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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몸 나쁜몸 이상한몸] 더위 피하려다 얼어죽는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 편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0-06-12 15:59
조회
310
'좋은몸 나쁜몸 이상한몸'은 규문의 청년,중년 여성들이 <동의보감>을 공부하며 되돌아보는 자신의 몸과 습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 몸의 주인이 되는 그날까지!

혜원이의 은밀한 식습관


더위 피하려다 얼어죽는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 편



이 한 구절은 꼭!
사철 중에 여름철이 조섭하기가 힘들도다. 잠복한 음(陰)이 체내에 있어 배가 냉활(冷滑)하리니, 신장을 보할 탕약이 없어서는 아니 되고, 음식물이 조금만 차더라도 먹고 마시지 말아야 하네. (권1 신형 25)

<장자>에 나오는 섭공자고(葉公子高)는 적국으로 사신 가라는 임금의 명을 받고 그 곤란함을 견디지 못해 얼음을 먹었다. “저는 음식을 먹을 때는 거친 음식을 먹고 맛있는 것을 먹지 않으며, 밥을 지을 때는 시원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불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 제가 아침에 명령을 받고 나서 저녁에 얼음을 마셔대니 저는 아무래도 몸 속에 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자기 꼴이 “음양의 재앙”을 당한 것이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 없는 일이라 속에 열불이 나고, 그럼 얼음을 자꾸 마시게 된다. 그리고 찬 것이 들어간 속은 탈이 난다. 그야말로 악재가 겹친 꼴인데, 적어도 하나(얼음 먹기)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딱 섭공자고의 모습이다. 출근길에, 점심시간에, 야근하면서, 친구와 만나서 카페인과 얼음이 듬뿍 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계속 마신다. 다만 섭공자고와 다른 점이 있다면, 얼음이 “음양의 재앙”을 가리키지 않고 오히려 세련된 취향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또 답답한 속을 달래고 열을 가라앉히는 ‘소화기’가 바로 지금의 ‘아아메’로 대표되는 아이스 음료다. 사람 일이 잘 되는 일은 별로 없으니 사람들은 더운 여름은 물론 겨울에도 얼음을 달고 살며 속을 달랜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


문제는 이 ‘얼죽아’가 정말 우리를 ‘얼어 죽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찬 것은 되도록 먹지 말고 피하라고 하는데, 특히 더운 여름에는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더우면 찬 것으로 식힌다’는 생각과 정반대가 아닌가. <동의보감> 권1 내경편을 보면 여름의 섭생법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철 중에 여름철이 조섭하기가 힘들도다. 잠복한 음(陰)이 체내에 있어 배가 냉활(冷滑)하리니, 신장을 보할 탕약이 없어서는 아니 되고, 음식물이 조금만 차더라도 먹고 마시지 말아야 하네. (권1 신형 25)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왜 여름철에 냉방병에 걸릴까? 아무리 가볍게 입고 냉방을 세게 틀고 차가운 음식을 먹는다 한들 어쨌든 봄철보다는 높은 실내온도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 한 순간이 지나면 내 몸은 또 평소보다 높은 온도와 마주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 몸은 사실 여름철에 더 차갑다. 정확히 말하면 여름철 우리 몸은 안과 밖의 온도차가 크다. 마치 얼음이 든 컵 표면에 이슬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처럼, 겉은 땀이 흐를 정도로 뜨거운데 속은 그만큼 차가워져서 오장육부가 탈이 나기 쉬운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그런데 그 속에 얼음을 쏟아 붓는 것은 수분 보충이 아니라 진땀을 더 많이 흘리겠다고 작정한 것이고, 에어컨을 더 세게 트는 것은 땀이 맺힌 피부를 아예 얼어붙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여름에 ‘얼어 죽는’ 냉방병 세트다. 이처럼 잘못된 여름 섭생은 단지 여름에서 끝고 가을의 학질로, 겨울의 중병으로 이어진다. 일명 ‘한사(寒邪)’의 작용이다. 몸이 제대로 열을 조절하지 못하게 되면서 오한과 발열이 번갈아 찾아오는 것이다.

여름철 석 달을 번수(蕃秀)라고 한다. 이때는 천지음양의 기가 서로 교차하여 만물이 개화하고 열매가 맺힌다. 따라서 늦게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되, 해가 긴 것을 싫어하지 말고 노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꽃이 피듯 안색이 피어나게 하며, 기(氣)가 빠져나가게 하여 좋아하는 것이 밖에 있는 듯이 한다. 이것이 여름에 적응하여 뻗어나가는 기운을 길러주는 방법이다. 만일 이것을 거역하면 심(心)을 상하게 되고 가을에 가서 학질(瘧疾)이 되며, 가을의 거두는 작용에 공급되어야 할 것이 부족해져 겨울이 되면 중병을 앓는다. (권1 [신형] 15)

결국 ‘열이 난다’고 차가운 것을 들이붓는 것은 병의 근원은 모르고 증상만 잡는 짓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동의보감>은 여름철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몸을 따뜻하게 하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 몸이 체온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 몸은 양의 기운인 위기(衛氣)가 돌면서 활동한다. 이 위기는 낮에 25번 양(陽)의 자리에서, 밤에 25번 음(陰)의 자리에서 도는데, 새벽 세 시에 음양이 교차한다. 실제로 우리 몸은 계속 같은 체온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새벽에 가장 낮다가 점점 올라가고 밤에 잠들면서는 내려가는 리듬을 탄다. 잘 때 저체온증을 주의하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얼음을 마시는 것은 갑자기 몸을 차갑게 만들어 리듬을 뒤엉키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 몸의 자연스러운 체온 조절은 방향을 잃게 된다. 섭공자고가 말한 “음양의 재앙”이란 이 자율적이고 항상적인 몸의 작용이 뒤엉키게 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왜 이 “음양의 재앙”을 자초하고 있는가? 사실 내가 평소 생각한 ‘아아메’는 앞서 말한 ‘소화기’에 가까웠다. 당장 답답한 속을 내려앉히는 데 얼음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열이 차오르니 얼음을 끼얹으면 되는 거 아닐까? 게다가 얼음이 들어간 음료는 그렇지 않은 것보다 구미를 당긴다. 일단 컵이 투명하다. 그 안에서 찰캉거리는 얼음과 청량해 보이는 색깔의 음료가 한눈에 보인다. 마시면 즉각적으로 시원한 감각이 입에서부터 뱃속까지 곧장 이어진다. 어쩐지 체증이 쑥 내려간 것 같아 몸이 한결 가볍다. 이 시각적 화려함과 음용의 속도감이 우리를 계속 ‘얼죽아’라고 외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실제로, 카페에 가면 어쩐지 따뜻한 음료보다는 얼음이 든 시원한 음료를 더 찾게 된다. 그 차가움이 지루한 일상에 어떤 특별함을 선사해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일은 맘대로 안 풀리는데 얼음만큼은 차갑고 시원하게 목 뒤로 넘어간다. 이 자극적인 감각에 한 번 사로잡히게 되면 여름이든 겨울이든 입 속에 얼음을 넣고 까득까득 씹는다. 쾌락을 놓을 수 없게 된다.

몇 걸음 걸으면 다 마시고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는 이 단발적이고 간편한 음료는 계절에 발맞춰 항상성을 유지하는 우리 몸과 상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얼죽아’가 유행한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양태가 자연스러운 신체와 멀어졌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톡톡 튀고, 빠르고, 쿨하게 말이다. 이 유행은 그만큼 우리가 외부의 자극에 의존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더우면, 열이 나면, 열 받으면 자신의 몸에 대한 이해보다는 먼저 이 열을 멎게 할 얼음부터 찾도록 습관이 들여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몸의 자율성을 문자 그대로 포기하고 만다. 이 악순환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려면 당장 이번 여름부터는 얼음 든 음료는 피하는 것으로!
전체 6

  • 2020-06-12 17:03
    아아메 너마저...이럴게 아니라 덥거나, 열이 나거나, 열 받을 때 나는 어떤 습관이 있나 봐야 겠군요~

  • 2020-06-15 20:18
    여름을 지혜롭게 보내는 방법 중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좋지 않다는 것은 대략 알고 있었는데, 왜 여름에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지, 위기가 하루에 25번 도는지, 새벽 세 시는 어떤 시간인지 궁금합니다. 이 궁금증들을 해소시켜주세요!

  • 2020-06-15 23:46
    혜원 센세~ 그럼 이케 더운데 얼음 든 음료를 피하면 대체 뭘로 더위를 견뎌내란 말이옵니까... ㅠ.ㅠ

  • 2020-06-17 10:59
    앞으로 아이스크림이나 얼음 든 음료는 겨울에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 2020-06-17 11:31
    늘 한사를 조심하여 이열치열 전략으로 가는 것이 답이군요!

  • 2020-06-22 12:02
    아이스커피 마시다가 클릭했는데..아아메랑 뜨거운 물이랑 번갈아가며 마시면 괜찮지 않을까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