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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실을 해야 되지 않겠니' - 주역수업(4.23)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4-27 14:34
조회
615
오늘은 턱 모양을 나타낸다는, 재미있게 생긴 이괘(頤卦)입니다. 맨 아래와 맨 위에만 양이 있고 가운데 네 개가 모두 음효여서,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정말로 벌어진 턱처럼 보여요. 이전에 배웠던 서합괘와 모양새만 비교해 보면, 서합괘는 입 안에 이물질(양효 하나)이 있었잖아요. 이괘는 입 안에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재미있는 건, 이괘는 모양새로는 턱의 모습을 나타내긴 하지만, 다소 엉뚱하게도 기른다()’는 뜻을 지닌다는 거죠. 요것도 약간의 열린 마음을 가지고 생각해보면요. 열심히 턱 운동을 해서 -> 음식을 섭취한 것이 -> 영양분이 되어 -> 존재를 기른다고 생각하면 뭔가 연결이 되는 것도 같죠? 하핫. 주역을 읽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작대기 몇 개로 온갖 다양한 것들에 연결시킬 수 있었던 엄청난 상상력’을 ‘어떻게든 이해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괘는 위에는 간괘(艮卦), 아래는 진괘(震卦)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그러니까 위에는 멈춰있고() 아래는 움직이는() 모양이라는 거죠. 살아 움직이는 해골 같은 게 나오는 만화나 영화 같은 걸 생각해보시면요. 턱 아랫뼈만 위 아래로 덜렁거리면서 움직이고 턱 윗뼈는 머리뼈 전체에 붙어서 고정되어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떠오르실 거예요. 그러고 보면 ‘양음음음음양’의 전체 모양뿐만이 아니라, 위가 멈춰 있고 아래가 움직인다는 뜻까지 포함시킨 이 짜임새가 정말 과학적으로 느껴지지 않나요. 전 사실 좀 감탄했거든요!

 

항상 큰 스케일의 발상을 보여주는 단전(彖傳)으로 가면요. 아니나 다를까. 이괘의 ‘기른다’는 의미는 천지에까지 확장되어서요. 천지가 만물을 기르는 것처럼(天地 養萬物) 성인이 현명한 인재를 길러내고(聖人 養賢), 이 은택이 만민에게까지 확장되어(以及萬民) 아름다운 천하를 만드는 꿈을 펼쳐내요. 그리고 ()의 시대는 참 위대하다(頤之時 大矣哉)고 찬양하죠. 군주 한 사람이 그 넓은 중국 땅 전체를 다스리긴 어려우니까, 관리들을 파견해서 각 지역을 다스리게 하는 건데요. 현명하고 지혜로운 지식인들을 잘 발탁해서 그들에게 권력을 나누어주고 과감하게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것까지가 군주의 임무인 거예요. 그러면 자연스레 그 인재들을 통해서 만민에게 은택이 베풀어지게 된다고 봤던 거고요.

 

이괘에서 좀 중요하게 생각됐던 단어가 괘사에 나왔던 ‘구실(口實)’이라는 표현인데요. ‘사람구실을 제대로 한다’, ‘제 구실을 못한다’, 등의 표현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단어죠. 글자 그대로만 보면 입 안에 음식이 채워지는 것, 먹는 것일 테고요. 괘사에서는 ‘자구구실지도(自求口實之道)’, 그러니까 ‘스스로 구실을 구하는 도’, ‘스스로 자기 먹을 것을 구하는 도’라는 표현으로 나와요. 정리하면 ‘구실’은, 입을 채우는 것이고, 먹고 사는 것이고, 자신과 남을 기르는 것(養)이고요. 주역은 이 맥락에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를 문제 삼고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내가, 자신이 먹을 것을 어떤 방식으로 구하는가. 지금 우리시대의 말로 표현하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버는가. 얼마나 바르고 합당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는가. 내가 내 삶을 영유하는 방식이 과연 정()한가 부정(不正)한가. 와, 이렇게 생각하면 결코 쉽지 않은 문제가 되겠죠. 괘사로 돌아가면요. 이괘는 바른 것으로 해야 길하고요(頤貞吉). 먼저 다른 사람이 먹는 바(키워지는 것=頤), 그러니까 남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와, 자신이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는 방법을 살펴보면(觀頤自求口實), 그 선악과 길흉이 드러난다(善惡吉凶可見)고 했어요. 사람은 자신의 몸을 기르고(養身), 덕을 기르고(養德), 다른 사람을 기르고(養人), 다른 사람에게 길러지기도 하는(養於人) 존재예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정도(正道)’로써 해야 길()하게 된다고 주역은 딱 잘라 말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기른다는 말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면요. 사람은 자기 자신도 기르지만, 다른 사람도 기르는 존재라는 거예요. 물론 살다보면 나도 다른 사람에게 길러질 때도 있고요. 그러니까 사람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거죠. 이괘의 각 효사로 들어가 보면요. 자신과 남을 기르는 다양한 효들의 모습이 보여요. 천성적으로 힘이 약해서 다른 효에게 도움을 청하고 의지하는 것이 맞는 효(육사, 육오)도 있고요. 넉넉한 힘과 지혜를 타고났기 때문에 다른 효를 도와주는 것이 길한 효(상구)도 있어요. 자기가 갖고 태어난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을 부러워하면서(턱이 빠져서 남에게 감탄하고 있는 얼빠진 표정을 상상할 수 있죠!) 자신의 능력을 다 활용하지 못해서 흉하게 된 효(초구)도 있고요.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데도 자기보다 어린 동생이나 할머니에게 삥 뜯.. 아니, 얻어먹으려고만 노력하는 철없는 효(구이)도 있어요. 이렇게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세상을 살아가는 정말 다양한 방법들이 있지만요. 내가 어떤 방식으로 구실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지요. 이왕이면 바르고 당당하게 남을 도우며 살아갈 수 있지 않으면 좋지 않을까요!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갖기 위해서 오늘도 우리는, 이렇게 생각도 하고 공부도 하며 조금씩 멋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겠죠. 호홋.

 

 

p.s ① ‘호시탐탐’이 나오던 육사의 효사에서, ‘그 아랫사람이 바라는 요구사항을 계속 해주는 것이 허물이 없다’는 말이 나오죠. 여기에서 ‘계속 잘해주래요, 샘’, 하는 저의 요구사항에 채운샘이 흔쾌히 끄덕끄덕, 오케이를 하셨던 장면이 왠지 요즘 자주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당분간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② 우샘께서, 이괘의 육이가 능력이 되는 앤데도 남에게 얻어먹으려고 하기 때문에 흉한 것에 비해, 몽괘는 아직 어려서 막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도움 받는 게 당연하다고 하셨던 말씀에, 이상하게도 제가 왠지 안심이 됐던 기억도 있네요. 이것은.. 아, 몽이어서 다행이다, 정도의 기분..? 흠흠. 아무튼 별명을 잘 지은 것 같습니다.
전체 3

  • 2016-04-27 16:17
    내가? 끄덕끄덕? 흔쾌히?? 언제??? 기억은 전혀 없으나, 그날의 일을 굳이 더듬어보면... 니가 호시탐탐 부분에서 날 보면서 머라머라 하는데 내가 ㅊㅊㅊ했던 기억뿐....@.@ 놀러간다고 일찍 올려서 칭찬해주려 했더니, 이런 조작과 왜곡의 결말이라니!!

    • 2016-04-28 03:29
      샘 발 좀 봐야겠넹.. 물갈퀴가 있나..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시는 건가용.. 아님 오리..?

  • 2016-04-28 09:30
    주역으로... 언니 입을 채우고... 우리도 노나주..... ^..^!
    암튼 빨리 돌아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