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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번역기계] 팀 잉골드, <선線> 1-9. 소리의 선들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1-07-29 14:00
조회
267
오! 번역기계 // 팀 잉골드Tim Ingold의 <선들Lines: A Brief History>(Routledge, Oxon, UK.) 


번역 / 정아


 


1-9. 소리의 선들


두 번째로 비교할 지역은 동부 페루로, 인류학자 피터 고우(Peter Gow)가 기록하고 분석한 이야기(1990)로 시작하려고 한다. 그는 이 지역의 피로(Piro)족에 관한 현장 연구를 진행하던 중에 피로족 최초로 글을 읽을 수 있었다고 알려진 남성 상가마(Sangama)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1940년대에 상가마의 사촌 모란 주매타(Moran Zumaeta)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선교사 에스터 매티슨(Esther Matteson)이 녹음한 것이었다. 이야기 속의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1920년대쯤일 것이다. 당시 피로족은 부채 노예의 신분으로 대농장에서 백인 농장주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주매타의 말에 따르면 상가마는 농장주가 버린 신문을 주워 읽곤 했다고 한다. 신문을 읽을 때면 눈으로 글자를 따라가며 입술을 움직였다. 그는 사촌에게 이렇게 주장했다. “신문을 읽을 줄 알아. 그게 나한테 말을 하거든……. 신문엔 몸이 있어. 늘 그 여자가 보인다고……. 그 여자가 붉은 입술로 말을 해.” 주매타는 자신도 신문을 뚫어져라 보았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상가마는 계속 그렇게 주장하며 백인 농장주의 행동도 같은 식으로 해석했다. “우리 주인은 신문을 볼 때 그걸 온종일 들고 있어. 그러면 그 여자가 주인에게 말을 해……. 주인은 매일 그렇게 해”(Gow 1990: 92-3). 고우에 따르면, 읽는 행위에 대한 상가마의 이런 이해는 피로족 문화의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표면을 장악하는 디자인의 의미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샤먼의 의식에 관한 것이다.

글을 뜻하는 피로족 단어 ‘요나(yona)’는 이들이 특정 표면에 그리는 디자인이나 패턴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 패턴은 복잡한 선들로 이루어졌고, 특히 사람과 밀접하게 관련된 표면, 무엇보다 얼굴과 몸의 표면에 그려진다. 상가마에게는 종이 위에 인쇄 패턴들이 이런 식의 무늬로 보였음에 틀림없다. 그는 신문의 종이를 몸의 피부와 비슷한 표면으로 인지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피로족의 치유 의식에서는 이웃 아마존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샤먼 ̄환각을 유발하는 ‘아야화스카(ayahuasca)’라는 덩굴식물을 우린 약물을 마신 ̄이 시야 전반을 뒤덮는 환한 무늬들을 보게 된다. 이 무늬들은 뱀 모양 비슷한데, 덩굴식물의 영은 처음에 이처럼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샤먼의 입에 닿으면 무늬들은 노래로 바뀌고, 덩굴의 영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허공으로 퍼져나가 환자의 몸 안으로 들어가서 병을 치유하는 것이 바로 이 노래들이었다. 상가마는 이런 샤먼의 눈으로 신문을 읽은 것 같다. 그의 눈에는 인쇄된 글자들이 뱀처럼 구불구불한 패턴으로 보였고, 그가 이 패턴들을 바라보면 신문의 표면이 녹아내리면서 붉은 입술을 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주매타도 자신의 사촌이 샤먼의 능력을 가졌을지 모른다고 말해주었다. 상가마는 쌍둥이로 태어났다고 하고, 쌍둥이는 선천적으로 그런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페루 아마존 인근에 거주하는 시피보(Shipibo)와 코니보(Conibo) 인디언들 사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선 무늬와 샤면 의식이 발견된다. 이 시피보-코니보족의 선 무늬는 각진 선들이 느슨하게 맞물리는 형태인데, 그런 식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섬세한 줄세공무늬가 전체를 뒤덮게 된다. 이 무늬는 직물에 수놓이고 도자기와 얼굴에 그려진다. 과거에는 초가 지붕 안쪽, 가옥의 기둥과 대들보, 모기장, 배와 노, 부엌과 사냥 장비에서도 볼 수 있었다(Gebhart-Sayer 1885: 143-3). 그뿐 아니라 18세기 말 경에는 프란시스코회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면직물을 실로 엮고 종려나무 잎으로 표지를 만든 책의 페이지에도 그들의 무늬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1802년에 탐험가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는 페루의 리마에 머무는 동안 선교사 나르키수스 길바(Narcissus Gilbar)를 만났고, 그에게서 이 책들의 존재에 관해 들었다. 견본 한 권이 리마로 보내지고 훔볼트의 지인이 이를 조사하기도 했지만 이후 이 책은 분실되었다. 하지만 훔볼트는 돌아와서 이에 대한 보고서를 출간했고, 이후 학자들은 이 인디언들(당시에는 파노안족(Panoans)으로 알려진)에게 어떤 상형문자 체계가 있었을 가능성을 검토했을 것이다.

몇백 년 후 칼 폰 덴 슈타이넨(Karl von den steinen)은 길바의 한 기록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이런 검토에 종지부를 찍었다. 기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노안족은 ‘읽다’라는 의미로 ‘종이가 그에게 말하고 있다’라는 매력적인 표현을 사용한다”(같은 책: 153-4). 불행히도 파노안족의 책들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인류학자 안젤리카 게바르트자이어(Angelica Gebhart-Sayer)는 1980년대 초에 카이미토(Caimito)의 시피보-코니보 마을에서 현장 연구를 하던 중에 이웃마을의 한 노인(샤먼의 사위였던)이 붉은색과 검은색의 복잡한 무늬가 가득한 학교 연습장을 보관하고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한 여인이 어렸을 적에 몰래 그 책을 발견하고 무늬 네 개를 베껴 그리다가 할머니에게 발각되어서 혼이 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인은 그날 이후로 잊은 적이 없다고 하면서 그 무늬를 다시 그려보였다. 그 중에 하나가 그림 1.12다.



(위) 그림 1.12 시피보-코니보 샤먼의 경전에 있던 디자인 중 하나. 1981년 카이미토의 마을에 사는 한 여인이 기억을 떠올려 그린 그림. Gebhart-Sayer (1985: 158).

게바르트자이어가 언급하듯이, 이들만의 고유한 상형문제 체계가 있었다는 주장에 폰 덴 슈타이넨가 회의적이었던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혹시 이것이 음악 표기 체계였던 것은 아닐까? 시피보-코니보 샤먼들의 치유 의식에서도 눈앞을 떠도는 무늬들이 샤먼의 입술에 닿는 순간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로 바뀐다. 그 무늬와 노래는 분할과 대칭의 면에서 분명한 유사점이 있다. 과거에 시피보-코니보족 여인들은 짝을 이루어 커다란 항아리를 장식하는 일을 하곤 했다. 항아리를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서로가 무엇을 그리는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여인들은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작업을 맞춘 듯한데, 완성된 항아리 양쪽의 두 디자인은 완벽하게 이어지고 서로 어울렸다. 이 정도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어떤 음악적 암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게르바르트자이어의 추측이다.(1985: 170).

하지만 디자인을 통일하기 위해 노래를 이용할 때 시피보-코니보 여인들은 유럽의 성가대원과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성가대원들은 화음을 맞추기 위해 악보를 사용했다. 앞에서 내가 한 주장을 떠올리면 시피보-코니보족의 무늬는 원고도 악보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말이나 개념이 아닌 음악의 소리를 나타낼 뿐이다. 그것은 듣는 눈에게 드러나 보이는 목소리의 경이로운 형태다. 시피보-코니보족의 노래들은 게르바르트자이어가 말한 것처럼 “시각을 통해 들을 수 있었고.... 그 기하학적 무늬들은 청각을 통해 보였을 것이다”(1985: 170). 눈에 보이는 무늬의 선들은 바로 소리의 선들인 것이다.

시피보-코니보족과 그들의 무늬에 대해서는 2장에서 더 다룰 것이다. 다시 상가마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파노안족에 관한 길바의 기록을 뒷받침하듯이, 상가마는 자신이 읽는 신문이 실제로 그에게 말을 한다고 믿었다. 고우는 상가마의 이야기를 분석하며 글에 대한 상가마의 인식과 서양의 전통적인 이해를 꼼꼼히 비교했는데, 양자의 차이는 확연했다. 앞에서 보았듯이 현대 서양의 독자에게 신문은 말소리의 이미지가 투사된 스크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상가마는 소리의 이미지를 보는 게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직접 말하고 있는 소리 자체를 보았다. 그는 눈으로 소리를 들었고, 그가 들은 소리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을 받아 적은 필경사 바루크가 들었던 것만큼이나 진짜였다. 바루크는 예언자의 입을 펜으로 따라갔고, 상가마는 그가 보았다고 주장하는 여인의 붉은 입술을 따라갔다. 사실상 그는 독화술을 구사한 것이다(Ingold 2000: 281).

중세 유럽의 수도사들이 전례문을 읽을 때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텍스트는 먼 곳의 목소리가 페이지 위에 ‘표현된’ 것이 아니라, 독자가 직접 관계할 수 있도록 그 목소리를 그가 ‘있는 곳’으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신문이 말을 한다는 상가마의 주장이 전혀 놀랍지 않았을 것이다. 글을 읽는 것이 페이지의 목소리가 하는 말을 듣는 문제라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시각적 인식과 청각적 인식의 호환성, 글을 노래로 변환하게 하기도 하는 이 호환성은 아마존 샤먼의 예식에서처럼 중세 수도사들의 예식에서도 중심적인 것이었다. 중세의 수사가 그러했듯이 혹은 쇼가를 연주하는 일본 전통 음악가가 그러했듯이, 상가마는 눈으로 글자를 따라가고 입과 입술을 움직이며 텍스트를 반추했다.

하지만 이런 유사점들이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 수사들은 샤먼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페이지의 표면은 풍경이나 지역과도 같았다. 그들은 그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거주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반대로 샤먼에게 페이지의 표면은 얼굴과 같고, 그 얼굴은 말이나 노래의 형식으로 소리를 쏟아낸다. 이 두 경우를 비교하면 우리는 중요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정적인 차이가 발견되는 곳은 선들 자체의 특성이라기보다 ‘표면’의 특성이라는 것. 따라서 선의 역사를 이야기하려면 선과 표면의 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 다음 장에서 하려는 이야기가 바로 이 관계들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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