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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고 때에 겉과 속을 한꺼번에 휙'- 주역수업(08.27)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9-08 17:25
조회
577
자, 오늘은 혁괘(革卦)입니다!

혁(革)이라는 글자는 원래 가죽이라는 뜻이지만, 변혁(變革), 크게 변화한다, 바뀐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사전에 들어가 있는 변화한다는 뜻은 주역의 혁괘 때문이라고 해요.

 

혁괘는 위에는 태괘의 연못, 아래는 리괘의 불이 있어요. 이 물과 불은 서로를 없애는(滅息) 관계로, 물은 불을 끓이고 불은 물을 졸여서 서로에게 큰 변화를 가지고 오는 거예요. 단전에 보면 이렇게 수화가 서로의 기운을 죽이는 것(水火相息)두 딸이 같이 살지만 서로 뜻이 잘 안 맞는 것(二女 同居 其志不相得)으로 비유해요. 여기서 두 딸은 바로 둘째딸인 리괘, 셋째딸인 태괘입니다(복습해보면 음괘가 맨 아래 있고 나머지 두 괘가 양괘인 손괘가 첫째딸, 두 번째에 음괘가 있는 리괘가 둘째, 세 번째에 음괘가 있는 태괘가 셋째죠! 반대로 첫째 아들은 첫 번째에 양괘인 진괘, 둘째아들은 두 번째가 양괘인 감괘, 셋째 아들은 세 번째가 양괘인 간괘고요).

 

혁괘의 괘사를 살펴보면요. 혁은 하루를 지나야 이에 믿음이 생기니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며 후회가 없다(革 已日 乃孚 元亨 利貞 悔亡)고 해요.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바로 이일(已日)이라는 표현인데요. 하루를 그치다 => 하루를 지나다. 요렇게 됩니다. 오늘 당장 하지 말고 하루 기다려서 하라고 하네요. 정샘은 기존의 것을 바꾸게 되면 사람들이 갑자기 믿기는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믿기를 기다려서 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혁의 변화에서는 일단 무엇보다 알맞게 뜸이 들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냥 되는대로 후딱 성급히 해치우면 형통할 수 없고 후회가 생길 수 있겠죠. 혁명도 준비기간이 필요합니다. 조급해진 마음을 내려놓고 알맞은 때가 오기를 신중히 잘 기다려야 해요. 그러고 보면 행동하는 것보다 기다리는 것이 훨씬 힘들고 어려운 일일 수 있겠네요.

 

그리고 괘사에서 또 한 가지 주의해서 볼 것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구삼, 구사, 구오의 효사에서도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와요.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얘기입니다. 이렇게 큰 변화를 꾀하는 시대엔 동지와 결속력이 일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혁명의 시대에 믿음이 없으면, 혁명을 강행한다 해도 보나마나 실패하고 말겠죠. 또 다른 각도에서 믿음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새 정치에 대한 신뢰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어요. 새로운 법이나 제도도 처음엔 사람들이 의심하고 따르기 힘들어할 수 있지만 시간이 오래되면서 차츰 믿음이 생기면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되죠. 그래서 옛날에 법령의 고지는 세 번은 하는 게 당연했다고 해요. 사람들에게 유예기간을 둬서 마음이 따라올 시간을 기다려줬다는 거죠. 이렇게 사람들의 믿음을 얻고 나면 변화는 성공한 것이 돼요. 결국 괘사에서 우리가 건진 것은 기다림과 믿음인데, 여기서 이 두 가지는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같이 가는 것 같네요. 바로 믿음이 생기기를 기다려주는 것!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잠깐 초구의 효사를 볼까요. 초구는 단단히 묶기를 누런 소의 가죽으로 했대요(初九 鞏用黃牛之革). 여기선 혁이 가죽이란 뜻으로 쓰였네요. 그럼 도대체 이건 무슨 말인가요. 정샘의 주를 참고하면요. 변혁의 시대의 큰일을 하려면 시기()와 자리()와 능력()이라는 삼박자가 맞아야 하고, 깊이 생각해서 신중하게 움직인 후에야 후회가 없게 돼요. 근데 초구는 자리도 아래이고 스스로의 자질도 아직 부족한데다가 리괘의 타오르는 불꽃처럼 위로 오르려는 조급한 마음인 거예요. 게다가 위에서 도움을 주는 손길도 없죠. 그런데 양의 자리에 양이 왔다는 걸로 자신이 바른 줄 알고 설치려고 할 수도 있는 애인 거예요. 이럴 땐 망동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말이에요. 그러니 까불지 못하게 꽁꽁 묶어 놓은 것이죠. 그것도 아주 튼튼한 소가죽으로 된 끈으로요. 스스로에겐 답답하고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사실은 이 속박이 자신에겐 가장 절실하고 고마운 도움인 것이에요.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고 상황을 살피며 가만히 잘 기다려야 하는 때니까요. 여기서 누런 소, 즉 황색()은 시중(), ()는 때에 따른 순종()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 짚어야 할 것,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되나요? 물론 아니죠. 어느 때고 움직여야 할 때는 지체 없이 행동해야 합니다. 타이밍은 지나면 놓쳐서 일을 그르치게 되고 말죠. 구삼의 효사를 보면요. 처음에 나아가면 흉했다 해도, 바르고 조심스럽게 때를 기다리다가 혁명의 여론이 세 번 취합되고 나면 믿을 만해지게 된다(征凶 貞厲 革言 三就 有孚)고 했어요. 이럴 땐 무조건 움직여야 하는 거죠. 꾸물거리고 있거나 자신 없이 머뭇거려서는 안 돼요.

 

이제 제일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할까요. 상육의 효사에서는 군자와 소인이 선명하게 대비가 돼요. 혁명의 시대에 군자는 자기의 부족함을 아름답게 새로 바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잘못을 고치고 나아지는 것이죠. 이것을 표변(豹變)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소인은요? 바로 혁면(革面), 즉 낯빛만 혁명합니다. 얼굴빛만, 겉모습만 엄청나게 바뀐 척 하지만 속은 그대로란 말이죠.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면서 변한 척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티가 안 날까요? 납니다. 군자는 소인의 이런 겉모습만 바꾼 걸 금방 알아챌 수 있어요. 하지만 소인의 혁면을 못 참아서 그것까지도 고쳐보겠다고, 완전히 새로 바꿔보겠다고 강제로 애써서는 안 돼요. 그러면 흉합니다. 우샘의 말씀에 따르면, 혁명의 완성은, 군자는 표변하고 소인은 혁면하는 것, 바로 그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아무리 군자라 해도 소인의 존재자체를 바꿀 순 없어요. 할 수 없는 걸 하겠다고 나서는 것, 그게 지나친 욕심이고 그러니까 흉한 것이죠.

 

그럼 혁명할 수 있는 명분은 어디에서 오나요? 바로 하늘, 천지자연으로부터 옵니다. 천지가 변혁하면 사시의 마땅한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듯이(天地革而四時成), 탕임금과 무임금의 혁명은 바로 하늘의 뜻에 따르고 사람의 뜻에 응한 것(湯武革命 順乎天而應乎人)이었어요. 여기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혁명(革命)’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바로 천명을 바꾼다는 거죠. 여름에 나무들이 푸르고 무성해지지만, 그 시간이 아무리 좋다 해도 계속 뜨거운 여름만이 지속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때가 되면 다시 기운이 바뀌고 낙엽이 지고 서늘해져야죠. 때에 따른 자연스런 흐름이라는 건, 그것을 구성하는 하나의 리듬이 마무리 되면 반드시 변화가 있고 다시 새 리듬이 시작돼야 해요. 그래서 주역에는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것이 기울거나 전복·해체되는 이야기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이죠. 어? 그러고 보니 지금껏 반복했던 바로 그 얘기인가요? 네, 맞습니다. 결국은 그 얘기죠. 주역은 이렇게 어찌 보면 빤한, 항상 하던 그 이야기를 다양한 예와 묘사들로 지루하지 않게 전달하는 매력이 있는 책인 것 같아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혁명을 재료로 해 보았습니다~ 다음엔 정괘(鼎卦), 솥 이야기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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