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예술 톡톡 4강 "아름다움은 삶에 대한 위선이다! (Feat, 루쉰)"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6-06-26 23:12
조회
676
이번에 케테 콜비치의 판화를 보면서 그녀는 어떤 것을 봤을까? 그녀의 판화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은 어디일까?를 생각해봤습니다. 들뢰즈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자들, 한없이 낯선 존재들의 언어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주목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케테 콜비치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습니다. 앞선 전쟁에서는 아들이 죽었고 뒤따른 전쟁에서는 손자가 죽었습니다. 그녀는 격변의 시대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봤습니다. 더군다나 의사인 남편을 따라 노동자들과 빈민을 치료했기에 매우 근접한 거리에서 그들의 삶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을 판화에 옮겼습니다. 전쟁과 혁명에 내몰리는 사람들, 그곳에서 죽은 자식들의 시체를 보는 부모, 심지어 죽음이 자신의 아기를 데려가고 있음에도 어찌할 방법이 없이 그저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가 그녀가 주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케테 콜비치, <죽음>

케테 콜비치, <죽음>

케테 콜비치의 판화를 보면, 대체적으로 아이의 얼굴은 밝고 나머지 가족의 얼굴은 어둡게 칠해져 보이지 않거나 눈동자가 그려져있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2가지의 추측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도저히 그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그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시대가 쏟아낸 아픔이 한 사람의 얼굴에 머물 때, 자신 역시도 그 아픔을 느꼈기에 정면으로 마주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표정을 그려버리는 순간 그들은 특정 '개인'으로 규정되기 때문입니다. 얼굴을 그리지 않음으로써 정체를 나타내지 않고 소속감을 느끼지 않게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끊임없이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앞선 시간에서 살펴봤듯이 우리는 추한 것 그리고 소유할 수 없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삶을 보다 강렬한 것으로 변환"시킵니다. 케테 콜비치의 판화는 유화에 비해 화려하다고 할 수도 없고 세세히 그렸다고도 할 수 없지만 어느 것보다 그 시대를 잘 보여줍니다.

들라크루아, <봉기>    케테 콜비치, <돌격>

들라크루아, <봉기>                                                                                         케테 콜비치, <돌격>

루쉰은 혁명을 하지 않는 것에 증오했지만 동시에 혁명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죽어가고 있는데 소위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허울 좋은 말을 하며 자신의 목숨을 우선시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들의 희생이 과연 당연한 것일까? 혁명의 과정 속에서 무고한 이들의 목숨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케테 콜비치 역시 이러한 점을 주목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판화는 들라크루아처럼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내모는 사람, 내몰리는 사람, 괴성을 지르며 돌격하는 사람들,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모습을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위선이었을까요? 그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과연 세상이 다채롭게 보였을까요? 누군가는 나중에 혁명을 기억할 때 낭만과 아름다움으로 기억할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는 가슴 아파할 수밖에 없는 시대일지도 모릅니다. 케테 콜비치는 판화로 적확하게 표현해낸 것입니다.

채운쌤 왈, 예술가는 그 시대에서만 포착할 수 있는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케테 콜비치는 사람들이 감정을 느끼기 이전에 무수히 많은 인간적 가치가 빠져나가는 것을 주목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얼마나 많은 비인간적 가치로 이루어져 있는 것일까요? 그것을 감각하기란 한없이 어렵겠지만,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는 한 진부함의 반복적으로 생산할 뿐이겠습니다. 4주 동안 강의를 들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났던 것이 초, 중학교 때 그림을 잘 그리려고만 했던 기억입니다. 당시에는 최대한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제 눈이 높았던 것인지 손가락이 눈을 따라가지 못한 것인지 영~ 꽝이었습니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 어떤 느낌을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니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게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쉽게도 큰 변화는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생각하려 하고 느끼려 하는 노력이 있다면 개미 한 발자국 정도의 진취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전체 4

  • 2016-06-27 20:04
    올~ㅋㅋ그림까지..! 빡규 같이 계속 공부하자~

  • 2016-06-27 20:14
    빡..규..? 아무튼 그림까지 들어간 후기라니, 굿굿!! 무조건 같이 가는 것으로! 찜ㅋㅋ

  • 2016-06-28 00:05
    규창아! 돈 대충 벌고 빨리 오니라. 기다린데이~

  • 2016-06-28 10:10
    우리 공부터에 이런 보석같은 젊은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니, 함께 공부하는 늙은이(젊은이의 댓구로서의^^) 로서 무한한 영광이옵니다요!!
    열공해야겠다는 마음도 새로 다지게 되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