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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사] 후기

작성자
은남
작성일
2015-07-14 06:25
조회
986

지난 시간에 주나라에서 노자와 공자가 만나는 부분에서 끝났었죠. 공자가 노자를 만나고 주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와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노자는 용과 같은 위대한 존재라고 평가하는 대목이 노자 한비 열전에서 나오죠.

 

공자나이 삼십오세. 노나라 국내정세는 닭싸움 때문에 세력가문과 소공이 한바탕 붙었다가 노 소공이 계평자, 맹씨, 숙손씨 세가문에 패해서 제나라로 도망가고 공자는 제나라로 가서 고소자의 가신이 되어 제경공에게 등용되려 노력합니다. 이때 공자가 제나라 음악을 접했겠지요. “제나라 태사와 음악에 대해 말했는데, 소 음악을 듣고 그것을 배우느라,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알지 못하여 제나라 사람들이 그를 칭송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與齊太師語樂, 聞韶音, 學之, 三月不知肉味, 齊人稱之.

이 대목은 논어 <술이>편에서도 나옵니다.

子在 齊聞韶, 三月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

 

드디어 공자가 제경공과 만납니다.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합니다.

景公問政孔子, 孔子曰 : “君君, 臣臣, 父父, 子子.”

이에 경공의 반응

景公曰 :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豈得而食諸!”

좋은 말씀이오! 참으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 아버지가 아버지 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면 비록 곡식이 있어도 내가 어찌 그것을 얻어서 먹을 수 있겠소! - 이 대목도 논어 <안연>편에서 똑같이 나오네요.

 

다른날 다시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으니 공자가 말합니다.

공자왈 “政在節財 -정치는 재화를 절제하는데 있습니다.”

節이 뜻하는 바가 무조건 아껴 쓰는 절약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써야 할 곳에 쓰는 것, 절제 있게 쓴다라는 뜻이랍니다. 마디 ‘節’이라는 의미가 오운육기를 배우면서 달리 다가오더라구요 즉 전체 재물가운데 어디 부분에 절도 있게 매듭 지어주는 것으로 태과와 불급을 조절하는 것이 정치라는 의미 아닐까 합니다.

경공은 기뻐하며 이계라는 밭을 주어 공자를 등용하려 하는데 이때 안영이 한마디합니다.

안영이 누굽니까? 관안열전에서 관중이후 100년만에 나타난 제나라 명재상 아닙니까?

공자를 비롯한 유가를 비판하는 묵가파 안영의 말을 잘 들어보아요. 문장이 길어요~

 

晏嬰進曰 : “夫儒者滑稽而不可軌法 - 무릇 유자는 골계(재치있게 말을 잘 하는 것, 해학으로 말재주 부리는 것)하고 법을 따르지(軌-수레바퀴 궤) 않습니다.

倨傲自順, 不可以爲下; 崇喪遂哀, 破産厚葬, 不可以爲俗 ; 游說乞貸, 不可以爲國.

- 거만하고 오만하여 자기를 따를 뿐(自順)이어서 아랫사람(신하)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상치르는 것을 높이고 슬픔을 다하느라, 생업을 탕진하면서까지 장례를 후하게 지내느라, (그들의 예법을) 습속으로 삼기 어렵고, 유세하며 관직을 구걸하고 빌어먹으니(乞貸), 나라를 다스리게 할 수 없습니다.

自大賢之息, 周室旣衰, 禮樂缺有閒.

-대현(휼륭한 사람)이 끊어진 이래로 주나라는 쇠미해졌고, 예악이 이그러진지 지 오래 되었습니다.

今孔子盛容飾, 繁登降之禮, 趨詳之節, 累世不能殫其學, 當年不能究其禮.

-지금 공자는 용모를 꾸미는 것을 성대하게 하고, 오르고 내리는 예절을 번거롭게 따지고, 세세한 절차만을 따르고 있으니, 몇세대를 지나도 그것을 다 배울 수 없고, 한해에 그 예를 연구할 수도 없습니다.

君欲用之以移齊俗, 非所以先細民也.

-군주께서 그를 등용하여 제나라 풍속을 바꾸려 하신다면, 백성들에게(細民-자잘한 백성들) 나아가게 하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 대목에서 한마디 안할 수 없었죠. 사마담이 논육가지론에서 평가하는 유가의 견해와 동일하다, 유가의 ‘파산후장’을 비판한 안영의 현실주의적인 면이 돋보인다. 유가가 제례를 주관하는 집단이었냐 등등

 

이런 말을 들은 경공은 공자를 등용할 리가 없었겠죠.. 경공이 공자를 뵙기는 공손하게 했으나, 예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고 하고요, 다른날 공자를 불러 말합니다. 한마디로 계약조건을 말하는 대목입니다.

“奉子以季氏, 吾不能.” 以季孟之閒待之.

-그대를 계씨로써 봉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다. 즉 노나라 계씨와 같은 일등급 신하대우를 해 줄 수 없다는 말이고요 그래서 계씨와 맹씨 중간에 해당하는 대우를 해줍니다. 그런데다

제나라 대부들이 공자를 해치려고 하는데도 경공은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景公曰 : “吾老矣, 弗能用也.” 孔子遂行, 反乎魯.

“나는 늙었으니 당신을 등용할 수 없다” 공자는 마침내 떠나서 노나라로 돌아옵니다.

이 대목도 논어 <미자>편에서 나온다죠.

 

노나라로 돌아온 공자의 행적이 기록되는데요 공자는 만물박사 고고학자가 아니었나 싶었어요. 우물을 파다가 흙항아리에서 발견한 살아 있는 양같은 동물이 무엇인지 물어보자 산과 물과 토지의 괴이한 것들 정령이나 요괴을 말해주고 오나라에서 수레에 가득 뼈를 싣고 와서 물어보자 누구뼈인지 말해 줍니다. 산해경에 나오는 전설속에 동물들이나 신기한 이야기들이라고 하는데 이런 것 까지 꿰고 있는 거지요. 요괴들이이 무언지 볼까요?

木石之怪蘷·罔閬, 水之怪龍·罔象, 土之怪墳羊 - 목석(산)의 요괴는 기와 망랑이고, 물의 요괴는 용과 망상이며, 흙의 요괴는 분양이라고 합니다.

 

공자나이 50세. 노나라 정세는 신하들끼리 싸움판입니다. 공산불뉴는 계씨에게 뜻을 얻지 못하자 양호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삼환의 적장자를 없애고, 평소 양호와 사이가 좋은 서얼을 세우고자 하여 마침내 계환자를 체포합니다. 그러나 환자는 그를 속이고 탈출합니다. 양호는 계획이 실패하자 제나라 달아나 버립니다. 공산불뉴는 비땅에서 계씨에게 반란을 하고, 다른 사람을 보내어 공자를 초청합니다. 이때 공자의 상황이 어땠는지 심정을 볼까요?

 

孔子循道彌久, 溫溫無所試, 莫能己用, 曰 : “蓋周文武起豐鎬而王, 今費雖小, 儻庶幾乎!” 欲往.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려는) 도를 따른 지 아주 오래 되어, 시험해 볼 곳이 없어 답답해(溫溫-온온) 하였으나 자신을 등용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하기를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은 풍과 호땅에서 일어나 왕을 하였는데, 지금 비땅이 비록 작으나, 혹시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치국의 도를 실현할 수 있겠지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을 표현한 것임)

 

그러자 공자의 제자 자로가 기뻐지 하지 않고 공자를 만류합니다. 이 부분도 논어 <양화>편에서 나오는데 양화편에서는 다음과 같은 자로의 대사 부분이 있었죠.

“末之也已. 何必公山氏之之也? -가지않으면 그만이지, 하필 공산씨에게 가려고 하십니까?”

 

孔子曰ː“夫召我者豈徒哉? 如用我, 其爲東周乎!” 然亦卒不行.

‘나를 부른 사람이 한갓 어찌 그냥 불렀겠느냐? 만일 나를 등용한다면, 동쪽의 주나라처럼 만들 수 있을텐데!“ ’그러나 결국 가지 않았다’ 고.

공자세가 여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다시 사기를 읽자’ 모임은 이번주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작년에 사기를 읽었던 학인들은 한문만 강독한 것도 좋았다는 평이 있었는데 오래전에 사기를 읽었던 수영쌤이나 다시 사기를 읽고 학인은 한문만 보니 뭔가 부족했지 않았나 하는 평도 있었네요. 그래서 하반기에는 한문강독에 덧붙여 번역분을 꼭 읽어 보자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문강독 끝날 때만이라도 공통과제를 써와서 20~30분이라도 토론하는 것이 어떨런지요? 강독부분이 보통 3~4주 걸리니 매주 쓰는게 아니라서 부담도 덜 될 것 같고 번역본도 다시 읽을 수 있구요. 제리쌤이 하반기 공지는 따로 하신다 했으니 고민해봅시다요.

모두들 수고하셨고요 특히 우리 제리쌤!! 한자보다 더 머리 굳은 학인들 데리고 사기에 연이어 맹자 강독에 느무느무 고생 많으셨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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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14 11:02
    은남샘 후기 쓰느라 느무느무 고생 많으셨어요...고마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