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colorcloud in Deusch(2) 음식들, 사람들

작성자
채운
작성일
2019-12-30 04:49
조회
420
현재 시간은 12월 29일 저녁 7시.
서울은 8시간이 빠르니까 30일 새벽이겠군요.
이곳에 도착한 게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는데,
알고 보니 여긴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다음날(boxing day라 하더군요), 12월 31일, 1월 1일 모두가 휴일입니다.
일요일은 말할 것도 없이 all 휴무고요.
휴일이 난감한 것은, 일체 상점은 물론 슈퍼를 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여긴 편의점이 없습니다.)
오로지 몇몇 카페(라기보단 빵집)와 레스토랑, 그리고 맥주집만 영업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아침 열시에 귀가 얼얼해질 정도의 추위를 느끼며 광장을 지나는데,
세상에 야외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서 맥주를 들이키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렇게 찬 음식을, 이 추운 날, 그것도 아침 댓바람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좌우간 아침부터 밤까지 마셔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저녁땐 두어차례 글뤼바인(독일 뱅쇼, 우리로 치면 쌍화탕)을 마셨는데,
문제는 당췌 앉을 데가 없다는 겁니다.
맥주든 와인이든 소세지든, 줄창 서서 먹고 마셔댑니다.

남대문인지 동대문인지, 아무튼 시내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는 문인데,
그 조그만 '광장'에서 왁자지껄하게들 먹고 놉니다.
(아래 사진은 뮌헨의 재래시장인 빅투알렌 시장입니다. 없는 게 없는 거 같은데, 제가 먹을 건 없습니다.)



며칠간을 프레첼과 커피와 감자로 연명하다가, (숙박료에 조식 불포함인 관계루다;;)
아 질린다, 다른 게 먹고 싶다... 하던 차에, 어제 미술관에서 첫 시도를 했습니다.
온통 소세지 치즈 같은 것들로 점철된 메뉴 사이에서 '오늘의 파스타'를 발견!
토마토, 봉골레, 알리오올리오, 심지어 크림이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묻지 않고 덜컥 주문을 했더랬죠.
근데 제 앞에 도착한 음식은 무엇이었는고 하니,
(리얼리즘에 입각해 묘사하자면) 꼬리꼬리한 냄새를 풍기는 치즈에 범벅이 된 물만두였습니다!
게다가 독일은 뭐든 음식양이 오지게 많습니다.(음식과 생필품은 싸기도 쌉니다.)
연구실에서 한 끼니로 끓여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의 물만두였습니다.
두 개쯤 시도해 보았지만 냄새를 이기지 못해 포기.
같은 시간, 문탁에서 민호의 발표를 듣고 있을 혜원에게 문자로 하소연을 했더니
"라비올리 주문하셨나. 토마토인지 물어보고 주문하세요 ㅋㅋㅋ"라는 답이 오더군요.
치즈 물만두에 한 번 울고, 저의 불운에는 아랑곳 없는 혜원의 문자에 두 번 울었지요.......

그리고 오늘, 두 번째 시도!
카페에서 비주얼도 그럴 듯한 토마토 스프를 주문했는데요....
(제 느낌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짜디짠 토마토 케첩 같은 수프 한사발이 나왔습니다.
어떻게든 욱여 넣으려 했지만, 역시나 역부족.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미술관 몇 개를 둘러보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길거리 노점이 몇 개 오픈을 해서 사과 두 알과 군밤을 살 수 있었지요.
군밤, 요거요거 물건입니다.
별 다른 장치가 없는데, 신기하게 껍데기가 쏙 벗겨집니다.
우리나라 군밤처럼, 파시는 분들이 억지로 벗겨낸 흔적도 없고, 껍데기가 안 벗겨져 이빨로 긁어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습니다.
밤을 좋아하는 제 입장에서는,
1시장 1군밤기계(랄 것도 없이 그냥 넙데데한 판때기입니다) 도입이 시급해 보입니다.^^
*아래 사진은 비포&에프터. 봉지에 싸준 군밤을 꺼내 껍데기를 톡 벗겨내면, 아래처럼 알맹이가 쏘옥 나옵니다.

   

(위 사진) 군밤 파는 노점입니다. maroni라고 써 있는 거 보이시죠?
가히 뮌헨 먹거리의 정점이라 하겠습니다.....만, 지금 저는
규문 냉장고에 가득한 김치가 먹고 싶습니다. 고추장도 먹고 싶습니다.
나이가 든 모양입니다.
허리가 아파 오래 돌아다니지도 못하겠고, 뜨끈한 국물도 생각나고...
그래도 큰맘 먹고 온 여행이니, 오늘도 혈자리를 누르며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사진 몇 장 더 투척합니다.



위 사진은, 현대미술관에 있던 콜비츠의 <애도>입니다.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임팩트는 큽니다.



광화문 씨네큐브가 있는 흥국생명 빌딩 앞에 큰 조각상이 하나 있는 거 아실 겁니다.
조나단 보롭스키의 <망치질하는 사람>인데요,
그 작가의 또 다른 조각이 뮌헨의 슈바빙지역(뮌헨 대학이 있는, 우리로 치면 대학로)에 있습니다.
제목은 <걷는 사람>.
흥국생명 앞에 있는 조각이 더 좋네요.
저건 어쩐지, 벌거벗고 인사하는 그 요상한 조각을 떠올리는 것이 좀...

저 거리에서 전철역으로 향하는 길에 이런 발칙한 안경점 쇼윈도를 목격.



(위 사진) "트럼프가 동생을 봤어.(트럼프에게 동생이 생겼어.)" 정도의 뜻인데요,
오른쪽의 저 인물은 영국의 극우 또라이 총리(일명 영국의 트럼프) 보리스 존슨입니다.
지난 금요일 "문장을 훔치다"에 인용한 리처드 세넷의 책(<짓기와 거주하기>)을 보니,
흥미로운 얘기가 하나 있더군요.
몇 년 전 독일이 시리아 난민들에게 문호를 개방했을 때,
뮌헨 기차역에서는 놀랍게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음식과 옷을 들고 그들을 맞이했다고요.
옷과 음식 꾸러미들은 누구나 집어갈 수 있도록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넷에 따르면, 거기에는 어떤 동정의 분위기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얼마 되지도 않는 예멘 난민들을 놓고 논쟁이 벌어진 우리 경우와 비교하면, 놀라운 일이죠.
그런데 또 어떤 기사를 보니, 불과 몇 년만에 독일 사람들은 "우리부터 통합하라"고 외치고 있답니다.
특히 동독 출신자들이 서독 출신자들에 대해 느끼는 열등감과 박탈감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죠.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를 외치고, 프랑스에서는 프렉시트를 외치고...
<기생충>이 포착한 징후들 - 지상과 반지하와 지하의 삶이 더 이상 계급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 - 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계급이나 이념의 대립으로 환원할 수 있었던 시대는 오히려 명쾌했지요.
그.러.나.
들뢰즈&가타리에 따르면, 이렇게 복잡한 선들이 얽혀 있을수록 도주선 역시 더 다양하게 잠재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여, 도주선을 발명하고 탐색하는 게 우리 공부의 당면과제 되겠습니돠!^^
(=> 결론 : 프로그램 신청을 아직도 안 하신 분들, 대체 뭡니까? 그러시깁니까?)
얘기가 산으로 갔습니다만, 리처드 세넷의 책은 일독해 보시길.
(내년에 예술인류학 세미나에서 다뤄볼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제가 만난 베스트 커플 사진입니다.
보다가 너무 웃겨서 저도 모르게 도촬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자르 강변 '평화의 천사' 탑(?)이 있는 공원인데요,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공원인가 봅니다.
저는 버스정류장을 찾다가 우연히 들르게 됐는데, 여기서 저 커플을 발견했습니다.
독일인들도 한번씩 힐끔거릴 정도로 심상치 않은 비주얼이었는데요,
남자는 연신 찍어대고, 여자는 연신 포즈를 취합니다.
안타깝게도 사진으로는 안 보이지만, 저래보여도 최소 50 중반은 넘는 분들이십니다.
아... 저런 것을 두고, 마음만은 청춘이라 하는 걸까요...
열심히 살아가는 노년의 한 사례...를 보았다고 해두죠.ㅋㅋㅋ

내일 새벽 뮌헨을 떠나 쾰른으로 갑니다.
거기서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지으시길!
전체 5

  • 2019-12-30 10:12
    겨울날 야외에서 찬 맥주라니, 독일인들은 한사가 두렵지 않나보군요;; ㅇ0ㅇ

  • 2019-12-31 12:38
    이란에 비하면 여러 모로 즐길 음식이 많은 것 같지만, 안타깝께도 채운쌤에게 맞는 음식들은 없는 모양이군요. 오늘의 파스타라니, 저희한테는 맛있었을 것 같습니다 ㅋㅋ
    마지막 컷은... 어마어마하군요.

  • 2019-12-31 14:49
    독일에서 장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청춘들을 만나고 계시군요~ㅎㅎㅎ 통 못 드셔서 어째요.. 여행가면 굶고 다니는 일인으로 뭔가 짠하네요ㅜㅜ 오늘은 꼭 뭐든 성공하시길 바래요~ 군밤만 드시지 마시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9-12-31 21:22
    스승님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다니시는 것 같아 무척 속상했는데
    빨강 비니루 커플사진 보고 웃느라 싹 잊었습니다ㅋㅋㅋ
    사랑한다면 그들처럼! 다음 에피소드 괜히 기대해 봅니다.
    스승님 만세! 해피뉴이어!

  • 2020-01-01 09:26
    추운 독일 구석구석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이...
    얼른 탐사를 마치시고 김치와 쌍화탕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