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문톡톡

규문 일본 답사 | 6월5일 센다이편 ("무용(無用)한 자의 여행법")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6-14 15:12
조회
1443
오겡끼데스까?! 일본 여행 다녀온 김에 일본어로 인사드려봅니다.
아시다시피 규문 학인들 몇몇이 3박 4일(6월 5일 일요일~ 8일 수요일) 일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냥 여행은 아니었고요. 동사서독에서 소세키 읽기를 마치고 도쿄 일대에서 그의 행족을 좇아 보자... 떠났습니다^^.
채운샘께서 루쉰의 일본 유학 시절 관련 기사를 쓰기 위해 자료를 찾아야 할 일도 있었고요.
겸사겸사 답사(!)를 다녀왔네요. 챙겨주신 덕에 모두 다친 데 없이 잘 갔다왔어요. 캄사!
어디들 갔다왔는지, 무슨 일 있었는지 궁금하시지요.(아님 어쩔 수 없지만0.0) 오늘부터 어설프나마 여행기를 올려보려 합니다. 
여행의 일들을 다 전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잼나게 읽어 주셔요!
아래는 같이 한 사람들 & 간단한 일정 소개입니다.

- 함께 다녀온 이들 : 채운샘, 수경샘, 건화, 혜원, 민영, 락쿤샘, 현옥샘, 윤몽언니, 수영, 은남샘과 그 가족들 - 총 13명
- 주 여행지 : 도쿄, 센다이, 교토 (센다이팀은 도쿄-센다이-교토, 소세키팀은 도쿄-교토로 움직였습니다.)

자, 그럼 여행기 마지막까지 쭉 읽어주셔요~~

 

규문 일본 답사  - 6월 5일 센다이 편 - 작성자 수영

 

센다이를 가다 : 무용(無用)한 자의 여행법


1. “無用之無用”

(일본 도착했습니다요~~)


여기는 도쿄 나리타 공항. 조금 전 다른 멤버들과 헤어지고 채운샘과 둘만 남았다. 다른 멤버들은 도쿄 이곳저곳을 탐방하고 다음 날 교토로 이동할 예정이다. 나와 채운샘은 센다이로 간다. 청년 루쉰이 잠시 유학했던 센다이를 답사하고 다음날 다시 도쿄로 가서 교토로 이동하여 다른 일행들과 합류한다. “루쉰에게 간다!”, 신이 나서 외칠 법도 하지만 실은 루쉰의 “루”자도 생각나지 않았다. 조금 전 혜원과 건화가 교통편을 안내해 주었다. 구글 지도를 확인해주고, 조금 이따 무슨 익스프레스를 타라, 저기서 표를 끊어라, 환승은 안 해도 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잘 갔다 와요. 교토에서 봐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지만 일행들이 멀어질수록 심장만 더욱 쿵쾅거렸다. “어쩌지…….” 갑자기 홀로 뚝 떨어진 것만 같았고 조금씩 겁이 났다. 센다이까지 잘 갈 수 있을까. 센다이에서는 또 어떻고…….

여행 전 채운샘께서는 센다이 여정의 이모저모 - 숙박, 교통편, 이동경로 등을 내게 조사하게 하셨다. 무엇인가 확인하고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허술하기 그지없다. 아무래도 가이드 역할을 태평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샘을 모시고 가는 것은 나로구나,하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하지만 생각이 들었다고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다. 채운샘은 그 때 한쪽에서 원고 작업 마무리에 집중하고 계셨다. 나는 그런 채운샘이 본인 업무(?)에만 집중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점점 깨달아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샘을 편안하게 센다이까지 모시고 갈 수 없을 것 같다……. 뒤늦게 구글지도를 보고 또 본다. 공항 한켠에 마련된 콘센트에 핸드폰을 연결해 충전도 한다. 어째 나도 여기 남아 충전만 계속하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아… 못 갈 것 같다….”

위의 상황과 관련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단 센다이까지는 잘 다녀왔다. 누구의 비호인지 모두 아픈 데 없이, 다친 데 없이 다녀왔다. 그리고 여행 후 나는 “無用之無用”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부끄럽지만 내게 꽤나 걸맞는다고 생각한다. 무(無) 쓸모 중의 무(無) 쓸모! 부끄럽지만 안부끄러운 척 말해본다.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여행을 하면 아무래도 학생쪽이 선생님을 보필할 것 같다. 선생님은 목적지만 지시해주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길을 찾는 것도 채운샘, 돈 계산도 채운샘, 침대에서 불편한 자리를 쓴 것도 채운샘…. 채운샘께서 나를 모시……고 갔다 오신 것인가. 물론 나라고 아무 것도 안한 것은 아니다. 다만 구글지도를 더듬고 있는 것보다 채운샘의 길눈이 더 빨랐다. 내가 손가락 셈을 하는 사이 채운샘이 계산을 먼저 끝냈다. 침대 바깥쪽에서 자면 굴러 떨어지는 일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안쪽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다고 샘의 원고 작업을 대신해줄 수도 없다. 게다가 첫날에는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구글지도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핸드폰 밧데리가 닳아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며 나는 점점 태평해져갔다. 일단 바쁘게 찾고 또 찾았지만 내심 “어쩔 수 없지”하는 마음이 자란 것 같다. 또 한편 “선생님이 알려주시지 않을까” 했다. 또 내심 길을 잃어버려도 상관이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타고자 했던 신칸센을 놓치고 내 예상보다 한 참 늦게 첫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더 그랬다. 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목적지에는 닿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다면 그냥 길을 좀 잃어도 된다는 생각을 허락해버린 것 같다. 급하게 해야 할 것도 없었고,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굳이 때에 맞게 어딘가에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때가 되면 채운샘과 맛난 밥을 먹고, 좋은 숙소에서 잠도 자고, 날씨는 좋고…. 그냥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해버린 것 같다. 부질없이 핸드폰은 만져댔지만 나는 계속 잘 잤고 잘 먹었고 피부는 점점 좋아져갔다. 채운샘은 “차라리 혼자 오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말씀하셨다. 나는 샘의 작은 보조가방을 걸고 “그래도 저 이거 잘 들고 다니잖아요.”라고 답했다. 마음 속으로는 “어쩔 수 없어요, 선생님. 팔자입니다.” 이런 생각을 한 것도 같다. “다음 여행에는 조금은 다를 것이에요.”하며 책임감은 막연한 미래로 날려버렸다. 선생님은 어떠셨을지 몰라도 “박 無用之無用”님은 편안하게 센다이를 다녀왔다.

2. 센다이는 멀다

센다이는 일본 저 북부 지역에 위치해 있다. 전에 캐나다에 갈 때 비행기 모니터에 ‘센다이’만은 표시가 되었던 것이 기억에 난다. 센다이가 속해있는 도호쿠 지방은 훗카이도와 함께 북아메리카 판에 위치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센다이는 도호쿠 지방 최대 도시로 인구 역시 적지 않다. 하지만 내가 가 본 센다이는 어딘가 오래되고 낡은 도시 같았다. 나중에 쓰겠지만 도호쿠 대학의 인상 역시 그러했다. 피폐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활력으로 가득 차 반짝거리는 곳은 확실히 아니다. 아, 그리고 관광객도 없었다. 채운샘 말마따나 사진기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정말 우리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하긴 우리도 관광은 아니니 말이다. 루쉰이 아니었다면 센다이를 밟을 일이 있었을까. 아무리 루쉰의 ‘센다이’라지만 굳이 ‘센다이’까지 올 까닭이 있었을까. 센다이는 분명 중요한 곳이다. 그곳의 의학대학을 다니며 루쉰은 의학에서 문학으로 전향한다. 그런데 어찌보면 그래서 센다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루쉰이 그저 잠시 거쳐 갔던 곳이 아닌가. 루쉰이 센다이에 머문 것은 2년여 밖에 되지 않는다. “굳이” 센다이에 갈 필요는 역시 없는 것도 같다. 어쩌다가 센다이에 가고 있는지.

(이거시 신칸센!)


도쿄에서 센다이까지는 신칸센을 타고 갔다. 도호쿠 신칸센으로 2시간 가량 걸렸다. 승용차 이동 거리로 보면 도쿄에서 센다이는 약 400km 떨어져 있다니 우리는 약 200km/h로 달린 셈이다. 서울에서 여수까지는 승용차 기준 약 360km이다. 도쿄-센다이는 그보다 조금 더 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천에서부터 출발했으니 센다이까지는 더 멀게 느껴진다. 또, 도쿄-센다이 신칸센 편도 요금은 인당 약 11000엔. 우리 돈으로 10만원이 넘는다. 인천에서 일본 왔다 갔다 하는 항공권은 30만원을 채 내지 않았는데 센다이까지 편도만 10만원이라니…. 센다이를 돌아 도쿄를 다시 찍고 교토에 합류했을 때 채운샘과 나의 교통비는 합쳐 80만원에 달했다. 센다이는 더욱 먼 것만 같다. 어쩌자고 센다이까지 가고 있는가. 질문도 뭣도 아닌 생각이 또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후쿠시마를 지나며 다시 또 솟았다 사라졌다 했다.


센다이까지 이동하는 신칸센은 대부분 3개의 역만을 통과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탄 열차는 6개의 역에서 섰고 그 중에 후쿠시마도 있었다. “여기서도 열차가 서는구나….” 이상한 기분으로 사진을 찍고 창 밖을 쳐다보았던 것 같다. “저기도 사람이 사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 답이 될만한 풍경 하나를 괜히 찾고 있었던 것도 같다. 여행 전, “저 센다이 따라가도 돼요?”하고 선생님께 물었을 때에도 내심 후쿠시마가 걸렸다. 그곳을 지나가버리면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던 것 같다. 무엇인가 끔찍한 질병에 바짝 노출되어 버릴 것 같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호흡기를 통해 내 몸에 들어와 나도 모를 병들을 가져올 그 무엇. 그 무엇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확실히 내게도 있었던 것 같다. 비록 기차가 실어다 주었고, 샘의 여정에 따라붙은 것이었지만 후쿠시마를 지나 센다이에 이르러서는 “지나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쩔 수 없어. 아이는 낳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또 다시 “센다이가 뭐라고…”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로 이상하긴 하다. 센다이가 뭐라고….

(후쿠시마 역을 사진에 담고 있는 채운샘)


내 글도 참 지루하고 길다. 센다이 도착 시간에 맞추려는 것인지. 아무튼 센다이에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국제센터(고쿠사이센터) 역에서 내렸다. 인천공항에 들어선 이후로 처음 바깥에 나오는 것 같다. 날씨는 좋았고 주변은 깨끗했다. 자연스레 기지개를 켰고, 먼 곳까지 시선을 던지며 감탄사를 뱉었다. “우와~” 몸을 펴고 크게 호흡 하다 두 사람 일순 멈칫했다. “방사능 공기가 이렇게 좋아도 돼?!!” 웃음이 터져버렸다. 왠지 호흡을 살살(?) 내쉬어야 할 것도 같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너무 크게 많은 공기를 마신다면 이제 정말 엄청난 일이 벌어져 버릴 것도 같았지만 어째서인가 일단은 웃음이 나왔다. 날씨 덕택인가. 마음 조리던 것이 풀어져서 그런가.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고… 그래서 더 무섭게 다가왔던 방사능이 별반 문제되는 것 같지 않았다. 센다이 여행 중간중간, 또 일본 여행 중간중간 나는 확실히 방사능 생각이 났다. 여전히 궁금하다. 원전 사고의 공기 속에서 산다는 것은 뭘까. 하지만 당장 날씨는 좋았고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어디든 얼마든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 저 왠지 목이 따끔따끔한 것 같아요.” 쓸 데 없는 방사능 농담을 해가며 첫 목적지인 센다이 시립 박물관으로 향했다.


3. 루쉰상이 뭐라고


(센다이시 박물관 뒷정원에 있는 루쉰 흉상 그리고 기념비)


센다이 시립박물관은 센다이시 역사에 대해 전시한다. 약 9만점의 역사, 문화, 공예자료를 소장하고 있고 에도시대 다이묘로 초대 센다이 영주였던 다테마사무네의 갑옷 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시간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 우리는 박물관이 문을 닫기 20분 전인가 도착했다 - 애초에 박물관 내 전시품에는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보고자 했던 것은 박물관 뒷정원에 있는 루쉰 흉상 및 비석이다. 박물관 입장권 끊을 일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내 핸드폰에는 그 곳의 사진 한 장이 없다. 박물관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밧데리가 닳아버린 것이다. 채운샘이 들고 온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주변에 몇몇 동상이 보이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루쉰의 자리가 제일 좋은 것 같았다. 왠지 기뻤다. 흉상이 있고 한쪽에 비석이 있었는데 그 위로 나무들이 충분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뙤약볕에 고생하지 않도록 마음을 써준 것만 같았다. 그곳에 진짜 루쉰 선생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비석에는 루쉰이 센다이에서 유학했다는 것, 중국 민족의 정신 변혁에 마음을 쏟았다는 것 등 평범한 내용이 적혀있는 것 같았다. 채운샘은 사진을 찍었고 나는 괜히 이것저것 쓰다듬어 보았다가 다시 루쉰상을 쳐다보았다가 주변의 나무를 보았다가 했다. 채 한 시간도 머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동상 하나, 비석 하나가 뭐 대단할 것이 있겠는가. 또 다시 “센다이가 뭐라고…”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로 이상하긴 하다. 센다이가 뭐라고 나는 여기까지 온 것일까. 대단한 볼거리 하나 없는데 말이다. 나무들 아래 세워져 있는 루쉰상이 뭐 대단하라고 여기까지 온 것이지. 루쉰을 대단히 열심히 공부한 것도 아니면서. 그런데 어째서 기쁜 것일까. 이 미묘한 감격은 또 뭘까. 저 조선의 선비처럼 "吾乃今知夫道矣(오내금지부도의)” - 나 오늘에야 비로소 도를 알았구나, 루쉰상 앞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다. 채운샘에게는 별반 도움이 된 것도 없고, 부모님께는 왠지 신경쓰여 교토에 다녀온다고 했다. 오는 내내 또 가는 내내 나는 그저 잘 먹고 잘 잤다. 그리고 별 일 없다는 듯이 또 숙소로 이동을 하고 별 일 없이 한국에 돌아가 세미나를 할 것이다. 꽉 붙잡고 싶을 정도로 강렬한 순간은 아니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루쉰 선생님에게 초대받은 것 같았다. 본의 아니게 루쉰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마음에 드는 환상들에 물을 주며 루쉰상 앞을 떠났다. 기뻤다. 금새 또 오고 싶을 것 같다.

 
(기념비 & 루쉰 흉상 - 멋지다!)

4. 다시, 無用之無用

이번 여행에 총 네 가지 교통편을 이용했다. 비행기, 버스, 지하철, 신칸센. 그리고 두 개의 숙소에서 잠을 잤다. 센다이에서는 현대식(;;) 작은 비즈니스호텔같은 데서 잠을 잤고, 교토에서는 일본식 다다미 방에서 잠을 잤다. 별 것 아니지만 저 교통편들 안에서의 시간이 꽤나 기억에 남는다. 숙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천에서 도쿄까지 비행기로 이동을 하며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빵을 먹고, 누군가는 잠을 잤다. 나는 옆자리 락쿤샘 쪽으로 고개를 연신 기울이며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했다. 나리타공항에서 도쿄까지 공항버스를 이용했는데 우리나라 버스와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다만 옆자리에 채운샘은 무엇인가 작업을 하고 계셨고 나는 바삐 구글지도를 검색했다. 그리고 도쿄에서 센다이까지 신칸센, 역시 선생님은 무엇인가 작업을 했고 나는 화장실에 갔다가 구글 검색을 했다 물을 사러 갔다 자다가 했다. 생각해보니 채운샘을 비롯해 연구실 선생님들과 친구들은 대부분 혜화동 연구실 공간에서 만난다. 기껏해야 동네 산책 정도. 함께 해야 할 배경은 ‘Keep calm & Carry on’이 써진 파란 문 안쪽이고, 연한 갈색빛인가의 바닥 위다. 한쪽에는 책장이 있고 한쪽에는 책상들이 있는 그곳에서 무엇인가 같이 읽고 같이 듣고 했다. 그런데 전혀 다른 곳에서 일 없이 함께 있었다. 물론 ‘일 없이’는 전적으로 내 기준이기는 하다. 점차 임무를 방기해가며 나는 그저 한가하게 이동수단들에 몸을 맡긴 것 같다. 밧데리가 닳도록 검색을 했지만 기차 안에서나 또 나중에 숙소 침대 위에서나 한가한 마음이 되버리곤 했다. 거기에 선생님도 친구들도 있었다. 루쉰 답사 겸 센다이에 온 것이지만 루쉰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다. 오늘 뭐 먹을지, 신칸센 자유석이 좋다느니, 잘도 잔다든지, 샘 원고는 다 끝났는지……. 채운샘에게 내가 얻은 칭호는 “無用之無用”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여행에 붙이기에도 좋은 칭호인 것 같다. 물론 답사에 바쁘기도 바빴고 긴장도 되었지만 - 교토에서 한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챙기고 있을 선생님과 친구들이 생각난다 - 그래도 여행은 “無用之無用”으로 가득하다. 연구실과 동대입구역, 멀리 가야 고대역 정도를 다니고 있는 나에게는 이 길고 긴 이동 시간도 그러했고, 진지했지만 또 한편 한가하게 내일 갈 장소를 검색하던 숙소에서의 시간도 그랬다.

(센다이 역사. 생각보다 매우우우 넓고 컸다)


센다이시 박물관에서 루쉰상을 보고 숙소로 이동할 때는 왠지 “걸어가자”는 이야기가 나와 걸어갔다. 핸드폰 밧데리도 닳아버려 한참을 돌아 숙소에 도착한 것 같다. 채운샘 눈치가 살짝 보였지만 큰 타박은 하지 않으셨다. 배가 고파 눈 앞에 숙소를 그냥 두고 짐을 다 든 채 식당에 들어갔다. 반숙 계란이 올려진 볶음 밥을 먹고 간장 소스로 국물을 낸 면 요리를 먹었다. 뭘 먹어도 괜찮을 상태였는지라 엄청나게 맛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지도를 검색하다 잠이 들었고, 채운샘 역시 문득 나른해져 잠이 드셨다. 9시쯤 깨서 센다이역 근처를 산책했다. 완두콩인가를 갈아 만든 쉐이크 하나를 사서 나눠 먹었고, 고급진 어묵을 시식했다. 돌아와서는 호테루(호텔!) 기분을 만끽했다. 유카타를 입고 깔끔하고 큰 침대 위에 누워있으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유카타는 처음 입어보는데 편하긴 했으나 손을 넣어 직접 등을 긁기가 어려웠다. 이것만 빼고는 모두 괜찮았다. 오래도록 샤워하고 싶었으나 귀찮기도 해 적당히 했다. 채운샘은 무엇인가 메일을 보내셨다. 나는 “내일은 반드시!”하는 파이팅과 함께 한참 지도를 검색했다. 다음 날 채운샘에게 비웃음을 샀지만 수확이 없지 않았다. 바깥에는 센다이의 멋진 야경이 보였고 날씨는 좋았다. 숙소는 깨끗하고 몸은 나른하고… 최고다!

+
(센다이 여행기는 2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소세키팀의 도쿄 기행이 곧 업로드 됩니다! )
마따 아이마쇼~ (또만나요ㅎㅎ)
전체 4

  • 2016-06-15 13:36
    그곳에서 느낀 초조한 심정의 한편에선 안 어울리게도 먹는 이야기가 이빠이. 일일이 나열된 볶음밥, 면, 쉐잌, 고급어묵ㅋㅋㅋㅋㅋㅋㅋ

  • 2016-06-16 05:53
    루쉰이 후지노 선생님을 회상하던 장면도 떠오릅니다. 루쉰도 도쿄로 가기 위해 센다이역에 서 있었을까요? 그때 기분이 어땠을까. . . ^^
    정말 부러습니다. 센다이라니!! ^^

  • 2016-06-18 03:02
    헐. 저도.. 다녀왔어용.. ;ㅅ;

    • 2016-06-18 03:03
      수영이..까지 해서 13인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