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 숙제방

  동사서독  &  동사서독 숙제방

루쉰전집2권 과제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5-10-17 13:05
조회
549

2015.10.17 동사서독 - 루쉰, <축복> - 수영


사멸


… 그녀는 사람들에게 쓰레기더미 속에 던져진 싫증 난 낡은 장난감과 같은 존재였다. 그래도 예전에는 몸뚱이를 쓰레기더미 속에서 드러내고 있었으니 재밌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볼 때는 그녀가 어째서 아직도 살려고 하는지 이상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상에 의해 아주 깨끗이 쓸려 버렸다. 영혼의 유무에 대해서 나는 모른다. 그러나 현세에서 살아 봤자 별수 없는 자가 죽는다는 것은 보기 싫던 자가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남을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모두 좋은 일이다. 나는 창박에 사락사락 소리를 내면서 내리는 눈에 귀를 기울이며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 (215)


두텁게 쌓인 눈송이들로 고요해진 마을, 또 한편 음력 세모 준비로 분주한 마을, 이 작은 마을 루전에서 세모를 막 앞두고 한 여인이 죽는다. “하필 이럴 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마을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녀에게도 세모를 맞이하는 것도, 마을 사람들에게 채 뭔가 이야기하지 못한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주인공인 지식인 화자 ‘나’만이 이 죽음에 대해 알 수 없는 무게를 느꼈다 말았다 한다. 아니 엄밀하게는 닥쳐오는 무게감을 어떤 식이든 밀어내려고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 샹린댁의 죽음이 무겁게 다가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실상 ‘나’가 직접적으로 샹린댁에게 무슨 해를 가하거나 한 것은 없다. 그저 “잘 모른다”고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 것 뿐. 허나 또 그렇게 간단하게 ‘나와 그의 죽음은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간단하게 물리쳐버리기에는 엊그제 샹린댁과의 만남이 그에게 남긴 타격이 꽤 크다.


샹린댁은 지식인 화자 ‘나’에게 감당할 수 없는 무엇으로 다가왔다. “사람이 죽은 뒤에 영혼이 있나요, 없나요?”, “그렇다면 죽은 집안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누런 핏기 없는 얼굴에 목석같은 몸으로, 허나 갑자기 눈을 빛내며 샹린댁이 몇 가지를 물어왔을 때, ‘나’는 어떻게 답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알 수 없음은 단순하게 샹린댁이 묻는 질문에 관해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문제는 아니다. 무언가를 알고 알지 못하고, 어떤 사안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고 또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이 상황에서는 분명 관건이 아니다. 그럼 뭘까. ‘나’는 차라리 샹린댁의 질문에 관해, 그리고 샹린댁이 관해 알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 자신에게도 큰 타격이 없을 정도로 미봉하고 달아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자신이 아는 것을 전하고, 또 상대는 그 아는 것으로 위안이든 희망이든을 삼고. 이렇게 된다면 상황은 간단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소설에서 ‘나’가 맞닥뜨린 상황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상대에게 무의미하며, 무엇보다 상대의 질문이나 상황들은 자신이 누리고 있었던 것들을 공격해오는 것만 같다. 화자 ‘나’는 빨리 성 안으로 가 값싸고 질 좋은 상어지느러미탕을 먹어야겠다 생각한다. 이해되지 않으며, 우리에게 작은 유희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존재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도 배제되는 것 같다. 샹린댁이 마을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쳐졌다면, 그 상황은 이 ‘나’ 앞에서도 똑같이 벌어지는 것 같다.


샹린댁의 시어머니에게 샹린댁이 일종의 돈벌이자 노예였다. 마을 사람들에게서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루전 마을 사람들은 물론 시어머니만큼이나 샹린댁을 부리지는 않았으나, 그들에게도 역시 샹린댁은 일에 보탬이 되기에 받아들여졌으며, 그런 한에서 인정되었을 뿐이다. 이곳에서 샹린댁은 그야말로 근근이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갈 곳을 모르고 도망을 다니고 있었거나, 하찮으나마한 안정에 의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시어머니에게 다시 붙들려 원치 않게 재가를 하고, 거기서 다시 가족을 이뤄 살아보려 하지만 남편과 자식이 모두 뜻밖의 죽음을 당하고, 그리고 다시 루전에 돌아왔을 때에는 사람들로부터 동정 이상의 어떤 것도 받을 수 없는 정도로 쇠락해 있었다. 그리고 사후에 대한 말은 당시의 상황조차 견디기 어려워하게 될 정도로 그에게 타격이 된다. 결국 샹린댁은 죽는다. 누구도 죽인 적은 없지만, 누구도 죽인 적이 없었고 죽이고자 하지도 않았다는 점이 샹린댁의 자리를 더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생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자, 끊임없이 배척당한 자, 또 그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자는 결국 자연스레 죽음으로 향하게 되는 것 같다.


루쉰이 보여주는 갖가지 죽음들이 궁금해졌다. 분명 살해된 것이 아님에도 살해된 것 같기도 하고, 또 자살한 것은 아니지만 자살한 것 같고, 어느 순간 ‘더 이상은 살 수가 없다’는 듯이 사라져버리는 생명들에 관해 계속 생각해 봐야겠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