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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문 도쿄 답사 : 02.11 무념무상 도쿄탐방

작성자
이응
작성일
2017-02-24 06:31
조회
396
2월 11일 도쿄 탐방 둘째날, 날씨 맑음

소세키 탐방이라는 명분으로 떠난 여행인데 막상 후기를 쓰려니 기억이 잘 안난다. 혜원이가 "이쪽으로 오세요" 하면 둥실둥실 따라다니면서 햇살이 참 좋다던지 점심은 언제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등의 생각을 하며 마음 편히 따라다녔던거 같다. 둘째날 아침에 갔던 곳이 소세키의 탄생지였다는걸 후기를 쓰면서야 알게되었다. 심지어 '나츠메자카도리(나쓰메 언덕길)'라고 번듯이 쓰여진 표지판 앞에서 사진도 찍었는데 말이다.

(나쓰메자카도리 앞에서 무념무상)


사실 이때 무척 배가 고파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날 진희샘의 뿅가는 맛사지를 받고 301호 전원은 완전히 골아떨어졌는데, 덕분에 늦잠을 자서 아침 먹을 시간이 없었다. 호시탐탐 도시락 까먹을 찬스를 엿보며 걷던 중이라 나쓰메 언덕길보다는 우동집 간판이 더 찬란하게 마음에 새겨졌다.

(도시락은 언제 까먹을 수 있을까..)


나쓰메자카도리는 약 5분 길이의 짧은 언덕길이다. 한가로운 언덕길을 걷다보면 우동집으로 보이는 묘한 가게가 있고 그 옆에 슬쩍 소세키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본 것은 소세키 비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세키가 태어난 집임을 알려주는 비석, 유학 후 살았던 집임을 알려주는 비석, 죽기 전까지 살았던 집임을 알려주는 비석, 그리고 소세키의 묘비석. 소세키가 살았던 집들은 소실되거나 보존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소세키가 시간을 보냈던 서재와 햇살이 가득 들어오던 툇마루는 사진으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한자에 능통한 인물들이 푯말에 쓰여진 뭔가를 읽어내는 동안, 무지에 능통한 인물들은 푯말의 자태를 감상했다. 무지까라의 일원으로서 푯말에서 뭐라도 읽어보고 싶었지만 일본의 푯말과 간판은 대부분 한자와 가타카나로 쓰여있다. 히라가나 정도는 읽을 수 있다던 작은 자신감이 조금 더 작아졌다 ☞☜

(푯말을 읽거나 푯말 자태를 감상하거나)


소세키가 태어난 곳에서 얼마간 더 걸어가면 소세키 산방이 나온다. 이곳은 소세키가 아사이 신문사에 입사하던 1907년부터 생애를 마감하던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소세키가 살았던 건물은 전쟁 중에 소실되고 현재 그 자리에는 '수석 공원'이 들어서 있다.

(아담한 크기의 수석공원)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아담하지만 집의 부지로서는 꽤 넓직한 공간이다. 공원 안에는 작은 기념관이 마련되어 있는데 규문에서 마우스 패드로 애용했던 소세키 리플렛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와아~ 마우스 패드다~)


수석공원에 두 번째로 방문하는 혜원이는 규문을 대표해서 한국판 소세키 전집 중 『풀베개』를 이곳에 선물했다. 작년에 왔다갔던 흔적을 방명록에서 찾아 보여드리니 기념관 아저씨는 매우 반가워하시며 올해 9월에 수석공원 옆에 소세키 박물관이 오픈하니 또 놀러오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우리를 소세키 팬클럽으로 오해하신거 같다.

(책 선물을 받고 흐믓해하시는 기념관의 오지상)


(2월의 도쿄는 벌써 봄 꽃이 한창이다)



(도쿄에 오니 냇물도 신기방기)


(메론빵을 기다리며 휴식 중)


소세키 산방을 나선 후에는 걷고 또 걸었다. 길이 너무 예뻐서 헤매고 있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다. 특히 조시가야까지 걸어가는 길은 정말 운치있었다. 2월인데 벌써 아담한 집들 사이로 봄 꽃들이 고개를 내밀었고, 마을 곳곳에는 오래된 신사라던지 영묘해보이는 나무나 불상이 곧잘 눈에 띄었다.



조시가야로 가는 골목길도 조시가야도 아주 고요하고 한적했다. 묘지라기보다는 공원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여름이면 나무들이 울창해져 제법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줄 것만 같은 분위기이다. 하늘이 어찌나 맑던지 소세키 묘비에 물을 찰박찰박 뿌리는데 물청소 하는 듯 기분도 상쾌해졌다.

(영감을 주세요 소세키상)



(코끝이 시큰. 느므 맛있었던 감동의 도시락)


참배를 마치고 야나기무네요시의 민예관으로 향했다. 야나기무네요시가 살았다던 가옥은 어떤 의미로 굉장했다. 목조로 된 계단이며 아무것도 없이 비워진 작은 방, 고즈넉한 서재에는 섬세함같은 것이 흘러넘쳐서 나도 모르게 조신히 걷게 되었다.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어있어서 눈으로만 담았다. 전시된 그릇이며 그림 하나 하나가 너무 '고졸'해서 느긋하게 감상하고 싶었지만 마감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라 급히 보고 나온 것이 아쉬웠다.



(민예관 앞에서)


민예관을 나와 도쿄대로 향할 즈음에는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었다. 도쿄대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산시로 연못에 도착하니 이미 깜깜해져서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연못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연못에는 이렇다할 가로등 하나 켜있지 않았는데, 도쿄대 쪽에서도 이 시간에 11명의 관광객이 찾아올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다만 도쿄대 건물 주변만큼은 은은한 조명이 들어와서 꽤 멋있었다.



(유럽같던 도쿄대)


이렇게 도쿄대까지 찍고 하루의 일정을 마치는가 했는~데! 우리에겐 소세키 글 합평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작은 방에 11명이 빼곡히 둘러 앉아 새벽까지 합평을 하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이렇게 하루를 꽉꽉 채워 쓰는 일정일줄은 상상도 못했다. 무진장 걷고, 걸으면서 내내 이야기하고,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눈뜨니 아침이고, 굶주리다 먹는 밥은 왜이리 맛있는지. 몸은 고단해도 마음은 단순하고 화창했던 3박4일이었다. ^ㅇ^


작성 : 이응
전체 1

  • 2017-02-24 22:17
    이응이 저기 소세키님 앞에서 얼마나 밥을 챱챱 맛있게 먹던지.. 그때부터 알아 봤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