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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동사사독 - 들풀 후기입니다.

작성자
민영
작성일
2016-06-27 17:46
조회
743

안녕하세요. 민영입니다.


6월의 마지막 수업. 우리는 루쉰의 [들풀]과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을 읽고 만났습니다. 우리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글에서 루쉰이 느낀 죽음으로 시작되는 깊은 적막과 어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채운쌤께서는 그러한 적막과 어둠은 루쉰의 것만이 아니라 요시미의 것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채운쌤이 말씀하신 의미를 찾기 위해 요시미의 글이 우리들에게 울림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요시미가 쓴 루쉰의 글은 요시미가 겪은 일본의 상황들과 개인적인 상황들이 루쉰의 글을 만나 공명하고 질문이 됐기 때문에 우리가 울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시미의 글에서 루쉰의 적막과 어둠과 함께 그의 적막과 어둠 또한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루쉰의 글을 통해 자신을 만나고 질문으로 까지 이어져 자신의 글로 루쉰을 표현한 요시미를 바라보며 우리가 공부할 때 가져야하는 태도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루쉰의 글들을 죽은 언어로 남게 하지 않으려면 루쉰의 글과 현재 나의 질문이 만나는 접점으로 시작해야 한다 것! 요시미가 쓴 루쉰의 글을 통해 공부하는 자세를 다짐하여 이번 수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루쉰이 들풀을 쓸 때는 폐병을 앓고,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동생과도 갈등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이때 루쉰은 안, 밖에서의 절망스러움과 함께 죽음이라는 문제에 가까워졌습니다. 하지만 루쉰은 죽음이 그에게 깊이 들어왔을 때 부정적인 것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루쉰의 태도를 불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금강경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 응당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뜻은 아무것도 없음의 인정과 무(無), 고(苦)에 대한 자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고통스럽다’ 라고 자주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고통은 자신이 적당히 무너질 정도에 도달했을 때 나오는 소리일 뿐입니다. 즉 내가 덜 상처받기 위해 고통스럽다는 말로 고통 주는 것을 그만두는 것 이고, 이것은 곧 고통을 자각하지 못함으로 이어집니다. 진짜 고통을 자각한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이상도, 망상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고통스럽다’라는 말에도 기댈 곳 없을 때 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루쉰은 이런 무(無)를, 고(苦)를 자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각으로만 끝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살고 싶을 마음이 간절하게 드는 순간은 죽음을 깨달았을 때인 것처럼, 루쉰은 죽음 안에서 삶을 보았습니다. 죽음으로 삶을 보는 것. 그것을 루쉰은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루쉰은 죽음의 문제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다케우치 요시미는 ‘모순’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루쉰에게는 그것이 함께 있을 수 없는 모순이 아니라, 어둠이 존재할 때 비로소 볼 수 있는 빛처럼 죽음을 통해서만 삶의 볼 수 있는 ‘하나로 존재하는 역설’ 이었습니다.


'지난날의 생명은 벌써 죽었다. 나는 이 죽음을 크게 기뻐한다. 이로써 일찍이 살아 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죽은 생명은 벌써 썩었다. 나는 이 썩음을 크게 기뻐한다. 이로써 공허하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제목에 부쳐]- p23'


들풀을 여는 이 글에서 그의 자각은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고(苦)에서 벗어난 죽음을 기뻐하고, 그 죽음은 살아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에 기뻐합니다. 이러한 자각을 통해 고(苦)와 무(無)를 철저하게 인식하여 썩음이라는 무너짐에도 그는 슬퍼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루쉰이 무를 자각한 것이고 무를 바라본 태도라 볼 수 있습니다.


‘죽음을 덮쳐드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 동시에, 생의 존재감도 깊어졌다. ’


‘메마른 사막에서 초목이 안간힘을 다해 뿌리내리고 땅속 물을 빨아들여 푸른 숲을 이루는 것은, 물론 제 자신의 생을 위해서이나, 지치고 목마른 나그네는 잠시나마 어깨를 쉬일 처소를 만난 것에 기뻐한다. 이 얼마나 감동적이지만, 슬플 일인가!? ' - [일각]- p98, 99’


죽음과 생의 존재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으며, 죽음을 응시하는 것과 삶을 응시하는 것이 같음을 나타내는 [일각]의 문장에서도 그가 바라본 삶과 죽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것들이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이상과 아름다운 것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영원하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고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치고 목마른 나그네가 쉴 수 있는 처소여도 감동적이지만 슬프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젠가 없어질 뿐이라는 것을 이미 안 자가 할 수 있는 건 글로 말해주고 그럼에도 가야한다고, 살아가야 한다고를 말해주는 것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습니다. 니체가 아름다운 것들만 비춘 달이 아니라 암흑, 보이지 않는 심해도 비추는 태양을 사랑했던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내가 암흑 속에 가라앉을 때에, 세계가 온전히 나 자신에 속할 것이오.[그림자의 고별p30]’


니체의 글과 루쉰의 [그림자의 고별]을 보면서 우리는 루쉰 또한 태양처럼 밝음과 어둠을 계속 방황하며 그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자기 자신을 그 암흑 속에 가라앉힐 수 있었던 루쉰의 태도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암흑 속에 가라앉힐 수 있는 자세는 니체가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를 통해 니체 자신을 바라본 것과 동일합니다. 세상을 통해 자신을 본 루쉰의 자세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나의 모습이 있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 속에 자신이 증오했던 지식인과 죽어가는 자들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곧 자신임을 깨닫고, 그것들과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루쉰은 무(無)를 이해하고, 세계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을 비판하는 것밖에 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이와 동시에 루쉰은 세계가 곧 자신임을 안 이 자세를 통해 누군가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고 누군가의 슬픔을 함께 슬퍼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체험할 수 없는 것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글이 없는 자들의 낱말 없는 단어를 들을 수 있게 되어 그들을 위해 문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 안의 세계 모두를 이해하며 그것을 문학으로 표현했던 루쉰과는 다르게 소세키에게 문학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다음 시간부터 다시 소세키로 돌아갑니다. 다음 시간에 공부할 책은 소세키의 [명암]입니다. 소세키 마지막 시간에 읽었던 [마음]과 연결해 읽어오는 과제와 루쉰의 명암과는 다른 소세키가 말한 명암은 무엇일지 생각해오는 과제 잊지마세요! 벌써부터 겁이 나지만 다시 소세키를 시작해보아요~


모두 6월 마지막 주 잘 보내시고 7월에 뵙겠습니다!


다음 주 읽은 책은 소세키의 [명암]입니다.


소세키 [명암] 발제는 민호입니다.

전체 6

  • 2016-06-27 20:03
    와 성실한 후기! 고통을 자각한다는 것. 멋있고, 어렵고.. 그동안 약간은 소세키가 그리운 마음이 있었는데, 막상 지금에 오니 루쉰이 아쉽네요...

  • 2016-06-27 20:21
    한꺼번에 책주문한 게 목요일배송되면 넘늦겠어서 취소하고 명암만 직접사러 왔는데, 광화문 교보, 반디루니스, 영풍 모두 재고없음, 다시 인터넷 주문하고 집에가는 길.. 꺼이꺼이..

    • 2016-06-29 22:54
      쌤 저도 상황이 똑같은데요 도서관에서 빌렸어요..쌤 사시는 동네 도서관에서 얼릉 빌려오세요.

  • 2016-06-28 00:09
    민영이는 일신우일신하는구나!^^ 다소 거칠게 정리되긴 했다만, 성실함이 느껴진다. 한때는 니가 요순이 라인이었으나, 이젠 명실상부 요순이가 민영이 라인!(요순아, 보고 있냐..)

  • 2016-06-28 08:42
    좋네요. 걱정을 하더니, 아주 훌륭하군요. 정리하면서 그간 공부한 루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거고요~~~^^ 자자, 민영이 바통을 이어받아 담번에 후기를 쓰실 분~~! 기회는 단 두번~~~^^

    • 2016-06-28 16:35
      (정색하고) 단 두 번뿐인 기회, 하동샘 한 번, 태욱샘 한 번 하심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