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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만] 1화 "고귀하고도 드문 공부의 길 위에 서다"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1-01-19 20:10
조회
421
〈청년, 장자를 만나다〉 연재를 시작합니다. 훈장님 같은 고리타분한 글쓰기에서 벗어나 이십대 청년이 겪는 유용한 도구로 동양철학을 공부하여 풀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특히 아이러니와 유머가 가득한 장자와의 만남은 '훈장님적 사유'를 극복하는 데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매달 첫째 주, 셋째 주 월요일에 업로드되는 〈청년, 장자를 만나다〉! 장자처럼 힘차면서도 톡톡 튀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화> 고귀하고도 드문 공부의 길 위에 서다



글/ 규창


 

1.동양철학=과거의 유물?

나는 동양철학을 공부한다. 동양철학이라 하니 막연한 감이 있다. 고대 중국의 사상인지, 불교 철학, 인도 철학, 아니면 이슬람을 말하는 것인지, ‘동양’이라는 지리적 범주만으로는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야망을 크게 가져본다면, 이 모든 것들을 공부하려고 한다! 과연 평생을 공부한다고 해도 공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배워보고 싶다. 그리고 그것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왜 서양철학도 아닌 동양철학일까? 어쩌다 보니 연구실에서 텍스트를 먼저 접한 것이 동양의 텍스트이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처음 연구실에 왔을 때는 텍스트의 구절들이 ‘검은 글씨’로만 읽혔다. 내가 가장 먼저 접한 동양 텍스트는 《도덕경(道德經)》과 《논어(論語)》다. 도가와 유가라는 다른 범주로 묶이는 두 텍스트지만, 각각의 텍스트에서 등장하는 성인(聖人)의 모습은 비슷하다. 바로 외부상황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모습, 어떤 상황에서도 편안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언젠가 나도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었다. 그런 무의식이 나도 모르게 동양철학으로 조금씩 움직이게 했던 것 같다.

《도덕경》과 《논어》로 시작해서 지금은 약 2,500여 년 전 춘추전국시대의 텍스트들을 공부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어쩌다 접한 고대 중국의 텍스트가 어느 순간 치열한 사유의 흔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춘추전국시대라 하면, 공자가 말한 바 있는 ‘도(道)가 땅에 떨어진 엄혹한 시대’다. 공자만이 아니라 소위 제자백가(諸子百家)라 불린 많은 지식인들도 그 시대의 엄혹함을 인식했다. 노자나 공자는 그 중 한 갈래에 불과했다.

춘추전국시대는 사회적 질서와 사유의 흐름이 크게 변하는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철기 문화의 도입은 물질적 조건을 크게 바꾸었다. 생산량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인구와 전쟁의 규모도 커졌다. 주나라 천자 대신 제후 혹은 대부가 권력자로 등장했다. 급변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제자백가는 이에 응답하듯 다양한 사유를 펼치며 각자의 길을 일구었다.

그 시대의 일부를 엿봤을 뿐이지만, 그들의 사유는 치열하고도 세련됐다. 무수히 많은 학파의 등장은 그 자체로 그들의 고민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증명한다. 그리고 그들의 고민 중 일부는 현대 철학에서 제기하는 문제들과도 맞닿아있다. 돈이나 명예, 권력 같은 외부 사물에 흔들리지 않는 수양에서부터 세계와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까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라 치부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사유가 거기 있었다.

나는 그 시대의 사유를 도구 삼아 지금 내가 겪는 문제를 진단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고자 한다. 소리 내어 읽고, 외우고, 나름대로 재해석하려는 과정에서 상식적 가치에 휘둘려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조금은 생긴 듯하다. 지금 이 정도만 공부해도 이러한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2. ‘어느 날’ 시작된 공부

처음부터 동양철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아니다. 처음 연구실에 왔을 때, 나는 공부를 취미 정도로 생각하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백수였다. 일하기는 싫고, 할 일은 없었다. 마침 연구실의 여러 선생님들께서 불러주니 자주 놀러갔다. 밥값도 따로 들지 않은 덕에 연구실에서 종일을 보냈다. 그렇게 하루, 일주일, 한 달…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연구실 비밀번호와 열쇠가 주어졌고, 연구실 멤버들의 망년회에 참여하게 됐다. 갑자기 연구실 멤버로 편입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공부를 취미 이상으로 삼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런 내가 어떻게 공부를 나의 업(業)으로 삼겠다고 결심하게 됐을까? 그것도 고대 중국의 텍스트를?

약 2년 정도 매일 연구실에 나오며 멤버로 생활했으나, 여전히 공부는 취미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공부를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더더욱 먼 얘기였다. 적어도 공부를 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재능이나 그에 준하는 열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연구실에서 얼마간 공부해본 결과, 나에게 공부와 관련된 재능이나 열정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시간이 더 지난다고 해서 없던 재능이 깨어나거나 지난하던 공부가 흥미롭게 느껴질 것 같지도 않았다. 표면적으로만 공부를 업으로 삼는 연구실 멤버를 표방하는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연구실 열쇠를 받게 된 것처럼 《논어》 연재를 하게 됐다. 별다른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텍스트를 소화하지도, 공통과제 한 편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내가 과연 연재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게다가 《논어》를 읽고 있었지만 딱히 나누고 싶은 구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거의 매 편 내 글인 듯 내 글이 아닌 듯한 글을 올렸다. 내 고민보다는 글로 쓸 만한 소재를 찾았고, 글을 봐주시는 채운쌤의 코멘트를 수용하기에 바빴다. 힘겹게 연재를 이어갈수록 ‘굳이 이렇게 고생하면서까지 공부를 해야 하나’ 같은 잡념들이 떠올랐다. 이 잡념은 떨쳐내기 힘들었고, 떨치고 싶지도 않았다. 이 잡념만이 힘든 공부를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논어》를 가지고 19편을 쓰는 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했던 것 같다. “나는 공부를 하고 싶은 것인가?” 연구실에서의 공부는 어떤 증명서나 자격증 같은 결과물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결과물로 환원되기를 거부한다. 즉, 무용(無用)한 활동 그 자체로서의 공부인 것이다. 친척과 주변 사람들은 당장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 허송세월하는 것은 아니냐며 나를 걱정했다. 그러한 걱정들에 대해 태연한 척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실제로는 공부가 나의 활동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19편을 쓰는 내내 저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연재가 마냥 헛고생만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연재를 이어가기 위해 《논어》를 펼치다 보니 인상 깊게 남는 장면들이 생겼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함께 공부하는 장면이다. 공자는 50대에 관직을 내려놓고, 제자들과 함께 자신을 알아봐 줄 군주를 찾아 천하를 떠돌았다. 공자의 명성은 유명한 군주들을 만나는 데 도움이 됐지만 어떤 군주도 끝내 공자를 기용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공자는 번번이 실망했다. 그리고 다시 다른 나라로 향했다. 이 여정은 장장 14년 동안 이어졌다. 수차례 생명을 위협 받기도 했다. 아끼던 제자들이 죽었고, 심지어는 공자의 가르침을 배반하기도 했다. 《논어》에서는 이런 사건들 뒤에 다시 공자가 제자들과 일상적으로 함께 공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들에서 앞의 사건들의 긴박함을 넘어서는 어떤 평안함이 느껴졌다.

이러한 장면의 반복 속에서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다른 어떤 것도 보장돼있지 않은데 함께 공부하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 적어도 공자에게는 그랬던 것 같다. 공자는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好學者)’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고, 이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 그에게 공부는 그 자신을 고귀하게 만드는 활동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공자의 말씀을 가지고 글을 쓰면서도 공자처럼 공부가 나의 길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어느 지점에서 망설이고 있는지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인간이라면 돈이 아닌 다른 도덕을 중요한 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찌 되든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 돈을 가치 판단의 척도로 삼는 사람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였다. 그러나 정작 공부에 전념할 수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돈을 벌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었다. 돈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있다고 자신했으나, 나 자신의 돈에 대한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나를 마주하면서 공부(學)라는 활동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 고민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도 맞닿아 있었다.

고대 중국에서 공부란 ‘수시로 연마하여 체득하는 것(時習之)’이다. 어떤 구절을 읽는다고 해서 갑자기 그것이 자기 앎이 되지 않는다. 무술 초식 하나도 자기 몸에 붙이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 하듯이, 한 구절 한 개념도 체득할 때까지 부단히 반복해야만 한다. 그것은 유학뿐만 아니라 다른 학파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배움이란 앎을 자기 몸에 새기는 훈련이고, 실천되지 않는 앎은 앎이라 할 수 없다. 공부를 시작한 나에게 《논어》 연재는 ‘공부’를 체득하는 과정, 즉 텍스트와 만나는 법, 생각을 정리하고 문장으로 옮기는 법 등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공자와 그의 제자들처럼 밥 먹고, 자고, 씻는 일상이 곧 공부라 하기에는 나의 공부는 억지로 힘을 쓰는 데가 있었다. 딴짓하고 싶고, 놀러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어떤 것도 보장돼있지 않은데 함께 공부하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하나는 남길 수 있었다. 이 질문 덕에 막연히 공부에 대해 가졌던 불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조금은 마주할 수 있게 됐다. 그런 만큼 불안함은 사그라들었고, 대신 공부에 빠져들고 싶은 오기 비슷한 것이 생겼다. 나름대로 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긴 것이다.

 

3. ‘좋은 사람’이 아니라 ‘성인(聖人)’이 되자!

《맹자(孟子)》를 연재하면서 공부와 좀 더 친숙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텍스트를 독해하고 글 쓰는 능력이 갑자기 생겨난 건 아니었다. 그런 능력들이 조금 훈련되긴 했지만, 그보다는 텍스트를 만나며 느낀 감동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맹자》에서 내가 가장 크게 감동을 느낀 것은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이다.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스치듯 들었던 성선설은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도덕적인 주장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맹자》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성선설’의 선(善)은 인격적 선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해하기로, 맹자의 성선설은, 모든 인간은 우주의 운동에 발맞춰 살아갈 수 있는 잠재력, 즉 천리(天理)를 본성으로 가지고 태어났음을 전제한다. 따라서 성선설은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은 위대하다’로 읽혀야 한다.

인간에 대한 이러한 긍정은 비단 공자와 맹자만의 주장이 아니다. 고대 중국 사유에는 우주의 질서인 도(道)와 우주의 일부인 인간 사이에 어떤 간극도 없다는 의식이 깔려있다. 학파마다 인간이 도에 어긋나게 되는 지점과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 윤리를 설명하는 방식이 다를 뿐 인간이 도와 하나가 돼야 한다는 목표는 동일했다. 이러한 주장들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실천해야 한다고 믿었던 도덕적 올바름이 매우 협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고집했던 도덕적 올바름은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좋은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사회적으로 좋은 사람이 넘쳐난다면, 자연스레 세상도 살기 좋아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적인 믿음은 구체적인 상황을 고민하는 데 어떤 힘도 주지 못했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고, 타인에 대한 불만을 삼킬 줄 알아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이건 좋은 사람이라기보다 아무 말도 못하는 바보 멍청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과는 별개로, 항상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할까 마음 졸여야만 했다. 즉, 내가 바라는 좋음의 정체는 그저 타인의 좋음을 실현하는 것, 즉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좋음을 실천하는 데에는 나의 좋음이라 할 만한 것이 결여돼있다.

게다가 좋은 사회를 목표로 삼았을 때는 어떤 사회·정치적인 문제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사회를 어지럽히는 무수히 많은 악인들에 대한 증오만 커져갔다. 우리가 좋은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악인들을 남김없이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정치판은 나의 이상이 실현되기에 너무나도 많은 악인들이 있었다. 사회적 약자들을 도와주기는커녕 그들을 괴롭히는 정치인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좋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한 번 크게 사회가 갈아엎어지기를 바랐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시대는 바뀌었다. 더 이상 과거처럼 쿠데타나 혁명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원한을 갖는 것 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나에게 기존의 정치판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따분했다. 그들의 언어는 나에게 와 닿지 않았다. 마치 그들만의 리그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또래들처럼 정치적 무관심을 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실제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언어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맹자를 비롯해서 고대 중국의 철학자들은 단순히 좋은 사람이나 좋은 사회 같이 추상적인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정치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내재된 본성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문제와 싸워야 하는지 씨름했다. 유가에서 걷어내야 할 적은 사욕(私欲)이었고, 이를 버리고 내재된 천리를 실현하는 것이 공부의 이유이자 그들의 실천이다.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만이 전부라는 협소한 사고, 나만이 정당하다는 옹색한 욕망이 사욕이다. 어떤 욕망이 발현되는지 숙고하고, 사욕이 아니라 천리를 실천하도록 끊임없이 수양하는 것. 이것이 개인의 수신(修身)에서부터 국가의 통치를 관통하는 윤리적이고 정치적 실천이다. 여기에는 일상적인 차원의 욕망과 사회적인 차원의 목표 사이에 어떤 간극도 없다.

유가뿐만 아니라 다른 학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배운 바를 실천하고 정치적으로 어떤 것을 주장하는 것은 “마치 악취를 싫어하는 것과 같고, 마치 이성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如惡惡臭 如好好色)”. 그들은 자기 몸에서부터 비롯되는 욕망을 무시하지 않는다. 자기 욕망과 무관하다면 아무리 고원하고 그럴듯한 목표도 소용없다. 머릿속으로 무엇이 좋다고 되뇌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이에 따르면, 나의 욕망을 문제삼지 않은 채 관념적으로 추구하는 ‘좋은 사람’, ‘좋은 사회’는 어떤 구체적인 실천도 포함하지 않는 망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모든 인간에게 천리가 내재됐다는 주장은 무능력을 느끼는 자리에서도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당장 그의 지식과 인격이 훌륭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주의 운동에 참여할 수 있고 성인이 될 수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 거의 낙관에 가까울 정도의 희망! 내게 이 희망은 막연히 노력하다 보면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보다 더 강력하고 구체적인 힘이 되었다.

 



 

4. 여정은 시작됐다

지금 내가 느끼는 동양철학의 매력은 학(學)과 성선(性善) 두 단어에 있다. 이 단어들은 너무나도 익숙해서 밍숭맹숭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인해 나는 동양철학을 계속하고 싶다. 이 두 단어에는 ‘배우다’, ‘본성은 선(善)하다’는 말로 담을 수 없는 치열한 사유가 함축돼있다. 때문에 익숙하게 느끼는 지점을 되짚으면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의 방향을 외부가 아니라 나에게로 돌리는 고대 중국의 사유는 지나친 의욕과 망상을 가라앉히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저 텍스트를 독해하고 그럴듯하게 글 쓰는 것으로는 고대 중국의 사유를 소화할 수 없다. 앎을 소화하는 과정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이리저리 살피며 맛보는 일이다. 이 과정은 더디고 힘들지만 괴롭지만은 않다. 앎을 몸에 새기는 과정은 새로운 종류의 즐거움을 맛보는 실천이기도 하다. 이 즐거움은 인스턴트 식품의 맛처럼 자극적이지는 않으나, 어떤 자극적인 맛보다 더 강렬하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성인이 되기 위한 여정에 나도 참여했다. 돈을 버는 것부터 공부하는 것까지 사실 모든 행위들은 각자의 삶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왕이면 돈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는 어떤 순간에도 평안하게 사는 사람이 낫지 않은가? 적어도 사는 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해서 괴로워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 성인이 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낸 것 같지도 않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명확하게 자신하지도 못하겠다. 하지만 이렇게 공부하면서 즐거움을 맛보는 생활도 꽤나 괜찮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성인을 입에 담기에는 내 공부가 너무나 미약하지만, 그 고귀하고도 드문 길을 있는 힘껏 걸어가고 싶다.
전체 12

  • 2021-01-19 23:40
    성인들의 삶과 사유를 매력적으로 느끼고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 여정에 참여하겠다는 규창샘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제가 20대에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더라면 사는 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
    앞으로 규창샘의 글을 읽으면서 학(學)과 성선(性善)에 다가가는 샘의 강렬하고 치열한 사유를 만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

  • 2021-01-20 00:26
    바쁘다 바빠. 저는 이 밤중에 자발적으로 댓글 다느라 열일 하고 있어요. ㅎㅎ
    논어를 쓰던 때처럼, 이 글을 쓰면서 규창샘이 또 자신의 문제를 만나기를 바랍니다요.

  • 2021-01-20 07:39
    여럿의 갈림길 중에서 고귀하고 드문 여정에 오른 규창샘에게는 아직도 공부로 알아가야 할 수많은 의문들을 가슴에 품고 있군요. 그 의문들로 배움이 장이 더욱 풍성해질 것 같네요. 다음엔 어떤 장애와 사건으로 여정을 이어갈 지 궁금해집니다.^^

  • 2021-01-20 14:07
    나날이 공부가 단단해지고 있다는 걸, 규창이와 함께 공부하면서 많이 느낍니다. 이런 청년기를 보내면, 어떤 어른이 될까요? 부럽고 기대되고 그럽니다.
    드물고 고귀한 길에서, 어떤 생각들을 길어올릴지, 연재 잘 지켜보겠습니다.

  • 2021-01-20 19:00
    민호도 그랬는데, 장자 얘기는 다음을 위해 아껴두는 것인가요ㅎㅎ 앞으로의 연재를 기대하겠습니다

  • 2021-01-21 09:34
    성인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고귀하고도 드문 길인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같이 가요~~

  • 2021-01-21 21:45
    아 이러한 글을 마무리하시느라 거기서 집중하고 계셨던거군요~~
    저는 왕양명 책 보면서 성인에 대해 생각했었던것같기도..^^;
    암튼 앞으로도 화이팅입니다^^

  • 2021-01-21 23:44
    '성선설은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은 위대하다’로 읽혀야한다'는 문장을 유심히 읽었습니다. 흠ᆢ그렇군요. 니체가 인간을 하나의 불구로 사유했다 할 때 그 인간은 아마도 근대적 인간을 의미한 게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규창쌤의 이번 연재를 소중히 챙겨 읽겠습니다~~^^

  • 2021-01-24 21:19
    쌤의 동양철학하는 즐거움이 뭍어납니다. 그 즐거움이 내가 있던 자리에서 이렇게 저렇게 연관되는 것을 알게 될때 더욱 커지는 것 같아요. 논어도 그렇고 맹자도 그렇고 규창님의 해석으로 많은 공부가 되었는데 이번엔 장자로군요. 재밌는 장자 글이 기대됩니다. 동양공부에 든든한 도반이 되어 주어 늘 고맙구요 같이 성인이 되어 봅시다요~

  • 2021-01-26 10:35
    동양철학은 뭔가 고리타분하고 시대착오적이란 편견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처럼 쬐끔만 공부해봐도 동양철학의 심오하고도 심플& 유연한 매력에 빠져들게 되죠. 다만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선배들이 선현의 말씀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는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려는 수단으로만 쓰려는 게으름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긴 것 같아요.
    '긁지 않은 복권' 동양철학의 멋진 개념들을 또한 '긁지 않은 복권' 청년규창님이 어떻게 멋지게 현재적으로 해석해 주실지 완전 기대만발입니다!

  • 2021-01-26 11:39
    <논어>, <맹자> 에 이어 <장자> 연재로 계속되는 규창샘의 성인 되기 여정... 응원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만나봬야 할 분들인데, 우선 규창샘 연재를 따라가며 준비운동을 해보려고요ㅎㅎ '아이러니와 유머가 가득한 장자'와 규창샘의 만남... 몹시 기대됩니다!

  • 2021-01-26 15:54
    어쩐지 동양철학이 규창샘 덕분에 쉽게 다가올 듯 합니다. ㅎㅎ 기대해 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