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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계사하전6-9장

작성자
미리
작성일
2017-02-25 13:23
조회
307
주역 후기(계사하전 6-9장)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한 주 쉬는 것을 면피 삼아 올려봅니다.

이번 시간엔 계사하전 6장에서 9장까지 읽었습니다. 6장을 시작하며 우샘께선 역사에 대한 말씀을 잠깐 하셨습니다. 역사를 해석한다는 것이 언제나 현재적이듯, 계사는 역에 관한 공자의 해석이라고 하셨죠. 은주 교체기에 복희씨가 그려놓은 팔괘에 문왕이 사(辭)를 붙여, 인간의 길을 밝힌 주역을 만들었고, 천자가 사라진 무도한 시대를, 공자가 주역에 자기해석을 붙여 풀어낸 것이 계사전이라는 것입니다. 모두 치열하게 자기 시대를 살아 낸 흔적들인 셈이지요.

子曰, 乾坤, 其易之門邪 乾, 陽物也, 坤, 陰物也.

陰陽合德而剛柔有體, 以體天地之撰, 以通神明之德. 其稱名也, 雜而不越, 於稽其類, 其衰世之意邪 夫易, 彰往而察來, 而微顯闡幽.

開而當名辨物, 正言斷辭則備矣. 其稱名也小, 其取類也大, 其旨遠, 其辭文, 其言曲而中, 其事肆而隱. 因貳以濟民行, 以明失得之報.

주역의 통찰력은 천지를 이간(易簡)하게 보는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생성하고 오래 갈수 있는데, 6장의 시작도 건곤(乾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건곤의 구도가 乾-陽-天-男, 坤-陰-地-女 로 설명되었는데 이것이 강유(剛柔)의 작용으로 체(體)가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6장에서 건곤에 관한 재미있는 설명이 더 덧붙여지는데, 건곤은 생성의 핵심(문)입니다.(其易之門邪) 하늘과 땅은 만물의 문인데, 혼돈의 한 덩어리에서 천지로 나뉘어지고 그 사이에서 인간과 만물이 만들어집니다. 괘상으로 보면 순양의 건괘와 순음의 곤괘가 변화하여 물도 불도 바람도 만들어지니 천지의 문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천지는 모든 일을 체로 만들어 놓았으며 (以體天地之撰) 신명의 덕이 통하게 (以通神明之德) 합니다. 천지가 만드는 체(體)의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을 모두 포괄) 작용(德)이 신명(神明=神妙=노자의 도의 작용)과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천지 만물은 구성, 강밀도만 다르지 그 요소는 같기 때문입니다. 나무도 바람도 사람도 같은 DNA를 가진 천지의 일부라는 것이지요.천지의 변화 작용을 통해 인간사를 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일 테구요. 쉽고 간단하고 정말 재미있지요? 그러니까 천지의 불가사의 한 모든 일을 64괘 안에 넣어 해석할 수 있는 것이지요. 64괘 자체가 하나의 시공간의 시스템을, 표현한 거라고 볼 수 있지요. 해서 역은 지나간 것을 드러내 오는 것을 살피고 (彰往而察來) 드러난 것은 꼼꼼히 살피고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게 합니다.(而微顯闡幽) 이 과정에 괘가 만들어지는데 괘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當名) 분별해 놨으니(辨物), 주제를 바르게 잡아(正言) 괘사 효사를 제대로 해석하고 바르게 판단하는(斷辭)것이 바로 ‘점’이라고 합니다. 이것으로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구제해 (以濟民行) 주며 길흉의 결과를 알려주는 것이(以明失得之報) 정치인들의 역할이라는 것이 6장의 내용입니다. 주역의 총론이지요

易之興也, 其於中古乎 作易者, 其有憂患乎

是故履, 德之基也, 謙, 德之柄也, 復, 德之本也, 恒, 德之固也, 損, 德之脩也, 益, 德之裕也, 困, 德之辨也, 井, 德之地也, 巽, 德之制也.

履, 和而至, 謙, 尊而光, 復, 小而辨於物, 恒, 雜而不厭, 損, 先難而後易, 益, 長裕而不設, 困, 窮而通, 井, 居其所而遷, 巽, 稱而隱.

履以和行, 謙以制禮, 復以自知, 恒以一德, 損以遠害, 益以興利, 困以寡怨, 井以辯義, 巽以行權

7장은 주역괘에 대한 공자의 해석입니다. 7장에서 공자는 역이 흥한 시대를 中古시대, 문왕의 시대라고 밝힙니다. 주역을 만들 당시 근심이 있어 (其有憂患乎) 문왕이 주역을 만들(作易者)었다고도 합니다. 근심이란 주의 폭정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인간에게 필요한 덕(德)을 설명하셨는데 공자는 덕의 아홉가지를 뽑아서 서경과 연결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덕은 사람으로 보면 인격 능력 품성인데요, 7장을 해석함에 이 텍스트는 상수역(구궁으로 해석)보다는 의리역을 따릅니다. 의리역은 리괘에서 손괘까지를 하나의 시리즈로 해석하여 덕을 닦는 과정의 프로그램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7장에서는 구덕을 3번에 걸쳐 변주하며 꼼꼼히 설명합니다.

먼저 리(履)는 예(禮)이고 덕의 기초이며 구분(定分)입니다. 이것은 주자의 注로 신분제 사회에서 구분은 넘어선 안되는 것이고 자신의 출발점 (德之基也) 같은 것이죠. 겸(謙)은 덕이 쥐고가야 (德之柄也) 하는 것으로 겸손한 태도로 스스로를 낮추고 남을 높임으로서 우환에 대처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으로 되돌이켜 덕을 닦는 것을 말합니다.(反身修德) 복(復)은 덕의 근거(德之本也)로 마음을 밖(부귀영화)으로 두지 말고 善의 단서를 보존하는 것입니다. 항(恒) 덕의 항상되어 불변(德之固也)한 것이고, 손(損)은 덜어냄(德之脩也)으로 감정의 요동, 분노등을 조절 하여 修身함을 말하지요. 익(益)은 덕의 넉넉함으로(德之裕也) 자신을 덕의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곤困은 덕의 드러남(德之辨也)인데 어려운 상황일 때 그 사람의 역량이 알게 됨을 말합니다. 정(井)은 덕의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德之地也) 덕을 닦아감에 그 자리에서 동요되지 않아야함을 이름이며 그럴 때 우물물처럼 남들에게도 혜택을 주게 되는 것이죠. 손(巽)괘는 덕이 동요되지 않은 다음에 그 이치에 따르는(德之制也) 능력이 생기는 것으로 이것은 내적 힘이 있을 때 가능한 얘기지요. 우발성안에서도 상황을 조절할 수 있는 있다는 것은 자기 힘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니까요. 음..쉬운 게 없네요

두 번째 해석. 리(履)는 예로써 세상과의 어울림이 지극한 것인데 (和而至)으로 이것은 억지로, 의도적으로 하는 예가 아니라 몸에 붙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스러워야 지극할 수 있지요. 겸(謙)괘에서는 겸손함으로 자신이 더 빛난다고(尊而光) 했네요. 복(復)괘의 지뢰복은 5陰에 1陽으로 양이 미미하나 판단을 잘 해서 외부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가는 것입니다.(小而辨於物) 항(恒)은 여러 상황에 처해져도 동요되지 않고(雜而不厭) 상덕(上德)을 발휘하는 힘입니다. 손(損)괘는 어려운 일(분노조절과 욕망)을 먼저 다스려 내면화(先難而後易) 시키는 것이고 익(益)은 조작하지 않고 단지 충실하게 (長裕而不設) 따르는 것으로 맹자의 조장과도 같다고 하셨습니다. 곤(困)는 고달픈 처지에 처함으로써 오히려 도가 터진(窮而通)다고 했는데 권력을 탐하거나 호의호식하지 말라는 것으로 들리네요. 이것을 왕부지는 구양수의 표현을 빌어 글을 쓰는 고통에 비유하기도 했다고 하네요.(窮而後工) 정(井)괘는 우물은 움직이지 않지만 우물물을 여럿이 퍼 날라 만물에 미침을(居其所而遷) 말했는데, 샘은 이 대목에서 이 정도의 덕을 쌓은 후엔 베풀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손(巽)괘의 稱而隱에서 ‘은’을 잘난 척하지 않음(不伐), 드러내지 않음으로 해석해 외부의 일에 자신를 맞추되, 잘난 척하지 않고 공을 차지하지 않아야 不爭하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변주입니다. 예의 실천으로써 화를 행하고(履以和行) 예를 행하는 것이 겸손이고(謙以制禮) 내가 무엇을 할지 스스로 알고 스스로 자각하는 것이 복(復以自知)이고, 도의 단서를 쭉 지켜나가는 것이 항(恒以一德)입니다. 손으로써 해를 멀리하고(損以遠害), 익으로써 이로움, 넉넉함을 만드는데(益以興利) 그래야 나눌수 있겠죠. 곤은 원망하고 탓하는 것을 줄이는 것(困以寡怨)인데 원망이 있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으로써 추이를 예측하고 마땅한 이치들을 판단하는 것이고(井以辯義) 손으로써 상황에 적합하게 권도를 행하는 것으로(巽以行權) 샘은 ‘행권’을 시중에 맞게 적용함 이치를 마름질(制)하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易之爲書也, 不可遠. 爲道也屢遷, 變動不居, 周流六虛, 上下无常, 剛柔相易, 不可爲曲要, 唯變所適.

其出入以度, 外內使知懼. 又明於憂患與故, 无有師保, 如臨父母.

初率其辭, 而揆其方, 旣有曲常. 苟非其人, 道不虛行.

8장은 다시 주역이 어떤 것인지를 말합니다. 이 장에서 재미있는 것은 주역의 6자리를 육허(六虛)로 말하는 것인데, 6자리는 점을 치기 전까지는 빈자리인데 점을 쳐 괘가 나오면 비로소 거기에 해석이 붙어 음양이 변하고 움직이게 된다는 것입니다.(變動不居) 이 변화는 예측만 할 뿐 어떤 원칙(典要)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오직 변화를 따를 뿐이고 그 다이나믹한 변화를 알기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구요.(外內使知懼) 그래서 이제 당부합니다. 선생님이 항상 붙어서 모든 걸 가르쳐 줄 수 없으니(无有師保) 주역을 곁에 두고(不可遠) 부모님이 곁에 임한 것 같이(如臨父母) 경계하고 조심함을 잊지 말라고요. 주역을 처음 공부할 땐 무조건 주역을 착실히 읽어 사람의 도를 헤아려야 하는데(初率其辭而揆其方)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典常(이치)을 깨닫는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진실로 그런 사람이 행하는 道여야 헛되지 않은 것이라고(道不虛行) 경계의 가르침을 주셨네요. 우샘께서도 논어의 구절을 빌려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고(人能弘道,非道弘人) 부연해 주셨습니다.

易之爲書也, 原始要終以爲質也. 六爻相雜, 唯其時物也.

其初難知, 其上易知, 本末也, 初辭擬之, 卒成之終.

若夫雜物撰德, 辯是與非, 則非其中爻不備.

噫! 亦要存亡吉凶, 則居可知矣. 知者觀其彖辭, 則思過半矣.

二與四同功而異位, 其善不同, 二多譽, 四多懼, 近也. 柔之爲道, 不利遠者, 其要无咎, 其用柔中也,

三與五同功而異位, 三多凶, 五多功, 貴賤之等也. 其柔危, 其剛勝邪?

9장은 역의 글됨을(易之爲書也) 말하는 장입니다. 역은 처음을 바탕으로 끝을 요구하는 것인데 (原始要終) 괘의 초효에서 기미를 알아내고 상효에서 마무리(要=成)짓는다는 의미입니다. 원시요종(괘사)이 그 바탕이 되는데 (質=體) 始는 초효로 終은 상효로 보아 육효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육효 하나하나는 구체적인 상황과 사건(時物)을 말하는데 초효에선 알기 어렵지만 상효가 되면 다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죠.(其初難知其上易知) 즉 초효에서 감을 잡은 후 상효에서는 마무리를 이루는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해석의 전개를 이루는 중효를 세심히 살피는 것인데요. 2와 4爻는 陽爻로 그 작용(功)은 같지만 그 해석이 같지 않은데 2효는 어진 평민으로 허물이 없기 때문에(无咎) 명예가 많고, 4효는 두려움이 많은데 군주의 자리인 5와 가깝기 때문이지요.(二多譽, 四多懼, 近也) 그래서 2효는 군주(5효)가 그립지만 가까이 가지 말고 그 무구함에서 만족하는 것이 좋지요.

3과 5효도 양으로써 작용은 같은데 위상이 다르죠. 5효는 군주의 자리이고, 3효는 천한 외직에 있는 신하의 자리이니까 귀하고 천함의 등급이 있어(貴賤之等) 3은 흉한 일이 많고 5는 업적이 많다고 봅니다. 군주는 웬만만 해도 쳐준다고 샘이 표현하셨는데...(현실은 참!) 중요한 것은 강한 자만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점이네요(其剛勝邪) 강한 자란 역의 이치를 아는 자이겠지요. 그런 사람을 知者라고 표현했는데 그는 초효만 나와도 길흉존망의 흐름이 어찌 될지 그 핵심의 반은 알아채는 사람이랍니다.(亦要存亡吉凶, 則居可知矣. 知者觀其彖辭, 則思過半矣)

멋진이네요. 주역을 배우는 시간은 자신을 반추하게 되는 시간인데 자신이 너무 잘 보여 늘 스스로 민망해지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한 주 쉬고 다음 주부터 계사전 계속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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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28 22:00
    저도 늦은 댓글 죄송해요 쌤ㅋ 어수선할 때 밖에서 올리신 거 봤는데 이제서야 찬찬히 읽네요. 장마다 세세하게 올리신 정성이 티 많이 납니다. 이런 재능을 썩히지 마시고, 앞으로 자주 후기에 동참해 주세요. 흐흣