빛나는 행복한 시대를 만나서 그렇게 잘 된 거라고 말하지 않고 있잖아요. 오히려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만났을 때, 자신의 바름을 잘 지키고, 유순하고 부드러운 행동으로 그 시기를 잘 견뎌낸 것이 그 사람을 훌륭하게 만들어 준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죠. 이렇게 보면, 특별히 좋은 시기라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기도 합니다. 이왕이면 좋은 괘, 그러니까 뭐든 술술 잘 풀리고, 양이 점점 자라가니 군자들이 힘을 얻는다든가, 앞으로 마음껏 나아가도 길하다는 얘기만 잔뜩 있는 괘만 고르고 싶지만, 사실 그런 괘의 효사로 들어가 속사정을 살펴보면 오히려 너무 과한 양이나 지나친 자신감 같은 걸로 어려움을 만날 수 있다거나 실수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얘기들이 더 많고요. 밝음이 훼손된다는, 이름만 들어도 부담스러운 이런 괘의 시대에서 오히려 훌륭한 사람들이 나오고요. 어떤 좋은 것도 거저 얻는 게 아니라는 진리, 그 단순하지만 잊기 쉬운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네요. 그러니, 뭔가 잘 안 풀리고, 되는 일이 없고,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들이 쌓여있는 상황을 거쳐 가는 중이라 할지라도, 우리 모두 명이괘의 위로를 얻어서 씩씩하게, 마음을 잘 지켜서 오늘 하루를 살아봅시다.

내일은 한 주 휴강 후 오랜만에 만나는 주역수업이네요~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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