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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 겸손 & 기쁨 + 기쁨'- 주역수업(10.29)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11-02 12:36
조회
445


오늘은 손괘(巽卦)와 태괘(兌卦)를 조금씩 살펴보겠습니다. 손괘와 태괘는 뒤집으면 서로가 되는 짝인데요. 손괘는 음양양음양양, 태괘는 양음음양음입니다. 괘가 아래서부터 자란다고 보면 손괘는 음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태괘는 양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괘사에 손괘는 약간 형통(小亨)하고, 태괘는 그냥 형통()하다고 했어요.

 

손괘는 위아래가 모두 손괘이니 거듭 겸손히 따르는 분위기예요. 단전에 보면 ‘거듭한 손으로(重巽) 명을 거듭하나니(申命) 강이 중정에 따라 뜻을 행하며(剛 巽乎中正而志行) 유는 모두 강을 따르니(柔 皆順乎剛) 이것이 약간 형통한 것(是以小亨)’이라고 되어 있고요. 대상전에서는 군자가 이 연이은 바람(隨風), 즉 손괘를 보고 ‘거듭 명령하여 일을 행한다(申命行事)’고 했어요. 이것을 정샘은 명령을 거듭하고 나랏일을 행하는 것(申命令行政事)이라고 풀면서, 위아래가 모두 따른다(上下皆順), 즉 ‘위는 아래를 따라 명령을 내고 아래는 위에 순종하여 그에 따른다’고 설명했는데요. 이것은 12, 13세기의 성리학적 해석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요. 이전까지는 위에서는 명령하고 아랫사람은 그것을 따른다고만 했었는데, 이때에 이르면 위아래를 상호관계로 보면서 ‘상하가 서로 따른다’는 무척 파격적이고 진보적인 해석이 가능해졌거든요. 이것을 후에 보다 더, 엄청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계약관계로까지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고 해요.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얘기해보자면, 바람(風)이라는 것이 정치를 비유하는 말로 많이 쓰였다고 해요. 백성들은 그 바람에 따라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풀과 같은 존재죠. 민초(民草)라는 표현도 같이 떠올릴 수 있겠네요.

 

손괘의 효 두 개만 보고 지나갈게요.

먼저 초육은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이니 무인의 바름으로 하는 것이 이롭대요(進退 利武人之貞). 갑자기 왜 무인 얘기가 나왔을까요. 얘는 음이고 부드럽고 약한데다가 맨 아래에 있고 중하지도 않죠. 그 상태로 그렇지 않아도 겸손한 ‘손괘의 맨 아래’이기까지 하고요. 그러니 겸손함이 너무 과한 거예요. 그래서 딱하게도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상태로까지 되어 버린 거죠. 이렇게 겸손한 뜻이 태과하면 이제 두렵고 무서워하는 지경에 이르니 편안하지가 않게 돼요. 그래서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면서 따를 바를 분명히 정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합니다. 그러면 이때 그에게 필요한 것은 비유하자면 ‘무인의 바른 기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강하고 분명한 태도이죠. 무인의 굳세고 강한 뜻을 써서 마땅함을 따르라는 것이에요. 이렇게 노력해서 강하고 바르게 되면, 지나치게 두려워서 벌벌 떨면서 하게 되는 실수들은 없게 돼요. 이렇게 떨어진 자존감으로 인한 안절부절함에 대한 처방은 뜻을 다스리는 것(志治), 뜻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그럼 구이는 어떤가요. 처음에 구이를 보고 전 완전 깔깔 웃었는데요. 얜 겸손함이 지나쳐서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갑니다; 뭐 이런 애가 다 있나요. 얜 양인데 음의 자리에 있으면서 하괘에 속하니 지나치게 겸손할 만합니다. 정샘에 따르면 겸손이 지나치면 두려워하거나 아첨하고 아부하게 되는데, 이건 모두 바른 도가 아니죠. 그래도 다행인 건 구이는 겁은 많지만 원래 나쁜 마음이나 의도가 있는 애는 아니래요. 그러면 뭔가 이 상황을 바로잡을 해결책이 주어질 수도 있겠죠. 그래서 구이는 ‘사와 무를 쓰는 것을 많게 하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用史巫紛若 吉 无咎)’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史)와 무(巫)는 역사가와 무당, 이 당시로 따지면 점술과 관계된 지식인을 가리키는 말로, 몸과 정신을 깨끗하게 하고 정성을 다해야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었죠. 그러니 ‘사와 무를 쓰라’는 것은 ‘정성을 들이라’는 말인 거예요. 그 정성이면 사람을 감동시켜 움직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 구이는 사와 무가 하듯 정성을 많이 들이면 침대 밑을 기어들어갈 정도로 지나친 자신의 공포도 길하고 허물이 없는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자, 이제 태괘를 볼까요. 기쁘다는 뜻을 지닌 소성괘 태괘가 두 개 겹쳐져 만들어진 태괘는요. 단전에 보면 하늘에 따르고 인간에게 응하여서(順乎天而應乎人) 다스리는 자가 기쁜 일로 백성에게 먼저 하면(說以先民), 백성들이 온갖 수고로움과 죽음까지 잊고(民忘其勞, 民忘其死) 기꺼이 어려운 일을 무릅쓰기 때문에(說以犯難) 기쁨 중에서도 큰 것(說之大)이 됩니다. 이것이 정치의 가장 이상적인 판타지, 즉 백성의 자발성()이라는 것이죠. 정샘에 따르면 군자의 도는 그 백성들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천지의 베푸는 작용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면 그들이 기뻐하면서 복종하고도 싫증내지 않게 돼요. 여기서 정샘은 권(勸)이란 지배층을 믿고 노력하고 힘써서 순종하는 것이라고 풀었어요. 임금의 도는 사람의 마음을 기쁜 마음으로 복종하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입니다.

 

대상전에는 재미있게도 ‘강습’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군자가 태괘를 보고 친구들과 같이 강습을 한다(朋友講習)고 되어 있어요. 태괘는 연못이니까, 두 개의 연못이 나란히 있는 것은 서로를 적셔주고 윤택하게 하는 것(浸潤), 서로 불어나고 더해주는 모습(滋益)으로 본 거죠. 그것이 군자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서로 이익이 되는 것으로 보인 겁니다. 여기서 강(講)은 서로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고, 습(習)은 그 배운 바를 익히고 복습하는 것이죠. 저는 최근 규문에서 하고 있는 이런저런 공부의 장면들 - ‘격몽스쿨’에서 채운샘이 계신 것과 안 계신 것에 상관없이 모두가 평소처럼 공부를 하고 글을 읽던 것, ‘무지까라’에서 정말 무지한 것들(?)끼리 열심히 단어를 찾아와서 소세키의 글을 더듬더듬 읽은 후 단어들을 외우는 것, 건화선생(!)이 들뢰즈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 등등 – 이 떠오르면서 우리는 태괘의 도를 실천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기뻤습니다(說).

 

효들을 간단히 살펴보면요.

먼저 구이는 부태(孚兌), 즉 믿음이 있는 태여서요. 길하고 후회가 없습니다. 얘는 소인(음)과 가까이 있는데요. 소인과 함께 기뻐하면 원래는 당연히 후회가 있게 돼요. 하지만 구이는 강중한 덕을 지니고 있고 신의(孚信)가 있기 때문에 내면이 충만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소인과 가까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을 잃거나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잘 지켜요(自守). 같이 어울리는 자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이것이 바로 군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입니다.

 

육삼은요. 래태(來兌)라고 했는데요. 이때 래(來)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 즉 여기서는 가야할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을 의미해요. 육삼 자체가 음유한데다 중정하지 못한 자여서, 도(道)로는 기뻐하지 않는 자예요. 그래서 아래의 양과 가까이 지내면서 자신을 도가 아닌 방식으로 굽히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바르지 않은 방식으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육삼은 조금 사실적으로 저렴하게 비유하자면, 연하남(구이)을 유혹해서 사기를 치는 꽃뱀(?!) 정도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당연히 흉(凶)하겠죠.

 

마지막으로 상육은요. 인태(引兌)인데요. 여기서 인(引)은 당겨서 연장한다(長)는 의미입니다. 태괘의 기쁨이 끝나기를 바라지 않아서 연장하고 싶어 하는 것이죠. 기쁨의 시간, 자기 영향력이나 즐거움에 미련이 생겨서, 이제 새로운 리듬으로 돌아설 때가 됐는데도 그것을 끝내고 싶어 하지 않는 거예요. 주역을 배우신 분들은 너무도 잘 아시겠지만, 이게 가당키나 합니까. 상육의 발버둥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죠. 그가 집착을 하건, 기쁨을 연장시키려고 노력을 하건, 시간은 흐르고 리듬은 바뀌게 되어 있죠. 어떤 시대도 일정 시간 이상은 갈 수 없습니다. 어차피 바뀌어야 한다면 마음에서부터 일찌감치 놓아버리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길이죠. 우샘의 표현을 빌리면 가장 높이 올라가서 떨어질 때 낙차가 크기 때문에 크게 다칠 확률이 커집니다. 욕심을 많이 부리면 그만큼 잃는 게 많아지는 것이죠.

 

오늘은 괘 두 개를 정리했어요. (지난주의 여괘는 시스템상의 문제로 아무리 해도 올라가질 않아서 어제 혜원이가 그림파일로 올려줬답니다. 세 괘 모두 복습해주세요!) 벌써 주역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어요.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리듬으로 끝까지 함께 갔으면 좋겠습니다. 추운 날씨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토요일날 만나요.
전체 2

  • 2016-11-04 02:20
    태괘의 도를 실천한다는 얘기가 재밌네요 ㅋㅋㅋ 그리고 '상육'의 '인태'와 같은 말은 신기하게도 다른 철학들에서도 나오는데 알아도 쉽지가 않아요~ 행복에서 끝내고 싶어하지 않은 발버둥은 어차피 아무 의미가 없는데~ 행복이 끝난다고 바로 처참한 불행이 오는 것도 아닌데 사람은 왜 놓지를 못 할까요? 알쏭달쏭합니다.

    • 2016-11-06 23:36
      규창~ 그대를 주역의 세계로 초대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