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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풍 공통과제

작성자
woogi31
작성일
2015-10-03 11:22
조회
579

루쉰은 수천년 중국의 문화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물론, 길게 말할 필요조차 없이 그는 이 능구렁이 같은 자국의 역사를 증오하고, 저주하기까지 한다. 그가 보기에 지배층은 지배층대로 피지배층은 피지배층대로 노예 도덕을 내면화한 채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도 모두 지난 역사와 선조들이 남긴 정신적, 물질적 유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맹자가 말한 ‘일치일란’을, 노예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었던 시대와 잠시 안정적으로 노예가 된 시대의 순환이라고 냉소적으로 해석했을까. 욕 문화나 수염 기르는 방식 등과 같은 일상적인 관습에서부터 중국인들이 국수로 내세우며 자랑스러워하는 사상이나 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역사 속에서 행해지거나 만들어져 온 거의 모든 ‘중국적인 것’들은 거부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것들을 일소하고 넘어서지 못하면, 중국의 장래는 계속 암흑 천지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같은 역사 비판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가? 그의 텍스트들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시피, 그는 직접적이거나 체계적인 방식으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건드리지는 않는다. 그가 역사학자로서 글을 쓰고 있지는 않는 탓이리라. 그는 자신이 문제 삼고자 하는 당대 현실의 모순과 허위를 지적하고 고발하기 위한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역사를 끌어들인다. 지금 중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거나 절대시하는 어떤 것-물론 루쉰이 보기에 이것들은 모두 시대착오적이거나 진화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들이 과거의 특정 시점과 맥락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특정 절차와 과정 속에서 시행되어 온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리하여 지금 그것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일인지를, 역사적 사실이나 텍스트를 인용해 가차없이 까발겨 해부하고 있다는 거다. 반대파들이 신성시하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나 텍스트를 이용해, 그들이 견지하고자 하는 현재의 가치나 도덕 같은 걸 무력화시키는 방법. 일종의 계보학적 탐사라고나 할 수 있을까? 이점에서 루쉰은 정말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쯤되면,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드는 게, 중국의 역사를 식인과 노예의 역사보고 끔찍이도 싫어한 루쉰이 적수에 대한 비판의 논거로, 그 역사를 효과적으로 써먹고 있다는 거다. 그만큼 루쉰이 자신의 역사와 그 정신적 유산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가 없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노릇일 터. 어렸을 때부터 사서오경을 비롯한 과거의 허다한 지적 전통을 체득했다는 것과, 유학을 다녀온 이후에도 시간날 때마다 당송 시대의 소설사나 고대의 비문 연구 등에 깊이 빠져들었음은 전기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바다. 단순히 현실 비판을 위한 도구로 과거에 탐닉하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면, 그의 역사가적인 면모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애와 증은 함께 가는 건가? 루쉰에게서 그 애와 증이 얽히고 갈마드는 메커니즘이 쉽게 드러나지는 않겠지만 단서가 아주 없지는 않다. 지난 시간에 언급된, 그 고문과 백화문에 대한 견해. 시대가 백화문을 요구하기에 백화문을 갖고 글을 쓰려고 노력을 해야하고 하고 있기는 하지만, 고문이 완전히 버려지지도 않고 어쩌면 버리고 싶은 마음도 없는 것 같다는 알쏭달쏭한 고백 말이다. 모호한 만큼, 어쩌면 그는 어느 한 편만을 손드는 게 아니라 경계를 무화시켜버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역사와 현재가 또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애와 증, 의식과 무의식, 과거와 현재의, 그 차이와 대립을 명확하게 구분해 바라보고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 루쉰은 확실히 좀 다른 눈으로 들여다봐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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