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강좌

'항상 거기서 모두를 기다리는 우물이 되어' - 주역수업(08.20)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9-01 14:41
조회
688
돌아오는 토요일부터 3주간 주역수업이 방학인 거 아시죠?

추석명절이 지나고 나서 새 학기가 다시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3주 쉬는 동안 주역수업이 그립고 아쉬울 분들을 위해서! 그 간에 배웠던 정괘(井卦), 혁괘(革卦), 정괘(鼎卦)의 세 괘의 후기를 매주 하나씩 올리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름하야 방학기념 3주 복습 프로젝트! 하하. 그냥 배운 거 후기 올리는 게 당연한 건데 말해놓고 나니 엄청 거창하네요. 그냥, 세 개의 괘를 다 복습해 보자는 얘기였습니다. 이렇게 공언해놓고 나면 용두사미 윤몽이 나중에 마음이 바뀌든 상황이 어떻게 되든 자기가 해놓은 말에 묶여서라도 약속을 지키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그리하야! 오늘은 그 첫 날. 정괘(井卦)입니다.

 

정(井)이라는 글씨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은 말 그대로 우물이에요. 뒤에 나올 정괘(鼎卦)는 솥을 보고 만든 글자라는데, 이렇게 모양을 보고 만든 괘들을 상상하면서 내용을 따라가 보면 깨알같은 비유들에 재미가 쏠쏠하게 있습니다. 위에는 감괘라 물이고 아래는 손괘라 바람인데, 손괘가 음목이니 나무라고 생각해 보면, 물속에 나무로 된 두레박을 넣어 물을 떠 마시는 형상을 상상해 볼 수도 있어요. 물을 아래로부터 위로 퍼 올려야 마실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정괘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에너지, 위로 솟구치는 물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정괘는 괘사가 좋아요. 정은 사는 곳은 바뀌어도 우물물은 바뀌지 않는 것이니(井 改邑 不改井) 우물물은 없어지거나 많아져서 넘치거나 하지도 않고(无喪无得) 오가는 사람들이 우물을 자기의 우물삼아 마음껏 사용한다(往來 井井). 여기서 저는 무상무득(无喪无得), 그러니까 고갈되지도 넘치지도 않는 우물물의 항상성에 대한 이야기나, 왕래정정(往來井井)이라는 말, 오가는 자들이 우물을 우물로 삼다, 즉 오가는 자 누구나가 두루두루 마음껏 우물물을 마실 수 있게 한다는 말이 좋았어요. 이사를 하거나 마을은 옮길 수 있어도 한번 판 우물은 옮기지 않죠. 항상 그 자리를 변하지 않고 지키지만, 그렇다고 때에 따라 불어나거나 줄어들지도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퍼간다고 우물물이 고갈되거나 모자라서 인색해지지 않고요. 모두에게 넉넉하게 나눠주면서도 또 그것이 과해서 넘쳐흐르지도 않는 거죠. 딱 중도를 지킨 채로 항상성을 유지하는 우물 같은 사람, 언제나 다가가면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고, 지나가는 누구라도 편히 물을 쉬어갈 수 있게 해주는 사람, 다가가기 부담스럽거나 베푸는 걸 생색내서 마음 상하게 하지 않고 두루두루 자신이 가진 것을 베풀면서도, 몇 번 베푼 것에 금방 허덕이거나 해서 우물물이 줄어들지 않는 넉넉한 사람! 저는 여러모로 저 자신이 상(常)이라는 글자와 정말 거리가 멀다고 자주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에 더욱, 그리고 금방 차가워졌다 뜨거워졌다, 열정에 가득했다 허무함에 시달렸다, 조울을 널뛰듯 하기 바쁘기 때문에 더욱, 친한 사람 안 친한 사람 금 긋고 벽 쌓고(앗! 군자는 두루두루 사귀되 끼리끼리 편먹지 않는다(君子 周而不比)는 논어 구절이 떠오르는군요!), 좋아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 일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고는 금세 지쳐 나가떨어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특히 이 구절이 좋았나 봐요. 아무튼 여기서 우물을 닮은 군자의 특성을 ()과 주()라는 글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단전에 있는 말로 표현하면 정은 두루 먹여살리되 고갈되지 않고 무궁합니다(井 養而不窮也). 군자는 이런 정괘의 모습을 보고 백성들을 위로하고 서로 도울 것을 권한대요(勞民勸相). 우물의 덕이 두루 베푸는 것이니까요. 군자, 즉 다스리는 자가 백성들에게, 또 은혜를 받은 백성들이 서로에게 두루두루 베푸는, 모두가 우물의 덕을 넉넉히 갖는 아름다운 나라인 것이죠!

 

효사에도 우물의 특정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한 다양한 예들이 나오는데요. 상태별로 교훈들을 끌어내는 발상이 엄청 기발해요. 상상을 하면서 내용을 따라가면 재미있습니다. 몇 개 예를 들어볼게요.

 

초육의 경우를 보면요. 우물물에 진흙이 있어서 물이 더럽기 때문에 먹지를 못하고요(井泥不食). 그렇게 방치되고 오래된 우물은 짐승들조차도 와서 물을 먹지 않아요(舊井无禽). 상상만 해도 서글프네요. 여기선 음이고 아래에 거하는 초육의 특성과, 정응인 4에게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을 풀이한 것인데요.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물이 위로 올라올 수 없고, 만물에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不能濟用). 물은 일단 마실 수 있어야 하죠. 초육의 경우처럼 더럽거나, 정괘의 처음에 나오는 괘사의 경우처럼 두레박이 물까지 닿지 않으면, 물을 길어 마신다는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우물물의 존재 자체가 의미가 없게 돼요. 그럼 어떻게 되나요. 사람은커녕 동물들에게도 버려져 쓰일 수 없게 됩니다. 우물물의 미덕은 길어서 쓰는 것(濟用)에 있어요.

 

구이도 딱한 경우인데요. 우물물이 제대로 고여 있지 못하고 계곡물처럼 줄줄 흘러서 사람이 아닌 쓸데없는 두꺼비에게 물을 다 흘려보내주고 있는 형상이에요. 물동이에도 구멍이 뚫려서 물이 새니 제대로 물을 퍼마실 수가 없게 되어버렸네요. 얘도 초육처럼 우물의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이죠.

 

육사는 우물 주위에 벽돌 같은 것을 쌓아 우물을 잘 지켜줬어요. 그러니 당연히 허물이 없게 되고요.

 

구오는 차갑게 솟아오르는 깨끗한 물을 마시니 상쾌하고 즐거워요. 물맛이 좋고 깨끗하니 많은 사람들이 즐겨 마시겠죠. 이것은 널리 선정을 베푸는 중정한 왕의 얘기로 볼 수 있겠어요.

 

마지막 육의 자리는 실권을 잃은 자의 자리이기 때문에 보통 좋은 얘기가 나오기 힘든데요. 정괘의 경우 물을 맨 위로 끌어올려야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 상육을 엄청 좋게 얘기해줬어요. 우물에다 덮개를 씌우지 않아서 누구나 마실 수 있게 열어뒀으니 크게 선하고 길하다(井收勿幕 有孚 元吉)는 거예요. 우샘의 말씀으로 우물에 뚜껑을 닫아 자물쇠를 걸어놓는 것은 우물물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에요. 우물물의 정신은 널리 베푸는 것(博施), ()의 정신인 것이죠. 이것이 바로 정의 도를 완성하는 것(井道之成)이라고 하겠습니다.

정괘의 마지막은 처음부터 얘기했던 왕래정정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로 마무리했네요. 항상됨을 가지고 모두에게 넉넉히 베푸는 것, 우물물을 닮은 군자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럼 당분간 수업은 없지만 다음 주는 혁괘의 이야기로 여기서 만나요~
전체 2

  • 2016-09-01 15:50
    채운쌤 아니었음 오해할 뻔했네... 한 번에 해야 할 걸 세 번에 나눠서 하겠다는 말임? 난 너무 순진해 ㅋㅋㅋㅋㅋ

    • 2016-09-01 22:16
      별로 오해의 소지를 남겼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