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문학톡톡 첫 시간, 후기

작성자
락쿤
작성일
2016-10-10 11:13
조회
415
문학 톡톡, 첫 시간~!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수경 쌤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우선, 수경 쌤은 문학작품을 읽는 과정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는데요, 이 얘기부터 전하겠습니다.

"문학에서 작가는 어떠한 세계가 궁금하고 그래서 허구적 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이 이러저러한 사건을 겪고 그러한 과정에서 분투하고 미끄러지면서 나름 자기 답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에서 그 답을 제시하지는 않죠. 또 중요한 것은 독자에게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해하기 바라면서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 어려운 것은 자기 경험과 더불어 질문을 길러 올려야한다는 것입니다. 교과서처럼 줄거리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숙지하는 문제가 아니죠. 독자의 지평에서 나의 질문을 논하는 겁니다. 각각의 해석이 있을 뿐, 해석에 답이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저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뿐입니다. 따라서 문학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닙니다. 자기 질문에 대해 말을 해야 합니다."

“작가는 작가대로 독자가 내 공을 받아줄 거라 생각하지 않으며 공놀이를 하고, 또 독자는 독자대로 그 공을 작가가 원하는 대로 공을 받아야하는 강박 없이 자기 식으로 공놀이를 하는 것을 말하죠.”

수경 쌤의 독해로 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다들 궁금하시죠!? 너무나 익숙한 소설이기도 한데요. 어떤 분위기로 이 두 소설을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수경 쌤은 두 소설을 ‘성장소설’ 같다고 합니다. 성장소설하면 시간과 더불어 인간이 어떻게 달라지고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데요. 어째서 이 소설이 성장소설이 될 수 있을까요. 수경 쌤에 따르면, 앨리스는 어떤 '나'도 되지 않는 소설이라고 합니다. 어떤 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로부터 미끄러져가는 것, 이것도 성장이지 않을까. 어쩌면 가장 성장과 가까운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표피적으로 아는 성장과 다르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의 장면을 떠올려 보면,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장면인데요. 앨리스가 토끼 굴 땅 속으로 떨어질 때, 가장 깊은 곳으로 멀리 떨어집니다. 거기서 앨리스가 줄어들고.. 커지고... 하는 것이 성장으로 볼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점점 커져가야 성장일 텐데 점점 작아지기 도 한다는 거죠. 우리가 생각하는 성장의 이미지는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크고 13살보다는 20살이 생각의 폭이 더 넓고 이런 것인데. 앨리스가 보여주는 것은 순차적인 성장이 아닌 크고 줄고 나가고 퇴보하는 이러한 과정이 공존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장으로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겁니다.
앨리스는 이러한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갑니다. 그 동안 알고 있었던 글자들, 자신의 이름, 모든 걸 잃어버리죠. 다른 모험소설들은 자기를 찾아가는 성장소설인데 반해, 앨리스는 자기의 기반이 흔들리는 소설입니다. 수경 쌤에 따르면, “앨리스는 단연 으뜸가는 행방불명자다.”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앨리스는 행방불명인”거죠. 그래서 소설이 스산한 것이지도 모릅니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또는 어렸을 때 동화책으로 보았던 귀여운 앨리스의 모습이 떠올려지시겠지만, 사실 책 중간 중간에 나오는 삽화는(특히 놀라고 있는 앨리스의 모습) 날카로운 선으로 묘사되어 그로테스크 한 느낌도 듭니다.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이라니 섬뜩 끔찍합니다. 이곳에서 경험들은 마치 꿈속에서 겪는 사건들과 비슷하고 이야기는 파편처럼 나열되어 있습니다. 다른 성장소설과 달리 땅속 풍경은 모든 것이 뒤집혀진 그 자체로 정말 이상한 나라. 앨리스는 “지상의 모든 규칙이 무너지고 파괴되는 것을 목격해야” 했죠. 그리고 자기 자신도 행방불명되고 맙니다.

그럼, 짝꿍 격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로 넘어가 볼까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좀 더 反주체철학에 가까워집니다(들뢰즈의 <의미의 논리>에서도 거울 나라 앨리스는 많이 거론되고 있죠). 앨리스는 여기서 탈 주체가 됩니다. 무수한 ‘나들’로 이뤄지죠. 앨리스가 주체일 때는 대상을 관조하기도 하고, 또 앨리스가 사물들과 같은 세계에 있으면 그들과 말을 하고 사건이 벌어집니다. 인간주체에서 벗어나 탈주체가 되면 사물들과 함께 새로운 사건을 겪게 되죠. 수업 중간에 앨리스를 주제로 한 영화를 잠시 봤는데요.(감독이름 생각 안 나요~) 아주아주 기괴합니다아~ 여기서도 그로테스크는 관객의 몫!!

“나는 어제보다 오늘 성장했습니다.”, “2센티미터 자랐습니다.” 심지어 “나는 앨리스입니다.”라고도 말할 수 없다. 나를 설명하는 모든 말들이, 분기하는 힘들 앞에서 맥을 가누지 못하고 흐늘거린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어제, 오늘, 나, 너··· 라는 기준점은 아무 쓸모도 없기 때문이다.”(수경 쌤 강의록)

앨리스가 경험하는 것은 의미를 구축하며 성장 해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소멸시켜 나갑니다. 나의 굳건한 의지, 집착, 나의 고유함을 나타내는 고유명사들은 이제 너무나 나약해지고 맙니다. 이야기를 조금 더 보태면, 거울 나라에서 앨리스는 체스 게임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것도 주체가 아니라 하나의 말에 불과하죠. 거기다 이 꿈은 체스 판의 레드 킹이 꾸는 꿈속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앨리스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레드 킹의 꿈 속 등장인물?

주체인 내가 선정되면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일련의 사건들은 내가 겪는 하나의 사건 일 텐데요. 여기서는 어디에도 ‘나’가 없습니다. 무수히 많은 ‘나들’이 동등하게 나열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나'로 되어-감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전 수업을 듣고 ‘성장’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성장하면 점점 발전 해 가는 모습, 아무래도 시간 순으로 점차적으로 나아지는 모습이 연상되는 데요. 그래서 어른하면 좀 더 아이들보다 성장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있었죠. 그러나 익숙하고 굳어버린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것을 ‘성장’으로 본다면, 나이와 상관없고 또 어디서나 매순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전제하는 것들이 매우 나약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담 시간에도 맛난 간식 먹으며, 재밌는 수업 기대하겠습니다~!!!
전체 3

  • 2016-10-10 13:11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ㅋㅋ 락쿤샘 목소리가 들리네!

  • 2016-10-11 10:09
    수업이 엄청 좋았다고 들었어요;ㅅ; 느무느무아쉽.. 락쿤샘 후기를 읽다보니, '나'라는 한 사람이 존재하고 있어서 먹고 생각하고 자고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간다는 분명해보이던 사실에, 그것이 정말 그런 걸까를 질문하게 만드는 것 ㅡ 요즘에 배우는 것들이 서로 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 신기해져요.

  • 2016-10-11 11:05
    체코의 영화감독 얀 스반크마이어의 <앨리스>입니다. 원제 .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시면 이미지나 영상 감상하실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