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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생] 바틀비

작성자
선민
작성일
2016-05-19 15:26
조회
978
[길 위의 생] 바틀비 Bartleby



 
  1.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의 인생으로 이런 사람이 걸어 온다면? “푸르스름한 빛이 돌 만큼 말끔하고, 딱한 느낌이 들 만큼 예의 바르고, 누구도 어떻게 해 줄 수 없을 만큼 쓸쓸한 젊은이”. 그 어떤 계약에도 매이지 않고, 그 모든 예의에도 갇히지 않는 자. 세상의 온갖 목적(돈, 명예, 생존)에 기대지 않는 절대 자유의 소유자. 그가 만약 나의 인생으로 불쑥 들어온다면?

『모비딕』(1851)의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는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은 1853년에 단편 소설 「바틀비」를 발표합니다. 이 작품은 뉴욕, 월스트리트의 한 가운데에서 법률 사무소의 필경사로 취직한 바틀비에 대한 이야기이죠. 바틀비는 한 며칠 열심히 법률 문서를 베끼는가 싶더니, 취직한 지 3일만에 사무실의 모든 업무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납니다. 본업인 법률 문서 베끼기에서부터 가장 사소한 수준의 잡무(빨간 테이프로 서류 뭉치를 묶으려 할 때, 테이프 한 쪽을 손가락으로 눌러주는 일)에 이르기까지요. 그는 오직 단 한 마디만을 반복했을 뿐입니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작품「바틀비」는 월스트리트라는 배경 때문에, 그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를 철저히 거부하는 주인공의 기벽 때문에, 근대적 사회 제도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는 작품처럼 보입니다. 멜빌은 어떻게 이런 방향 없는 자유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하나의 인간적 형상으로! 저는 언제나 이 작품에 대해 그렇게 감탄했었습니다.

영어권에 왔으니, 영어 소설을 읽자. 이 계획 하에 두 번째로 잡은 작품이 「바틀비」입니다. 여기에는 ‘그 내용을 아니까, 모르는 영어라도 대충 끼워맞출 수 있겠지.’ 하는 안일함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곧 감당할 길 없는 저항에 부딪쳤습니다. 작품 「바틀비」가 ‘나는 그렇게 쉽게 읽히고는 싶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싶지 않습니다! 라며 강력하게 제 앞에 버티고 서는 게 아닙니까? 그 순간부터 「바틀비」에 대한 기존의 제 감탄과 멜빌을 향한 존경심은 싹 사라졌습니다. 대신, 이해하기 어려운 이 작품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숙제가 떨어졌습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그냥 읽다가 말 것인지. 양심을 걸고 이 작품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인지. 아!

    2. 바틀비를 꾸역꾸역

먼저, 영어로 쓰여진 「바틀비」를 후다닥 읽어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가즈오 이시구로의 『Never Let Me Go』가 대화와 묘사문으로 채워져 있다면, 「바틀비」에는 법률 사무소의 직원들과 바틀비라는 인간을 설명하는 형용사가 많이 나옵니다. 풍경을 그림처럼 보여주고, 어떤 상황을 차례차례 설명하는 문장이라면 단어 몇 개를 모르는 채 지나치더라도 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겠지요.(『Never Let Me Go』의 경우) 하지만, 다음과 같은 구절이 닥쳐오면 결국 네이버 사전을 켜야만 합니다. pallidly(창백하게, 활기없이, …), neat(정돈된, 말쑥한, …), pitiably(가엽게, 비열하게, …), respectable(점잖은, 부끄럽지 않은, …), incurably(치유할 수 없는, 구제불능의, …), forlorn(쓸쓸해 보이는, 허망한, …) 이 모든 단어를 찾아야만 바틀비와 겨우 만날 수 있으니까요.

“In answer to my advertisement, a motionless young man one morning stood upon my office threshold, the door being open, for it was summer. I can see that figure now –pallidly neat, pitiably respectable, incurably forlorn! It was Bartleby.”

“어느 날 아침, 내가 낸 광고를 보고 한 젊은이가 우리 사무실을 찾아와 여름이라 활짝 열려 있던 문 앞에 조용히 섰다. 그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푸르스름한 빛이 돌 만큼 말끔하고, 딱한 느낌이 들 만큼 예의 바르고, 누구도 어떻게 해 줄 수 없을 만큼 쓸쓸해 뵈는! 그가 바로 바틀비였다.”(김훈 옮김, 현대문학 출판사; 이하 번역문은 모두 이 책을 따릅니다)

그런데 저는 작품 속에 나오는 모든 단어를 다 찾고도 바틀비가 어떤 존재이고, 멜빌이 이 작품을 왜 썼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영어로 된 문학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단어 하나하나가 같은 울림이나 온도를 충분히 느낄 수 없었던 탓이겠지요. 하지만 덕분에 ‘나를 설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며 저를 밀쳐내는 바틀비를 더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재미있는 점도 발견했습니다. 바틀비에 대해 쓰고 있는 작품 속 화자조차, 갖은 형용사를 동원하고는 있지만 바틀비를 이해하지 못해서 힘들어 하고 있더라구요. 그 어떤 형용사로도 그는 완벽하게 포착되지 않았던 겁니다. 화자의 절망은 대단했습니다. 그는 아예 ‘모르겠다’고 선언하며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바틀비는 직접적이고 원천적인 자료들을 통해서 파악하고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으며, 그의 경우에는 그나마도 거의 없는 편이다. 바틀비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다음에 소개할 모호한 전말기 말고는 내가 놀라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이 전부일 뿐이다.” 바틀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를 직접 만나는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어쨌든 저는 한 문단에서 스무 개씩 단어를 찾으면서, 이 작품을 깨알같이 채우는 이해 불가능함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아주 피곤한 읽기의 늪이었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멜빌이 쓰려고 했던 것은 바틀비라는 존재가 아니라, 그를 이해하려고 하지만 실패하게 되는 이 독서 체험이 아닐까?’ ‘우리는(작품 속 화자와 나) 왜 바틀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결국 저는 알라딘에서 전자책으로 바틀비의 번역본을 구입해서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서(저의 모어인 한국어 속에서) 바틀비를 다시 읽어 보려고요. 물론, 이 역시도 실패하게 됩니다만.

    3. 문학이란 무엇인가?

한국어 번역본을 눈앞에 두고는 변호사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실패가 곧 저의 실패이니까요. 변호사는 왜 바틀비에 대해 쓴단 말입니까?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저는 왜 바틀비를 또 읽는답니까?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이 변호사는 바틀비보다 더 미스테리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화자인 변호사는 일평생 ‘좋은 게 좋은 거다’로 일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바틀비가 그의 인생에 들이닥친 게 문제였죠. 언제나 침착했던 그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바틀비를 이해하기 위해 힘씁니다. 하지만 바틀비는 한결같습니다. “넌 해고다!”라는 선고에도 그러고 싶지가 않고요, “먹을 것을 주겠다, 살아라!”라는 선의에도 그러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눈을 뜨고 굶어 죽는 쪽을 선택하지요.

세상이 지시하는 바를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노라! 이토록 절대적인 자유라니! 변호사는 마침내 바틀비에게서 인간인 이상 그 누구라도 가질 수밖에 없는 고유한 자유를 보게 됩니다. 그에 뒤따르는 무시무시한 고독까지도요. 그리고 변호사는 슬퍼집니다. 바틀비의 자유와 고독은 바로 그 자신의 것이기도 하거든요. 이제 그의 인생에 좋은 게 좋은 건 하나도 남지 않게 됩니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처연하게 가슴이 저미는 깊은 슬픔에 사로잡혔다. 그전까지 겪어 본 슬픔이라 봐야 과히 불쾌하지 않은 정도의 것들에 불과했다. 이제 같은 인간이라는 유대감이 나를 사로잡아 서글픈 심경에 빠져들게 했다. 형제애에서 우러나온 슬픔! 나도 바틀비도 다 같은 아담의 아들이었으니까.”

이 절대 자유는 타인의 말로, 세상의 통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틀비 앞에서 합리적인 법의 언어가 시험되고, 변호사의 세련된 매너는 격파됩니다. 변호사답게 공정하리라, 신사답게 친절해야지, 연륜에 맞게 지혜롭도록! 변호사가 어떤 결심을 해도 바틀비는 몽땅, 다, 무시합니다. 그러고 싶지가 않거든요. 바틀비는 천하무적! 결국 변호사의 평범했던 일상은 무참히 부서지게 됩니다.

“사람이 전례가 없는 데다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방식의 위협을 받으면 자신이 지닌 너무나 자명한 확신마저도 흔들리기 시작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 경우가 바로 그랬다. 이를테면 자신의 확신이 제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모든 정의와 이치가 그 반대편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의심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변호사는 미쳐 버립니다.

"“자네가 사무실에서 해고된 뒤 계속 이 건물 현관을 점거하는 바람에 내가 큰 고초를 겪고 있다는 걸 알고 있나, 바틀비?” /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이제 둘 중 하나야, 자네가 뭔가를 하든지, 아니면 자네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래,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누군가의 서류를 베끼는 일을 다시 하고 싶은가?” / “아뇨 .어떤 변경도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 “포목점 사무원 일을 하는 건 어때?” / “그 일을 하면 노상 가게에 갇혀 지내야 해요. 사무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까다로운 사람은 아닙니다.” 나는 소리쳤다. “ 노상 가게에 갇혀 지내다니. 자네는 늘 자진해서 갇혀 지내잖나!” / “사무원이 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그는 그 하찮은 사안을 단칼에 정리하려는 듯이 답했다. / “바텐더 일은 어때? 눈을 혹사시키지 않아도 되는 일이잖아.” / “전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까다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 그가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말을 많이 하는 바람에 나는 기운이 나서 다시 밀어붙였다. “으음, 그렇다면, 상인들을 대신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수급을 하는 일은 어떤가? 그 일을 하다보면 건강도 좋아질 텐데.”

“아뇨, 다른 일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 “그렇다면 계속 그렇게 한곳에 붙박여 지내봐.” 이제 나는 인내심을 잃고 소리쳤다. 나는 열통 터지는 그와의 관계에서 처음으로 벌컥 화를 냈다. “날이 어두어지기 전에 자네가 이 건물에서 나가지 않는다면 부득불 내가 …… 어쩔 수 없이 내가 …… 이곳을 떠나야만 해!” 나는 어떻게 위협을 해야 그의 완강한 태도를 허물 수 있을지 몰라 그렇게 엉뚱한 말로 이야기를 끝냈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는 우리가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이 세계가 ‘옳다고 믿기로 한’ 무수한 전례들을 배껴쓰고 또 배껴쓰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을 단박에 깨우쳐주는 말이었습니다. 변호사와 제가 바틀비를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를 내 상식에 끼워맞추려 했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지. 주인에게는 복종해야지. 살려면 먹어야지. 그러나 인간에게 고유한 그 자유, 그 고독은 ‘일’ ‘복종’ ‘식사’와 같은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절대 자유와 만난 변호사는 달리 뭘 더할 수 있을까요? 계속해서 법을 베껴쓸 수는 없겠지요. 이제 그는 법 너머를 옮겨씁니다. 방향없는 자유와 철저한 고독을 탐구하는 사람이 되고, 그러고 싶어진 것이죠. 작가 멜빌에게 문학은 이 변호사처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은 세계’에 다가가는 것!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이 작품을 다시 읽게 되면 변호사와 바틀비가 나누는 대화 하나하나가 법과 자유의 대결로 보이게 됩니다.

사실 이 변호사가 좀 특이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바틀비가 미쳤다며 병원에 보내거나, 건물에 무단 침입 했다고 감옥에 보내거나 해도 됐을 텐데요. 하지만 변호사는 차마 양심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양심. 멜빌은 인간 내면의 진실된 자유와 고독을 외면하지 않는 것을 양심으로 보았습니다. 어느날 문득 바틀비가 내 인생으로 들어온다면? 양심이 있다면, 우리는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될 겁니다. 회사, 집, 익숙했던 까페와 거리, 그 어디에서도 마음 붙일 수 없게 되겠지요. 걸음 걸음마다 통념의 벽을 마주하게 될 것이고, 식욕조차 잃게 될 겁니다. 이때 살 길은 오직 하나뿐! 바로 바틀비에 대해 쓰는 것입니다.

* 일주일 내내 「바틀비」에 시달렸습니다. 내가 길 위에서 죽는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바틀비에 대한 노래를 들었는데요. 딱 좋았습니다. 구글이나 유튜브에서 “Diego MORENO ZAMBRANA Bartleby”를 치시면 됩니다.

* 이미지는 http://www.javierzabala.com/index.php 의 홈페이지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전체 1

  • 2016-05-20 00:32
    멋지도다! 담번에도 짭쪼름한 영어의 맛을 보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