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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문 일본 답사 | 6월 6일 도쿄 → 교토 (의욕 없는 인간의 여행)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16-06-18 12:04
조회
4740
6.6일 도쿄 → 교토, 의욕없는 인간의 여행 / 작성자 건화

1. 히비야 공원, 여기에 꼭 왔어야 했나?

여행 이틀째, 이른 아침 몇몇 분들이 조시가야 묘원에 다녀왔다. (강조)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어찌하다 보니 나는 호텔에서 꿀 같은 잠에 빠져있었다. 다녀오신 분들의 말에 따르면 소세키의 묘가 조시가야 묘원 전체에서 가장 컸다고 한다. 또 묘원 바로 옆에 소세키가 <나의 개인주의>강의를 했던 학습원이 있었다는데, 같이 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대신에 나는 히비야 공원에 갔다 왔다. 히비야 공원은 1903년에 개원한 일본 최초의 근대적인 공원이다. 소세키는 『문』을 완성한 후 1910년 6월 중순부터 7월 말까지 위장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건강을 회복한 7월 하순부터 매일 아침 히비야 공원을 산책했다. 『춘분 지나고까지』같은 소세키의 소설에서 언급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의 계획은 이튿날 교토에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히비야 공원을 둘러보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다른 일행들은 도쿄역으로 가고 나와 재원누나만 따로 히비야 공원에 들렀다가 합류하기로 했다. 우리는 도쿄역 대신 신바시역에 내려서 히비야 공원으로 향했다.

우리는 히비야 공원에 가지 못한 다른 일행들을 위해 사진을 잘 찍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공원에 도착했는데, 공원의 모습은 우리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히비야 공원은 뭐랄까... ‘그냥 공원’이었다. 분수도 있고, 연못도 있고, 나무도 많고... 우리 집 앞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집 앞에 있어도 아주 이상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공원이었다. 소세키를 떠올리게 할 만한 어떤 것이나 사진 찍을 만한 무엇은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여기에 꼭 왔어야 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히비야 공원에 어서 오세요.)


(히비야 공원에 동화되다.)
히비야 공원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인들이 공원을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공원을 ‘올바르게’ 이용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각자 벤치에 앉아서 조용히 명상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도 없고, 노숙인들도 없었으며, (한국의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난 밤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이 벌인 술판의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저 모든 것들이 ‘공원이라면 마땅히 이래야지’하는 모습으로 그곳에 있었다.

어떤 공간이든 사람들이 그 공간에 모여들면 최초에 그 공간을 설계한 의도를 완전히 벗어나는 방식의 공간의 활용이 생겨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쩐지 히비야 공원에 모인 일본인들은, 1903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공원을 조성한 의도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용해 왔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비야 공원에는 1903년에 공원의 개원과 함께 영업을 시작한 ‘Matsumotoro’라는 음식점이 있는데, 100년도 넘는 세월 동안 이 공원에서 바뀌지 않은 것은 음식점 뿐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의 올바른 이용’)

다시 히비야 공원과 소세키의 얘기로 돌아와 보자. 시간에 쫓기며 히비야 공원에 발자국 찍듯 하고 돌아온 당시로서는 진심으로 ‘여기에 꼭 왔어야 했을까’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여행이라는 것이 ‘꼭 가야하는 곳’에 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도쿄타워에 가고 긴자에 가고, 또 다른 유명한 관광지에 갔다면 만족스러웠을까? 사실 세상에 ‘꼭 가야할 곳’이 어디 있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소세키를 공부하기 전이었으면 내 시야에 전혀 포착되지 않았을 공간들, 어떤 관광 안내책자에도 나오지 않을 공간들에 찾아가는 과정이 여행에 특별한 재미를 더했던 것 같다. 다만 천천히 돌아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 아쉬웠다. 일정을 짜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2. 신칸센, 교토, 청수사

히비야 공원에 발 도장을 찍고 바로 도쿄역으로 향했다. 도쿄 지하철의 기이한 시스템에 겨우겨우 적응해가고 있는 중에 도쿄를 떠나려니 뭔가 아쉽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쓸데없는 생각에 머물러 있을 새 없이 신칸센 티켓을 사고 탑승구를 찾느라 또다시 바삐 움직여야 했다. 어렵사리 탑승에 성공한 신칸센은... 빨랐다. 정말 빨랐다. 바깥 풍경을 보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그래서 시선은 자연스레 바깥 보다는 열차 내부에 머물렀다. 기억나는 것은 어떤 할아버지가 음료수를 바닥에 쏟고는, 승무원이 오기도 전에 휴지로 닦아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버리는 모습이었다. 일본여행 중에 노인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일도 그러한 경우 중 하나였다. 이 할아버지는 허둥대면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바닥에 흐른 음료수를 닦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도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는 것을 더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과감하게 품위를 버린 모습이 오히려 품위 있어 보였다.


(다들 잠들었는지 신칸센을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신칸센에서 내려 교토 버스 1일 권을 사서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히가시야마 산조’(東山三条)라는 정류장 근처에 있었는데, 이 지명은 교토에 머무는 3일 동안 너무 자주 들어서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숙소는 자그마한 일본식 2층 건물이었는데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우선 많은 이들의 걱정거리였던 화장실 숫자가 충분했고, 또 충분히 쾌적했다. 다른 것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샤워실과 본채 사이에 있는 작은 마당이었는데, 예쁜 마당 덕분에 샤워실과 본채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전혀 불만스럽지 않았다.


(숙소)

빠르게 짐을 풀고 청수사로 이동했다. 청수사는 절 자체보다도 청수사까지 가는 길이 인상적이었다. 도쿄에서 우리가 갔던 곳들이 모두 한적했던 것에 비해서 청수사길은 우리가 이제 관광지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온갖 기념품들과 음식들을 팔고 있었지만 왠지 뭐라도 사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들것만 같았다. 청수사에는 한국인들도 많았는데 기모노를 차려 입은 사람들이 난데없이 경상도 사투리를 뱉어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청수사 길)
청수사 자체도 좋았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교토 시내를 배경으로 청수사 본당을 볼 수 있는데, 아주 멋진 뷰를 자랑한다. 청수사의 청수淸水는 ‘신성한 물’이라는 뜻이다. 절 내부에 있는 오노타키폭포에서는 물을 받아먹을 수 있는데, 왼쪽의 폭포수는 지혜, 중간은 사랑, 오른쪽은 장수에 좋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신성한 물을 떠먹기 위한 도구는 뒤에 설치되어 있는 자외선 살균기에 꽂혀 있다. 장수를 기원하는 물과, 그 물을 떠먹기 위한 도구를 살균하는 기계가 나란히 놓여있는 모습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청수사)


(오노타키폭포)


(살균기)

다른 일행들이 오노타키 폭포에서 물을 받는 모습을 찍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내 뒤쪽 벤치에서 서양인 할아버지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할아버지가 “모든 나라에는 신성한 물이 있는데, 프랑스는 그것(에비앙)으로 많은 돈을 벌고 있다”며 프랑스인인 것으로 보이는 다른 할아버지를 보며 짓궂게 웃어보였다. 교토의 절들에는 대부분 손을 씻거나 마시게끔 되어 있는 ‘신성한 물’이 있는 것 같은데 왜 물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졌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3. 저녁식사, 그리고

청수사를 보고 나니 다들 배가 고픈 시간이 되었다. 끼니 해결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그리고 이날 저녁은 특히 더욱 쉽지가 않았다. 교토에 살았던 경험이 있으신 락쿤쌤이 염두에 두셨던 음식점들이 연달아 문을 닫은 것이다. 헤매다 보니 나름의 기대치는 높아져서 평범한 체인점에는 또 들어가고 싶지 않고, 13명이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찾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최악의 조건 속에서 헤매기를 계속하다가 겨우 식당을 찾았다. 막부말기의 무사집단 ‘신센구미’를 테마로 한 식당, 이라고 말하면 뭔가 있어 보이지만 내부에는 신센구미를 테마로 한 만화 캐릭터들이 한가득... 게다가 각 캐릭터를 모티브 삼은 음료도 있었다(!). 뭔가 불안했지만, 의외로 음식은 괜찮았고 걷느라 배가 고파졌는지 다들 만족한 기색이었다.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식당에서 진지한 음식을 팔 리가 없다는 생각은 한국에서나 통용되는 것 이었나보다. 특히 은남쌤네 아이들이 가장 만족한 식사였다고 하니 다행이다.


(신센구미 음료)


(교토 시내 풍경들)

그리고 이 식당에서 드디어 공항에서 헤어졌던 센다이팀(채운쌤과 수영누나)과 재회했다. 헤어진 지 하루밖에 안되었지만 여행 중인 만큼 할 말이 쌓였는지 서로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식사를 마치고 나, 은남쌤 가족, 그리고 현옥쌤은 숙소로, 나머지 분들은 교토대로 각각 이동했다. 교토대는 락쿤쌤이 교토에 계실 때 공부하셨던 곳이라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정말 많은 대학을 구경할 수 있었다. 도쿄대, 와세다, 동지사, 교토대 3박4일 동안 4개 대학이라니 누가 보면 캠퍼스 탐방이라도 갔다 온 줄 알겠다.

(교토대)


(교토대)

숙소로 돌아온 우리 노약자 팀은 먼저 씻고 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때 혜원누나한테서 연락이 왔다. 교토대 팀이 술 한 잔 하고 있으니 오고 싶은 사람 있으면 데리고 오라고. 가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나 혼자 밖으로 나섰다. 나는 당연히 숙소 근처에서 부르는 줄 알고 나갔지만, 버스를 타고 교토대 근처까지 가야했고 이미 나와 버린 이상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구글지도가 나를 배신했다. 내가 탄 버스는 노선 상으로는 교토대까지 가지만, 중간에 차고지가 있어서 버스는 차고지로 들어가고 나는 내려야 했던 것이다. 거기서 다시 버스를 잡아타고 가려니 30분 가까이 기다려야 했고, 그렇게 도착해봐야 술자리는 끝나있을 것 같아서 나는 그냥 걸어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뭔가 애매한 기분으로 걸어가던 중, 조용하고 편안해 보이는 술집을 발견했고 잠깐 고민하다가 들어가기로 했다. 술이 마시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행인데 이대로 숙소에 들어가면 후회할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술집에 있던 사람들은 의외로 나를 몹시 환영해줬고, 거기 있던 한 아저씨는 나한테 위스키, 사케, 와인 뭐든 마시라고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덕분에 사케를 몹시 얻어먹고, 돈도 내지 말라는 주인들한테 억지로 지폐를 건네준 뒤, 택시까지 얻어 타고 숙소로 왔다.


(술집 주인부부)

이들이 왜 일본어도 못하는 칙칙한 한국인 남자인 나를 환영해줬을까, 생각해봤다. 못하는 영어를 동원해서 이야기하던 중 내가 “소세키를 공부했다”고 말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먹힌 게(?) 아닐까 싶다. 일본인들에게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는, ‘소세키를 공부했다’라는 말 하나만 듣고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술을 사주고 싶어질 정도의 존재인 것일까? 아무튼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들의 환영이 소세키 덕분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또 한편으로는 ‘소세키를 공부했다’는 말을 책임질 수 있을지... 아무튼 (내 맘대로)그때 얻어먹은 사케는 소세키가 준 선물이라고 여기고 싶다. 술도 얻어먹은 만큼 다음번에 소세키를 공부할 때는 술값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4. 타인들과 함께 여행하기.

솔직히 말하자면 출발하기 전, 이번 여행이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보진 못했기 때문인지 나는 낯선 곳에서의 모험적인 여행에 대한 로망을 내심 품고 있다. 아주 멀고, 조금은 위험하고, 몹시 낯선 곳을 혼자서(혹은 소수의 일행과 함께) 무계획적으로 떠도는 여행. 실행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만큼 앞으로도 오래도록 간직하게 될 판타지인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비행기 2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일본으로 매일(적어도 매주) 얼굴 보는 분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다. 게다가 매니저 역할을 맡은 이상 나는 미리 짜놓은 계획이 차질 없이 실행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했다! 이번 여행은 여행에 대한 내 판타지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애초에 여행은 기대보다는 부담이었다. 그래서 그냥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무사히’ 돌아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낯섦은 일본이라는 장소에도, 여행의 성격에도 있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맡은 역할에 있었다.

함께 이번 여행의 매니저를 맡은 혜원누나에 비해 내가 매니저로서 한 일은 미미했지만, 어쨌든 사람들을 이끌고 길을 안내하고 일정을 관리하는 것은 내게 아주 낯선 일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내가 짜놓은 계획에 맞추어 움직이게끔 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혼자서 떠난 여행이었으면 계획에 차질이 생겨도, 계획 자체가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못해도 그 자체로 여행의 과정으로 여길 수 있었을 텐데, 각자 다른 리듬을 가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다 보니 그러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은 사치였다.


결과적으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나의 무능이었다. 나는 평소 누군가 짜 놓은 계획에 불평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과 부대끼며 뭔가 하는 것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었다. 이전에는 나의 이러한 성향에 별로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 이것이 단순히 성향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나와 다른 리듬을 가진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나의 무능임을 느꼈다. 다음번 여행에선 조금 덜 무능해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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