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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문 일본 답사 | 6월 7일 교토 (교토 이곳저곳)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16-06-28 12:28
조회
1019
규문 일본 답사 | 6월 7일 교토 | 작성자 민영

교토 이곳저곳


 

3일차 일정 : 금각사, 료안지, 산주산겐도, 교토고쇼, 도시샤 대학 (윤동주, 정지용 시비), 기온거리

 

금각사

아침 7시 30분. 우리는 다같이 숙소에서 일본 가정식을 맛있게 먹고 출발했다. 숙소를 나가자마자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산을 쓰고 첫 번째 일정인 금각사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금각사에 도착하자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수학여행으로 금각사에 온 것 같았다. 그 친구들과 함께 금각사를 향해 걸었다. 금각사까지 가는 길은 자갈길이었다. 일본의 공원들은 자갈길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는 락쿤쌤의 이야기를 들으며 걷다보니 매표소가 나왔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들어가니 바로 금각사를 볼 수 있었다.

 



금각사라는 사찰의 이름처럼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금박이 가장 눈에 띠었다. '이 금박을 매년 입히는 것인가? 누구의 돈으로 하는가?' 이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나중에 찾아보니 혜원언니의 예상처럼 매년 교토 시민들의 세금으로 보수된다고 한다. 금각사를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다같이 사진도 찍으며 계속 걸었다. 걷다보니 잘 꾸며진 정원처럼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원래 금각사는 무로마치막부 시대에 아시카가 요시미쓰 장군의 별장이었는데 그가 죽은 뒤 유언에 따라 선종사찰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찰이기는 하지만 별장의 특징들이 잘 나타나 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로쿠온지(鹿苑寺녹원사)로 불리다가 금박이라는 더 큰 특징 때문에 점차 긴카구지(金閣寺금각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금각사를 다 보고 버스를 타고 다음 장소인 료안지로 향했다.

 

• 료안지

료안지를 향해 걷다보니 많은 연꽃이 피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료안지는 별장이지만 다른 별장들과는 다른 큰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정원이 풀과 나무, 연못 등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흰 모래와 돌로만 이루어져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방문한 날에는 비가 내렸다. 비가 조금씩 내리던 날, 그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채운쌤께서는 그 곳에 위치하고 있는 돌들 그리고 그 돌들을 감싸고 있는 풀들은 자연을 압축한 모습과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그렇게 의도한 자연이란 깔끔하게 다듬어 진 것들 속의 하나의 흐트러짐이라는 일본의 어떤 미적감각도 느낄 수 있다고 하셨다. 또, 정원의 모습을 방에서 바라보면 어느 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설명을 듣고 료안지를 다시 바라보니 처음봤던 것과는 또 다르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내 눈에 작게만 들어오던 것들이 전체적인 모습과 함께 큰 이미지로 다가왔다. 료안지는 15개의 돌이 있는데 돌 15개를 모두 찾기 힘들다고 한다. 당연히 나도 15개의 돌을 찾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자료를 더 찾아보니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반드시 한 개의 돌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깨달은 자만이 15개의 돌을 찾을 수 있다고!) 이는 인간의 불완전함에 관한 선종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돌 정원을 본 후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러다 락쿤쌤께서 손으로 가리키신 곳을 보니 빨간 통이 있었다. 이곳 료안지는 나무로 만들어진 곳이기에 혹시 모를 불에 대비하여 물통이 항상 비치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료안지의 돌과 모래의 배치도 아름다웠고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그 뿐만 아니라 사소한 곳에서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도 볼 수 있었다.



 

 

•  산주산겐도

교토역으로 와서 점심을 먹었다. 원래는 교토미술관을 가려고 했다. 미술관을 찾아가보니 내부 사정으로 인해 휴관을 했다. 그래서 그 옆에 위치하고 있는 산주산겐도로 목적지를 옮겼다. 이곳은 본당의 기둥사이가 33칸이어서 산주산겐도라고 한다고 한다. 내부는 아쉽게도 촬영이 불가능했다. 내부에는 가운데 제일 큰 천수관음좌상이 있었고 양옆으로 500개의 관음상이 있었다. 자리를 옮기며 작은 관음상들의 표정과 손짓 등을 보니 각자 다 다른 모습과 표정들의 섬세함을 볼 수 있었다. 관음상들이 가지는 의미를 전부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관음상의 모습을 보며 불교의 믿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부 관람을 끝내고 나오자 본당의 기둥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 앉아 사진을 단체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모습이 너무 예쁘다고 말해주시며 열심히 찍어주시던 채운쌤 그리고 비가오는데도 비를 맞으며 앉아서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준 일본의 남학생이 떠오른다.



 

 

• 교토고쇼 공원

 



산주산겐도를 다 보고 니죠성으로 향했다. 니죠성에 도착하니 4시 30분이었다. 관람시간은 5시까지였지만 4까지만 입장이 가능해 우리는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다음날 알았지만 그때 입장을 했어도 우리는 다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니죠성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크고 넓었다.)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락쿤쌤께서 가까운 공원이 있다고 말씀해 주셔서 그곳을 향했다. 그때는 이름을 알지는 못했지만 집에와서 찾아보니 교토고쇼 공원이었다. 이곳은 메이지 2년까지 왕이 기거하며 공무를 보던 왕궁이었다. 당시에는 관료, 귀족들의 저택들이 즐비했으나 이 저택들은 헐리고, 광대한 시민 공원으로 시내 중심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도 문이 닫혀져있어 공원의 가장자리만 돌고 왔다. 가장자리만 돌아도 충분히 컸는데 전체 크기는 92 헥타르라고 하니 엄청난 크기의 공원인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도시샤 대학

그 다음은 도시샤 대학을 갔다. 윤동주, 정지용 시인이 다닌 곳으로 그들의 시비가 그곳에 있다. 도시샤 대학은 우리가 첫날과 둘째 날에 갔던 동경대학교, 도쿄대학교, 와세다대학교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가진 학교였다. 옛 느낌을 가지고 있었고, 비가 와서 그런지 조금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가. 먼 일본의 대학교에 윤동주, 정지용 시인의 비가 있음을 눈으로 보니 마음이 조금 울렁거렸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쓰여진 비와 그 아래에 있는 추모의 물품을 보니 글을 통해 독립을 바랐던 그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마음에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윤동주 시인이 이 학교에 재학 중이던 때에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일본의 순사에게 잡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 지금 한글로 쓰인 그의 시 -  서시 - 가 적혀있다는 사실과 지금도 도시샤대학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기일이 되면 행사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게 다가왔다. 잠시 헤어졌던 은남쌤 가족분들을 도시샤 대학에서 우연히 만났다. 함께 대학교 카페에서 커피한잔을 마시고 우리는 숙소가 있는 기온 거리로 돌아왔다.



 

• 3일 째 밤 

기온에서 락쿤쌤이 8년 전 일본에 머무를 때에 많이 드셨다는 오랜 전통의 오코노미야끼와 맥주를 마셨다. 기온거리를 돌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 여행의 아쉬운 마지막 밤, 간단한 먹을거리와 함께 숙소 식탁에 둘러앉았다. 일본까지 소세키를 찾아온 만큼 그의 소설인 <몽십야>를 함께 보기로 했다. <몽십야>의 제 1야를 수영언니의 목소리로, 제 6야를 혜원언니의 목소리로 함께 읽었다. 혜원언니는 <몽십야>를 읽을 때 제 6야가 가장 좋았다고 했었다. 그리고 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각자의 가장 좋았던 장소들을 이야기하고 깊은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그리고 일본 여행의 세 번째 날을 마무리 했다.

 
전체 1

  • 2016-06-28 14:55
    아고~ 료안지와 도시샤... 무슨 전생사처럼 까마득하고나 >.< 내년에도 또 한 번 함께 갈 수 있음 좋겠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