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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부터 천하까지, 어긋나며 가는 길' - 주역수업(07.02)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7-08 01:19
조회
753
오늘은 두 괘를 조금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우샘께서 필feel을 받으셔서, 그리고 요즘 우리가 주역에 쬐끔 익숙해져서, 은근 진도가 쑥쑥 나가고 있거든요. 벌써 몇 주째 한 주에 두 괘 씩 나가고 있는 진도를 게으른 후기가 따라잡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락말락 하고 있어요. 아무튼, 그리하야, 요번 주 선택받은 괘는 지지난 주의 가인괘(家人卦)와 지난주의 규괘(睽卦), 이렇게 두 개의 괘입니다.

 

먼저 가인괘(家人卦)는 명이괘 다음에 오는 괘인데요. 서괘의 순서 설명이 참 재미있습니다. 밖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거나 다치고 부상을 당하면 반드시 안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상처를 핥으러 집에 오기 마련이라고요. 그래서 명이 다음에 가인괘가 온답니다. 가인괘는 집안을 다스리는 도(家內之道)라고 할 수 있는데요. 부모와 자식 간의 친함, 부부간의 의, 신분이나 연령 등에 따른 순서 등, 인륜과 이치를 바르게 하고 사랑과 마땅함을 돈독히 하는(正倫理篤恩義) 이 바로 가인의 도예요.

 

가인괘의 괘사는 짧고 강렬합니다. 가인은 여자가 정한 것이 이롭다(家人 利女貞). 여자가 바르면 가정의 도도 바르게 된다네요. 여기서 왜 여자만 가지고 그러냐, 하신다면 크게 할 말은 없습니다만, 일단 여자만 바르고 남자는 안 바르게 막 해도 된다, 이런 뜻은 아닐 거 아닙니까. 여기서는 나에게서 시작해서 가정을 다스리는 것 같이 사소해 보이는 것들부터(당시는 공적인 게 사적인 것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하던 시대였잖아요) 국가와 천하에까지 확장시켜 가는 바른 도에 대한 유가적인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오히려 가정을 다스리는 것이 결코 작지 않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무게를 두고 싶었던 거고, 당시 가정을 다스리는 데 큰 몫을 했던 여성의 역할이 강조된 것이죠.

 

단전을 보면, 가인은 여자는 안에서 자리를 바르게 하고, 남자는 밖에서 자리를 바르게 하니 남과 여가 바른 것이 천지의 큰 뜻(家人 女 正位乎內 男正位乎外 男女正 天地之大義也)이라고 했습니다. 천지의 이치는 음과 양, 남과 여, 안과 밖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건 여자는 왜 안이고 남자는 밖이냐가 아니라, 안이건 밖이건 구성원들이 각자 자리에서 마땅한 바른 도를 잘 지켜서 모든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겠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요즘 세상에서야 남자든 여자든 돈 벌 사람이 돈 벌고 집안일 할 사람이 하면 되는 거죠. 말이 나온 김에 단전을 마저 볼게요.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형은 형답고, 동생은 동생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아내는 아내다우면 가정의 도가 바르게 되니, 가정을 바르게 하면 천하가 안정된다(父父子子兄兄弟弟夫夫婦婦而家道正 正家而天下定矣)고 해요. 여기선 두 가지를 볼 수 있는데요. 하나는 이른바 정명(正名), 각각의 이름에 맞게 행동하라, 이름과 실질을 일치시키는 삶을 살라는 거고요. 다른 하나는 『대학』에 나오는 유명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그러니까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족, 나라, 천하에 이르는 순서로 다스리라는 거죠. 그러니까 천하를 다스리려 해도 내가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나와 내 가족부터라는 거예요.

 

제가 가인괘에서 가장 생각을 많이 했던 건, 가정을 바르게(엄하게) 다스린다는 발상과 마냥 따뜻하게 아낌없이 (감싸)주는 요즘 부모상의 괴리였어요. 특히 구삼의 효사를 보면 아버지가 너무 엄해서 가족들의 불만과 원성이 가득할 때, 너무 엄하게 했는지를 차라리 후회 하더라도 오히려 그게 길하다고 되어 있고요. 아버지가 너무 유순하고 편한 바람에 아내와 자식들이 희희낙락하게 되면 마침내는 부끄러운 일이 있게 된다고 나와요. 요즘 자식 말이라면 껌뻑 죽는 엄마 아빠가 가득한 세상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니 일단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마냥 좋다, 잘했다, 예쁘다, 하면서 다 해주는 요즘 부모들 아래에서 아이들의 인격이 정말 얼마나 훌륭하게 자라고 있는가 생각하면 그냥 가볍게 무시할 수 없기도 해요. ‘아버지가 나가시든 들어오시든 인사도 하지 않는 요즘 아이들’의 예를 웃으면서 우샘께서 말씀하실 땐 저도 많이 씁쓸했거든요. 그렇다고 일부러 인위적으로 없는 위엄을 만들어 위엄 있는 척을 하지 말라는 말도 상구의 전에 보면 나옵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원칙을 가지고,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니 정말 쉽지 않은 얘기네요.

 

아무튼, 가인괘에서는 ‘가정을 지키는 바른 도리’, ‘~답게 행동하는 것’ 같은, 익히 우리가 알지만 사실은 가장 어려운 이야기들을 해 보았어요. 그럼 그 다음에 이어지는 괘는 어떤 괘일까요? 바로 규괘(睽卦)입니다. 오잉. ()는 어그러진다()는 뜻인데요. 가인괘 다음에 왜 규괘가 오나요. 설명을 보면요. 가정의 도가 끝에 이르면 어그러지고 흩어지게 되어 있대요(家道 窮則 睽乖離散). 가족들이 마음이 안 맞고 흩어지는 것이 이치상 필연(理必然), 그러니까 반드시 그러하답니다. ‘영원히 아름답고 행복한 가족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할 때인 것이에요.

 

어쨌거나 규괘는 어그러진다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 뭔가 술술 풀리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다행인 건 괘사에서 주역은 아주 긍정적인 태도로 얘기해요. ‘큰일이 흉할 것이다’가 아니라 ‘작은 일은 길할 거(小事 吉)’라고요. 일단 이것을 명심하고서 괘의 모양을 보면요. 리괘가 위에, 태괘가 아래에 있으니까, 불은 위로 올라가고 연못의 물은 아래로 고이는 모양이 그려지죠. 사람의 몸으로 말하면요. 이 규괘와는 반대로 화 기운이 아래로 내려와서 발이 따뜻하고, 수 기운이 위로 올라가서 머리가 시원해야, 양 기운이 몸 전체를 잘 순환하는 건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을 ‘수승화강’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스트레스와 피로를 달고 사는 요즘 사람들은 보통 가슴 위쪽으로는 뜨겁고 하체나 발은 찬 상태로 (수승화강이 안 되어서) 오는 많은 병에 시달리죠. 이렇게 위에가 뜨겁고 아래가 차가운 채로, 그러니까 계속 뜨거운 기운은 위로만 가려고 하고 찬 기운은 아래로만 내려오려고 해서 두 기운이 아래위로 분리된 채 소통도 순환도 안 되는 아픈 몸의 상태가 바로 규괘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 거예요.

 

너무 안 좋은 괘잖아! 섣불리 판단해 버리시는 분이 아직 계신가요. 그동안 지켜봤던 주역은 전혀 반대되는 두 가지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거 아시죠. 규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어긋나고 나빠서 큰일은 안 되고 작은 일밖에 못한다고 실망하자마자 엄청 멋있는 이야기를 해요. 잠깐 단전을 보면요. 천지가 어그러져 있으니 그 일이 같으며 남녀가 어그러져있으나 그 뜻은 통하고, 만물이 어그러져 있으나 그 사정은 비슷한 것들이 있으니, 규의 때에 따른 쓰임이 크다(天地 睽而其事 同也 男女睽而其知 通也 萬物 睽而其事 類也 睽之時用 大矣哉)고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천지가 원래 살짝 어그러져 있는 거래요! 근데 그게 그 자체로 괜찮은 거고요! 여기서, 지구의 축이 살짝 기운 것 때문에 오는 덥고 추운 변화들도 떠올릴 수 있겠고요. 남자와 여자가 어그러지지 않아서 아무런 차이가 없는 똑같은 하나의 성이었다면 이런 다양한 조화나 연애의 재미가 없이 정말 답답하고 심심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죠. 만물이 다 조금씩 어긋나게 달라지는 지점들이 오히려 세상을 더 풍요롭고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거라는 말이죠. 어긋남을 통해서 물질을, 사물을, 세상을 구성하는 에너지의 강밀도의 다양한 변화가 생긴다는 거예요.

 

우리들은 서로 같은 점(同)만을 찾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려야만 편하고 재미있을 것 같지만, 막상 나와 똑같은, 혹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공동체보다는 온갖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다이내믹이 훨씬 더 넘치는 생명력으로 전체를 풍요롭게 만듭니다. 나를 마냥 편하게 하는 관계보다는 좀 불편하게 하고 나를 극하는 관계가 오히려 날 살게 하고요. 어떻게 보면 인생은, 대상전의 마무리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동이이(同而異)’의 온갖 관계들, 즉 같지만 다른, 같은 이치로 움직이지만 구체적인 흐름은 다른, 나와 완전히 다 같지는 않게 각자의 차이가 있는, 살짝 씩은 어긋난 관계들과 함께 조금씩 어긋나며 나아가는 길이죠. 어긋나 있기에 다양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며, 그렇게 때문에 항상 흥미진진합니다. 마무리가 훈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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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08 08:33
    으허허, 공부심 일으키는 후기와 함께 굳모닝....ㅋㅋㅋㅋ
    '동이이(同而異)', 읽은 기억은 없지만..... 좋구만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