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n

0627 수업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6-06-23 15:57
조회
3895
지난 수업시간에는 바렐라 등등이 쓴 <몸의 인지과학>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저로선 그다지 잘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수업 중 ‘알파고’에 대한 이야기는 인상적이었어요.

인지론적 전통에서 인간의 인지 능력은 컴퓨터 모델을 통해 설명됩니다. 이미 여기서 중요한 단초가 나오는데, ‘자아 없음’이 그것이라는군요. 하나의 단일한 자아가 의식 전반을 통제‧통합하는 게 아니라 계산적 의식이 있을 뿐이라는 것.
이처럼 물리학적 모델을 기반으로 인간 의식을 규명하려던 시도 위에서 출발하되 그것을 넘어서려는 인지과학의 노력들이 있었답니다.
물리학적 모델 대신 생물학적 모델을 사용하는 것이 그것.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책 곳곳에 등장하는 ‘창발성’입니다.

채운 쌤은 알파고에게 만약 마음이란 게 있다면 참 헛헛할 거라 하셨더랬죠. 애초 마음이 있다면 알파고가 아닐 테지만, 네, 상상해보면 정말로 헛헛함 비슷한 감정이 저한테도 생깁니다.
알파고는 실수 없이 주어진 미션을 완수하지요. 그리고 죽지도 않지요. 종종 업그레이드되고 다른 곳으로 프로그램이 이식되어 불멸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채운 쌤 표현대로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자신의 경험을 의미화하지 못한다는 것, 실패에 대해 숙고하지 못한다는 것, 그런 채로 문제를 풀고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 이 정도면 많은 SF물에서 만나던 인공지능 로봇들이 시달려온 고독이 알파고에게도 있을 법합니다.

아무튼 바로 여기서 우리는 기존의 기계론적, 물리학적 모델과 구분되는 생물학적 모델의 핵심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알파고와 나는 무엇이 다른가? 저는 바둑도 못 두고, 알려준다고 속속 이해하거나 기억하지도 못하고, 하는 족족 실수인데다가 처음 해보는 것이라면 ‘백퍼’ 실패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인지과학에서 말하는 인간 의식의 대단한 능력은 바로 여기 있답니다.
인간은 아주 많은 경우 실패합니다. 목표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고, 그렇게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으려고 마음먹지만 마음먹은 대로 자신이 통제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기치 못한 순간 다치고 아프고, 무언가를 상실하고, 그리고는 느닷없이 죽습니다.

이 같은 경험들, 삶의 수많은 구비들, 실패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은 (만약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업그레이드됩니다.
채운 쌤 설명대로 인간은 알파고와 달리 여백을 가지고 있고 곧잘 고장 나는 존재, 아니 그보다 고장을 본질로 하는 존재입니다.
자꾸 삐걱거리고 자꾸 넘어지고 타고난 앎으로 존재를 꽉 채운 것도 아니지요.
그런데 바로 그 고장과 실패를 바라보는 힘, 성찰하는 힘을 통해 인간은 알파고와 다른 의미에서 세계를 인식하고 배움을 얻습니다.
실패가 주는 쓰라림, 상실이 주는 박탈감, 끝이 주는 허무함 등등을 인간은 제대로 겪음으로써 겨우 한 가지를 새로 배울 수 있지요.
그것은 알파고의 체계로는 설명되지 않고, 다른 신체의 비슷한 경험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그의 고유한 정서이고 해석이랍니다.
‘창발’ 개념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어진 프로그램의 성공적 실행이 아니라, 시행착오와 고장을 통해 새롭게 접속하고 변용을 일으키기, 이는 생물학적 인지 모델에서만 찾을 수 있는 능력이랍니다.

인지과학에서 무아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지점에서지요. 인지과학이 증명하는 바는 결국 우리가 매번의 경험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창발된다는 것, 매번의 사건과 더불어 변이되는 존재라는 것이니까요.
채운 쌤 말씀대로, 그러므로 수행이란 결국 매번의 다른 경험들을 고스란히 겪어내는 것에 다름 아닌 듯합니다.
하나의 해석 체계를 고수하는 한 그 어떤 대단한 경험들을 무시로 겪는다 해도 범부는 그로부터 깨지고 (같은 말이지만)배울 수 없습니다. 대단한 인생 역정을 걸었다 자랑하는 그 많은 분들 성인이 아닌 건 그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경험을 겪는다는 것, 그것은 채운 쌤 표현대로 경험에 충분히 주의하는 것인 듯합니다.
선판단 없이, 기대 없이 지금 닥쳐온 일을 보고 겪는 것. 불교에서 내내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거였죠.

그런데 인간이 가장 안 되는 게 그거란 걸, <인지과학>에서 살짝 한 문장 언급한 아비달마 학파 사이의 무시무시한 논쟁이 보여주죠.
부처의 말씀을 해석하는 가운데 죽고 죽이고… 채운쌤 말씀대로 자기 논리, 자기 정당성을 확인받지 못하는 것을 죽음보다 싫어하는 게 인간인 모양이니, 무아를 인간적임에서 벗어난 상태라 이해해도 그리 오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자, 다다음 시간에는 인지과학 끝까지 살펴볼 건데요, 발제는 7장 현옥쌤, 8장 락쿤쌤, 9장 저, 그리고 마지막은 은남쌤께서 맡아주시겠습니다.
당장 다음 시간에는 드디어 금강경 끝까지 읽습니다. 마지막까지 부디 초발심 가지고서 읽고 만납시다. ^^
후기는 미영쌤, 간식은 은남쌤~
다음 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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