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비정규 알바생“훈이의 일기”] 9화 

작성자
김훈
작성일
2020-10-21 17:01
조회
201
규문의 최고령 인턴 4n세 훈샘이 내년 공부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 출장을 떠났습니다.
훈샘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삶, 훈 샘이 읽고 계신 책 이야기까지 다양한 썰들을 가볍게~ 풀어볼 예정입니다. 
무려 주 2회! 매주 수, 일 저녁 6시에 연재될 예정이니 애독을 부탁드립니다~



[비정규 알바생“훈이의 일기”] 9화

2020년 10월 19일 월요일 (제주 모슬포항)

새벽에 침대에서 내려와 발을 디뎠을 때 발뒤꿈치 쪽에 '찌릿'하는 통증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 걸으니 괜찮아져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씻고 현장에 나오니 제주도의 바닷바람 때문인지 공기가 차고 손과 코끝이 시렸다. 이제 며칠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일이 부쩍 하기 싫었다. '마음이 헤이해진 탓이었을까. '스타프를 매고 걷다 얼마 못 가서 아침의 느꼈던 통증이 더 강하게 찾아왔다. 참고 걸으니 더 심해져서 아킬레스건까지 아팠다. 스타프를 세워놓고 길바닥에 앉아 손으로 발을 마사지를 해주고 있으니 직원인 친구는 쥐가 났냐고 물었다. “아니. 발뒤꿈치가 갑자기 아프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네이버 검색에 '발바닥 뒤꿈치 통증'이라고 치니. 바로 상단 위에 '족저근막염'이라고 떴다. 써져있는 사례도 나와 똑같았다. '흔히 아침 기상 직후에 처음 바닥에 발을 디딜 때 뒤꿈치가 아프다'라고, 아. 식도염이 나아 다행이다 싶더니 이제는 ‘족저근막염’이구나! 태어나 여태껏 처음 겪는 질병들이었다. 병명을 알았으니 원인과 방도를 찾아야했다. 며칠 안 남았는데 아파서 못하겠다는 불상사는 피해야 되지 않겠는가.

측량 초기에 스타프를 오른 어깨로 매니 오른 발목이 아팠다. 전에 발목이 붓은 적도 있어 자주 스트레칭해주고 발에 힘이 덜 가도록 허벅지에 힘주어 걸었더니. 발목에 더는 통증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허벅지에 힘을 주며 걸으면 발뒤꿈치 쪽으로 하중이 쏠려서 지면에 먼저 닿기 때문에 발가락에 하중이 실리는 일은 적다. 즉 발바닥의 전체에 분산되어 하중을 견뎌야하는 일을 그동안 뒤꿈치만 열일했던 것이다. 그렇게 여럿이 할 일을 혼자서 했으니 '아야'하고 통증을 호소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네이버 검색에서 신발의 뒤꿈치 쪽에 쿠션을 넣어주면 통증을 완화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신고 있는 신발이 싼 런닝화라 쿠션이 좋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며칠 안 남았는데 새 운동화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온 신경을 집중해 발가락과 그 부근이 지면에 먼저 닿게 했다. 그렇게 해서 뒤에서 보면 약간 절뚝거려서 볼품사납게 보이지만 하중이 뒤꿈치로 쏠리지 않게 돼 열일하던 뒤꿈치가 쉴 수 있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더는 뒤꿈치가 아프지 않았다. 다만 이틀간 발가락이 피곤해지겠지만 발목을 보호하느라 뒤꿈치로 걷던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발바닥의 전체를 사용하는 법을 익힐 것이다.

그리고 ‘자기 몸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측량 알바를 계속 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 났던 것처럼 삶이라는 순례를 계속해 나가려면 ‘자신의 몸은 물론 정신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 나는 얼마 전 정신에도 기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신을 어떻게 기복 없이 잘 운영할 수 있을까.’ 정신이 무뎌진 날은 아무런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게 된다. 일기 쓰는 일은 곤욕스러워지고 측량 알바는 빨리 마쳤으면 하는 따분 일로 변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주변의 풍경에 무관심해진다. 그래서 나의 요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정신을 잘 쓸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여하튼 맥락에서 잠깐 빗겨간 이야기에서 다시 돌아오자면, 다행히 이 발꿈치 통증이라는 변수를 무사히 넘겼다. 더구나 그 변수로 인해 에피소드가 생겨 일기도 썼다. 예기치 않은 변수가 자신에게 유용하게 작동한 것이다. '새옹지마'와 '일체유심조'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내 식으로 풀이하자면 새옹지마란 끊임없은 삶의 변수들이 때에 따라 화가 될 수도 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체유심조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사실 환영에 불과해서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인데, 이 둘을 연관시켜 간략히 말하자면 삶의 변수란 사람의 마음먹기에 따라 화가 될 수도 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체 6

  • 2020-10-24 19:03
    마지막에 부상이라니! 뒤꿈치는 안됩니다! 같이 축구해야죠 ㅎㅎ
    이 댓글을 쓰려던 찰나 고구마를 투척해주시고 사라지신 훈샘, 순례를 마치신 걸 축하드립니다.

    • 2020-10-24 21:12
      다행히 뒤꿈치가 나았으나 그 다음은 접촉성피부염에 걸려서 고생 중입니다. ㅎ 숙소를 펜션으로 옮겼었는데. 침대에서 자고 나니 뻘겋게 두드러기가나고 간지러위서 고생중입니다. 바람잘날 없는 몸입니다. ㅎ ㅎ 이제 규문의 순례가~ ^^

  • 2020-10-24 22:41
    독자보다 부지런한 작가님이네요..음..원래 그런가요?^^
    글 하나가 통으로 한문단이네요..이러면 읽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제가 좀 힘들어서 생각해보았더니 그 이유가 아닐까해서요..^^;
    기복없는 정신이라..루틴, 하루의 시스템이 답 아닐까요? 일단은 그것을 위한 훈련이 혹독하게 실행되어야 하겠죠.. 저도 요즘 그 건으로 노력중입니다.
    그리고 쌤 저는 일체유심조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은 아닌것 같아요.. ㅎㅎㅎㅎ 통문단의 복수?중일까요? 저ㅎㅎ>_<
    그나저나 일 끝나신건가요? 축하드립니다!

    • 2020-10-26 13:19
      그러게요. 적당히 나누는 편이 좋았을 것을 ㅎㅎ 밀도있게 써보려고 했는데. 아직 문장력이 딸려서 ㅠ
      큰 기복없이 좋은 정신을 어떻게 유지 할 수 있을까요. 하루의 시스템과도 깊은 관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알아차리고 자신이 깨닫은 바를 끊임없이 상기하는 기술이 필요하지 않을 까라는 등 생각이 많아지네요. ㅎ 일은 마쳤지만 아직 마무리 10화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 2020-10-26 06:02
    뒷굼치에서 접촉성피부염까지, 그런중에도 글을 쓰시고 대단하세요. 건강한 모습으로 규문에서 보게되기를~~~

    • 2020-10-26 13:20
      오히려 그런 질병이 에피소드가 되서 일기을 쓸 수 있게 된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