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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읽기 모임 7. 11 공지

작성자
은남
작성일
2015-07-07 23:58
조회
1211

 ‘우리 다시 사기를 읽자’팀이 혜화동 새터전에서서 첫 공부를 개시 했는데요(별걸다 의미부여^^) 강독해주시는 제리쌤의  목소리도 우렁찼지만 한문을 읽는 학인들 목소리 또한 우렁차서 모처럼 강독하는 분위기좀 제대로 냈다지요. ^^  

이번주부터 제17 공자세가를  읽었는데요 작년 이맘때 공자세가를 읽었던 감동이 기억나시는지요? 다케다 다이준도 그랬고요 채운쌤도 공자세가 부분에서 열강을 펼쳤드랬습니다. 작년 노트를 보니 이 부분에서 기록된 내용이 가장 많더만요..제후가 아닌 공자가 왜 세가에 올라와 있는지, 사마천이 공자에게 투영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제자들의 대화가 뜻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지인의 문제 등등 여러 가지가 기록되어 있네요. 우리도 공자세가를 읽으며 다시 생각해 봐야 겠지요.    

 1. 공자가 태어난 곳은?

 孔子生魯昌平鄕陬邑. -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태어났습니다.

2. 공자의 조상과 그는 어떻게 태어났나?

 其先宋人也- 그의 조상은 송나라 사람이고 曰孔防叔. - 공방숙이라고 한다.

 防叔生伯夏,- 방숙이 백하를 낳고 伯夏生叔梁紇. - 백하가 숙향홀을 낳았다.

 紇與顔氏女野合而生孔子, - 홀와 안씨 딸과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으니

 禱於尼丘得孔子 - 이구에서 빌어서(禱 빌도) 공자를 얻었다. 

野合이란 단어가 사기에서 유래됐나봐요. 이런 표현을 쓴 것은 숙양홀은 노나라 시씨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딸 아홉을 낳았는데 아들을 얻고 싶었는지 아주 늙은 나이에 안씨 딸을 취했는데 안씨 딸이 나이가 어려 정식 부부의 예를 치르기에 마땅치 않아서 야합이라고 했다네요.  

3. 공자의 특이한 외모

 生而首上圩頂, 故因名曰丘云. - 태어나면서부터 머리위가 오목한(-오목할 오) 정수리 모양이었고, (정수리가 낮고 사방이 높아) 이로 인하여 이름을 구라고 했다. 

4. 어릴적 공자는 뭐하고 놀았나?

 孔子爲兒嬉戱, 常陳俎豆, 設禮容. - 공자가 어린아이로서 장난(嬉戱 -희희, 아이들이 노는 것)을 칠 때, 늘 제기(俎豆-조두)  를 진설하고, 예용을 갖추었다.

5. 홀대 받는 공자

 孔子要絰, 季氏饗士, 孔子與往. 陽虎絀曰ː“季氏饗士, 非敢饗子也.” 孔子由是退.

공자가 상복의 옷끈(絰-상복을 입을때 허리에 묶은 질)을 매고 있을 때, 계씨가 사인들에게 연회를 베풀어 공자도 함께 갔다. 양호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며 말했다. “계씨가 사인들에게 연회를 베푼 것이지 감히 그대에게 연회를 베푸는 것은 아니오” 공자는 이로 인하여 물러 나왔다.  

6. 휼륭한 공자의 조상과 조상의 음덕

공자의 나이 열일곱 살 때, 노나라 대부 맹희자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는 그의 아들 의자에게 훈계하여 말합니다. ‘공구는 성인의 후예인데 상나라 유민에게 멸망 당했고 그의 조상 불보하라는 시조는 여공에게 자리를 양보한 사람이고 정보고 라는 조상은 3명의 군주를 보좌하면서도 아주 공손했다. 성인의 후예는 비록 당대는 아닐지라도 반드시 통달한 인재가 나올 것인데 공구가 아니겠느냐? 너는 공자를 반드시 스승으로 모셔라’ 라는 내용인데요 정보고 라는 조상이 세 번이나 관직명을 받았지만 얼마나 공손하고 검소했는지 볼까요?   

 ‘一命而僂, 再命而傴, 三命而俯, 牆而走, 亦莫敢余侮. 饘於是, 粥於是, 以餬余口.’

여기서 명령을 받을 때마다 구부린 모습을 나타난 한자들을 보세요. 모두 구부리다는 라는 뜻인데요 구부린 자세는 다르다고 해요. 처음엔 어깨를 구부리고(僂 ), 다음에는 허리를 굽히고(傴 구), 마지막엔 땅에 붙을 정도로 자신을 낮춘 모습(俯 부)이랍니다. 순장이주(循牆而走) 즉 담장을 따라 다녔다는 표현도 권력을 가졌으나 거만하게 돌아 다니지 않고 담장을 따라 조용히 다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일명이루 재명이구 삼명이부 순장이주’라...  

7. 공자의 말단 관리 생활

 孔子貧且賤. 及長, 嘗爲季氏史- 공자는 가난하고 지위도 낮았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계씨의 관리가 되었는데,

 料量平 ; 嘗爲司職吏而畜蕃息 - 저울질 하는 것이 공정하였고, 직리를 맡았을 때 가축을 번식하였다. 즉 가축을 잘 길러 새  끼를 많이 쳤다는 뜻입니다. (蕃息-번식)  

8. 이후 공자의 고난의 역정은?

위와 같이 관리생활을 잘하여 사공이 되기도 했지만 얼마후에 노나라를 떠나게 됩니다. 이후 여정은 딱 한 줄로 요약됩니다. 

斥乎齊, 逐乎宋·衛, 困於陳蔡之閒, 於是反魯.

- 제나라에서 내쳐지고, 송나라와 위나라에서는 쫒겨나고,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는 곤란을 당하자 이에 노나라로 되돌아왔다. 고난의 기록들은 뒤에 자세히 나오겠지요.. 

9. 공자의 키는?

 孔子長九尺有六寸, 人皆謂之“長人” 而異之 - 공자는 키가 구 척 육 촌이어서 사람들은 모두 그를 키가 큰 사람이라고 부르며 그를 기이하게 여겼다.

오늘날 도량기준으로 1척(尺)은 33.3cm, 1척은 10촌(寸)인데요, 서한(西漢 BC 206~AD 25)시대에는 1척이 23.1cm라는 기록이 있다고 하네요. 당시 기준으로 공자의 키를 환산해 보면 221.76cm 나오는데요 무려 2m20cm가 넘는 거인이네요. 

10. 노자와 만남 그리고 노자의 충고

노나라의 남궁경숙이 공자와 함께 주나라에 가는데 이때 노자를 만났을 것이라고 합니다. 공자가 떠나간다고 하자, 노자가 그를 배웅하며 말합니다.

“吾聞富貴者送人以財, 仁人者送人以言. 吾不能富貴, 竊仁人之號, 送子以言,

-내가 듣건데 부귀한자는 사람을 배웅할 때 재물로 하고, 어진 자는 사람을 배웅할 때 말로써 한다고 하오. 나는 부귀하지도

 않고, 인자한 사람이라는 말을 훔치하고자 하니 그대에게 말로써 배웅하겠소..  ‘절인인지호’ 라는 멋진 표현...竊(훔칠 절)

 이렇게 하면서 노자가 건넨 말은?

 ‘聰明深察而近於死者, 好議人者也. 博辯廣大危其身者, 發人之惡者也.

  爲人子者毋以有己, 爲人臣者毋以有己.’

‘귀 밝고 눈 밝아 깊이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에 다가설 수 있으니 이는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를 좋아해서이고, 널리 익히고 변론을 잘하고 재능이 깊고 큰 사람은 그 자신을 위태롭게 하게 되는 자이니 이는 다른 사람의 잘못된 점을 잘 끄집어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자식이 된 자는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지 말고, 다른 사람의 신하된 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합니다.” (번역문 가져옴)  毋以有己‘가 두 번 나오는데요 직역하면 자기 몸으로써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번주도 공자세가 계속 이어집니다. 공자세가만이라도 읽고 싶은 분 환영입니다.

 

전체 1

  • 2015-07-08 10:35
    뭔가 새로운 스타일의 후기! ㅎㅎㅎㅎ 암튼 잘 읽었슴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