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문톡톡

[원일의 락락] 린치가 이끄는 꿈의 세계, 멀홀랜드 드라이브 OST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16-12-16 12:04
조회
631
린치가 이끄는 꿈의 세계

David Lynch 감독의 2001년 영화 <Mulholland Drive>(멀홀랜드 드라이브) OST
2001년 칸느 영화제 감독상 수상.
2016년 BBC가 선정한 21세기의 위대한 100대 영화 리스트중 당당히 1위 자리에 등극
주연: 나오미 왓츠, 로라 헤링, 앤 밀러
The 100 greatest films of the 21st Century



데이비드 린치는 핀란드계 미국인 영화감독으로 몬테나 주 미줄라에서 태어나 학생 때는 미술을 전공하였다. 미국에 자신의 이름으로 운영하는 재단도 운영하고 있을 만큼 각별한 명상 애호가이기도 한 그는 ‘초월명상’을 매일 20분씩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50~60년대 미국 히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인도의 요기 마하리쉬 마헤쉬가 창시한 명상법이다. 명상에 관련된 다양한 경험과 이야기는 그의 저서 <빨간 방>에 기술되어 있다. (데이비드 린치의 명상관련 다큐멘터리 영상은 여기서 확인해보시라. David Lynch - Meditation, Creativity, Peace; Documentary of a 16 County Tour [OFFICIAL](https://www.youtube.com/watch?v=BH4qD5Fzyjk) 다소 선정적인(?) 제목으로 국내에 이 책이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Catching the Big Fish” : Meditation,Consciousness, and Creativity』. 아마도 국내에서 가장 그를 널리 알린 계기가 된 TV 시리즈 《트윈 픽스 Twin Feaks》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빨간 방의 이미지에서 착안해 제목을 결정한 듯하다.

데이비드 린치는 1966년 《6명의 아픈 사람들 Six Figures Getting Sick》이라는 단편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레이저 헤드》 같은 초기의 실험적 영화들과 SF물 《듄》, 범죄 심리 드라마인 《로스트 하이웨이》 등은 현대 컬트영화 예술의 고전적 반열에 올라 있다.
린치의 영화들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신화적 상징과 꿈, 그리고 광기를 파고든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이 폭력적, 물리적 그로테스크한 미학을 선보인다면 데이비드 린치는 정신병적이며 환각적인 무의식의 미궁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감독의 영화는 모던 컬트무비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데 강렬하고 특별한 경험을 해보려는 각오가 되어 있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난해하다’고 평가받는 대부분의 그의 작품들 가운데 대중과 평단 모두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며 흥행에도 성공한 보기 드문 경우로 꼽힌다. 이번 기회에 음악과 사운드에 집중하여 꼭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감상해볼 것을 권한다. 만약 이 작품을 보고 난 후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더 센 카오스적 극단의 미궁에 빠져들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2006년 배우 로라 던이 열연한  《인랜드 엠파이어 Inland Empire》를 권한다 ^^

개인적으로는, 인간 무의식의 기이한 측면을 영상 이미지로 다루는데 있어서 탁월하고 독창적인 감각의 미학을 선보여 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반면 그가 사운드와 음악을 다루는 비범한 솜씨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그에 관하여 아직도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 중 하나는 이미 그가 90년대부터 싱어 송 라이터로 음악 활동을 해 왔다는 점이다. 그의 영화에서는 감독 자신이 직접 작곡하고 만든 사운드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의 대표적인 TV시리즈 《트윈픽스》에서도 이미 끈적끈적하고 섹시한 <Imaginary Girl>이라는 곡을 작곡하여  뮤직비디오처럼 사용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ljtHpfb02Rc)
사실 이 코너를 연재하던 초반에 데이비드 보위의 1995년 앨범 【Outside】에 수록되었던 트랙 〈I’m Deranged〉를 영화의 타이틀 음악으로 사용했던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1997년 영화『로스트 하이웨이』 소개한 바 있었다. 평소에도 영화 이야기를 할 때면 늘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으로 린치를 주저 없이 꼽아왔던 나에게 올해 BBC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영화100선의 리스트는 차일피일 미뤄왔던 이 원고를 쓰도록 재촉할 만큼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BBC가 전세계의 영화 전문가들을 상대로 조사하여 발표한 21세기의 영화 상위 ‘베스트 10’의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전체 리스트 확인은 다음 링크 참조(http://www.bbc.com/culture/story/20160819-the-21st-centurys-100-greatest-films)

10위권 영화 목록
10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09위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08위 《하나 그리고 둘》
07위 《트리 오브 라이프》
06위 《이터널 선샤인》
05위 《보이후드》
04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03위 《데어 윌 비 블러드》
02위 《화양연화》
01위 《멀홀랜드 드라이브》



《멀홀랜드 드라이브》 사운드 트랙의 주요 음악들은 이탈리아계 미국 작곡가 안젤로 바탈라멘티가 담당했는데 그는 린치가 연출한 86년 영화 《블루벨벳》에서부터 호흡을 맞춰 온 영화음악 작곡가이다. 린치의 많은 영화에서 테마와 관련된 작곡은 거의 바탈라멘티가 담당했을 정도로 둘은 오래된 작업 파트너.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OST의 가장 큰 특징(어쩌면 감독 자신의 특기인 듯하다)은 바탈라멘티의 작곡과 린치에 의해 배치된 ‘꿈’으로 들어서는 과정을 유도하는 듯한 앰비언스 사운드에 있다. 실제 영화에 사용되는 효과음들의 사운드와 음악들을 의식하며 꼭 전편을 다시 감상해보시라. 더 깊게 린치 영화의 참맛을 음미하며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영화 중간 중간에 나오는 50, 60년대의 멋진 패션과 노래들은 깨알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자, 이제 인상적인 영화 장면 및 그 전편에 흐르는 사운드트랙을 살펴보자. 오프닝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것은 경쾌한 춤곡 ‘지터벅’이다. 음악을 타고 쌍쌍별로 다이내믹하게 춤을 추는 젊은 남녀의 모습으로 시작하는데, 모두 5, 60년대 복고풍 패션을 한 젊은 남녀들이다. 국내에서 흔히 지루박으로 불리는, 아줌마들이 고속버스에서 추는 뽕끼와 유치찬란함이 마구 넘치는 막춤 음악으로 유명하하다. 하지만 원래 경쾌한 4박자 춤곡인 지터벅은 나름의 격식과 패턴을 가지고 있고, 그게 잘 지켜졌을 때 제대로 된 흥과 멋이 우러나온다는 사실!
아무튼 이와 같은 오프닝 시퀀스는 마지막과 수미상관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이 오프닝 시퀀스를 다시 한 번 돌려보면 탁월한 배치임을 알게 된다. 의미심장하게 이어지는 다음 장면에서 붉은 이불을 덮어쓰고 죽었는지 잠을 자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어떤 사람을 잠시 비춰준 후 이어지는 오프닝 타이틀 씬은 자동차 사고로부터 사건이 전개될 도로인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천천히 달리는 수상한 검은색 세단 자동차를 따라 음산하게 흐르는 음악을 타고 펼쳐진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테마 음악. 이 사운드는 듣는 사람의 감성을 다운모드로 전환시키는 힘이 있어 듣다보면 차분하게 지켜보는 입장이 된다. 음산하게 밤공기를 가르며 넓게 퍼지는 전자악기적 스트링 패드의 소리다.
영화는 할리우드 여배우를 꿈꾸며 LA에 도착한 아름답고 젊은 베티(나오미 왓츠)가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사고를 당한 또 다른 베티(로라 해링)와 만나면서 점점 여러 사람, 사건들에 엮이고 꼬여가는 과정에서 히스테릭한 정신분열적 광기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인상적이며 감정적인 파토스가 마구 터져 나오는 장면은 한 밤중에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택시를 타고 ‘클럽 실렌시오’에 들어가 두 여주인공이 서로의 두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며 넋을 잃고 밤무대 여가수가 무반주 스페인어로 <LLorando(Crying)>을 노래하는 장면일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uHQnb3HS4hc0) 마치 얄궂은 운명은 미리 만들어 놓은 테이프 속의 음악처럼 반주자도 오케스트라도 없이 예정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는 암시를 주는 것처럼. 여가수는 세상에서 가장 구슬픈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다 쓰러지지만 부르던 노래는 계속 흐른다. 그리고 어느새 두 사람의 손에는 열쇠와 자물쇠의 키가 들려 있다. 영화를 보는 자도 영화 속의 주인공들도 모두가 가짜 노래에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 장면의 압도적인 힘에 속수무책 당하고 만다. “노 반다! 노 오케스트라!! 실렌시오!!”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마지막은 한 개인이 빠져드는 강박과 공포, 파라노이아의 극단을 가장 극명하고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클럽 실렌시오에서 그 노래를 듣지 않았다면……. 그곳에는, 아니 인생에는 결국 화려한 밴드도, 함께할 오케스트라도 반주도 없다. 결국 조용히… 오직 죽음으로 흐르는 침묵과 연결되는 통로만이 있는 것은 아닌가?

영화는 이 장면 이후 급속하고 처절하게 두 사람의 뒤바뀐 운명을 따라간다. 클럽 실렌시오의 여가수가 노래하는 장면에는 여주인공 베티의 운명의 입구와 출구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한 사람안에 내재하는 이중인격과 정신분열적 측면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악몽 같은 체험이 모두 경험되는 세계는 꿈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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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31 22:15
    꿈으로 유도하는 사운드라니 어떤 음악일까 궁금해졌어요. 원일쌤 글 앍다보면 장면 하나가 머릿속을 지나가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