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문톡톡

유학일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6-12-20 01:44
조회
613
12월 15일 목요일 남산강학원에서 김동광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왔습니다. 스티븐 J 굴드의 여러 책을 비롯하여 많은 책들을 번역하셨는데, 굴드의 책 몇 권을 읽었던 인연을 좇아 강의를 듣게 됐습니다. 이것을 일기형식으로 남기려하는데, 미리 말씀드리자면 재미가 없습니다. 이 점 유의하시고,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셔도 됩니다.

 

이번 강의의 주제는 “과학혁명”입니다. 과학혁명이 일어난 시기는 16~17세기인데 프랑스혁명과 함께 이 둘을 근대 탄생의 조건으로 꼽습니다. 그런데 과학혁명이나 프랑스혁명을 잘 모르는 저는 이 둘이 어떻게 근대의 탄생과 연결되는지 잘 모릅니다. 하하하;; 다만 두 개의 혁명 덕분에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확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번 강의는 과학혁명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근대라는 공간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는지, 사람들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얘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보통 과학혁명 하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산업혁명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선생님은 이 둘은 전혀 연관이 없다고 합니다.

과학혁명을 거칠게 정의하자면 코페르니쿠스부터 뉴턴에 이르기까지의 천체역학의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시작으로 르네상스 이후에 부여됐던 자연에 부여됐던 신성을 조금씩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곧 데카르트의 이원론, 자연에서 정신적 요소를 제거하는 철학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을 기계론 철학이라고 하셨는데, 자연을 신성한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인간에게 필요한 법칙 그리고 윤리, 비밀, 진리와 같은 것을 캐낼 수 있는 자원으로 보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프란시스 베이컨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베이컨은 광부와 대장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자연이 숨긴 진실을 끌과 망치로 캐냄으로써 발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고방식과 함께 ‘진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고 합니다. 진보의 등장으로 이전의 시대는 지금의 시대를 위해 존재했고, 지금의 시대는 다가올 시대를 위한 밑거름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인간의 냉철하고 논리적인 이성은 자연이 숨긴 것을 캐내고, 그렇게 캐냄으로써 시대가 지날수록 인간은 점점 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윤리가 물질화된 것이 ‘실험실’입니다.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는 철저한 통제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크 드 보캉송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Jacques De Vaucanson이란 18세기에 활동했던 예술가의 작품입니다. 그는 Automatoh(자동기계)를 만드는 사람인데, 사진에 나오는 “기계오리”나 “플룻 부는 소년”이 대표적인 그의 작품입니다. 기계오리의 내부는 수많은 부품으로 이루어졌는데 태엽을 감음으로써 음식물을 섭취하고 소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매우 생생한 작품이었고 기계가 진짜 오리처럼 돌아다니는 게 신기해서 유럽 순회공연까지 다녔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중에 고장이 나서 더 이상 기능할 수 없게 되자, 프랑스 일간지에서는 “오리, 드디어 죽다”라고 했습니다. “고장났다”가 아니라 “죽다”로 표현한 것은 생명체를 정교한 부품의 집합으로 보는 사고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 기계론적 사고방식과 반대되는 것으로 Johann Georg Hamann과 같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합리적인 이성으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는 감정과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김동광 선생님은 잠언과 같은 형태의 글쓰기가 이런 철학이 담겨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니체의 글(저는 잘 모르지만 ㅎㅎ;;)은 언뜻 봐도 논리적인 것과는 약간 거리가 있죠. 그리고 동양의 시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낭만주의 자연철학이나 기계론 철학은 갑자기 없는 곳에서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닙니다. 두 가지 모두 이전에 있었던 철학을 바탕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기계론 철학은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여러 철학자들의 합리적인 체계를 바탕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낭만주의 자연철학 이전에는 그것과 매우 비슷한 헤르메스주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둘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낭만주의 자연철학이 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감각적 이성(?)으로 세상을 봤던 것처럼, 헤르메스주의 역시 세계를 알 수 없는 신비롭고 마술적인 힘의 네트워크로 봤습니다. 수정구로 세상을 본다거나 짚을 이용한 저주, 부두술 등등이 모두 여기에 속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단순히 마술적인 것 이상을 넘어가지 않지만, 당시에는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 중 하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과학에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사고뿐만 아니라 자연철학과 같이 세상을 합리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사고도 같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의 어떤 철학이 이런 경쟁 없이 있었겠느냐마는 저한테 과학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둔 학문인 줄 알았는데, 이번 시간에는 과학을 단지 합리적인 학문으로 보는 시선에서 살짝 벗어나게 됐습니다.

이런저런 모르는 이야기들에 너무 휘둘려서 정리하는 데도 급급했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제가 느낀 재미와 여러분의 흥미를 끌 수 있을 만한 것으로 가져오겠습니다.

 
전체 3

  • 2016-12-20 09:49
    재밌네ㅋㅋㅋ그렇지만 어쩐지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얘기가 시작될 것 같은 느낌...?

  • 2016-12-20 10:32
    오호라! 몹시 다식해지는 느낌이로군ㅋㅋ다음 일기도 신속히 올려주길!

  • 2016-12-20 11:42
    의외로 재밌다ㅋ 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