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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를 피하고 싶었어(bgm. 태양을 피하는 방법 by 비)' - 주역수업(05.07)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5-09 16:10
조회
808


자, 오늘은 감괘(坎卦)입니다. 중수감(重水坎), 그러니까 물(水)을 나타내는 세 줄짜리 감괘가 두 개 겹쳐서 만들어진 여섯 줄짜리 감괘란 얘기죠. 감(坎)이란 글자에서 바로 알아차릴 수 있듯이 구덩이에 빠지는 것(), 험난()한 일 등, 괘에서 고생하는 분위기가 풀풀 풍깁니다.

젤 고생하는 대표적인 두 효만 꼽아보면요. 일단 구덩이 속에 빠져서 시작한 초육이 그 구덩이 속의 또 다른 구덩이(이중구덩이?!, 구덩이x2)에 또 빠져서 시작부터 흉(凶)합니다. 맞은 데 또 맞는 것만큼 아픈 게 어디 있겠어요. 초육 자체가 원래 유약(柔弱)한데다가 위에서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태랍니다(四도 음효거든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얘도 정말 불쌍하지만 마지막 상육의 경우는 훨씬 더 딱합니다. 몇 겹의 단단한 오랏줄로 꽁꽁 묶여서 가시나무 숲 속에 던져지는 거예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것도 심한데 거기서 3일도 아니고, 3개월도 아니고, 3년이 지나도 벗어나지 못한다네요. 정말 흉하지 않습니까. 거기에다 더 무서운 건, 이 ‘3년’이라는 것도 그냥 긴 시간을 나타내는 비유적인 말일 뿐, 진짜는 3년일지 10년일지 모를, 아무튼 기약 없는 오랜 시간 동안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원래 약한(陰柔) 애가 깊은 곳에 빠졌으니(陷之深) 헤어 나올 수가(不能出) 없다는 거죠. 사실 1과 6 사이에 있는 다른 애들(2,3,4,5)의 경우도, 다른 괘에서는 길하거나 큰일을 했을 만한 능력이 있는데도 간신히 끝내는 허물이 없거나(終无咎:4,5), 약간밖에 못 얻는(小得:2) 정도에 그칩니다. 일단은 움직이지 말라(勿用:3)는 경고를 받기도 하고요. 모두 감괘의 시대를 사는 죄로다가요. 감괘는 아무튼 험난한 고난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는 때니까요.

 

자. 아무튼 고난의 구렁텅이에 일단 빠졌습니다. 우리의 친절한 주역은 거기에다 대고 “구덩이에 빠졌으니 너 참 재수가 없구나. 힘들고 괴롭냐. 자업자득이니 고생 좀 해라”, 이렇게 모질게 굴지 않는다는 거 아시죠. 어떻게든 거기서 헤어 나올 방법, 내지는 그 구덩이 안에서 감의 시대를 잘 버틸 수 있을 만한 조언들을 아낌없이 건네줍니다. 그것이 바로 언제든 힘든 일을 당할 수 있는 인생,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붙잡아야 할 오늘의 배움인 것이죠.

 

괘사를 보세요. 이렇게 긍정적이라니, 이게 정녕 감괘의 괘사 맞나요. 감괘는 믿음()이 있어 마음으로 형통하니 행하면 아름답고 훌륭하게 될 것(習坎 有孚 維心亨 行 有尙)”이라 말합니다. 믿음, 내적 성실성, 마음의 충실함, ,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에요. 물론 괘상으로 보면 2, 5효에 양효가 있는 것을 실(實)한 것으로 보고, 가운데(中)에 믿음(孚信)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 것이지만요. 어쨌거나 역시 힘든 시기를 빠져나오는 것은 마음밖에 없네요. 아무리 힘든 시기를 거치고 있다 해도, 우리에게 이것(, 믿음, 내적 성실성, 마음의 충실함, , )이 있으면 우리의 마음이 형통해지고, 그 상태로 행할 때 아름답고 좋은 결과(嘉尙)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이럴 때 행동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그냥 계속 그 힘든 상황 속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다(不行則常在險中矣)고도 했어요. 물론 감괘 자체가 형통하다는 말은 아니겠죠. 바른 마음가짐을 전제로 해서, 그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뚫고 지나갈 때 형통해질 수 있다(可以濟險難而亨通)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요. 그 시기를 잘 통과하기만 한다면, 감괘의 시기도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죠. 오히려 힘든 일들을 극복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길러줄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된다는 거예요.

 

단전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하늘도 너무 높고 험준하여 다가갈 수 없고, 땅도 험난한 산천구릉이 있는 것처럼, 다스리는 자는 (그 자연에서 배운) 험난함을 써서 자신의 나라를 지킨다(天險 不可升也 地險 山川丘陵也 王公 設險 以守其國)고 했어요. 여기선 ‘하늘과 땅의 험준함을 본받아서 적의 접근이 어려울만한 높고 높은 성을 쌓아서 나라를 지킨다’는 그냥 단순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천지를 본받은 험준함으로 자기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말이 왠지 의미심장하지 않나요. 그 험난함을 나의 나라, 나 자신,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키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바꿔 말하면, 그 험난함이 오히려 나와 내 나라를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되고요. 그냥 힘들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자신을 지키고 성장시키는 데에 활용할 수 있다는 말도 되죠. 그래서 단전은 ‘험의 시대의 쓰임이 크다(險之時用 大矣哉)’고 말한 것이 아닌가요. 어려움도 그냥 어려움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이요.

 

대상전에 가면 군자가 감의 시대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건 바로 ‘덕행을 일관되게 꾸준히 행하고 바른 정치와 교화를 베푸는 일(常德行習敎事)’이죠. 어? 이건 지금까지도 맨날 하던 말 아닙니까. 네! 그렇죠! 제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힘든 일이 생겼다고 별다른 특별한 미션이 따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냥 평소에 하던 일을 계속 꾸준히 하는 게 답이라는 겁니다. 어려움이 오건, 어려움이 지나가건 그런 외부 조건에 상관없이, 군자는 원래 살던 그대로 자신을 닦고, 그러니까 매일매일 성실히 배우고, 그 배움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확장하는 삶을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죠. 자신의 가족과, 나라와, 천하에 확장되는, 자기 자신의 마음과 몸부터 바로잡는 공부 말입니다. 너무 단순하고 시시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래서 오히려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특별한 비결, 새로운 방법, 기발한 기술을 배울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냥 매일을 충실하게 살아가면 되니까요. 그러는 사이에 때가 차면, 어느새 감의 시대는 지나가고 우리는 좀 더 단단해져 있을 것이라네요.

 

돌아오는 토요일은 부처님 오신 날 등등(동사서독 에세이 발표..) 맞이 휴강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연휴 즐겁게 잘 보내시고, 고 다음 주에 만나요^^*
전체 5

  • 2016-05-09 18:00
    으흠... 니가 주역을 배우더니 '깊어졌구나'ㅋㅋㅋ 이렇게 이른 공지도 굿굿굿! 생각해보니, 지금 우리가 바로 감괘에 처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여러분 주역을 공부하면 얕디얕은 내면도 윤몽이처럼 깊어질 수 있답니다~^^

    • 2016-05-10 12:47
      깊어졌다는 말 다음에 이어진 ㅋㅋㅋ가 비웃음은 아니겠지요. 얕디얕은.. 과 같은 디스와 함께 나열되니 마냥 칭찬도 아닌 것 같은....

  • 2016-05-10 08:15
    구덩이에 빠지는 것과 같은 시대에 처한다.. 그저 괘 설명인데 마음조리며 듣고 있는 걸 보면, 감괘와 같은 상황에 얼마나 미리 겁내고 있는건가 보이는 것 같아요.. ㅋㅋ
    암튼 출구 없는 때는 없다! 설령 하던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일지라도! - 요 답아닌 것만같은 답도 늘 흥미롭습니다ㅋㅋ
    다담주에 보아요~~

  • 2016-05-10 11:27
    하~~~ 글고보니 요번주엔 빠진다는 연락도 못드렸군뇨. 이렇게까지 막나가진 않았는데~~ 쨋든, 고마워요. 덕분에 간신히나마 따라가고 있는 듯하여요.

    • 2016-05-10 12:49
      하동샘, 요즘 너무 바쁘신 거 아닙니까. 그립사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