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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서독 루쉰전집3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15-10-23 22:48
조회
484
  1. 10. 24. 토 동사서독 성민호


 

루쉰 전집 3권 뒷면에는 ‘세기의 대문호 루쉰’이라고 적혀있다. 이것을 루쉰이 봤다면 아마 한 마디만 하고는 못 배길 것이다. 문인이라고 하기에도, 계몽운동가라고 하기에도, 사상가라고 하기에도, 루쉰은 어느 틀 안에도 담아내기 힘든 인물이다.

지난 강의에서 루쉰의 적막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하셨다. 20대의 루쉰은 문학으로써 중국의 정신을 개조해야겠다는 포부를 안고 일본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그에게는 꽤나 긴 공백의 기간이 있었다. 그는 한동안 빈 S회관에서 그저 비문을 베껴 쓰기만 했다. 그때 그는 나는 혁명가가 아니구나 하는 좌절과 패배감에 휩싸여 있지 않았을까. 그 적막과 비애의 깊이가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 놓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공백기 이전의 잡문 ‘마라시력설’에서는 시인 바이런과 셸리 등을 소개한다. 루쉰은 강건하여 흔들리지 않고 성실과 진실을 지켜 나갔으며, 대중에게 아첨하며 구습을 따르는 일을 하지 않았고, 웅대한 목소리를 내어 자기 나라의 신생을 일깨우고 지기 나라를 천하에 위대한 나라로 만들려고 했다. 169p 라며 그들을 칭송한다. 그리고 이런 인물의 출현을 기대한다. 이로부터 20여년 후의 작품 ‘들풀’에서도 이와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런 인물을 바라보는 루쉰의 시점에는 변화가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전사’에 나오는 투창을 던지는 전사. 그는 자선가, 학자, 문인, 원로, 학문, 도덕, 국수 등 기만하는 적들에게 창을 던지만 결국 늙어서 패해 죽고 만다. 이쯤 되면 아무도, 전투의 함성을 듣지 못한다. 태평. p89 어째 시인 바이런과 같이 싸우다 죽었는데도 별로 그에 대한 영광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이러한 전사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십년 전과 같은 그런 절심함도 호소력도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그저 희망 사항일 뿐 필수가 아닌 것이다. ‘길손’에 나오는 계속해서 길을 가는 남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공백기를 겪으면서 루쉰의 영웅에 대한 태도도 변한 것이 아닐까. 여기서는 영웅의 등장과 활약보다는 그의 최후를 더 조명하는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나아가는 길손, 결국 죽고 마는 전사. 전사는 결국 멸망하거나 타협하지 않고는 전사로서 계속 살아갈 수 없다는 것. 루쉰은 그러한 쓰라린 결말을 수도 없이 겪으면서 그런 비현실성은 현실 앞에서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저는 거짓말을 하기 싫지만 얻어맞고 싶지도 않아요. 그렇다면, 선생님, 저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

그렇다면, 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옴마! 야가! 얘 좀 보세요, 얼마나..... 아이구! 하하! Hehe! he, hehehehe!” p81

‘입론’에서는 논지를 세우는 방법을 말해준다. 진실을 말하면 얻어맞고 거짓말을 하면 보답을 받는다. 거짓말을 하기 싫지만 얻어맞고 싶지도 않다면? 얼버무리는 것뿐이다. 거짓의 편도, 진실의 편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입장에 서는 것. 감히 평가 할 수는 없지만 루쉰 스스로도 자신이 이도 저도 아닌 인물임을 알지 않았을까. 적막과 비애 속에서 비문을 베끼며, 나는 혁명가가 아니구나, 그렇다면.... 나도 사람을 먹는 사람 중 한명인 것은 아닐까. 이런 자각을 결말로 하는 광인일기라는 작품으로 그의 소설은 시작한다. 루쉰의 소설의 인물들은 영웅적이거나 극단적인 태도 등 뚜렷한 한 성격만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만이 등장한다. 아Q도, 고독자도, 웨이좡 마을 사람들도 흔들리는 것이다. 지난시간 발제문에서 루쉰의 글은 내면의 통찰을 통한 연구의 결과라고 할 만큼 현실적이라고 했다. ‘죽음을 슬퍼하며’에서처럼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그게 사실적인 것이고 그게 가장 우리와 닮아 있는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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