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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과 노자 하상공주 48장 ~ 59장 후기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17-09-15 14:00
조회
126
날씨가 많이 서늘해졌습니다. 산책하기 좋은 날씨네요. 주역과 읽기 시리즈가 어느 새 2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2년 동안쉬지 않고 달려오신 선생님들 고생하셨습니다. 짝짝짝짝! 아직 2년을 채우지 못 했다면 앞으로 채우면 되니까 미리 짝짝짝짝! 하상공주가 끝나기까지 몇 주 안 남았네요. 이대로 《중용》, 《장자》까지 쭉쭉쭉 같이 공부해요~

 

48. 忘知(망지)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정교(政敎)와 예악(禮樂)을 배우면 날마다 정욕(情欲)과 꾸밈이 많아지고, 자연의 도()를 배우면 날마다 정욕(情欲)과 꾸밈을 덜어낸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서, 갓난아기와 같은 염담(恬惔)함에 이른다. 정욕(情欲)을 끊고 덕()과 도()를 합하면 행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백성을] 번잡하고 힘들게 하지 않음으로써 천하를 다스리니, 일 벌리길 좋아하면 천하를 다스리기에 부족하다.

 

48장의 제목은 “지(知)를 잊어라.”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知)는 본문의 학(學)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우쌤은 여기서 가리키는 학(學)은 유가의 배움으로 정교(政敎)와 예악(禮樂)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게 날마다 채운다는 건 정욕(情欲)과 내실이 아닌 꾸밈, 거품이라고 합니다.

도(道)는 학(學)과 반대되게 정욕(情欲)과 꾸밈을 덜어냅니다. 우쌤은 손(損)이 ‘소멸하다’ 소(消)와 같은 의미라고 하셨습니다.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는 도상무위이무불위(道常無爲而無不爲)라는 구절로 37장에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도(道)를 행하는 사람의 인격, 언행을 뜻하는 걸로 사용됐습니다. 주석에서는 정욕(情欲)을 단절해서 덕(德)과 도(道)를 합하니 행하지 못하는 것도 없고, 하지 못하는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유사(有事)와 무사(無事)에 대한 사유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유사(有事)는 일을 벌리는 것으로 정교(政敎)를 번거롭게 해서 백성이 안정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무사(無事)는 백성을 번거롭고 힘들게 하지 않는 정치입니다.

 

49. 任德(임덕)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 怵怵, 爲天下渾其心. 百姓皆注其耳目, 聖人皆孩之.

 

성인은 고집하는 마음이 없으니,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성인은 선한 사람을 선하게 여기고, 선하지 않은 사람도 선하게 만드니 선함을 얻는다. 성인은 미더운 자를 믿고, 미덥지 않은 자도 미덥게 만드니 미더움을 얻는다. 성인이 천하를 다스릴 때는 항상 부귀를 두려워하여 교만과 사치를 취하지 않으니, 백성들의 마음을 혼탁하게 만든다. 백성들이 성인의 보고 들은 것을 이용하니, 성인은 백성을 모두 어린아이로 여긴다.

 

49장의 제목은 “덕(德)이 있는 사람에게 맡기다.”입니다. 일종의 덕치(德治)라고 할까요? 무위정치를 덕치(德治)라 표현해도 될 것 같습니다.

성인무상심(聖人無常心)을 주석에서는 “거듭 고쳐서 시대적 추이를 따라간다.”라고 했습니다.

백성의 마음(百姓心) 이 부분은 법가와 연결되는 구절입니다. 백성의 마음이 뭔지를 묻는다는 건 백성의 원하는 바를 이루어준다는 걸 말합니다. 이런 논의는 주로 한비자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기 때문에, 우쌤은 한비자와 노자의 연결고리 그리고 도가를 베이스로 한 법가가 많다고 얘기하셨습니다.

성인재천하 출출(聖人在天下, 怵怵) 이 부분은 왕필본과 다릅니다. 왕필본은 “출출”이 아니라 ‘숨을 들이마시다’ 흡흡(歙歙)으로 돼있습니다. 의미는 ‘숨을 들이마시듯 자연스러운 정치’입니다. 그런데 하상공은 ‘두려워하다’ 출(怵)로, 주석을 참고하면 부귀를 두려워해서 감히 교만과 사치를 부릴 수 없는 정치입니다.

주(注)는 왕필본에서는 ‘주목하다’, ‘집중하다’의 뜻이었습니다. 여기는 ‘쓰다’ 용(用)으로 풀어서, 성인의 판단을 백성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50. 貴生(귀생)

出生入死. 生之徒十有三, 死之徒十有三. 人之生動之死地, 十有三. 夫何故? 以其生生之厚. 蓋聞善攝生者, 陸行不遇兕虎, 入軍不被甲兵, 兕無所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容其刃. 夫何故? 以其無死地.

 

나오는 것이 생이고 들어가는 것이 죽음이다. 생에 이르는 원인이 총 열 셋이고, 죽음에 이르는 원인도 총 열 셋이다. 사람의 생이 사지로 이동하는 것도 열세 가지가 작용한다. 어째서인가? 생을 구하려는 것이 지나치기 때문이다. 무릇 생을 잘 기르는 사람은 육지를 걸어다녀도 코뿔소와 호랑이를 우연히 만나지 않으니, 군대에 들어가도 무기에 상처입지 않고, 코뿔소가 그 뿔을 찌를 곳이 없고, 호랑이가 그 손톱을 쓸 곳이 없고, 무기가 그 칼날을 찌를 곳이 없다. 어째서인가? 사지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50장의 제목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다.”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 장은 왕필이나 진고응과 정말 다르게 해석된 장입니다.

출생입사(出生入死)를 왕필은 기의 뭉침과 흩어짐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하상공은 이걸 정욕(情欲)이 어디로 들어가느냐로 풀었습니다. 우쌤은 정욕(情欲)이 꼭 나쁜 의미의 욕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생명의지’라는 뜻으로 이게 오장에 머물면 혼백이 안정된다고 합니다. 반면에 흉억(胸臆)에 맺히게 되면 정(精)과 신(神)이 피로하고 미혹되어 죽게 된다고 합니다. 옛날 한의사분들 중에서도 맥을 잡고 기(氣)가 어디에 맺혀있는지에 따라 병을 진단했다고 합니다.

십유삼(十有三)을 왕필이나 진고응은 “열에 셋”으로 풀었습니다. 반면에 하상공은 유(有)를 ‘또’ 우(又)로 풀어서 살거나 죽는 사람이 열에 셋이 아니라 생사를 결정하는 원인 열 셋입니다. 그 열 셋은 구규(九竅), 눈, 코, 귀의 두 구멍씩 여섯 구멍, 입, 항문, 요도의 세 구멍을 합친 아홉 구멍과 사관(四關), 귀, 눈, 입, 마음 세상과 뚫려있는 네 기관을 합친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이 다른 지각하는 감각과 같은 차원에서 얘기되는 게 신기했습니다.

 

51. 養德(양덕)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莫不尊道而貴德.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故道生之, 德畜之 : 長之, 育之, 成之, 熟之, 養之, 覆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는 만물을 생하게 하고, ()은 만물을 기르며, [덕에 의해 ] 형상이 만들어지고, 시간적인 형세에 의해 완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은 도()를 존중하고 덕()을 귀하지 않음이 없다. ()를 존중하고 덕()을 귀하게 여기는 건 아무도 명령하지 않아도 항상 저절로 그렇게 된다. 그러므로 도() 만물을 생하게 하고, ()을 기른다. [()] 만물을 자라게 하고, 길러주고, 틀을 갖추게 하고, 완숙하게 하고, 키워주고, 보호한다. [()는 만물을] 생하게 하면서도 소유하지 않고, 베푸는 바가 있어도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길러 주어도 이익을 바라지 않으니, 이를 일러 현덕(玄德)이라 한다.

 

51장의 제목은 “덕(德)이 길러주다.”입니다. 이 장에서 하상공이 주목한 건 덕(德)입니다. 왕필은 도(道)와 덕(德)의 관계를 주로 도(道)는 전체적인 운동. 흐름 같은 것이고, 덕(德)은 각각의 사물에게 작용, 쓰임이었습니다. 비슷하게 하상공도 도(道)의 작용으로 생긴 것을 덕(德)으로 풀었고, 51장에서는 그 덕(德)을 일(一)로 풀었습니다.(42장) 주석에 따르면, 일(一)은 기(氣)를 펼치고 만물을 기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물이 확 퍼지듯 덕(德)으로 만물이 골고루 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물형지 세성지(物形之, 勢成之) 이 부분은 왕필본에선 물이 태어나고 형태를 갖춰 완성되는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그런데 하상공은 이를 덕(德)을 주어로 봐서, 덕(德)이 만물을 기르는 방식이 뭔지 좀 더 구체화해서 얘기하는 것으로 풀었습니다.

장지, 육지, 성지, 숙지, 양지, 복지(長之, 育之, 成之, 熟之, 養之, 覆之) 이 부분도 왕필과 다릅니다. 일단 왕필본에서는 글자도 다르고 묶어서 읽는 것도 다릅니다. 왕필은 장지, 육지, 정지, 독지, 양지, 부지(長之, 育之, 亭之, 毒之, 養之, 覆之)를 장(長), 정(亭), 양(養)과 육(育), 독(毒), 부(覆)가 같은 의미로 봤습니다. 그래서 장지육지, 정지독지, 양지부지(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로 네 개씩 묶어서 읽었습니다.
하지만 하상공은 장지육지, 성지숙지, 양지복지(長之育之 ; 成之熟之 ; 養之覆之) 이렇게 두 개씩 묶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물형지 세성지(物形之, 勢成之)를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복(覆)은 ‘보호하다’ 보(保)와 같은 의미입니다.

현덕(玄德)은 보이지는 않지만 도(道)가 만물을 생하는 작용입니다.

 

52. 歸元(귀원)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旣知其母, 復知其子 ; 旣知其子, 復守其母 ; 沒身不殆.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見小曰明, 守柔日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천하에 도()가 있으니 만물의 어머니로 여긴다. 이미 그 어머니를 알면 다시 그 자식을 알고, 이미 그 자식을 알면 마땅히 다시 어머니를 지키니,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다. 눈을 함부로 보지 않게 하고, 입을 함부로 말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수고롭지 않는다. 정욕(情欲)에 눈을 뜨고, 정욕(情欲)의 일을 더하면 죽을 때까지 구제받지 못한다. 작은 걸 보는 게 밝음이고, 부드러움을 지킬수록 강해진다. 빛을 쓰고 다시 그 빛을 안으로 돌리면, 몸에 재앙이 남지 않으니, 이를 일러 습상(習常)이라 한다.

 

52장의 제목은 “원(元)으로 돌아가다.”입니다.

시(始)는 도(道)입니다. 그리고 도(道)는 천하만물의 어미(母)라고 합니다.

자식(子)은 일(一)입니다.

태(兌)를 왕필은 “욕망의 구멍”으로 풀었지만, 하상공주에서는 눈(目)입니다. 앞에서도 정욕(情欲)이 지나쳐서 오장의 신(神)을 해치면 실명에 이르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와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 문(門)은 입(口)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보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제(濟)는 여러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보태다’, ‘더하다’의 뜻입니다.

소(小)는 ‘미세함’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때의 명(明)을 독견지명(獨見之明), 홀로 아는 밝음으로 풀었는데, 우쌤은 이를 통찰력으로 해석해주셨습니다.

왕필본에서는 수유왈강(守柔曰强)이지만 하상공본에서는 수유일강(守柔日强)입니다. 그러니까 “유(柔)를 지키는 게 강(强)”이 아니라 “유(柔)를 지키면 날로 강(强)해진다.”입니다.

유(遺)는 유서(遺書)의 ‘유’입니다. ‘남기다’, ‘끼디차’의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습상(習常)에 대해 왕필은 “상(常)에 익숙해지다.”로 풀었지만, 하상공은 “도(道)를 영원히 익히고 닦다.”, 수련하는 것으로 풀었습니다.

 

53. 益證(익증)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大道甚夷, 而民好徑,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盜夸. 非道也哉!

 

만일 내가 크게 아는 게 있어 대도(大道)를 행한다면, 오직 간사함만을 두려워한다. 대도(大道)는 매우 평탄하고 쉽지만, 백성들은 바르지 않은 걸 좋아한다. 조정이 너무 말끔하면, 밭은 심하게 황폐해지고, 창고는 텅 비게 된다. 화려한 문양의 옷을 입고, 날카로운 검을 차며, 물릴 때까지 먹고 마셔도, 재물에 남음이 있다. 이를 일러 도둑, 허풍쟁이라 한다. ()가 아니로다!

 

53장의 제목은 “증거를 더하다.” 혹은 “나라가 망하는 증거가 많다.”입니다. 우쌤은 한때 세금을 많이 걷는 것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하셨지만, 정확히 제목이 어떤 뜻인지는 헷갈린다고 하셨습니다. ^^;;

개연(介然)을 왕필은 ‘미미한’, ‘조금’으로 풀었다면, 하상공은 ‘크다’ 대(大)로 풀었습니다.

시(施)는 ‘베풀다’가 아니라 ‘꼬불꼬불하다’ 이(迤), ‘간사하다’ 사(邪)의 의미라고 하셨습니다. “간사함을 두려워하다.”의 이유는 선(善)을 행하려 하다 거짓된 선(善)을 행하게 될까 두려워해서입니다. 이(夷)는 평이(平易), ‘넓고 쉽다’입니다.

경(徑)은 ‘지름길’이란 뜻인데, 위의 시(施)처럼 사(邪)와 같은 의미입니다.

도과(盜夸)에서 왕필은 과(夸)를 ‘크다’로 봐서 ‘큰 도둑’으로 풀었습니다. 반면에 하상공은 남의 것을 강탈하는 도둑(盜)과 그것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허풍쟁이(夸)로 나눠서 풀었습니다.

 

54. 修觀(수관)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修之於身, 其德乃眞 ; 修之於家, 其德乃餘 ; 修之於鄕, 其德乃長 ; 修之於國, 其德乃豊 ;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로써] 잘 세운 사람은 뽑히지 않고, [정신(精神)] 잘 품은 사람은 뺏을 수 없으니, 자손이 이와 같이 도()를 닦을 수 있으면 조상에 대한 제사가 끊이지 않는다.

몸에 도()를 닦아 기()를 아끼고 신()을 기른다. 그 덕()이 이와 같으면 이에 진인(眞人)이 된다. 집안에 도()를 닦으면 아버지는 자애롭고, 아들은 효성스러우며, 형은 우애있고, 동생은 순종하고, 남편이 미덥고, 아내를 정숙해진다. 그 덕()이 이와 같으면 경사가 자손에까지 남게 된다. 마을에 도()를 닦아 노인을 존경하고, 어린이를 아끼고 기르며, 어리석고 비루한 사람을 가르친다. 그 덕()이 이와 같으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나라에 도()를 닦으면 군주는 미덥고, 신하는 충성스럽고, 인의(仁義)는 스스로 생겨나고, 예악도 스스로 흥성하며, 정치가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어진다. 그 덕()이 이와 같으면, 풍후(豊厚)해진다. [군주가] 천하에 도()를 닦으면 믿지 않아도 교화되고, 가르치지 않아도 다스려지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반응함이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아진다. 그 덕()이 이와 같으면 이에 널리 퍼지게 된다.

그러므로 도()를 닦은 몸으로 도()를 닦지 않은 몸을 보고, ()를 닦은 집안으로 도()를 닦지 않은 집안을 보고, ()를 닦은 마을로 도()를 닦지 않은 마을을 보고, ()를 닦은 나라로 도()를 닦지 않은 나라를 보고, ()를 닦은 군주로 도()를 닦지 않은 군주를 본다. 내가 어찌 천하가 이렇게 되는 줄 알겠는가? 이 다섯 가지의 일로서다.

 

54장의 제목은 “닦음을 보다.”입니다. 47장의 문을 나서지 않고, 창문을 보지 않아도 천하를 아는 것과 연결됩니다.

선건자(善建者)는 도(道)로 자신의 몸과 나라를 잘 세운 사람을 말합니다.

선포자(善抱者)는 도(道)로 정(精)과 신(神)을 잘 안은 사람을 말합니다.

자손(子孫)은 도(道)를 닦은 사람으로 선건자(善建者)와 선포자(善抱者)를 가리킵니다.

수지어신(修之於身)부터 끝까지는 왕필과 해석이 다릅니다. 왕필은 내 몸, 가족, 마을, 국가, 천하로 더 큰 단계로 확장되는 구도로 봤다면, 하상공은 도(道)를 닦은 것으로 도(道)를 닦지 않은 것을 보는 비교 및 판단의 구도입니다.

기덕내장(其德乃長) 이 부분은 법가에서 가져다 쓰는 구절이라고 합니다. 유가에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통해 내 몸을 다스리는 것의 확장이 결국 천하를 다스리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법가에서는 집안을 다스리는 것과 마을을 다스리는 것,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모두 따로 있다고 합니다.

 

55. 玄符(현부)

含德之厚, 比於赤子. 毒蟲不螫, 猛獸不據, 攫鳥不搏.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脧作, 精之至也. 終日號而不啞, 和之至也. 知和曰常, 知常曰明, 益生曰祥, 心使氣日强. 物壯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두터운 도()와 덕()을 품은 사람은 갓난아이가 부모에게 보호받는 것처럼, [천지신명에 의해] 보호받는다. 독충이 쏘지 않고, 맹수가 움켜쥐려 하지 않고, 사나운 새가 치려하지 않는다. 뼈는 약하고 근육은 부드러워도 단단하게 쥐고, 아직 암수의 합을 몰라도 성기가 발기해있으니, ()의 지극함이다. 종일동안 울어도 목이 쉬지 않으니, ()의 지극함이다. ()를 아는 게 상()이고, ()을 아는 게 명()이고, 생을 더하려 하면 장대해지나, 마음이 기()를 부리면 나날이 강해진다. 사물이 장성하면, ()를 얻지 못하니, ()를 얻지 못하면 일찍 죽는다.

*본문의 글자와 다르지만, 같은 글자로 통용된다고 합니다.

 

55장의 제목은 “미묘한 증험”입니다. 덕(德)을 가졌다면 갓난아이의 특징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확조(玃鳥)는 독수리 같은 사나운 새를 말합니다. 여기서는 문식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독수리가 사냥을 할 때, 높은 곳에서 확 내려와 탁 하고 친다고 합니다. 이때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힘이 강해서 독수리를 탁 하고 치지만 맞는 대상은 뼈가 부러진다고 하네요....! 그렇게 뼈를 먼저 부시고 난 다음에 사냥을 마저 진행한다고 합니다. 박(搏)은 ‘손으로 치다’의 의미인데, 이런 독수리의 사냥을 비유한 것 같습니다.

최(脧)는 ‘어린아이의 성기’입니다. 성기가 발기하는 건데, 그만큼 정기(精氣)가 많음을 뜻합니다. 본문에는 이것 말고 다른 글자가 있지만, 그 글자를 찾을 수가 없네요. ㅎㅎ;; 대신 脧 이 글자도 통용된다고 해서, 이걸로 대신 넣었습니다.

아(啞)는 ‘벙어리’란 뜻으로 왕필본에는 ‘목이 쉬다’ 사(嗄)로 돼있습니다.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다, 목소리가 나온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익생왈상(益生曰祥)을 왕필은 “생을 더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함.”으로 풀었는데, 하상공은 생을 더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생을 어떤 식으로 더할 것인가에 따라 장수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심사기일강(心使氣日强)에서 왕필본은 일(日)이 아니라 왈(曰)로 돼있습니다. 왕필은 “마음을 쓰는 것은 강포한 것이다.”라고 풀었지만, 하상공은 “마음이 기(氣)를 부리면 날마다 강해진다.”로 풀었습니다. 둘 다 강(强)에 대해서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의미상 크게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56. 玄德(현덕)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分,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故不可得而親, 亦不可得而疏 ; 不可得而利, 亦不可得而害 ; 不可得而貴, 亦不可得而賤 ; 故爲天下貴.

 

아는 자는 도()를 실천하지 말을 아끼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구멍을 막고 문을 닫으며, 욕망의 날카로움을 꺾고 원한을 풀고 비록 홀로 아는 밝음이 있어도 흐릿하게 하고 스스로 특별한 존재로 들어나지 않으니, 이를 일러 현동(玄同)이라 한다. 그러므로 친해지지 않으면 또한 멀리할 수도 없고, 이로움을 좇지 않으면 또한 해를 입지도 않으며, 귀한 존재가 되지 않으면 또한 미천한 존재가 될 수도 없으니 그러므로 천하의 귀한 존재가 된다.

 

56장의 제목은 “하늘과 같아지다.”입니다. 1장에서 현(玄)을 하늘로 푼 걸 계속 가져가고 있습니다.

노자는 도(道)를 언어로 규정해서 전달하는 것에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道)를 뭐라고 말하는 사람은 오히려 도(道)를 아는 게 아니었죠. 그런 맥락에서 하상공의 주석이 재밌었습니다. 사(駟)는 말 네 마리가 이끄는 수레입니다. 그런 수레도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분(紛)을 왕필은 ‘분란’으로 풀었는데, 하상공은 ‘원한’으로 풀었습니다.

광(光)에 대해 하상공은 독견지명(獨見之明)이 있어도 누그러뜨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동(玄同)은 스스로 잘났다고 자랑하지 않는 삶,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삶입니다.

 

57. 淳風(순풍)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吾何以知其然哉以此天下多忌諱, 而民彌貧 ; 民多利器, 國家滋昏 ; 人多伎巧, 奇物滋起 ; 法物滋彰, 盜賊多有故聖人云 :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朴.

 

[하늘이] 지극히 바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라를 다스리게 하고, 사기꾼으로 하여금 군대를 부리게 하고, 일을 벌이지 않고 작위함이 없는 사람에게 천하를 다스리게 한다. 내가 어찌 그리 되는 줄 알겠는가? 이것에 의해서다.

천하에 법령이 많을수록 백성들은 점점 가난해지고, 백성에게 이로운 물건이 많아질수록 국가는 혼란스러워지고, 군주와 제후가 화려함을 추구할수록 기이한 물건도 많이 생겨나고, 좋은 물건이 드러날수록 도적도 많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와 같이 말했다. 내가 도()를 닦아 천리를 받들어 작위함이 없으니 백성은 스스로 변화하고, 내가 안정과 고요함을 좋아하여 말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으니 백성들이 스스로 바르게 되며, 내가 부옄을 시키지 않아 백성이 자신의 일에 편안하게 되니 스스로 부유하게 되며, 내가 욕심이 없어 화려함을 버리니 백성은 나를 따라 질박(質朴)해진다.

 

57장의 제목은 17장의 제목과 똑같이 “순박한 풍속”입니다. 백성들의 삶을 순박하게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치적으로 고민한 장입니다. 우쌤은 《시경(詩經)》의 “내 고향에 편히 모여 산다.(安之集之)”는 구절로 설명해주셨습니다.

기(寄)는 ‘사기꾼’이란 의미입니다.

기휘(忌諱)는 방금(防禁), 법령입니다.

왕필은 이기(利器)를 ‘날카로운 물건’, ‘이로운 물건’으로 풀었지만, 하상공은 ‘저울’로 풀었습니다. 우쌤은 이에 대해 각자가 자신의 저울로 다르게 계량을 하는 것에 대한 얘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나라를 다스릴 때 중요한 건 도량형을 통일시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기교(技巧)는 화려한 무늬의 조각과 옷입니다.

법물자창(法物滋彰) 이 구절에 대한 해석도 다릅니다. 왕필은 물(物)이 아니라 령(令)으로 돼있어서 “법령이 더욱 드러나면”이지만, 하상공은 법물(法物)을 ‘좋은 물건’으로 봐서 “좋은 물건이 드러나면”으로 해석했습니다. 우쌤은 사람들이 물건에 마음을 빼앗기면 농사를 안 짓고 돌아다닌다고 하면서 이걸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상(商)과 연결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전근대시대의 국가에서는 백성으로부터 세금을 받는 게 중요한데 유민이나 상인처럼 떠도는 사람들은 파악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천하게 여겨진 것도 이런 통치의 맥락에서 본 것이라고 합니다.

 

58. 順化(순화)

其政悶悶, 其民醇醇 ; 其政察察, 其民缺缺.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害, 直而不肆, 光而不燿.

 

정치가 흐릿하면 백성들은 순박해지고, 정치가 급박하고 몰아치면 백성들의 인심도 박해진다. ()는 복()으로부터 말미암고, ()은 화() 가운데 숨어 있다. 누가 그 궁극을 알겠는가? 군주가 몸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나라를 잃게 되니, 바른 백성도 다시 속이고 선한 백성도 다시 요망하게 된다. 군주가 미혹되어 바름을 잃은 것이 진실로 오래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점잖게 행동하지 남을 재단하지 않고, 청렴하면서 해를 끼치지 않고, 곧지만 자신을 굽혀 남을 따르기에 스스로 잘났다고 과시하지 않고, 홀로 아는 밝음이 있어도 자신의 밝음으로 남을 현혹시키지 않는다.

 

58장의 제목은 “백성을 이치대로 교화한다.”입니다.

민민(悶悶)은 ‘밝게 드러나지 않음’으로, 법령을 드러내지 않는 정치입니다.

순순(醇醇)이 왕필본에는 순순(淳淳)으로 돼있지만, 둘 다 ‘순박하다’입니다.

찰찰(察察)에 대해 왕필은 ‘세심히 살피는 정치’라고 했지만, 하상공은 ‘급박하게 몰아치는 정치’로 해석했습니다.

보통 기무정(其無正)을 앞 구절과 연결시켜서 해석하지만 하상공은 뒤 구절과 연결했습니다. 정(正)에 대해서도 왕필은 ‘일정한 규칙’으로 해석했습니다. 반면에 하상공은 정(正)을 ‘바름’으로 보고 “바르지 않으면 나라를 잃는다.”로 해석했습니다.

하상공은 사(肆)를 신(申)으로 풀었는데, 우쌤은 이 신(申)이 ‘자기를 드러내다’, ‘과시하다’ 신(伸)과 통용된다고 하셨습니다. 뒤에 나오는 ‘밝다’ 요(曜) 역시 ‘과시하다’입니다.

 

59. 守道(수도)

治人事天莫若嗇. 夫唯嗇, 是以早服. 早服謂之重積德. 重積德則無不克, 無不克則莫知其極. 莫知其極, 可以有國. 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蔕, 長生久視之道.

 

[군주가] 백성을 다스리고 하늘을 이용하는 것만큼 인색한 게 없다. 오로직 인색함을 일러 먼저 천도를 얻는다고(早服) 한다. 먼저 천도를 얻는 것을 일러 거듭 덕을 쌓는다 한다. 거듭 덕을 쌓으면 이기지 못하는 게 없고, 이기지 못하는 게 없으면 자신의 덕이 어디까지 쌓일지 알지 못한다. 덕의 끝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라를 얻을 수 있다. 나라의 도()를 얻으면 가히 오래될 수 있다. 이를 일러 뿌리가 깊고 꼭지가 단단하다 하니, 장생구시의 도()라 한다.

 

59장의 제목은 “도(道)를 지키다.”입니다. 이 장에서 치신(治身)과 치국(治國)을 같이 가져가는 하상공의 사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事)를 용(用)으로 풀어서, ‘하늘을 쓰는 것’을 ‘사시(四時)에 따르는 것’으로 풀었습니다.

색(嗇)은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왕필은 ‘농부’로 봤고, 하상공은 ‘아끼다’로 봤습니다. 아끼는 것의 대상은 나라의 차원에서는 백성이고, 자신의 몸 차원에서는 정(精)과 신(神)입니다.

조복(早服)은 ‘천도(天道)를 앞서 얻다’입니다.

심근고체(深根固蔕) 이 부분을 왕필본에서는 심근고저(深根固柢)로 돼있습니다. “뿌리가 깊어지고 견고해지다.”였지만, 하상공은 뒤의 ‘뿌리’ 저(柢)를 ‘꽃받침’, ‘꼭지’ 체(蔕)로 풀었습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기(氣)로 뿌리를 삼고, 정(精)으로 꼭지를 삼아 기(氣)와 정(精)을 누설하지 않는 게 장생(長生)의 도(道)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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