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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 주역수업(06.18)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6-23 23:57
조회
1109
오늘의 괘는 진괘(晉卦)예요! 진괘의 ()’나아갈 진()’ 자의 뜻을 가집니다. ‘크게 성하다(大盛)’는 뜻을 지녔던 대장괘의 다음에 오죠. 그래서 요 순서를 ‘장성해진 후에는 반드시 나아가야 한다(盛壯則必進)’고 설명해요. 전체적인 모양으로 보면 위에는 리괘(離卦) 아래는 곤괘(坤卦), 그러니까 밝은 빛이 땅 위에 있는 것(明出地上), 땅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양(日出於地) 같은 걸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진은 괘사의 내용부터 멋진데요. 진은 나라를 잘 다스리는 제후에게 좋은 말을 많이 내려주고, 그와 낮에 세 번이나 만난대요(晉 康侯 用錫馬蕃庶 晝一三接). 이 정도로 인재를 가까이 하고, 적합한 보상으로 그의 수고를 잘 격려해 주는 어진 군주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어요. 여기서 상괘인 리괘가 밝게 빛나는 어진 군주(大明在上)이고요. 하괘의 곤괘는 순종하는 마음을 다해 군주를 보필하는 신하(下體順附)라고 보는 것이에요. 제후가 왕을 받들고 있는 형상(諸侯承王之象)이죠. 정성을 다해서 군주를 보필하는 신하에게 군주가 할 일은 아낌없이 좋은 것들(여기선 명마 여러 마리)을 나눠주는 것이죠.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에 세 번이나 만난다는 이런 건전한 군신관계를 표현하는 단어로 ‘총우(寵遇)’라는 말이 쓰였던 게 기억이 나요. 총애(寵愛)한다는 표현은 우리도 쓰잖아요? 총우의 말뜻을 사전을 찾아보면 남달리 귀여워하고 사랑하여 특별대우를 하는 것이라고 풀이되어 있네요. 이렇게 총우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 임금과 총우를 받는 신하, 둘 다 얼마나 좋을까요. 우샘께서 원래 일이 잘 풀리기 위해서는 타고난 자질이라든가, 뼈골 빠지는 노력 같은 것도 필요하지만, 이렇게 , 아래, 옆의 관계들도 중요한 요소라고 하셨어요. 물론 이런 모든 것들이 잘 안 갖춰진 불우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정(貞)하게 자기를 잘 지키기만 해도 괜찮을 수 있긴 하지만요. 아무튼 진괘는 이렇게 좋은 관계들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괘라고 할 수 있겠어요.

여기서 초육의 내용만 잠깐 언급하면요. 초육은 나아가든 나아가지 못하든 정을 잘 지켜내면 길하고요(初六 晉如摧如 貞 吉). 윗사람이 믿어주지 않더라도 여유를 갖고 기다리면 허물이 없게 된대요(罔孚 裕 无咎). 효사를 읽기만 해도 좋지 않나요. 내가 나아가느냐 나아가지 못하느냐, 즉 어떤 갈림길에서 A를 택하느냐 B를 택하느냐 자체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죠. 우리는 A, B의 선택 자체를 중요하게 보기 쉽지만, 그 선택보다는 그 선택을 하는 마음의 태도가 우선이라는 거죠. A를 가든, B를 가든 자신을 바르게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기를 잘 지키면 무사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나서도 그 길을 걷는 중에 윗사람(내 입장에서 중요한 사람)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수도 있어요. 오해를 받는다거나, 해명하기 어려운 의심을 받는다거나, 신뢰를 받지 못한다거나? 그럼 당연히 억울하겠죠. 하지만 정샘은 말해요. 아래에서 이제 나아가기를 시작하는 입장인데(초육은 맨 아래잖아요) 어찌 깊은 신임을 얻을 수가 있겠냐고요. 이럴 땐 마음을 편히 하고 스스로를 잘 지켜서(安中自守) 화목하고 너그럽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雍容寬裕) 윗사람의 신뢰를 구하기를 서두르지 말아야(无急於求上之信也) 해요. 이럴 때 원망이 싹트면 안 돼요. 이 원망하는 모습을 원망할 행(悻) 자로 표현했는데요. 이렇게 ‘행행’하면 원망이 얼굴에 드러나서 윗사람이 다 알게 되고 일이 잘 안 풀리게 되어 있대요. 여기서 원망하는 마음을 잘 숨기라는 단기적 해결책이 아니라,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말고 자신을 지키며 여유 있게 기다리라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음에 주목해요. 물론 말처럼 이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아무튼 안중자수(安中自守 : 마음을 편히 하고 스스로를 잘 지킨다)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든 마음에 새겨두면 좋은 말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정샘의 주 중에서 찰찰(察察:지나치게 꼼꼼하고 자세함)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맥락이 무척 재미있었는데, 사전검열을 당한 관계로 예시를 곁들인 생생한 설명은 생략하려고 해요(진괘의 육오 참조). 주인공으로 삼고 싶었던 분이 초상권(?!) 침해 비스무리한 걸 외치셔서 이 부분은 효사에 대한 설명만 하고 넘어가도록 할게요. 아무튼! 진괘의 육오는 위에서 밝게 비추고 아래에서 모두 순종하는 진괘에 속해있기 때문에 후회가 없어요(六五 悔亡). 그러니 실과 득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랫사람들에게 믿고 맡기면 길해서 이롭지 않음이 없대요(失得 勿恤 往 吉 无不利). 군주 자신이 아무리 뛰어나고 현명하다 하더라도, 아랫사람들을 믿고 맡기지 못하고 일일이 잔소리를(찰찰) 해 버리면, 아랫사람들은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안 하게 되고 자신도 뼈골 빠지게 힘들다는 거예요. 이럴 땐 그냥 모든 걸 스스로 하려고 하지 말고 크게 보고 아랫사람들을 믿고 맡기라는 거죠. 그러면 길하다는 군요. 그러고 보니 진괘는 시작도 마무리도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으로 끝맺는 것 같죠? 여기선 물론 임금과 신하의 관계로 묘사했지만요. 사랑하고 신뢰하여 일을 맡기되, 그 일의 결과에 대해 아낌없는 보상으로 격려하는 윗사람과, 또 반대로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해주는 윗사람을 믿고(그 전에 믿음을 얻기까지 원망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묵묵히 기다리고) 최선을 다해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라가는 아랫사람의 관계는 정말 많은 곳에 확장해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믿음과 사랑으로 밀고 끌어주는 좋은 관계들을 잘 만들어 가 봅시다. 규문에서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요.

지난 토요일까지 4학기 수업을 마쳤고요. 이번 주 토요일엔 주역 수업을 쉽니다. 그 다음 주부터(7월 2일부터) 새로 5학기 수업이 시작되니 참고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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