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강좌

'건널때는 건너고 말때는 말고' - 주역수업(11.19)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11-24 18:22
조회
397


오늘은 64괘의 마지막 두 괘, 기제괘(旣濟卦)와 미제괘(未濟卦)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수화기제와 화수미제는 서로를 뒤집은 모양이죠. 기제는 양음양음양음, 미제는 음양음양음양입니다. 그러니까 두 괘 모두, 1과 4, 2와 5, 3과 6 각각이 서로 all 정응을 이루고요. 기제괘는 모두 양과 음이 자기 자리를 잘 잡고 있으니 all ()하고요. 미제는 모두 반대로 자리하고 있어서 all 부정(不正)합니다. 제(濟)가 강을 건넌다는 말이니까, 기제는 이미 강을 건넜다, 즉 일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뜻이 되고요. 미제는 아직 강을 건너지 못했다, 일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니까 주역의 맨 마지막은 미완의 상태로 끝나는 거예요. 이 열린 결말은 완전한 종결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겠어요. 실제로 우리도 미제괘에서 주역공부를 마무리 하는 것이 아니라(물론 마무리할 만큼 머릿속에 많은 것이 남아있지도 않지만요;) 중간의 계사전, 설괘전, 서괘전 등을 거쳐서 다시 곤건괘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살펴봐야하겠죠.

 

기제는 형통한 것이 적으니 정하는 것이 이롭고요(旣濟 亨 小 利貞). 처음엔 길하다가 마지막에는 어지러워집니다(初吉 終亂). 우샘께서 기제괘의 분위기를 설명해주셨는데요. 이 괘는 이를테면, 초반에 이미 다 이루어진 시대인 거예요. 태평성대인 것이죠. 이미 모든 것이 다 잘 돌아가는 시대에 태어난 것과 같아서 딱히 할 일이 없어요. 오히려 좋은 시대이기 때문에 일을 해봤자 작은 일밖에 이루지 못한다는 거예요. 부모님께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을 생각해 보면, 이미 아버지가 좋은 집과 좋은 차 등을 다 마련해 놓으신 거라고 볼 수 있죠. 근데 이렇게 풍요로운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오히려 5~60대에 고생을 하게 되면 그런 기반이 없던 사람들보다 같은 어려움을 훨씬 더 힘들게 겪는대요. 이런 예를 생각해보면 처음엔 길하여도 나중엔 어려워진다는 말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아요. 주역은 계속 잘되는 일은 없잖아요. 처음에 좋은 일로 시작했으면 당연히 뒤에는 그 정황이 바뀌게 되겠죠. 모든 것이 이뤄진 시대라는 건 그 후에 힘든 시기는 이미 예정된 거나 다름없어요. 정샘의 설명을 참고하면요. 천하의 일이라는 것이 고정된 이치란 것이 없어서 나아가지 않으면 물러나게 되어 있어요. 기제의 끝으로 가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니 멈추지만, 계속 멈춰 있을 수 없어서 다시 쇠락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이르러서 성인은 그 도가 궁극의 지점에 이르기 전에 그 변화를 미리 파악해야 하고, 그것이 너무 극으로 치달아 가지 않도록 해야 한대요. 정샘은 그 예로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왕위를 선양한 것을 들었어요. 우샘께서는 이것이 장기인턴제(인턴으로 28년을?!)라고 얘기해주셨죠. 그리고 기제시대의 성인은 최대한 스무스한 연착륙을 고민해야 한다고도 하셨어요. 이 때는 큰일은 어차피 할 수 없는 시대니까 작은 일들을(단전에서도 다시 말하지만, 기제괘가 형통한 것은 작은 일에 형통한 것(小者 亨也)을 말하죠) 잘 살펴서 해야 한다고요. 대상전에서는 군자가 기제를 보고 환란을 염려하여 그것을 예방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 같은 태평성대에 오히려 곧 닥칠 어려움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죠.

 

효를 살펴보면요.

초구는 수레바퀴를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뒤로 끌고요(曳其輪). 그 꼬리를 적시면 허물이 없을 거라고(濡其尾 无咎) 했어요. 초구는 양이면서 위에 정응이 있고, 또 리괘의 화기운이다 보니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죽겠는 거예요. 하지만 기제괘는 빨리 나아가도 할 일이 없는 괘죠. 오히려 앞으로 튀어나가지 못하게 뒤로 끄는 것이 얘한테는 좋은 것이 돼요. 그럼 이 꼬리 얘긴 뭔가요? 짐승이 강을 건널 때 꼬리를 들고 건너는데, 꼬리가 젖으면 강을 건널 수 없대요. 여기서 꼬리를 적셨다는 건, 강 건너기를 포기한다는 말인 것이죠. 그러면 허물이 없게 돼요. 기제괘기 때문에 오히려 처음부터 튀어나가지 않도록 말리는 것이 좋다는 거예요.

 

구삼은요. 상나라의 고종이 귀방이라는 부족을 치기 위해 아주 멀리까지 원정을 가서 전쟁을 하려는데(高宗 伐鬼方), 3년이나 되어서야 그것을 이길 수 있게 되니 소인은 이런 정책을 써서는 안 된대요(三年克之 小人勿用 - 혹은 소인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도 해석이 된대요). 정샘은 기제와 같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 시대에는 군주에게 멀리까지 나가서 난폭한 부족들을 정벌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지만, 이런 일은 오직 어질고 지혜로운 군주만이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괘의 시작부터 이 시대엔 작은 일만 할 수 있다고 몇 번을 강조했던 걸 떠올려보면 3년이나 걸릴 만한 일은 중대한 일이고 고단한() 일이니 신중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죠.

 

육사는요. 젖을 것을 대비하여 헌 옷가지를 준비하고 종일 경계하라(有衣袽 終日戒)고 했어요. 이건 무슨 상황인가요. 제(濟)는 강을 건너는 거잖아요.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중에 배에 구멍이 나고 물이 샐 수 있다는 걸 생각해서 그 구멍을 틀어막을 헌 옷가지들을 미리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시면 되겠어요. 굉장히 철저한 준비죠. 하지만 육사는 이제 왕을 보필하는 아주 막중한 임무를 띤 자리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 기제괘의 태평성대함이 이제는 기울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시기기 때문에, 깨어있는 신하라면 이제 곧 들이닥칠 환난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항시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죠.

 

구오의 군주는요. 동쪽마을에서 소까지 잡아서 제사를 크게 잘 차려봤자, 서쪽마을에서 간소한 여름제사로 복을 받는 것만 못하게 돼요(東隣殺牛 不如西隣之禴祭 實受其福). 여기서 정샘은 5를 동쪽으로, 2를 서쪽으로 봤는데요. 2까지만 해도 아직 기제괘의 아래쪽이어서 할 일이 좀 있었고 복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 5까지 와서는 그 기제괘의 끝에 다다랐기 때문에 더 이상은 추진할 바가 없다고 봤어요.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하기보다 지극한 정성과 바른 마음으로 그냥 자신을 잘 지켜서 어려움으로 상황이 확 뒤집어지지 않도록 애쓰는 것 정도를 할 수 있을 뿐이죠.

 

마지막의 상육을 보면요. 강을 건너려다 꼬리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머리까지 젖어버렸어요(濡其首). 그러니 당연히 위태롭게 됩니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분명하죠. 제가 기제괘에서 특별히 이렇게 구구절절 효사의 이야기들을 늘어놓은 것은 미제괘의 상황과 비교가 될 수 있었으면 해서예요.

 

그럼 미제를 볼까요.

미제는 괘사부터 어린 여우가 등장해요. 미제는 우선 형통하고요(未濟 亨). 어린 여우가 과감하게 물을 건너는데, 그 꼬리를 적시니 이로울 바가 없습니다(小狐 汔濟 濡其尾 无攸利). 미제는 기제와 달리 아직 일이 이루어지기 전, 어려운 시기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니 아이러니하게도 큰일들은 해낼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형통하다고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어려운 시기니 처음부터 조심해야 되겠죠. 꼬리가 안 젖도록 조심해야 해요. 과감히 건너려고 해서는 이로울 게 없습니다. 신중히 처신해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돼요.

 

대상전을 보면요. 군자는 미제괘를 보고 겪는 일에 신중히 하며 상황을 잘 판단해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잘 머무른다고 했어요(君子 以 愼辨物 居方). 미제는 기제와 반대로 불이 위로 가 있고 아래 물이 있어서, 불은 위로 물은 아래로 가려고 하기 때문에 각자가 따로 놀게 돼요. 불과 물이 어울리지 못하고 위 아래로 ‘불 따로 물 따로’가 되는 것이죠. 이건 그 적당한 자리에 있지 못하는 것이 돼요(맨 처음의 설명에서, 미제괘의 모든 효가 다 부정하다고 했던 것 기억하시죠?). 그래서 미제괘의 성인에게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지키는 것, 그것을 위해 주변의 상황을 잘 판단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효를 볼게요.

초육은요. 그 꼬리를 적시니 부끄러워요. 초육은 음이면서도 감괘에 속하니 험한 곳(險)에 빠져 있는 형상이죠. 한참 불안해하고 있는데 위에 정응이 있으니 당연히 의지를 하고 싶겠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유혹하는 구사의 도움의 손길이 ‘썩은 동아줄’이라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입니다. 우샘께서 앞에서 끌어줄 것 같은 번듯해 보이는 선배가 오히려 다단계로 끌고 가는 수가 있다고 예를 드셨는데요. 미제의 시대는 아직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 힘든 시대이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했어요.

 

구이를 보면요. 기제괘의 초육에서처럼 수레를 뒤로 끄는 얘기가 나와요. 근데 다른 것은 이 수레바퀴를 뒤로 끌면 정하고 길하게(曳其輪 貞 吉) 된대요! 미제 시기는 할 일이 너무 많은 시기여서 마음이 급하기가 쉬운 때래요. 이때의 군주는 육오로 유약한 음의 군주네요. 그러니 정응인 구이가 너무 강하게 몰아붙이면 군주에게 스트레스를 주기가 딱 좋아지죠. 그래서 구이는 육오인 군주와의 관계 속에서 적절한 속도조절을 해야 합니다. 급한 마음을 버리고, 달려 나가고 싶은 기세를 줄이고, 다소 여유롭게 천천히 제동을 걸어야 길하게 되는 거예요.

 

구사는 정하고 길하여 후회가 없는데요(九四 貞 吉 悔 亡). 떨쳐 일어나서 귀방을 치니 3년이 지나서 대국에서 상을 받게 될 거라고(震用伐鬼方 三年 有賞于大國) 하네요. 여기에도 기제괘처럼 귀방을 정벌하는 얘기가 나왔어요. 이제 미제괘의 힘든 시기가 중반을 넘어갔으니 조심스럽게 살피거나 신중히 해야 할 때는 지났어요. 이제 온힘을 기울여서 큰일들을 해나가야 할 타이밍인 것이에요. 자신의 재능을 모두 발휘하여 주어진 일들을 감당하고 나면 좋은 결과들이 있게 됩니다. 여기서 구사는 뜻을 강하게 갖고 일을 맡아서 힘을 다해야 해요. 그래도 3년이라는 긴 시간을 일을 해야 되지만, 결국 그 시기를 버티고 나면 인정을 받게 되기 때문에 충분히 노력할 만합니다. 이때는 굳건한 마음을 가지고 3년을 잘 버티면서 일을 끈기 있게 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래서 이제 육오, 군주의 자리에 와서는 정하고 길하며 후회가 없고요(六五 貞 吉 无悔). 군자의 빛남이 성과가 있어서 믿을 만하니 길합니다(君子之光 有孚 吉). 미제괘의 육오효에는 좋은 말이 몽땅 들어가 있네요! 육오는 리괘, 문명의 지혜롭고 명철한 군주이면서, 자신이 음인 것도 그 마음을 비운 것으로 봤어요. 게다가 양인 구이, 정응의 도움도 있고요. 그러니 아직 강을 건너지 못했다면 이제는 건너서 큰일을 이룰 때가 온 것이죠. 기제괘에서는 소를 잡아도 별 볼일이 없었다고 했잖아요? 미제의 시대로 오면 군주가 큰일을 하게 되고 그 업적이 번쩍번쩍 빛까지 납니다.

 

지금까지 두 괘의 효사를 예로 들어 좀 자세히 비교해 봤는데요. 기제의 시대는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태평성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작은 일밖에 할 수 없거나 쓰임을 받지 못하게도 되고, 미제의 시대는 어려움(艱難)의 시대라고 했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큰일들을 해나갈 수 있었죠. 그래서 주역에서는 좋은 괘나 나쁜 괘를, 인생에서는 좋은 시기나 나쁜 시기를 딱 쉽게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64괘의 마지막 두 괘가 서로 닮은 듯 다른 이야기들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듯이, 어느 시대든 그 때를 잘 읽고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는 게 항상 정답이 됩니다.

 

이번 주는 한주 쉬고 다시 다음 주에 새 학기가 개강을 하죠. 드디어 기다리던 계사전을 살펴보게 될 텐데요. 주역을 배우고 싶었지만 64괘의 중간에 들어오는 것을 계속 망설이셨던 분들은 지금이 좋은 기회이니 얼른 신청들 하세요(당근샘..?)~~!! 전체 괘들을 쭉 정리하면서 훑어볼 수 있게 되겠지요. 호홋. 정예멤버 여러분과 신선한 얼굴들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 주 토요일에 만나요!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